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지역은 남해와 섬진강을 끼고 있어 해상 교통이 편리할 뿐 아니라 경상도와 전라도의 접경지대로 오랜 옛날부터 지리적 요충지로서 주목 받았다. 이 때문에 일찍부터 도로와 시장이 발달하고 물산이 풍부했던 반면에 침략을 받기도 쉬운 이중적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고려 후기에는 왜구의 잦은 침략을, 조선 시대에는 임진왜란을 겪었다. 그러나 정유(鄭愈)나 정기룡(鄭起龍) 같은 이들에 의...
조선 후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열녀. 조소사(曺召史)는 사노(私奴)였던 이노미(李奴未)의 아내로서,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 중에 왜적을 만나자 죽음으로 절의를 지켰다. 이 해 일본군은 1592년(선조 25)의 진주성 패배[진주대첩]를 만회하고자 10여만 명의 병사를 동원해 9일간 진주성을 함락하기 위해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결국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여 명의 군사...
조선 전기 고봉 기대승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쌍계사에서 최치원을 그리워하며 지은 한시. 「입청학동방최고운(入靑鶴洞訪崔孤雲)」은 기대승(奇大升)[1527~1572]의 『고봉집(高峰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기대승이 지리산[1,915m]을 유람하면서 쌍계사(雙磎寺)에 들러 최치원(崔致遠)[857~915]의 영정이 있는 곳을 찾아가 최치원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이다. 기대승의 지리산 유...
조선 후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열녀. 조언세(曺彦世)의 처인 하소사(河召史)는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 중에 왜적을 만나 위급해지자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였다. 이 해 일본군은 1592년(선조 25)의 진주성 패배[진주대첩]를 만회하고자 10여만 명의 병사를 동원해 9일간 진주성을 함락하기 위해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결국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여 명의 군사와 관리...
조선 후기와 개항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처음의 자는 원칙(元則)이었으나 뒤에 이름을 바꾸면서 치장(穉章)이라 했으나 처음의 자가 널리 알려져 그대로 썼다. 호는 계남(溪南), 초명은 최유민(崔有民). 전주 최씨는 최아(崔阿)를 시조로 삼는데, 그의 아들 최용생(崔龍生)이 경상도안찰사로서 원나라 사신에게 미움을 받아 사천(泗川)에 거주하면서부터 경상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