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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백일·김기옥·김성율 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경주 김씨(慶州金氏)의 시조는 김알지(金閼智)이나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대에 이르러 세계를 이루기 시작한다. 경주 김씨는 경순왕의 셋째 아들 김명종(金鳴種)과 넷째 아들 김은열(金殷說)을 각각 영분공파와 은열공파의 파시조로 떠받들고 있다. 하동 지역의 경주 김씨는 경순왕의 넷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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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7년 추강 남효온이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를 보고 지은 한시. 「독쌍계사비(讀雙磎寺碑)」는 남효온(南孝溫)[1454~1492]의 『추강집(秋江集)』 권2에 수록되어 있다. 남효온은 1487년(성종 18) 9월 27일부터 10월 13일까지 약 보름 동안 지리산[1,915m]을 두루 유람하였다. 10월 9일 전라남도 구례를 떠나 경상남도 화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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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8년경 구암 이정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불일암을 유람하고 지은 한시. 「등불일암전봉 부규용추학추(登佛日庵前峯 俯窺龍湫鶴湫)」는 이정(李楨)[1512~1571]의 『구암집(龜巖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제목을 풀이하면 「불일암 앞 봉우리에 올라 용추와 학추를 내려다봄」이다. 『구암집』 속집에는 같은 제목의 오언 율시 1수가 실려 있다. 이정은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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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유호인이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에 있는 악양루에 올라 읊은 한시. 「등악양루(登岳陽樓)」는 조선 전기의 유학자 유호인(兪好仁)[1445~1494]의 문집 『뇌계집(㵢谿集)』 권5에 수록되어 있다. 유호인이 하동을 여행하면서 악양루(岳陽樓)에 올랐을 때, 악양루 앞에 있는 동정호(洞庭湖)와 군산(君山) 등을 바라보며 그 경치와 자신의 심회를 읊은 한시이다. 악양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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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최기필의 문집. 최기필(崔琦弼)[1562~1593]의 자는 규중(圭仲), 호는 모산(茅山)이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순절하였으며, 조정에서 병조참의직을 추증하였다. 그의 사적(史蹟)은 국승(國乘)과 야사(野史)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를 제향하는 진주 창렬사(彰烈司)는 사액되었다. 최기필의 5세손 최주국(崔柱國)이 집안에 내려오는 유적(遺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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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대사 휴정이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불일암에서 지은 한시. 「불일암(佛日庵)」은 『청허당대사집(淸虛堂大師集)』 상권에 수록되어 있다. 불일암(佛日庵)은 쌍계사(雙溪寺)에 소속된 암자로 예로부터 선승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1520~1604]이 지리산[1,915m]에 주석할 때 불일암에서 참선하면서 지은 시로, 선정에 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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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화심리 선장마을에서 기인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선장의 기인」은, 화심리 선장마을에 남자 기인(奇人) 문가학(文可學)은 경복궁 경회루 대들보를 자유로이 뛰어오르고 내렸으며, 여자 기인 최씨는 힘이 세서 넓이가 151.5㎝, 길이가 545.4㎝인 돌다리의 큰 돌을 혼자서 놓았다는 이인담(異人談)이다. 2003년 횡천면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횡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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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유를 시조로 하고 이구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성주 이씨의 시조는 신라 말의 명재상 이순유(李純由)이다. 성주 이씨는 고려 말에 크게 번성하였다. 시조 이순유로부터 12세인 농서군공 이장경(李長庚)은 이득희(李得禧)의 아들로 슬하에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다섯째 이조년(李兆年)[1269~1343]의 증손인 이제(李濟)[?~1398]가 하동 지역의 입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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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당시인의 한 사람인 이달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쌍계사를 유람할 때 지은 한시. 「쌍계사(雙磎寺)」는 이달(李達)[1539~1612]의 시집 『손곡시집(蓀谷詩集)』 권3에 수록되어 있다. 