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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356
한자 古墳
영어의미역 Tumulu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
집필자 박용국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에 분포하고 있는 삼국 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까지의 무덤.

[개설]

고분(古墳)이란 일정한 양식을 갖춘 고대 사회의 지배층 무덤을 의미한다. 엄밀히 말해서 고분은 역사학·고고학의 의미를 갖는 경우에 한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원시공동체 사회에서도 고분은 존재하나 단순히 주검이 묻힌 장소의 의미밖에 없고, 고대사회 이후가 되면 풍부한 다른 문헌 자료에 의해서 의미가 상쇄되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 고대 사회란 원시 공동체 사회에서 불평등한 소유의 단계를 지나 지배·피지배 계급이 발생하고, 지배 계급이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와 기구의 집합체로서 국가를 만든 이후부터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성격이 질적으로 크게 변화를 겪는 통일 신라 시대 말기까지를 말한다. 따라서 우리 역사에서 고분은 단순히 옛무덤이 아니라 삼국 시대와 통일 신라 시대의 성격이나 문화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많은 자료를 제공하는 지배층의 무덤을 말한다.

하동은 가야 문화권의 한 곳으로서 남해에서 섬진강을 통해서 내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목에 자리를 잡아 남부 고대 사회의 중요한 지역이었다. 하동은 후기 가야 연맹의 맹주인 대가야가 중국의 왕조와의 교섭에서 중요한 대외 창구 역할을 했던 곳이었다. 이후 백제와 신라에 의해서 차례로 영유되었다가 다시 의자왕(義慈王)이 차지하였으며, 통일 신라 시대에는 한다사군(韓多沙郡)이 설치되었다. 하동에 분포하는 고분은 고대 하동의 정치체와 문화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현재 하동 지역의 고분이 갖는 의미를 문헌 기록과 관련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면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범아리 일대의 고분군은 다사국(多沙國) 내지 이후 재지 세력과 관련된 고분일 것이며, 악양면 평사리·봉대리·입석리·축지리 일대의 고분은 낙노국(樂奴國) 내지 이후 재지 세력과 관련된 고분으로 추정된다.

최근 발견된 흥룡리 삼국 시대 고분군은 소가야, 대가야, 백제, 신라 등과 하동 지역 소국 수장이나 재지 세력과의 관계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로 생각된다. 이외에 하동의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는 삼국 시대로 편년 가능한 여러 고분은 각 지역 재지 세력이 조영한 것으로 봐도 될 것이다.

[흥룡리 삼국 시대 고분군]

흥룡리 삼국 시대 고분군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에서 국도 19호선을 따라 서북쪽 방향으로 약 7㎞쯤 진행하면 나오는 흥룡마을 뒷산 분기봉에서 섬진강 쪽으로 뻗어 내린 서쪽 능선 사면부에 위치하고 있다. 흥룡리 삼국 시대 고분군은 2010년 국도 19호선 확장 공사로 인하여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삼국 시대 수혈식 석곽묘 21기, 조선 시대 분묘 16기가 확인되었다.

수혈식 돌덧널무덤[石槨墓]는 단곽식과 다곽식으로 구분되며, 대부분 주구[물 고인 도랑]가 설치되어 있다. 주구나 벽석에는 장례 풍속으로서 매납한 토기가 발견되었다. 수혈식 돌덧널무덤에서는 토기, 철기, 장신구 등 191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5~6세기대로 추정된다. 흥룡리 삼국 시대 고분군에서는 지역 양식의 토기와 아울러 소가야, 대가야, 백제, 신라 양식의 토기가 거의 같은 비율로 출토되었다. 이것으로 봐서 흥룡리 삼국 시대 고분군은 하동 지역 정치 세력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고이리 고분군]

고이리 고분군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고이리 이곡마을 회관에서 동북쪽으로 약 300m 떨어진 마을 앞산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 가야 시대 고분과 관련된 토기 산포지가 있고, 삼국 시대 가야의 항아리 조각[壺片], 녹질 토기편 등이 수습되었다. 인근의 신촌 유적도 고이리 고분군과 성격이 같은 집단이 조영한 것으로 본다.

[관곡리 고분군]

관곡리 고분군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관곡리 성평마을 북쪽 능선에 위치하는 고분군이다. 자리 잡은 뒷산에 있는 고분군이다. 정상부[해발 120m]에 지석묘 1기가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보면 일찍이 인간이 터를 잡고 살았던 곳으로 생각된다. 출토 유물은 삼국 시대 가야의 고배, 컵형 토기 등이다.

