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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937
한자 河東-大島-
영어의미역 Daedo Village, Island Village of Hadong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도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원석

[개설]

대도마을은 하동군의 유일한 유인도로서 행정 구역으로는 하동군 금남면 대도리에 속해 있다. 조선 시대에는 곤양군(昆陽郡) 서면(西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통폐합 때 대도동(大島洞)을 대도리라 해서 하동군 남면에 속하게 하였다. 1933년 남면이 금양면을 편입하여 금남면으로 되면서 금남면 대도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도마을 부근 바다에서는 가두리 양식이 활발하여 주민들의 생업 터전이 되고 있다. 해마다 음력 12월 3일에는 마을 앞 선창에서 주민들의 번영을 기원하는 선창굿이 벌어진다. 대도마을과 육지의 교통은 마을에서 운영하는 정기선으로, 신노량항과 마을을 1일 4회 왕복한다.

대도마을은 우리말 큰 섬의 한자말이다. 예전에는 띠섬이라고도 불렀는데, 섬 모양이 띠처럼 길게 늘어뜨려져 있는 듯 보이기 때문에 유래한 이름이라고 전한다. 30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어촌으로서, 태풍 등의 자연 재해나 사회적인 큰 재난을 당한 적이 없으며, 남해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전망을 갖추고 있다. 현재 대도마을은 하동군의 휴양 관광을 대표하는 섬마을로 발돋움을 준비하고 있다.

[대도마을의 지리적 위치와 지형]

대도마을은 육지에서 3.15㎞쯤 떨어져 있어 배로 10분 남짓 가는 거리에 있다. 섬 전체 해안선의 길이는 5㎞ 정도로, 앞으로 해안 일주 도로를 건설할 계획이다. 섬 주변의 동쪽과 남쪽으로는 남해군이 마주하고 있고, 서쪽으로는 광양시, 북쪽으로는 하동군 금성면금남면이 위치하고 있다.

대도마을은 주변에 거무여·광도(廣島)·장도(長島)·납딱이섬·농섬 등 다섯 개의 섬을 거느리고 있으며, 그밖에도 주변에는 동굴섬·바깥배너리·변월도·안배너리·주지도(主芝島)·조각섬 등이 있다. 섬에는 장구통이라는 지명도 있는데, 여기에는 ‘장군 터’[장군이 못 나게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목을 잘랐던 터]도 붙어 있다. 풍수로 해석된 지명으로서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아기장수 설화의 변형이다.

대도마을에서 보이는 앞과 뒤의 경관은 자연과 인공으로 뚜렷한 대조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마을 앞 동편으로는 가운데의 주지섬[主芝島]과 좌우의 동구섬, 조각섬, 넓은섬[廣島] 등 4개의 섬이 마주 보이고, 섬 너머에는 남해대교가 뚜렷하여 푸른 바다에 붉은색이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 너머로는 남해 섬이 우람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멀리 내륙의 동북쪽으로는 금오산[높이 849m]이 높이 솟아 있다. 마을의 뒤[서편]로는 한국남부발전 하동화력발전소, 광양국가산업단지, 광양제철소가 연기를 내뿜으며 문명과 기계의 위력을 위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대도섬에서 높은 언덕마루는 먼당[남쪽]과 높은재[북쪽]라고 불렀다. 예전에는 등성마루에 소나무가 많았으나 밤나무를 조성하면서 줄어들었다. 마을 주거지 뒤쪽 먼당의 큰밭넘이에는 당산나무가 있었으나, 몇 해 전 태풍으로 쓰러지자 그 자리에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우고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대도마을 형성기]

대도마을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 확실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마을 뒷산에서 어망추와 토기 및 자기편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 상고 시대의 일정 기간 동안 어업으로 생계를 삼은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 시대에는 오랫동안 무인도로 있다가 조선 후기에 와서 동족촌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약 1690년(숙종 16)경 남해군 이동면에서 살던 장수 이씨(長水李氏) 부부가 고기잡이를 하던 중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이 섬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주민 이길호의 13대조로, 당시 대도섬에 입도한 선조[이자필(李自泌)]의 묘는 현재 남해군에 있다.

