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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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경수(敬綏), 호는 괴포(槐圃). 강영수(姜英壽)의 후손이다.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이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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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이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 청정을 서두르자, 소론은 경종의 보호를 명분으로 신임사화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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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이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 청정을 서두르자, 소론은 경종의 보호를 명분으로 신임사화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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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에 있는 김재주(金載周)의 효행을 기리는 비. 조선 영조 때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에 거주하던 효자 김재주는 병환 중의 아버지를 7년간 지극 정성으로 간병하였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묘소를 오가며 살피고 애통해 하였다. 천하의 효자로 이름을 내고 세상을 뜨니, 조정에서 그에게 가선대부(嘉善大夫)를 추증하였다. 이에 후손들과 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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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에 있는 김재주(金載周)의 효행을 기리는 비. 조선 영조 때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에 거주하던 효자 김재주는 병환 중의 아버지를 7년간 지극 정성으로 간병하였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묘소를 오가며 살피고 애통해 하였다. 천하의 효자로 이름을 내고 세상을 뜨니, 조정에서 그에게 가선대부(嘉善大夫)를 추증하였다. 이에 후손들과 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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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 고포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정규의 묘비. 김정규는 조선 숙종 때 태어나 영조 때 효자로 명성을 얻었으며, 가선대부절충장군용양위부호군을 증직받았다. 1948년 5월, 김정규의 후손들이 후세의 귀감으로 삼고자 김정규의 효 행적을 새긴 묘비를 세웠다. 하동군 금성면 고포리 산416-1번지 고포마을회관 북동쪽에 있다. 비석은 기단 위에 화강암의 규형이며, 팔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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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고절리 고석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난파(蘭坡) 정공(鄭公) 부부의 효행비. 난파 정공 부부 효행비(蘭坡鄭公夫婦孝行碑)는 조선 후기 영조 때 효자인 통정대부(通政大夫) 난파 정공과 부인인 숙부인(淑夫人) 경주 김씨(慶州金氏)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국도 19호선이 지나는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고절리 고석마을과 강선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비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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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고절리 고석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난파(蘭坡) 정공(鄭公) 부부의 효행비. 난파 정공 부부 효행비(蘭坡鄭公夫婦孝行碑)는 조선 후기 영조 때 효자인 통정대부(通政大夫) 난파 정공과 부인인 숙부인(淑夫人) 경주 김씨(慶州金氏)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국도 19호선이 지나는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고절리 고석마을과 강선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비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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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나 사적(事蹟)을 기념하기 위해서 돌·금속·도기·나무 등에 글을 새겨 세워놓은 경상남도 하동군의 여러 기념물. 비는 재료에 따라 석비(石碑)·목비(木碑)·철비(鐵碑) 등으로 분류된다. 비는 흔히 비석이라고 하듯이 현존하는 기념물 형태의 비는 거의 모두 석비이다. 석비는 형태에 따라 비(碑)[위가 네모난 형태]와 갈(碣)[위가 둥근 형태]로 나눌 수 있으나 총칭하여 비갈(碑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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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달성(達城). 달성군(達城君) 서영(徐穎)의 11세손이다.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이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 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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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이경(而卿). 정평공(貞平公) 서균형(徐鈞衡)[?~1391)의 후손이다. 서균형은 고려 후기의 관리로 우정언(右正言)과 정당문학(政堂文學) 등을 거쳐 1390년(공양왕 2) 예문관대제학으로서 조준(趙浚)·이지(李至) 등과 함께 공양왕의 세자 왕석(王奭)의 사부로 활동했다. 1391년(공양왕 3) 사망하였다. 숙종 말년 소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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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이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 청정을 서두르자, 소론은 경종의 보호를 명분으로 신임사화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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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이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 청정을 서두르자, 소론은 경종의 보호를 명분으로 신임사화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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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인좌(李麟佐) 등의 소론을 중심으로 일어난 정권 탈취 사건. 