이달이 하동의 지리산[1,915m] 쌍계사(雙磎寺)를 유람하면서 입구의 쌍계사 석문(雙磎寺石門)을 보고 느낀 점, 쌍계사가 신라 고찰이라는 점, 이곳이 청학동이라는 점, 최치원(崔致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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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눌재 박상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쌍계사와 청학동을 유람하며 읊은 한시. 「쌍계사찬(雙磎寺讚)」은 박상(朴祥)[1474~1530]의 문집 『눌재집(訥齋集)』에 수록되어 있지 않고 성여신(成汝信)이 지은 『진양지(晉陽志)』 불우(佛宇) 쌍계사조(雙磎寺條)에 수록되어 전한다. 박상이 하동의 쌍계사(雙磎寺)와 청학동 방면을 유람하며 노래한 시로 제목은 알 수가 없다. 내용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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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9년 정여창이 자신의 은거지인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의 정경을 읊은 한시. 「악양(岳陽)」은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문집인 『일두집(一蠹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정여창은 1489년(성종 20) 4월 14일부터 4월 28일까지 15일 동안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1464~1498]과 동행하여 지리산[1,915m]을 유람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김일손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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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0년경 유호인이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에 있는 정여창의 은거지 악양정을 두고 읊은 차운시. 「악양정(岳陽亭)」은 유호인(兪好仁)[1445~1494]의 『뇌계집(㵢溪集)』에 수록되어 있지 않고,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일두집(一蠹集)』 권3의 시장(詩章)에 수록되어 전한다. 「악양정」의 서문을 보면, 정여창이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근무할 때 함께 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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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9년 김일손이 정여창과 함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의 동정호에 배를 띄워 노닐며 지은 한시. 「여정백욱여창 동유두류 귀범악양호(與鄭伯勖汝昌同遊頭流歸泛岳陽湖)」는 김일손(金馹孫)[1464~1498]의 문집 『탁영집(濯纓集)』 상(上)에 수록되어 있다. 김일손은 1489년(성종 20) 4월 14일부터 4월 28일까지 15일 동안 정여창(鄭汝昌)[1450~1504]과 동행하여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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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경을 시조로 하고 정보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연일 정씨(延日鄭氏)는 영일 정씨(迎日鄭氏), 또는 오천 정씨(烏川鄭氏)라고도 한다. 영일과 연일 및 오천은 오늘날 경상북도 포항시의 일부 지명에 해당한다. 연일 정씨는 후손 정의경(鄭宜卿)이 영일호장(迎日戶長)을 지낸 후 영일현백(迎日縣伯)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본관을 영일로 하였다. 조선 시대 하동 지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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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 영계마을에 있던 조선 전기의 서원. 문헌공(文獻公)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관향(貫鄕)이 하동(河東)이므로, 하동에 서원을 창건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발의하여 지역 유림과 하동 정씨(河東鄭氏) 후손들이 건립을 추진하였다. 그때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1538~1593]이 순찰사(巡察使)로 부임하여 적극적으로 서원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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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조식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쌍계사 위 불일폭포를 유람하면서 지은 한시. 「영청학동폭포(詠靑鶴洞瀑布)」는 조식(曺植)[1501~1572]의 『남명집(南冥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조식이 하동 청학동을 유람할 때 지은 한시인데, 정확히 어느 해에 지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조식은 1558년(명종 13) 진주목사 등 진주 인근의 여러 명사들과 지리산[1,915m]을 유람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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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8년 남명 조식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청학동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유두류록(遊頭流錄)」은 조식(曺植)[1501~1572]의 『남명집(南冥集)』 권2에 수록되어 있다. 조식은 58살 되던 해인 1558년(명종 13) 4월 10일부터 4월 26일까지 하동군의 청학동 일대를 유람하였다. 조식의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젊어서 과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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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선재를 시조로 하고 여승탁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의령 여씨(宜寧余氏)는 여선재(余善才)를 시조로 하고 있으나 이후 세계(世系)를 잃어버려서 여현경(余玄景)을 1세(世)로 하여 세계를 이루고 있다. 