2010년 현재 대도마을 총 가구 62호 가운데 60가구가 장수 이씨며, 나머지 정씨와 최씨 두 가구도 장수 이씨와 인척을 맺어 이거해 살고 있다. 대도마을장수 이씨 동족들은 1980년부터 마을 뒤에 재실인 영경재(靈敬齋)를 건립하고, 해마다 음력 10월 둘째 주 일요일에 조상을 받드는 시향을 올리며 화목을 다진다.

대도는 섬 전체가 완만한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선은 굴곡이 있으며 서쪽의 대도분교 앞바다에 모래사장이 형성되었다. 섬 동편 가운데로 오목하게 들어간 만을 따라 마을이 입지하였고, 언덕배기에 오밀조밀하게 집촌(集村)이 형성되어 있다. 마을의 면적은 0.46㎢이다.

마을은 해안을 따라 큰동네, 적은동네[일명 우리개], 도당개 등의 자연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큰동네에는 현재 42가구가 살고 있으며, 적은동네에는 14가구가 산다. 도당개에는 예전에 3가구가 살았으나 해수 풀장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이주하여 현재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

[대도마을 주민들의 생활사]

2009년 말 현재 대도마을에는 총 60세대 156명[남자 81, 여자 75]의 주민이 살고 있다. 가구 수가 많았을 때에는 70여 세대 정도까지 있었다. 현재 마을 주민의 연령대는 60~70대가 대부분으로, 그중 60대가 제일 많고, 40대 이하의 젊은 세대는 한 사람도 없어서 노령화가 심한 편이다. 마을에 젊은 층이 없어서 아이들이나 학생들도 없다. 대도분교는 2006년 3월까지 1학급에 학생 2명, 교사 1명으로 근근이 유지되었으나 결국 3년 전에 폐교되고 말았다.

1. 물이 귀한 대도마을

대도마을 주민 중에 생업을 어업으로 삼고 있는 가구는 총 60세대 중 약 58가구로 대부분을 이룬다. 전체 주민 중에 3분의 1은 가두리 양식장에서 일하고, 3분의 1은 자가 어업으로 생업을 삼으며, 나머지 3분의 1은 어장에서 굴이나 조개잡이를 하면서 생활한다. 30~40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 주민들은 서해 먼바다에서 원양 어업을 하였다. 돛대배[風船]를 타고 전라남도 영광의 법성포나 충청남도 서천의 마령포 근해까지 나갔다고 한다.

섬마을의 일반적인 특성이기도 하지만 대도마을에는 물이 참 귀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민들은 산에 저수조를 만들고 빗물을 받아서 저장하여 먹었고, 집집마다 지붕에 물통을 설치하여 빗물을 받아먹기도 했다. 지금은 육지에서 해저를 통해 상수도관이 마을까지 이어져 있어 식수에 대한 걱정은 덜었다. 대도마을에는 1985년에 전기가 가설되었고, 1986년에는 전화가 개통되었다. 그리고 1992년에는 상수도 시설이 마련되어 주민들의 주거 환경이 갖추어졌다.

섬 안에서는 물이 부족하여 논농사는 짓지 않고 그 대신 육지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대도마을에서 마주보이는 육지 쪽 대송들의 대부분이 대도마을의 농경지였다고 한다. 지금도 육지 농사는 계속하지만 육지 사람에게 맡겨서 농사를 짓는 위탁 영농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현재 대도마을 주민들은 섬에 흩어져 있는 좁은 경지와 텃밭을 이용하여 마늘 등의 밭농사를 주로 하고, 채소 등의 푸성귀를 가꾸어 먹는다.

2. 화력 발전소와 체험 마을

대도마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교적 좋은 어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주위에 들어선 화력 발전소와 광양국가산업단지 등으로 인해 과거에 비해 어획량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김 양식을 하여 생계 수단으로 삼았으나 화력 발전소가 건립된 뒤로는 중단되고 말았다. 마을 특산물로는 양식을 하는 참숭어와 자연산으로 감성돔·농어 등이 있고 낙지·볼락·주꾸미·노래미 등도 잡힌다.

