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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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7년 추강 남효온이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를 보고 지은 한시. 「독쌍계사비(讀雙磎寺碑)」는 남효온(南孝溫)[1454~1492]의 『추강집(秋江集)』 권2에 수록되어 있다. 남효온은 1487년(성종 18) 9월 27일부터 10월 13일까지 약 보름 동안 지리산[1,915m]을 두루 유람하였다. 10월 9일 전라남도 구례를 떠나 경상남도 화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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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서 여러 대(代)에 걸쳐 계속해서 살아오고 있는 성씨. 성씨의 연원은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다음 전국의 군·현의 이름을 개정하고 개국 공신을 책봉했던 940년(태조 2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이전 고대 국가에서 성씨는 왕족과 극히 일부 중앙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후삼국 시대 성주, 장군, 촌주 등의 신분을 지니면서 지방 세력을 대표하던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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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경부(敬夫), 시호는 문절(文節). 아버지는 감찰을 지낸 정제(鄭提)이며, 어머니는 관찰사를 지낸 김약채(金若采)의 딸 광주 김씨(光州 金氏)이다. 정수충(鄭守忠)은 경사(經史)에 두루 통달하였으며, 재능과 행실이 뛰어났다. 처음에는 환관(宦官)을 교육하는 일을 담당하였으며, 뒤에는 세종의 명으로 영응대군(永膺大君) 이염(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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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백저(伯雎), 호는 학역재(學易齋).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정지연(鄭芝衍)의 5세손이다. 아버지는 석성현감(石城縣監) 증영의정부사(贈領議政府事) 정흥인(鄭興仁)이며, 어머니는 진천의(陳千義)의 딸이다. 아들은 정현조(鄭顯祖)·정숭조(鄭崇祖)·정경조(鄭敬祖)·정상조(鄭尙祖)이다. 정현조는 세조의 딸인 의숙 공주(懿淑公主)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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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이 모여 사는 촌락. 집성촌은 성(姓)과 본(本)이 같은 부계의 혈족들이 모여 살고 있는 마을이다. 이를 ‘동성마을’, ‘동족촌(同族村)’이라고도 한다. 즉 집성촌은 특정 성씨가 함께 모여 촌락을 이룬 경우를 말한다. 동족 마을은 조상을 같이 함으로써 비롯된 혈연관계의 주민들이 특정 지역에 한 마을을 이루어 집단으로 거주하는 형태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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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월횡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진양 하씨 문중의 사당. 경현사(景賢祠)에는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1377~1438], 참의공(參議公) 하경리(河敬履), 강장공(剛莊公) 하한(河漢)[?~1460], 경절공(敬節公) 하숙보(河叔溥)[?~1501] 등 4명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양정공 하경복은 조선 초기 태종과 세종 양 대에 걸쳐 여진을 토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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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월횡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진양 하씨 문중의 사당. 경현사(景賢祠)에는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1377~1438], 참의공(參議公) 하경리(河敬履), 강장공(剛莊公) 하한(河漢)[?~1460], 경절공(敬節公) 하숙보(河叔溥)[?~1501] 등 4명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양정공 하경복은 조선 초기 태종과 세종 양 대에 걸쳐 여진을 토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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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정수리 영당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하동군 옥종면은 본래 진주 땅이었으나 1906년 하동에 소속되었다. 옥종면 정수리 영당마을은 영일 정씨(迎日鄭氏)의 세거지로, 1715년(숙종 41) 시조(始祖)인 형양공(滎陽公) 정습명(鄭襲明),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정몽주의 손자이자 세조 때 사육신(死六臣)의 무죄를 주장하다 죽은 설곡(雪谷) 정보(鄭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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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무신. 하한(河漢)은 무용(武勇)이 뛰어나 조선 전기 세종부터 세조까지 네 임금을 섬기며 남방의 왜구와 북방의 여진을 토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433년(세종 15) 2월에 왕이 경회루에 회동하여 상호군(上護軍) 홍사석(洪師錫) 등 30여 명에게 대오를 갈라 과녁을 쏘도록 명하였다. 이때 하한이 화살을 제일 많이 맞혀 활을 하사 받았을 만큼 활솜씨도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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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화심리 화심에 있는 의령 여씨 동성 마을. 화심은 1750년경 의령 여씨가 옮겨 와 정착하여 살면서 광비등(光碑嶝) 또는 화심(和深)이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마을 부근에 세조의 총애를 받았던 경상도절제사 하한(河漢)과 그의 부인 박씨의 묘와 큰 비석이 있어 붙인 이름으로 여겨진다. 1872년 마을 지형이 풍수지리상 화심(花心) 형국이므로 화심으로 바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