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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천마을 새비골 유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001
한자 明川-由來
영어의미역 The Origin of Saebigol in Myeongcheon Village
이칭/별칭 「새비골」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리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한양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2년연표보기
관련 지명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리 지도보기
채록지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리 지도보기
성격 전설|풍수담|성씨시조담
주요 등장 인물 스님|동자|길손
모티프 유형 후손이 번창할 새비설|새비골에 자리를 잡은 길손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리에서 새비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명천마을 새비골 유래」는 고려 초에 어느 길손이 하동군 적량면 동리 명천마을새비골[鰕谷]을 지나다가 이곳에 터를 잡으면 후손이 번창할 것이라는 스님과 동자의 이야기를 듣고 이곳에 터를 잡아 후손을 이었는데, 그곳이 하동 정씨(河東鄭氏)의 발원지가 되었다는 풍수담이자 성씨시조담이다. 이를 「새비골」이라고도 한다.

[채록/수집 상황]

2002년 적량면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적량면지』에 실려 있다. 또한 2004년 하동군 각지에서 채록·수집한 설화 자료를 중심으로 하동향토사연구위원회가 집필하여 2005년 하동문화원에서 발행한 『하동의 구전설화』의 184쪽에도 「새비골」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명천마을 새비골 유래」적량면 조사위원 박용규가 현지에서 채록한 것이다.

[내용]

새비골적량면 동리 명천마을의 한 골짝이다. 전에는 명천마을의 생김새가 마치 홈[椧]과 같다 하여 홈내골[椧川谷]이라 하였다. 홈통 명(椧)자가 드물게 쓰여 익숙하지 못하다 하여 명(椧)자 대신 명(明)자로 바꾸어 명천(明川)이라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새비골은 골짝을 감돌아 싸고 있는 산의 모양이 마치 ‘새우등’ 또는 ‘새우’ 같다고 하여 하곡(鰕谷)이라 하고, 새우의 방언음을 따서 ‘새비골’이라 부른다. 풍수지리상으로 산세가 ‘새비설’이다. 새우등 같다고 한 산등성은 적량면 동리 산1번지로 약 100여 정보의 규모이다.

새비골하동 정씨 시조 도정공의 원거지로 숭앙되는 하동 정씨의 성지 명당으로 되어 있고, 그들의 재실 하곡재가 거창하게 설립되어 있는 골짝이다. 또한 많은 인물을 배출한 곳이었다. 조선 초기와 후기의 하동부원군(河東府院君) 정인지(鄭麟趾)[1396~1478], 문헌공(文獻公) 정여창(鄭汝昌)[1450~1504] 등이 계파는 다르지만 하동 정씨들이었다.

하동 정씨 원조가 이곳에 터를 잡은 이야기는 이렇다. 옛날 고려 초기 즈음에 한 스님과 동자가 이야기를 나누며 이곳 새비골 앞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다른 한 사람이 길을 걷고 있다가 한참 쉬고 있던 차에 스님과 동자가 걸어가면서 나누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 “이곳에 터를 잡으면 후손이 번창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쉬고 있던 길손이 당장 일어서서 스님을 부르며 뒤쫓아 갔다. “스님께서 이야기하던 그 터가 어디인지 알려 주십시오” 하였다. 스님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다가 단 한 마디 “새비설에 터를 잡으면 된다.”라고 하고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스님의 간단한 언질을 받은 이 사람은 ‘새비설’을 묻고 찾아서 온 산, 온 골을 헤매다가 지쳐서 새비골로 짐작되는 한 골짝에 터를 잡았다. 맑은 물이 흐르고 먼 바다가 비춰 오고 마음이 아늑히 쉼을 느끼는 곳이었다. 우람한 산줄기가 병풍을 치고 있는 그 곳이 새비골인 줄을 그도 그 뒤에야 확인하였으리라. 그 길손이 과연 정도정(鄭道正)이었을까?

[모티프 분석]

「명천마을 새비골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후손이 번창할 새비설’, ‘새비골에 자리를 잡은 길손’ 등이다. 풍수의 원리는 땅속의 생기(生氣)를 접하여 복을 얻고 화를 피하자는 것이다. 이와 같은 땅의 기운은 산 사람 뿐만 아니고 죽은 자에게도 필요하다고 보았다. 죽은 자가 얻은 생기는 후손에게 그대로 이어진다고 여겼는데, 이를 ‘동기감응(同氣感應)’ 또는 ‘친자감응(親子感應)’이라고 한다. 즉 조상이 어떤 자리에 터를 잡는가에 따라 후손이 잘 되게 한다는 것이다.

「명천마을 새비골 유래」는 새우등과 같은 모양의 골짜기를 말하는데 하동 정씨의 발원지가 된 곳이다. 스님과 동자가 새비골 앞을 지나가다 “이곳에 터를 잡으면 후손이 번창할 것이다”는 말을 들은 길손이 터를 잡아 하동 정씨의 발원을 이루었다. 정도정은 하동 정씨의 시조로 휘는 도정(道正), 신라 51대 진성여왕[재위 887~897] 때 하동 지방의 호족 출신으로 927년(경애왕 7) 후백제군이 신라를 침범할 때 하동호장으로 향병(鄕兵)을 단련하여 하동성을 지켰다.

그 뒤 고려와 신라가 통합할 때 향병을 이끌었고, 신라 56대 경순왕을 개성까지 호위하였으며, 호종과 지방의 호족으로 예우를 받아 내의성 상시에 제수되어 고려에 귀복, 광평성 평장사[고려 정이품 벼슬로 문하시랑 평장사]에 올랐다. 「명천마을 새비골 유래」는 정도정이 새비골에 터를 잡음으로써 터의 기운이 후대에까지 미쳐 정인지, 정여창 등의 인물을 배출할 수 있었다고 믿는 풍수담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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