마을 주민들은 2005년에 5억 원의 사업비를 투자하여 어촌 체험 관광 마을을 조성하고 낚시 체험과 갯벌 체험 등을 운영하고 있다. 체험 시설로는 마을 어장, 가두리 양식 어장, 갯벌 체험장, 지압 보도, 낚시 데크, 해수풀장 등이 있다. 대도마을의 유료 바다 낚시터는 20년 전 전국에서 최초로 형성되었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 제2회 ‘전국 우수 어촌 체험 마을 경진 대회’에서 전국의 86개 어촌 체험 마을 중에 우수상을 수상했다. 대도마을 주민들은 어촌 체험 마을 사업의 경제적 효과로 마을이 활기차졌고, 사회 문화적 효과로는 외부 사람들과 교류가 많아지고 마을에 공연과 행사가 많아지는 등, 살기 좋은 마을이 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대도마을은 어업 환경뿐만 아니라 대기 환경 문제에도 직면하고 있다. 인근 광양제철소 등의 산업 단지로 인해 어장이 황폐화될 뿐만 아니라 하동화력발전소에서 생성되는 석탄 가루는 마을의 대기 환경과 농작물의 오염원이 되고 있다. 석탄 가루가 심하게 날릴 때는 마당에 빨래를 널지 못할 정도이고, 콩 농사도 되지 않는다고 마을 주민들은 어려움을 토로한다. 분진으로 인한 폐 질환 등의 건강 문제도 우려하고 있다.

3. 동민의 날과 공동체 의례

대도마을의 청년회와 부녀회에서 주관하여 매년 5월 3일에 개최되는 ‘대도마을 동민의 날’은 대도마을의 마을 잔치이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모두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고 즐거운 노래자랑을 펼치며 마을 공동체의 화목과 단합을 다진다.

대도마을은 자연의 위력과 재해에 취약한 입지 환경인 섬에 자리하고 있기에 오래 전부터 주민들의 안녕을 위한 공동체 의례가 필요했다. 이에 정초에 당산굿으로 새해를 시작하는데,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마을을 지키는 당산에서 의례를 올리는 것이다. 당산은 예전에는 여러 곳이 있었으나 근래 마을 뒤쪽에 있는 팽나무를 신체로 모시고 의례를 드리고 있다. 당산굿이 끝나면 샘굿을 한다. 대도 섬마을은 식수 환경이 어려운 조건이었기에 샘굿은 특히 정성스럽고 중요한 마을 의례였다. 이어서 집집마다 묵은 액을 쫓아내고 새 복을 비는 집돌랑을 펼친다. 문굿으로 시작해서 조왕, 성주 등에서 복을 빌고 각 가정의 대주 양반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염원을 한다.

마을 주민들은 죽어서 뒷동산이나 마을 어귀에 묻힌다. 묘지는 예전에 마을 곳곳의 언덕배기에 흩어져 있었으나 근래에는 뒷산 위에 납골묘[하늘공원]를 조성하여 산재해 있던 묘지를 이장하여 관리하고 있다.

[대도마을 선창굿]

대도 선창굿[선창제]은 매년 음력 12월[섣달] 초사흗날 11시에 벌어진다. 어촌의 한가한 시기를 타서 동제 날을 정했으며, 선창굿이 진행되는 장소는 대도마을의 선창 앞 해안가이다. 선창굿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예부터 전래되어 온 것이라고 마을 어른들은 말한다.

굿을 열게 된 동기는 마을 아낙들이 뱃일 나간 남편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고자 용왕제를 벌이면서 시작되었다. 30~40년 전까지만 해도 대도마을 주민들은 서해 먼바다에까지 가서 가오리 등을 낚는 조업을 하였다. 5~6채의 돛대배에 6~7명씩 나눠 타고 서해 바다인 전라남도 영광 법성포나 충청남도 서천 마령포 근해까지 나갔다고 한다. 주민들의 반 이상, 남정네의 대부분이 원양 어업을 했으니, 무사 기원을 염원하는 정성이 오롯하게 선창굿에 깃들었던 것이다.

대도마을 선창굿은 굿을 관장하는 무당이나 제주가 따로 없고, 마을 아낙들이 자발적이고 자체적으로 진행한다는 특성이 있다. 선창굿이 열리는 날 아침, 깨끗한 흰옷으로 갈아입은 마을 아낙네들이 제사상에 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하여 선착장에 일렬로 펼쳐 놓는다. 재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집집마다 손수 제상을 봤으나 참여하는 가구가 조금씩 줄어들어서 작년부터 하동군에서 지원한 비용으로 마을에서 공동으로 큰상을 준비하여 동제 형식으로 지낸다.

