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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치형(致亨), 호는 한재(韓齋). 고조할아버지는 만포(晩圃) 정달진(鄭達晉)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경재(警齋) 정익헌(鄭益獻)이며, 할아버지는 정재환(鄭載煥)이다. 아버지는 정원휘(鄭元暉)이다. 어머니는 하진흡(河鎭洽)의 딸 진양 하씨(晉陽 河氏)이다. 부인 조씨(趙氏)는 죽하(竹下) 조용주(趙鏞周)의 딸이다. 슬하에 2남 4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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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달경(達卿), 호는 만포(晩圃). 아버지는 정태구(鄭泰龜)이고, 어머니는 유태영(柳泰泳)의 딸이다. 정달진(鄭達晉)은 1737년(영조 13) 5월 경상남도 하동의 곤양(昆陽)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모셨는데, 어머니가 병이 들자 대소변의 맛을 보아 병의 차도를 감지하였다. 1795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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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성능(性能), 호는 죽포(竹圃). 애일당(愛日堂) 정분(鄭苯)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정경모(鄭敬模)이고, 어머니는 밀양 박씨(密陽 朴氏)이다. 부인은 문종길(文宗吉)의 딸 남평 문씨(南平 文氏)이다. 정응권(鄭應權)은 1824년(순조 24) 3월에 태어났다. 어머니의 병환에 대소변의 맛을 보아 병의 차도를 확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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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평중(平仲), 호는 농헌(聾軒). 9대조 정대수(鄭大壽)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피해 곤양의 남쪽 금오산(金鰲山)에 옮겨 와 살았다. 아버지는 정필화(鄭必華)이고, 어머니는 홍세의(洪世儀)의 딸인 남양 홍씨(南陽 洪氏)이다. 부인은 조성우(曺成宇)의 딸인 창녕 조씨(昌寧 曺氏)이다. 정재권(鄭在權)은 1796년(정조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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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중기(鄭仲基)의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선명(宣明), 호는 제천(齊川)이다. 성질이 곧고 두뇌가 명석하며 정직했다. 경술국치 이후 비분강개하여 항상 망국의 한을 품고 있다가, 기미독립운동 때 동지를 규합하여 하동 장날인 1919년 3월 13일 시위행진을 하다가 체포되어 5개월간 징역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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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양(晉陽). 판관을 지낸 정광윤(鄭光胤)의 후손이다. 정창시(鄭昌時)는 부모를 섬김에 효의 도리를 다하였는데, 부모님이 병이 생겨 위독할 적에 두 번이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여 소생시켰다. 부모님께 맛난 것을 구하고자 하였으나 겨울이라 구할 수 없어 안타까워하니 꿩이 날아들었고, 시묘하는 6년 동안 호랑이가 나타나 지켜 주었다고 전한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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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서문(瑞文), 호는 오헌(鰲軒). 아버지는 정국원(鄭國元)이고, 어머니는 권임형(權任亨)의 딸인 안동 권씨(安東 權氏)이다. 부인은 유태영(柳泰泳)의 딸인 문화 유씨(文化 柳氏)이다. 정달진(鄭達晉)·정규진(鄭逵晉) 두 아들을 두었는데, 정달진은 효행으로 호조좌랑에 증직되고 정려가 섰다. 정태구(鄭泰龜)는 1703년(숙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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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화영(鄭華永)은 1919년 전국적으로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에서도 만세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미리 하일로(河一魯)·권대형(權大衡)·권상숙(權尙淑)·권복대·하계원(河啓遠)·최인우(崔寅愚)·김중수(金重洙) 등과 공모하여 인근에 연락을 취하는 등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정화영 등은 3월 24일 안계리 장날이 되자 장터에 운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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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희근(鄭禧根)은 1881년(고종 18)경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0일 정낙영, 이범호 등과 함께 남면사무소의 등사판을 이용해 「대한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각 마을에 배부하고 군중 동원을 마친 뒤, 대치리에 있는 금양면사무소 앞에서 「대한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정희근 등은 오전 11시부터 “대한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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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무준(趙武駿)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1918년 4월 28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81번지에 태어났다. 1941년 일본 규슈[九州]에서 규슈의학전문학교[九州醫學專門學校] 3년생으로 재학 중 일본 유학생들에게 민족 독립 의식을 계몽하고 동지를 규합하였다. 그 해 9월 신입생 환영식 등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멸망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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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정래(趙正來)는 1914년 8월 16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77번지에서 태어났다. 1931년 2월 27일 경상남도 진주에 있는 진주공립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 중 동맹 휴교를 감행하여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같은 해 10월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동경전기학교(東京電氣學校)에 입학하여 일본반제동맹 동경지방위원회 전기학교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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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학제(趙鶴濟)는 1904년 8월 13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297번지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재학 중이던 1925년 6월 조선청년동맹 동경지부 조직책으로 항일 운동을 하였다. 잠시 귀국하여 국내 독립운동 단체와 여운형(呂運亨)을 통해 상해 임시 정부의 밀명을 받고 일본에 잠입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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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인천(仁川). 남편은 이보형(李輔衡)으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1919년 4월 7일 하동 읍내에서 박문화(朴汶和), 정점금(鄭點金), 전석순(全錫舜) 등 하동보통학교 학생 160여 명이 만세를 불렀는데, 채소정(蔡小丁)도 여학생으로서 참가하였다. 이후 채소정은 1925년 하동청년회관 신축 기성회에 참여하였고, 신간회의 자매단체인 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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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인우(崔寅愚)의 본관은 삭녕(朔寧)으로,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옥종면 안계리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를 주도한 것은 하일로(河一魯)였다. 최인우는 하일로·권대형(權大衡)·권상숙(權尙淑)·권복대·하계원(河啓遠)·정화영(鄭華永)·김중수(金重洙) 등과 미리 인근에 연락을 취하는 등 계획을 세운 후 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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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흥.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 추수경(秋水鏡)의 9세손이다. 아버지는 추민중(秋敏中)이며, 어머니는 창원 황씨이다. 추성원(秋成元)은 순조와 고종 대의 효자이다. 13세 때 어머니가 병이 나자 지리산과 금오산 등에서 약초를 구해 드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를 지켜보던 이웃 노인이 효성에 감동하여, 속설에서 들은 말로 인육을 먹으면 병이 나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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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순남(洪順南)은 1902년(고종 39)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광주 3·1 운동은 김강·김철·최병준·최한영과 숭일학교·수피아여학교·농업학교 교사들이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오후 3시경 부동교(不動橋) 아래의 작은 장터에서 학생 및 일반 주민 1,500여 명이 모여 독립 만세를 외쳤는데, 당시 18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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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하동 출신의 효자 3형제. 본관은 진양(晉陽). 감호(鑑湖) 정호신(鄭虎臣)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정함(鄭檻)이며, 어머니는 강위찬(姜渭贊)의 딸 진주 강씨(晉州 姜氏)이다. 정치덕(鄭致德)의 자는 여실(汝實), 호는 사감헌(四感軒)으로, 1794년(정조 18) 6월에 태어나 1866년(고종 3) 7월에 사망했다. 정치도(鄭致道)의 자는 준보(俊甫), 호는 애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