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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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 갈사리 서근에 있는 김해 김씨 동성 마을. 마을 서쪽에 솟은 산에 옛날 지적 측량을 할 때 도근점(圖根點)이 있었으므로 ‘서근(西根)’이라 하였다가 한자 표기가 ‘서근(西斤)’으로 바뀌었다. 갈사리(葛四里)는 섬진강 하류 간척지를 안고 형성된 마을로, 1950년대 이전 간척이 이루어지기 이전에는 섬 지역이었다. 행정 구역 개편 때 서근·연막(蓮幕)·내도(內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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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에서 너본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너본바위 이야기」는, 고전면 성천리 남성(南城)마을 입구에 고인돌로 보이는 넓은 바위 두 개가 있는데, 도사가 제자에게 명지(名地)를 설명하며 너도 보았느냐고 묻자 보았다고 대답하여 ‘너본바위’라고 불렸다는 암석유래담이다. 2003년 고전면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고전면지』에 실려 있다. 또한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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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의 노영두가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노영두 소장 고문서는 소지(所志) 3점, 의송(議送) 1점, 청원서(請願書) 6점, 첩(帖) 1점, 서목(書目) 1점, 전령(傳令) 2점, 고목(告目) 4점, 고시(告示) 10점, 망기(望記) 29점, 교지(敎旨) 9점, 경제 문서(經濟文書) 3점 등이다. 1. 소지, 청원서, 첩, 고목 소지에는 1904년(고종 41)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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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대치에 있는 진주 정씨 동성 마을. 지난날 마을 뒤 금오산[849m] 자락의 큰 고개를 통해 외부와 소통하였으므로 마을 이름을 큰재 또는 한재라 하였다가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을 한자로 통일하면서 큰 고개라는 뜻의 대치(大峙)로 바꾸었다. 약 400년 전 진주 정씨 정대수(鄭大壽)가 진주에서 옮겨 와 정착한 이래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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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수문장을 지낸 이씨 성을 지닌 이가 거주하면서 밤이면 달빛이 유난히 밝아 달동[月洞]이라 불렀는데,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밝은 달’을 박달(朴達)이라 음차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조선 말 서양곡면(西良谷面)으로 박달촌·봉곡촌·성치촌·세곡촌·반계촌이 있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양보면 박달리가 되었다. 개편 당시 봉곡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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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병천리 병천에 있는 진주 하씨 동성 마을. 뒷산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앞에 하천이 흘러 병천(屛川)이라 하였다. 진주 하씨 단지공파(丹池公派) 후손 하진강(河鎭岡)·하진학(河鎭學) 형제가 조선 정조 때 산청군 덕산에서 병천으로 옮겨 와 정착한 이래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진주 하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병천리 병천은 동쪽으로 덕천강을 경계로 진주시 수곡면, 서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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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북방에 있는 진주 정씨 동성 마을. 본디 농지가 많은 마을이란 뜻의 토동(土洞), 큰 들이 있다는 뜻의 한평, 땅이 많다는 뜻의 빗평[富坪] 등으로 불리다가 소리가 변하여 북평(北坪)이 되었고,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북방으로 고쳤다. 1850년(철종 1)경 진주 정씨 수사공파(水使公派) 후손 정철균(鄭喆均)·정하균(鄭夏均) 형제가 청암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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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 성평에 있는 하동 정씨 동성 마을. 가야 시대에 마을이 형성되어 별아대 또는 별벌이라 하였는데 정확한 뜻은 알 길이 없다. 훗날 마을 명칭을 한자로 고쳐 표기할 때 ‘별 성(星)’자와 ‘들 평(坪)’자를 써서 성평이라 하였다. 1600년경 처사 정홍장(鄭泓長)의 후손들이 성평에 영모재(永慕齋)를 세우고 대대로 세거하면서 하동 정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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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하동군의 역사. 하동의 역사는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선사 시대와 그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현재까지 하동 지역에서 확인된 선사 시대의 유적은 하동군의 동북쪽 덕천강 유역과 서남쪽 섬진강 유역 일대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하동의 역사는 수습된 유물을 통해서 보면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철기 시대에 이르러 작은 정치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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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하동군의 역사. 하동의 역사는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선사 시대와 그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현재까지 하동 지역에서 확인된 선사 시대의 유적은 하동군의 동북쪽 덕천강 유역과 서남쪽 섬진강 유역 일대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하동의 역사는 수습된 유물을 통해서 보면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철기 시대에 이르러 작은 정치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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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을 위해 지극한 정성을 다한 부녀자. 홍근호가 지은 『열부정려기(烈婦旌閭記)』에 “부인의 행실은 죽음으로써 열(烈)을 나타내니, 타고난 천성(天性)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자로 ‘열(烈)’의 뜻은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열녀란 ‘세차고 사납고 굳세며 정열을 지키기 위하여 욕망을 불태워 없애고, 빛나고 밝고 아름다운 큰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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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에 있는 수령 약 300년의 보호수.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활엽교목으로 규목(槻木) 또는 귀목나무라고도하며, 야생에서는 산기슭이나 계곡 또는 민가 인근에 흙이 깊은 진흙땅에서 잘 자란다. 