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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549
한자 洪禹寧救民碑
영어의미역 Monument for Hong Unyeong
이칭/별칭 관찰사 홍공우녕 구황휼민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진교리 53-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연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16년 7월연표보기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660년연표보기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717년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진교리 53-1 지도보기
성격 구민비
관련 인물 홍우녕(洪禹寧)[1660~1717]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너비, 두께) 68㎝[가로]|97㎝[세로]|19㎝[두께]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진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홍우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개설]

홍우녕(洪禹寧)[1660~1717]은 본관이 남양(南陽)이며, 호는 정와(靜窩)이다. 1684년(숙종 10) 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1714년(숙종 40) 경상도관찰사 겸 수군절도병마사로 부임하였다.

[건립 경위]

홍우녕은 1716년(숙종 42) 흉년이 들어 민생이 도탄에 빠지자, 조정에 구호를 요청하고 관내 관리들의 급여를 성금으로 거두어 쌀 2,000석을 마련하여 굶주리는 백성들을 구제한 뒤 그해 감영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부민들이 같은 해 7월, 관찰사 홍우녕의 공덕을 기린 구황 휼민비를 상평마을에 세웠다. 이때부터 상평마을이 비석거리로 불리게 되었다.

[위치]

홍우녕 구민비(洪禹寧荒民碑)하동군 진교면 진교리 53-1번지 하평마을 지방도 1002호선 변 민다리공원에 있다. 바로 앞에 옛 남해고속도로 진교IC가 있고, 북쪽으로 2㎞ 지점에 진교면사무소가 있으며, 북동쪽 방향 2.5㎞에 남해고속도로 진교IC가 있다.

[형태]

비석은 지름 4m, 높이 30㎝의 원형 기초 위에 거북형 받침을 만들어 규형(圭形)의 화강암 비석을 세웠다. 비석 위는 가로 98㎝, 세로 73㎝, 두께 46㎝의 운주형(運舟形) 덮개를 얹어 장식하였다. 거북형 기단은 가로 140㎝, 세로 130㎝, 높이 40㎝이며, 비신(碑身)은 가로 68㎝, 세로 97㎝, 두께 19㎝이다. 비석 주위는 원형으로 석주 10개를 세워 쇠사슬을 둘러 보호하고 있는데, 정면 왼편에 본래 비의 유래를 새긴 유래비가 별도로 서 있다.

[금석문]

비신의 앞면에 가로, 세로 각각 6㎝ 크기의 글체로 ‘관찰사 홍공 구황휼민비(觀察使洪公禹寧救荒恤民碑)’라 새겨져 있고, 왼편 아랫부분에 ‘병인7월(丙申七月)’이라는 작은 글체가 있다. 비석의 원문은 모두 마멸되어 글체의 흔적만 남아 있어 내용은 물론 비문을 지은 사람과 글씨를 쓴 인물도 알 수 없다.

[현황]

1984년 진교면민들은 사적비 정화 사업을 전개하여 상평마을 비석거리에 있던 비를 현재의 하동군 진교면 진교리 하평마을 민다리공원으로 옮겨 세웠다. 그러고는 관찰사 홍우녕의 공적을 『숙종실록(肅宗實錄)』에서 발췌하여, 비의 유래를 새겨 본래의 비 왼편에 와비(臥碑) 형태로 건립하였다. 마멸되어 내용을 알 수 없는 본래 비의 의미를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유래비는 머리에 ‘관찰사 홍공우녕 구황휼민비유래(觀察使洪公禹寧救荒恤民碑由來)’라 새겼다. 형태는 60㎝ 높이의 화강암 기단 위에 가로 97㎝, 세로 68㎝, 두께 20㎝로, 비신의 재질은 흑요암(黑曜巖)이다.

[의의와 평가]

홍우녕 구민비는 18세기 말 지방 수령으로 부임하여 목민관으로 선정을 베푼 경상도관찰사 홍우녕의 애민 공적을 후세들에게 귀감으로 전해 주는 교훈적 문화유산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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