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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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송문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석성. 민보성(民堡城)이라는 성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인근의 백성이 쌓은 산성인데, 임진왜란 때 축성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침입을 대비한 초소, 또는 망루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남해에서 내륙의 하동읍성(河東邑城)[고현성]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목에 쌓은 산성이다. 남으로 노량 앞바다를 마주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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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에 있는 삼국 시대 석성. 박달리 성지(朴達里城址)의 건립 경위를 알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축조 연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바로 이웃인 북쪽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 구청마을의 산성이 조선 초기에 석축되어 임진왜란 때 쓰였다고 하므로, 박달리 성지 또한 외적 침입에 대비한 성으로 축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 세곡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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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흙이나 돌로 축조한 방어 시설. 성은 집단의 공동 목적과 더불어 소수의 수비군이 다수의 침략군을 효과적으로 격퇴하거나 침공 속도를 늦추어 후방이 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얻기 위한 방어용 건축물이다. 따라서 성은 인류 역사에서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발생하고, 국가가 성립하면서 나타나는 환호(環濠)와 목책과 같은 방어 시설, 습지에서 발달한 환호취락(環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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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에 있는 산. 양경산은 높이 149m로, 주변에 150~300m 안팎 높이의 산줄기가 뻗어 있고, 산줄기에서 동쪽 또는 동남쪽으로 뻗은 50m 안팎 높이의 능선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양경산에는 하동읍성이 있는데, 읍성의 안쪽은 작은 곡부(谷部)를 이루고 있다. 물은 대부분 남서쪽의 남문 터 주변에 집중되어, 동쪽으로 흘러 남서 방향으로 빠지는 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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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하동군의 역사. 하동의 역사는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선사 시대와 그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현재까지 하동 지역에서 확인된 선사 시대의 유적은 하동군의 동북쪽 덕천강 유역과 서남쪽 섬진강 유역 일대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하동의 역사는 수습된 유물을 통해서 보면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철기 시대에 이르러 작은 정치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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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하동군의 역사. 하동의 역사는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선사 시대와 그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현재까지 하동 지역에서 확인된 선사 시대의 유적은 하동군의 동북쪽 덕천강 유역과 서남쪽 섬진강 유역 일대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하동의 역사는 수습된 유물을 통해서 보면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철기 시대에 이르러 작은 정치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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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석성. 전도리 성지(錢島里城址)의 건립 경위를 알 수 있는 자료는 현재 알려져 있지 않다. 섬진강 하구의 물길을 서편으로 한 천연의 요새에 자리하여 외부 침입에 대비해 축조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 섬진강 하구 동안의 구릉, 즉 고남초등학교 북편 야산에 위치한다. 동북쪽으로 직선거리 약 4㎞ 정도 떨어진 곳에 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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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 구청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석성. 통정리 산성(桶井里山城)의 건립 경위를 알 수 있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만약 축성 시기를 조선 전기로 본다면, 고려 말 왜구의 활동과 관련하여 축조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혹은 임진왜란 때 축성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사전에 계획적으로 성을 쌓았다면 어느 정도 성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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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년부터 1895년까지 경상남도 하동군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조선 시대에 들어 하동의 읍치는 자주 변경되었으나, 읍격(邑格)에는 큰 변화가 없이 이어져 오다가 18세기 접어들어 읍의 규모와 읍격에 변화를 겪었다. 1702년(숙종 28) 하동 읍민들이 섬진강 일대를 관문으로 삼을 것을 호소하자, 진주목의 악양·화개·진답·적량의 4개 면을 임금의 윤허를 받아 하동으로 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