암수한그루로 4~5월에 꽃이 핀다. 암꽃은 새 가지 위쪽에 1~3개씩, 수꽃은 새 가지의 아래쪽에 모여 달리며 4~6개의 수술이 있다. 잎은 타원형으로 폭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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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 월운에 있는 남평 문씨 동성 마을. 반월산과 구름 형상의 달구봉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므로 달운재라 하였고, 행정 구역 개편 때 한자 표기인 월운(月雲)으로 바뀌었다. 가야 시대 유물과 청동기 시대의 무덤인 고인돌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오래전에 마을이 형성되었으리라 여겨진다. 400여 년 전 임진왜란을 피해 남평 문씨가 옮겨 와 정착한 이래 후손들이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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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에서 활동한 문인.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형락(亨洛), 호는 회산(晦山).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인 동곡(桐谷) 이조(李晁)[1530~1580]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이도형(李道炯)이며, 어머니는 최씨(崔氏)이다. 부인은 권씨(權氏)·이씨(李氏)이며, 2남 4녀를 두었다. 이택환(李宅煥)[1854~1924]은 1882년(고종 19) 과거에 급제하여 사헌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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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도동(鄭道東)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정도동은 본관이 오천(烏川)이고, 자는 행지(行之)이다. 어려서부터 지극히 효성스러워 부모의 뜻을 받들고 그 마음을 즐겁게 하는 데 온 힘을 다하였다. 어머니 이씨가 천연두를 앓아 아버지 건암공(蹇庵公) 정홍적(鄭洪績)이 나가 피하라고 하였으나, 따르지 않고 밤낮으로 자신이 대신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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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도동(鄭道東)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정도동은 본관이 오천(烏川)이고, 자는 행지(行之)이다. 어려서부터 지극히 효성스러워 부모의 뜻을 받들고 그 마음을 즐겁게 하는 데 온 힘을 다하였다. 어머니 이씨가 천연두를 앓아 아버지 건암공(蹇庵公) 정홍적(鄭洪績)이 나가 피하라고 하였으나, 따르지 않고 밤낮으로 자신이 대신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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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곤양군[사천시 곤명면, 곤양면, 서포면과 하동군 진교면, 금성면, 금남면에 있던 지역]에서 정두엽의 처 이씨에게 발급한 호적 관련 문서. 1675년(숙종 1) 곤양군(昆陽郡)에서 발급한 유학(幼學) 정두엽(鄭斗燁)의 32살 때 준호구(準戶口)로, 거주지는 곤양군 초량면(草梁面) 추동(楸洞)으로 되어 있다. 정두엽의 본관은 진주이며, 아버지는 정희협(鄭希俠),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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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 정서에 있는 밀양 손씨 동성 마을. 악양면은 서기 200년경 가야 시대에 부족 국가 소다사현(小多沙縣)의 중심지로서 다사촌이라 하였고, 1633년(인조 11) 기록에 따르면 상촌·성지촌(城址村)·성후촌(城後村)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북쪽으로 화개면, 동서는 적량면과 하동읍, 서남쪽은 전라남도 광양시 다압면과 이웃한다. 악양은 섬진강과 함께 넓은 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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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정수리 청수에 있는 영일 정씨 동성 마을. 마을 서쪽 북천면과 경계를 이루는 옥산(玉山)에서 발원하여 마을 앞으로 흐르는 물이 맑아 청수(淸水)라 하였다. 마을 앞의 하천이 곧게 흐른다는 뜻에서 정수(正水)로 고쳤다가 1995년 다시 청수로 고쳤다. 청수 주변에서 발굴된 민무늬 토기, 지석묘, 석기 조각 등의 유물로 미루어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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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하동 출신의 관인(官人). 본관은 하동(河東). 할아버지는 정공윤(鄭公允)으로, 중봉대부 영북등처행중서성 참지정사 상호군(中奉大夫嶺北等處行中書省叅知政事上護軍)에 증직되고, 추후 영양군공(榮陽郡公)에 봉작되었다. 아버지는 정성량(鄭性良)으로 자선대부 하남강북등처 행중서성좌승 상호군(資善大夫河南江北等處行中書省左丞上護軍)에 증직되고, 추후 영양군공(榮陽郡公)에 봉작되었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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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계호(季豪), 호는 월산(月山). 어계(漁溪) 조려(趙旅)[1420~1489]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조원기(趙元耆)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조경진(趙經鎭)이다. 증조할아버지가 처음으로 진주 월횡리(月橫里)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할아버지는 조오(趙澳)이고, 아버지는 동몽교관(童蒙敎官) 조광식(趙匡植)이며, 어머니는 김석신(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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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의 열녀이자 효부. 본관은 합천(陜川). 남편은 학생(學生) 한덕동(韓德東)이다. 한덕동 처 합천 이씨는 15세에 한씨 집안으로 출가하였다. 시부모에게 효성을 다하고 남편을 예로 섬겨 일가가 화목하여 향리 사람들이 모두 열복(悅服)하여 칭송하였다. 19세에 자식도 없는데 남편이 중병에 걸려 몇 달 동안 병상에 눕게 되었다. 모든 약이 효험이 없자 이씨는 산천에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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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개를 시조로 하고 이석후·이시빈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합천 이씨는 합천을 본관으로 하고 이개(李開)를 시조로 하며, 10세손인 이수전(李守全)[전서공파의 파시조] 대에 이르러 15파로 분파하였다. 이 15파 가운데 하나인 전서공파가 가장 번성하였다. 하동 지역의 합천 이씨는 전서공파와 더불어 참지공파[파시조 이양진(李良眞)]의 후손들이 하동군 악양면·양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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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화심리 화심에 있는 의령 여씨 동성 마을. 화심은 1750년경 의령 여씨가 옮겨 와 정착하여 살면서 광비등(光碑嶝) 또는 화심(和深)이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마을 부근에 세조의 총애를 받았던 경상도절제사 하한(河漢)과 그의 부인 박씨의 묘와 큰 비석이 있어 붙인 이름으로 여겨진다. 1872년 마을 지형이 풍수지리상 화심(花心) 형국이므로 화심으로 바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