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삼동(上三東)·중삼동(中三東)·하삼동(下三東) 등을 합쳐 공통 음절인 ‘동’을 따서 동리(東里)라 하였다. 마을이 적량면(赤良面) 동쪽에 있어 붙인 이름으로 여겨진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삼동촌(三東村)이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1702년(숙종 28) 진주목(晉州牧)에서 하동군 적량면에 편입된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여러 대(代)에 걸쳐 계속해서 살아오고 있는 성씨. 성씨의 연원은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다음 전국의 군·현의 이름을 개정하고 개국 공신을 책봉했던 940년(태조 2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이전 고대 국가에서 성씨는 왕족과 극히 일부 중앙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후삼국 시대 성주, 장군, 촌주 등의 신분을 지니면서 지방 세력을 대표하던 지방...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하동군의 역사. 하동의 역사는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선사 시대와 그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현재까지 하동 지역에서 확인된 선사 시대의 유적은 하동군의 동북쪽 덕천강 유역과 서남쪽 섬진강 유역 일대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하동의 역사는 수습된 유물을 통해서 보면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철기 시대에 이르러 작은 정치체가...
고려 후기 하동 출신의 역관 본관은 하동(河東). 아버지는 현리(縣吏) 정국룡(鄭國龍)이다. 정지연(鄭之衍)은 역관으로서 중국어에 능통하여 여러 차례 원나라에 다녀왔다. 1280년(충렬왕 6) 교위(校尉)로서 원에 가 환도(還刀) 378자루를 바쳤다. 1282년(충렬왕 8) 원에 들어가 “탐라진수군(耽羅鎭戍軍)[일본과 남송을 정벌하기 위해 탐라에 주둔한 원과 고려의 군대]은 고려에...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리에 있는 고려 후기 고종~충선왕 대의 분묘. 하동 동리 방형분(河東東里方形墳) 3기는 할석으로 된 3단 석축의 방형 분묘로서 하동 정씨(河東鄭氏) 정국룡(鄭國龍)과 두 아들 정지연(鄭芝衍), 정난연(鄭蘭衍) 형제의 묘라고 전해지고 있다. 밀직공(密直公) 정국룡은 고려 고종 대에 광정대부밀직부사(匡靖大夫密直副使)에 증직된 인물이다. 정국룡의 큰아들 첨의공(...
정도정을 시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하동 정씨는 하동의 토성(土姓)이다. 따라서 하동 정씨는 신라 말 고려 초에 이미 하동 지역의 호족으로서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동 정씨는 통일 신라의 군현 체제에서 촌주 세력으로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신라 말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서 하동 지역의 호족으로 성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