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우산 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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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섬진강 하구 높은 포구에 자리 잡았으므로 고포리(高浦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곤양군(昆陽郡) 서면(西面)의 고포동이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 곤양군 서면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고포동과 하동군 마전면(馬田面) 사포동(巳浦洞)이 통합되어 하동군 남면(南面) 고포리가 되었고,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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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지형이 활 모양이어서 활목·할목·궁항(弓項)이라 하였다. 마을 뒷산에서 양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활 테가 되고, 앞으로 연결된 여러 섬들은 활 끈이 되며, 마을 가운데로 뻗어 내린 산등성이는 화살촉에 해당한다고 한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 곤양군(昆陽郡) 서면(西面)의 궁항촌(弓項村),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활목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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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 궁항리에 있는 신라 시대의 봉수대. 두우산 봉수는 신라 시대 때 백제와 경계 지점에 해당하는 두우산에 축조하여 전쟁에 이용하였다고 전해진다. 섬진강 하구와 남해 바다를 감시하여 하동 금오산 봉수대(河東金鰲山烽燧臺)에 연락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축조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구전에 의하면, 신라 시대에 축조된 봉수대로 보고 있다. 그러나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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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하동군에 두었던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수단과 시설. 봉수(烽燧)는 횃불[烽]과 연기[燧]로 변방의 위급한 상황을 본읍(本邑)과 중앙에 전달하던 군사적 목적의 통신 수단과 시설로서 고대부터 1894년까지 사용되었다. 봉수제는 중국에서 유래했으며, 우리나라에도 이미 삼국 시대에 도입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확실한 기록은 12세기 초기에 보인다. 1123년(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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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봉수대. 연대 봉수대는 왜구를 방어하는 중요한 요새지로, 봉수대의 잔존 형태나 주위 여건을 감안해 볼 때 조선 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연대 봉수대는 적군의 침입 시 가장 먼저 봉화를 올리는 곳으로, 하동 금오산 봉수대(河東金鰲山烽燧臺)와 정안봉 봉수를 거쳐 지리산[1,915m]에 있는 봉수대로 연락하게 된다. 하동군 금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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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경상남도 하동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아직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규모가 작은 속읍(屬邑)이 적지 않게 존재하였다. 태종 대에는 이런 고을들을 두세 개씩 통합하여 수령을 파견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동현과 남해현은 이미 수령이 파견되어 있는 고을이었지만, 1414년(태종 14) 8월 두 고을을 합쳐 하남현(河南縣)으로 개칭하였다가 이듬해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