하동 지역에 의령 여씨가 입향한 시기는 연산군 때이다. 의춘은 의령(宜寧)의 옛 이름인데, 여선재의 후손들이 의령을 본관으로 삼았다. 한편 여선재의 아들 여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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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고봉 기대승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쌍계사에서 최치원을 그리워하며 지은 한시. 「입청학동방최고운(入靑鶴洞訪崔孤雲)」은 기대승(奇大升)[1527~1572]의 『고봉집(高峰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기대승이 지리산[1,915m]을 유람하면서 쌍계사(雙磎寺)에 들러 최치원(崔致遠)[857~915]의 영정이 있는 곳을 찾아가 최치원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이다. 기대승의 지리산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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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증조할아버지는 정을귀(鄭乙貴)이며, 할아버지는 석성현감을 지낸 정흥인(鄭興仁)이다. 아버지는 하동부원군(河東府院君) 정인지(鄭麟趾)이며, 어머니는 이휴(李携)의 딸이다. 전처는 세종의 아들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의 딸이며, 후처는 이계손(李繼孫)의 딸이다. 정경조(鄭敬祖)는 1485년(성종 16) 문과에 2등으로 급제하여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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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정씨(河東鄭氏)의 후손이자 유학자.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광윤(光胤), 호는 모효(慕孝). 선대는 하동 사람인데 중세(中世)에 전라남도 나주(羅州)로 이거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장령을 지낸 정희주(鄭希周)이며, 할아버지는 담양부교수(潭陽府敎授) 정의중(鄭宜仲)이고, 아버지는 수의부위(修義副尉) 정승서(鄭承敍)이다. 부인은 참군(參軍) 신계규(申季糾)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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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경부(敬夫), 시호는 문절(文節). 아버지는 감찰을 지낸 정제(鄭提)이며, 어머니는 관찰사를 지낸 김약채(金若采)의 딸 광주 김씨(光州 金氏)이다. 정수충(鄭守忠)은 경사(經史)에 두루 통달하였으며, 재능과 행실이 뛰어났다. 처음에는 환관(宦官)을 교육하는 일을 담당하였으며, 뒤에는 세종의 명으로 영응대군(永膺大君) 이염(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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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백욱(伯勗), 호는 일두(一蠹)·수옹(睡翁), 시호는 문헌(文獻)이며, 함양에서 출생하였다. 증조할아버지 정지의(鄭之義)는 고려 왕실의 족보 관리 기관장인 판종부시정(判宗簿寺正)을 역임하였다. 할아버지 정복주(鄭復周)는 고려 후기 벼슬이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에 이르렀는데, 조선 건국 후 전라도 경력(全羅道經歷)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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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백저(伯雎), 호는 학역재(學易齋).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정지연(鄭芝衍)의 5세손이다. 아버지는 석성현감(石城縣監) 증영의정부사(贈領議政府事) 정흥인(鄭興仁)이며, 어머니는 진천의(陳千義)의 딸이다. 아들은 정현조(鄭顯祖)·정숭조(鄭崇祖)·정경조(鄭敬祖)·정상조(鄭尙祖)이다. 정현조는 세조의 딸인 의숙 공주(懿淑公主)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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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열지(悅之), 시호는 문경(文景). 아버지는 사헌집의(司憲執義)를 지낸 정희(鄭熙)이다. 정심(鄭深)과 정황(鄭況) 두 아들이 있다. 정초(鄭招)는 1405년(태종 5) 문과에 급제하고 1407년(태종 7) 중시(重試)에 합격하여 사헌집의와 판군자감(判軍資監), 승문원사(承文院事)를 차례로 역임하며 경연시강관(經筵侍講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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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의 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산해(山海)·방장산인(方丈山人)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생원 조안습(曺安習)이고, 할아버지는 봉사(奉事) 조영(曺永)[1428~1511]이며, 아버지는 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 조언형(曺彦亨)[1469~1526]이다. 증조할머니는 강성 문씨(江城文氏)로 삼우당(三憂堂) 문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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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관인(官人).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성보(聖輔), 호는 해산(海山).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의 후손이다. 