마을 이장이 징을 세 번 울리면 굿이 시작된다. 풍물패들은 북과 장구를 치며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선착장으로 향한다. 선착장에는 모여든 마을 아낙네들이 촛불을 켜고 두 손을 모아 정성껏 바다를 향해 두 번 절한다. 이어 비손을 하며 소지를 하고, 준비한 제물을 용왕께 드리는 순서가 이어진다. 돈망태라고 부르는, 짚으로 망태를 만들어 차린 음식을 조금씩 떼어 담고 동전을 함께 넣어 바다로 던진다. 바다 용왕께 가족들 모두 무사하고 잘 살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것이다.

[웰빙 휴양 섬 관광지로 변모하는 대도마을]

대도마을의 경관은 현재 크게 변화하는 중에 있다. 마을은 미래에 맞이할 희망과 기대에 설레고 있다. 주민들의 의지에 힘입어 하동군은 대도마을을 도서(島嶼 ) 특화 시범사업으로 지정, 시행하고 있다. 대도마을에 환경 친화적인 도서 종합 리조트를 개발함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며, 이를 통해 생산과 고용 등의 파급 효과를 창출하여 주민 소득의 증대를 꾀하고자 한 것이다. 이에 부응하여 마을 주민들은 대도 도서 특화사업 개발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개발이 완료된 이후 운영권은 주민들에게 돌아가기로 되어 있다.

이 사업은 2007년 8월부터 2012년 8월까지 5년간 이루어진다. 주민 투자와 공공 투자 비용을 합쳐서 총 사업비 478억 원이 소요될 예정이며, 그 중에 150억 원은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투자, 부담할 계획으로 있다. 주민들이 투자할 비용인 150억 원 중에 23억 원은 대도마을의 어업권 소멸에 대한 보상금으로 받은 것이다. 대도마을 주민들은 그 돈으로 토지를 매입하여 사업 기반을 마련하였고, 하동군에 관광 기반 시스템 등의 공공 기반 구축을 위한 지원을 받아 냈다.

대도섬에 들어설 주요 시설로는 농섬 연결 교량, 조명 시설, 상수도·오수 시설, 일주 도로, 모래사장 도로, 도보 둘레길, 모래사장 조성, 물놀이장 등이며, 관광객들의 숙박을 위한 펜션 단지도 조성하여 일반인들에게 분양할 계획으로 있다. 2011년 3월 현재 본섬과 농섬 간의 연결 도로, 상수도 시설, 물놀이 시설, 농섬 식물원 등이 준공되었으며, 향후 자동차 일주 도로와 도보 둘레길 조성 사업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육지에서 섬으로 오는 배편도 앞으로는 승객뿐 아니라 차량을 운반할 수 있는 선박까지 운행할 계획이다.

대도마을과 하동군에서는 이 사업으로 웰빙 휴양 섬의 관광 인프라 시설이 확보되어 주민의 소득이 증대되고 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가져오는 파급 효과가 창출되기를 크게 기대하고 있다.

[대도마을의 미래 비전과 과제]

대도마을이 하동의 섬마을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부각되기 위해서는 특성화 전략이 필요하다. 생태 휴양형, 문화 생태 마을, 청정 웰빙 마을의 이미지를 널리 알려야 하고, 남해[금산, 이순신 유적지 등]와 하동[쌍계사, 청학동 등]의 유명 관광지와 연계된 관광 상품이 개발되어야 한다. 아울러 수산물과 특산물의 브랜드화, 통합적인 공동 마케팅 전략도 필요하다. 생태적 웰빙 마을인 로하스(LOHAS)[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 관광 상품의 이미지 개발도 요청된다.

현재 대도마을의 입지 여건에 비추어 볼 때, 청정 환경 조성과 이미지 전략은 웰빙 휴양 섬의 승패를 좌우할 관건이요 과제가 될 것이다. 그 방안 중의 하나로 대도마을 주민들은 마을 뒤편 언덕 위에 소나무 숲을 조성할 계획인데, 이는 석탄 분진 등 오염원을 막고 공단의 삭막한 경관을 가림으로써 마을의 청정 환경 유지와 아름다운 전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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