[동산리 고분]

동산리 고분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 앞을 흐르는 삼화천과 횡천강이 합류하는 삼각지역 구릉의 정상부에 있는 생활 유적·고분이다. 진주~광양 간 복선화 전철 사업 구간 내 사전 문화재 지표 조사와 발굴을 통해서 확인된 삼국 시대 주거지 8동, 구상유구(溝狀遺構) 1기, 돌덧널무덤[石槨墓] 1기 등이 조사되었다. 출토 유물은 삼국 시대의 토기편 등이 수습되었다. 특히 삼국 시대의 주거지는 하동 지역 발굴 조사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유적으로서 내부 출토 유물로 보아 4세기 말~5세기 초에 조성된 주거지이다.

[백련리 고분군]

백련리 고분군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백련리 산 16 일대에 있는 가야 시대 고분군으로 하동군 진교면 신기마을 동남쪽의 해발 100~110m 가량의 평지상의 능선위에 분포한다. 백련리 고분군은 밤나무 단지로 개간되면서 유구가 파손되고 많은 토기들이 발견되었다. 석곽은 길이 3m, 폭 0.9m, 깊이 0.65m 정도이며, 출토 유물은 삼국 시대 가야의 토기편이 수습되었다.

[월운리 고분군]

월운리 고분군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 주례곡 서쪽 남동쪽으로 뻗어 내린 해발 110m의 능선에 수백기의 돌덧널무덤[石槨墓]가 밀집하고 있으며, 고분군 가운데로 도로가 관통하고 있다. 유적은 도굴과 개간 등으로 극심하게 파괴되었다. 월운리 고분군은 조영 연대는 대략 5세기 후반~6세기 전반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출토 유물은 삼국 시대 가야의 목 짧은 항아리[短頸壺] 등 도질 토기편이 다수 수습되었다.

[전도리 고분]

전도리 고분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 신방마을 회관에서 북쪽으로 약 600m 떨어져 있는, 북에서 남으로 뻗어 내려오는 온 구릉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서쪽으로 섬진강이 흐르고, 동쪽으로 산지이다. 납골당을 조성하기 위해 능선의 일부가 삭평되어 파손 상태가 심한 편이며, 깎여진 단면상에서 삼국 시대의 목곽묘가 노출되었다. 출토 유물은 삼국 시대의 와질 토기편과 도질 토기편이었다.

[평사리 고분군]

평사리 고분군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고소성이 있는 북서쪽 구릉의 서쪽 사면으로 서쪽으로 섬진강이 흐르고 있으며, 남동쪽에는 악양 뜰로 알려진 경작지가 위치한다. 유구로 확인된 석곽 2기가 발견되었는데, 석곽의 상부가 교란되거나 도굴된 흔적이 있다. 벽석은 산석(山石)을 이용하여 평적한 상태이고, 장축 방향은 등고선 방향과 일직선 방향이다. 노출된 토기편들은 없으나 악양 지역 정치 세력의 존재를 보여주는 고분군으로 추정된다.

[기타]

이상의 고분군 외에도 하동 지역에는 봉토가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 시대 고분군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 유물이 산재하는 여러 유적지가 있다.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 상쌍마을 일대에 삼국 시대 가야 도질 토기편이 산재하고 있으며, 통정리 654번지 대내마을 일대에서 삼국 시대 토기 조각인 호편·고배편·장경호편·대옹편 등이 수습되었다.

또한 하동군 진교면 진교리 산 15번지 일대에도 삼국 시대 가야 토기편이 산재하는 것으로 볼 때 고분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다. 또한 하동군 하동읍 목도리 276번지 목도마을 일대에서 삼국 시대 토기편, 두곡리 율동마을에서 도질 토기 호·고배 편, 화심리 화심마을에서도 토기편이 산재하는데, 인근의 고분군의 존재에서 삼국 시대 고분군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 선소마을·범아리 매자마을·범아리 범사마을, 진교면 송원리 율원마을, 악양면 봉대리 대촌마을·입석리 입석마을·축지리 대축마을, 횡천면 전대리·남산리 원곡마을·횡천리 횡보마을, 적량면 관리 관동마을·우계리 상우마을, 옥종면 대곡리 한계마을·북방리 산 13-30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고분 유적·옥종면 안계리 가종마을, 금남면 대도리 대도마을·대치리 대치마을, 양보면 박달리 반계마을 등에도 삼국 시대의 토기편과 도질 토기편이 산포하고 있어 삼국 시대 가야 고분군의 존재를 추정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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