조원우(曺元佑)는 태어난 해가 경인년(庚寅年)이라고만 되어 있어 어느 해인지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조식이 1558년에 지은 「유두류록(遊頭流錄)」에 “수재(秀才) 조원우가 와서 보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1530년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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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관인(官人). 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백부(伯符), 호는 지족당(知足堂)·충헌(忠軒). 5대조 할아버지는 문하지후(門下祗侯) 조순(趙淳)이며, 고조할아버지는 문하시중을 지내고 가흥백(嘉興伯)에 봉해진 조석견(趙石堅)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전중(殿中) 조익(趙益)이며, 할아버지는 사온시 직장(司醞寺直長) 조민원(趙敏原)이다.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을 지낸 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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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정자우·정장·정헌을 시조로 하고 정대수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진주의 토성인 진양 정씨는 정예(鄭藝)·정자우(鄭子友)·정장(鄭莊)·정헌(鄭櫶)을 중시조로 하는 네 계열이 존재한다. 네 계열은 신라 말을 전후하여 조상을 같이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고려 초·중기 이전의 선계가 확인되고 있지 않으므로 서로 간의 세계를 밝힐 수 없다. 진양 정씨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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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공진·하진·하성 등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흔히 진양 하씨가 익숙하지만 근래에 들어 진주 하씨(晉州河氏)로 칭하는 경우가 많다. 진주의 토성이자 명문인 진양 하씨는 서로 간의 세계가 밝혀지지 않은 하공진(河拱辰)·하진(河珍)·하성(河誠) 세 계열이 이어져 오고 있다. 고려 초·중기 이전의 선계가 확인되고 있지 않다. 물론 진양 하씨가 시조를 달리한다는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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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8년(명종 13)경 남명 조식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청학동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한시. 「청학동(靑鶴洞)」은 조식(曺植)[1501~1572]의 『남명집(南冥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조식이 지리산[1,915m] 청학동을 유람한 것은 58세 때인 1558년(명종 13) 4월 10일부터 4월 26일까지이다. 조식의 거주지인 합천 삼가(三嘉)를 출발하여 진주를 거쳐 사천에서 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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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황준량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지리산 청학동을 유람하며 그 경관을 노래하고, 최치원을 생각하며 읊은 한시. 「청학동(靑鶴洞)」은 조선 전기 문신 황준량(黃俊良)[1517~1563]의 문집 『금계집(錦溪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황준량은 1545년(인종 1) 상주향교(尙州鄕校)의 교수로 있던 초여름에 지리산[1,915m]을 유람하였는데, 유산기는 남기지 않았다. 다만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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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승려 유정이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의 청학동 암자에서 선정에 들었을 때의 정서를 노래한 한시. 「청학동추좌(靑鶴洞秋坐)」는 사명대사(泗溟大師) 유정(惟政)[1544~1610]의 『사명당대사집(泗溟堂大師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청학동은 신선이 사는 물외의 세계로 티끌세상인 속세와 구별되는 공간이다. 사명대사 유정은 어느 초가을 날 이러한 선계의 절간에서 참선하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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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하동 출신의 의사(義士).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규중(圭仲), 호는 모산(茅山). 아버지는 최정(崔涏)이다. 최기필(崔琦弼)은 1562년(명종 17)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어질고 품행이 반듯하여 지방관의 추천을 받아 참봉이 되었으며, 사옹원봉사·진주목판관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벼슬을 그만두고 진주 서쪽 백운동(白雲洞)에 초당(草堂)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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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신흥마을에 있는 자연석 각자. 탁영대(濯纓臺)는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1464~1498]이 26살 되던 해 지리산[1,915m]을 둘러보고 신흥사 계곡[화개천] 바위에 새긴 글자이다. 