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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872
한자 風化樓
영어의미역 Punghwaru Pavilion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 1069[향교2길 5]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강정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 1069 지도보기
성격 누각
양식 목조 와각|겹처마 팔작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하동향교 전교 정한효
관리자 하동향교 전교 정한효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전기 누각.

[개설]

풍화루(風化樓)하동향교(河東鄕校)의 출입문이자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는 2층 누각이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 기관이다.

[위치]

하동군 하동 읍내 하동경찰서 뒤쪽 향교1길을 따라 하동향교 방면으로 가다 보면 약 200m 지점에 갈마산이 자리하는데, 풍화루는 갈마산 기슭에 위치한다.

[변천]

풍화루하동향교의 변천과 함께 한다. 하동향교는 1415년(태종 15)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에 창건되었고, 1665년(현종 6) 횡천면의 내기동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1730년(영조 6) 부사 정덕명(鄭德鳴)이 나동 성전골로 대성전(大成殿)만 이건하였고, 1736년(영조 12)에는 부사 민진기(閔鎭箕)가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그 뒤 1744년(영조 20) 부사 전천상(田天祥)이 나동의 문묘를 현 위치로 옮겨와 향교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게 되었다. 1847년(헌종 13)과 1920년에 각각 중수하였다.

경상도 산청 법물(法勿)[현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평지리 법물마을]에 거주하였던 평곡(平谷) 김영시(金永蓍)[1875~1952]가 지은 「하동향교 풍화루 중수기(河東鄕校風化樓重修記)」에 의하면, 방진태(房鎭汰)[1896~?]가 하동군수로 부임하여 하동향교를 전면 수리하였는데, 동재(東齋)와 풍화루는 워낙 큰 경비가 드는 일이라 미처 손을 대지 못하였다. 그러자 하동 사람 정종석(鄭鍾碩)이 거액을 출자하여 중수를 완료하였다고 한다. 이때가 1940년을 전후한 시기로 보인다. 이후 6·25 전쟁 때 소실되었던 풍화루를 1966년 전교(典校) 남상수(南相洙)의 주간으로 현대식 건물로 재건하였다.

[형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기와를 덮은 2층 목조 누각이다.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원형 기둥과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계자(鷄子) 난간을 통해 2층으로 오르게 되어 있으며, 1층 부분에는 향교 담장이 둘러져 있다.

[현황]

2011년 현재 풍화루하동향교의 출입문 역할만 담당하고 있다. 왼쪽으로 현대식 시멘트 건축물을 설치하여 필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풍화루의 기둥 또한 목조가 아닌 시멘트로 되어 있는 등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다소 변형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읍내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하동군민과의 상호 유대 조성에 유리할 듯하나,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부재, 철저한 관리 부족 등으로 군민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관리자는 하동향교 전교 정한효로 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223호로 지정되어 있는 하동향교는 하동군민의 교육적 기능을 담당하는 주요한 문화 유적이자, 하동의 역사를 대변하는 역사 유적이기도 하다. 현재 개·보수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동군민과의 유대를 강화할 수 있는 현실적 프로그램 개발이 절실히 필요하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을 때 풍화루하동향교 출입문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제대로 복원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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