경상남도 하동군의 여러 관리가 진압 공신으로 등재되었다. 조선 경종(景宗) 연간에 소론은 왕위 계승을 둘러싼 노론과의 대립에서 일단 승리하였으나, 노론이 지지한 영조(英祖)가 즉위하자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소론의 과격파들은 영조가 숙종(肅宗)의 아들이 아니며 경종의 죽음에 관계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영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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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 우성에 있는 용궁 김씨 동성 마을. 본디 우동(愚洞)이라 하였다가 주민들이 ‘어리석을 우(愚)’자를 꺼려 우동(牛洞)으로 고쳤고, ‘소 우(牛)’자 때문에 소가 사는 동네로 지칭되자 다시 우동(于洞)으로 고쳤다. 1988년 행정 구역상 시(市)의 동(洞)과 농어촌 마을의 동이 혼동되므로 농어촌 마을의 ‘동’을 모두 고치라는 지침에 따라 우성(牛城)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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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정감록(鄭鑑錄)』을 사상적 틀로 이용하여 역모를 도모한 사건. 17세기 이후 양반 지배층 사이의 권력 다툼이 더욱 심해지자 숙종 때에는 붕당 간의 대립이 격화되어 정국(政局)이 자주 바뀌었다. 1728년(영조 4) 무신란(戊申亂)이 실패하자 그 가담 세력들 중 많은 이가 지리산으로 몸을 피하였으며, 정조의 친정 체제 확립 과정에서 홍국영(洪國榮)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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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있는 정기룡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정기룡(鄭起龍)은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무신이다.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경운(景雲), 호는 매헌(梅軒), 초명은 정무수(鄭茂壽)이다. 곤양현[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 상촌마을]에서 태어나 1586년(선조 19) 무과에 급제한 뒤, 왕명에 의해 이름을 ‘정기룡(鄭起龍)’으로 바꾸었다. 임진왜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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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의신(義臣). 정양(鄭穰)의 9세손이다. 정양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423년(세종 5) 문과에 급제하여 좌사간(左司諫)을 지냈다. 경시서 주부를 역임할 때에 세종의 명을 받아 예문관 대제학 유사눌(柳思訥), 집현전 대제학 정인지(鄭麟趾), 봉상 판관(奉常判官) 박연(朴堧) 등과 함께 구악(舊樂)을 정리하였다.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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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功臣).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이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 청정을 서두르자, 소론은 경종의 보호를 명분으로 신임사화를 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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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하덕망(河德望)[1664~1743]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어머니가 병들어 위독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여 소생시킨 일도 있다. 부모의 상을 모두 마친 후, 과거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참된 학문에 매진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연못을 파서 연꽃을 심고 그 곁에 정자를 지어 ‘광영정(光影亭)’이라 하였고, 서재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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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도경(道卿). 사직(司直)을 지낸 하진(河珍)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에 증직된 하광국(河光國)이며, 할아버지는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에 증직된 낙와(樂窩) 하홍달(河弘達)[1603~1651]이다. 하홍달은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아우이다. 아버지는 사헌부 대사헌(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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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와 학맥에 관해 서술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간적 범위를 어디까지로 제한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유학자의 정의를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가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므로 위의 두 가지 범위와 기준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하동의 유학자를 규정하였다. 첫째, 시간적 범위는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은 조선의 건국으로부터 그 운명이 다하는 시점인 개항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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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치원(致遠), 호는 낙와(樂窩)이다. 진양 하씨의 시조는 고려 시대 사직(司直)을 지낸 하진(河珍)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부터 9세를 내려와 하즙(河楫)이 현달하여 진주부원군에 봉해졌는데, 시호는 원정(元正)이다. 11대조는 하윤원(河允源)으로 역시 진산부원군에 봉해졌다. 10대조는 하자종(河自宗)으로 호는 목옹(木翁)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