김일손은 신흥사 계곡의 맑은 물을 보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맑게 하고 세상을 깨끗하게 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려고 전서체로 ‘탁영대(濯纓臺)’ 세 글자를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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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 구청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석성. 통정리 산성(桶井里山城)의 건립 경위를 알 수 있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만약 축성 시기를 조선 전기로 본다면, 고려 말 왜구의 활동과 관련하여 축조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혹은 임진왜란 때 축성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사전에 계획적으로 성을 쌓았다면 어느 정도 성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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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전기 누각. 풍화루(風化樓)는 하동향교(河東鄕校)의 출입문이자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는 2층 누각이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 기관이다. 하동군 하동 읍내 하동경찰서 뒤쪽 향교1길을 따라 하동향교 방면으로 가다 보면 약 200m 지점에 갈마산이 자리하는데, 풍화루는 갈마산 기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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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관인(官人) 본관은 진양(晉陽). 아버지는 하승해(河承海)이고, 형은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1377~1438]이다. 하경리(河敬履)는 북방 수호에 헌신하는 형을 대신하여 진주를 중심으로 지곤남군사(知昆南郡事), 지사천현사(知泗川懸事) 등 아홉 고을의 수령직을 역임하면서 노모를 극진히 봉양하고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세종은 하경리 형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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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무신. 하경복(河敬復)은 천성이 관후(寬厚)하고, 용모와 몸가짐이 아름다웠으며, 활쏘기에 능하였다. 조선 개국 초기 국가의 무비(武備)를 위하여 많은 공로를 세워 국가의 기틀을 견고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본관은 진양(晉陽). 아우는 하경리(河慶履)이고, 아들은 하한(河漢), 손자는 하숙보(河叔溥)이다. 하경복은 1402년(태종 2) 무과에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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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4~1415년 경상남도 하동군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고려 말 왜구의 침입으로 남해나 거제 같은 곳은 주민이 살 수가 없어 본거지를 떠나 살게 되면서 고을로서의 면모를 유지할 수 없었다. 당시 남해 주민들은 진주의 대야천부곡(大也川部曲)에 깃들어 살게 되었는데, 이로 말미암아 남해가 피폐해지자 태종 대에 일시적으로 하동과 남해를 하나의 현으로 통합하여 고을 이름을 하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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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금남사(錦南祠)에 있는 고려 말의 성리학자 이색의 영정. 고려 말 조선 초의 충신이자 성리학자인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초상화이다. 이색은 삼은(三隱) 중 한 사람으로서 14세에 성균시에 합격하고, 1367년(공민왕 16) 성균관대사성이 되었으며, 학문과 불교에 대한 조예가 깊고 정치에도 큰 발자취를 남겼던 인물이다. 「목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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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조지서(趙之瑞)의 묘비. 조지서[1454~1504]의 본관은 임천(林川)이며, 자는 백부(百符), 호는 지족정(知足亭) 또는 충헌(忠軒)이다. 증조부는 조익(趙益)이며, 조부는 직장(直長) 조민원(趙敏原)이다. 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조찬(趙瓚), 어머니는 생원 정참(鄭叅)의 딸이다. 누이가 남명 조식(曺植)의 할머니이다.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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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정자. 악양정(岳陽亭)은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이 18년간 은거하면서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정여창은 1490년(성종 21)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고 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說書), 안음현감(安陰縣監) 등을 지내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종성(鍾城)에 유배되었으며, 1504년(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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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열부 오천 정씨의 정려각. 오천 정씨(烏川鄭氏)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증손인 생원 윤관(允寬)의 딸이다. 남편인 지족(知足) 조지서(趙之瑞)[1454~1504]가 갑자사화 때 화를 당한 뒤 홀로 젖먹이 두 아이를 훌륭히 키웠다. 신주(神主)를 등에 지고 초야를 떠돌아다니면서 온갖 어렵고 험난한 일을 겪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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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 고하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읍성. 하동은 조선 후기 숙종 때까지는 현이라는 조그만 고을이었고, 관아가 있는 읍치(邑治)는 고현면[현재의 고전면] 고하리에 있었다. 현재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를 둘러싸고 있는 양경산(陽慶山)의 정상부를 따라 축조된 성곽이 하동읍성(河東邑城)으로, 주변의 산석을 이용하여 쌓아 올렸다. 조선 시대 태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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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청수사에 있는 조선 전기 육도 윤회에 대해 설법한 불교 경전. 『몽산화상육도보설』은 원(元)나라 선승(禪僧)인 몽산덕이(蒙山德異)[1231년~1308(?)]가 육도 윤회(六道輪廻)에 대해 설법한 불교 경전으로 중국에서는 전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만 전한다. 하동 청계사 『몽산화상 육도보설』은 2014년 3월 20일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55호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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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청수사에 있는 조선 전기 간행된 법화 영험담. 『법화 영험전』은 고려 후기 충혜왕 대의 승려 요원(了圓)이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독송(讀誦)·서사(書寫)·강해(講解)함으로써 얻게 되는 갖가지 영험담을 당나라 혜상(慧詳)의 『홍찬법화전(弘贊法華傳)』 10권과 송나라 종효(宗曉)의 『현응록(現應錄)』 4권, 고려 진정 국사(眞淨國師)의 『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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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지방 교육 기관. 1415년(태종 15) 현감 최승선이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에 문묘와 하동향교(河東鄕校)를 창건하고 훈도(訓導) 1명을 두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이듬해인 1593년(선조 26)에 왜적이 침입하여 문묘와 향교, 문적, 기물 등이 모두 소실되었으며, 1603년(선조 36) 현감 이경호가 다시 중건하였다. 1661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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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선조의 생모이자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부인. 본관은 하동(河東). 증조할아버지는 하동부원군(河東府院君)과 영의정을 지낸 정인지(鄭麟趾)[1396~1478]이며, 아버지는 판중추부사를 지낸 정세호(鄭世虎)[1486~1563]이다. 남편은 덕흥군(德興君)[1530~1559]이다. 가례를 올리고 하동군부인(河東郡夫人)으로 제수되었다. 자녀는 3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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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무신. 본관은 진양(晉陽). 할아버지는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이며, 아버지는 강장공(剛莊公) 하한(河漢)이다. 하숙보(河淑溥)는 1453년(단종 1) 무과에 급제하여 사용(司勇)이 되었으며, 1456년(세조 2) 무과 중시에 합격하여 길주판관을 지냈다. 1466년(세조 12) 통정대부로서 강계부사에 제수되었다. 1467년(세조 13) 명나라가 여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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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무신. 하한(河漢)은 무용(武勇)이 뛰어나 조선 전기 세종부터 세조까지 네 임금을 섬기며 남방의 왜구와 북방의 여진을 토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433년(세종 15) 2월에 왕이 경회루에 회동하여 상호군(上護軍) 홍사석(洪師錫) 등 30여 명에게 대오를 갈라 과녁을 쏘도록 명하였다. 이때 하한이 화살을 제일 많이 맞혀 활을 하사 받았을 만큼 활솜씨도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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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에 있는 김성일(金誠一)의 유허지. 학봉(鶴峰) 김성일[1538~1593]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인 1592년 4월 11일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임명되었다. 전쟁이 터지자 초유사(招諭使)가 되어 흩어진 관병을 수습하고 경상도 일대의 의병을 일으키는 데 진력하였다. 이어 경상우도관찰사로 임명되자, 왜군의 호남 진출로가 되는 진주성 방어 전략을 지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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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개를 시조로 하고 이석후·이시빈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합천 이씨는 합천을 본관으로 하고 이개(李開)를 시조로 하며, 10세손인 이수전(李守全)[전서공파의 파시조] 대에 이르러 15파로 분파하였다. 이 15파 가운데 하나인 전서공파가 가장 번성하였다. 하동 지역의 합천 이씨는 전서공파와 더불어 참지공파[파시조 이양진(李良眞)]의 후손들이 하동군 악양면·양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