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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전역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248
한자 馬田驛
영어의미역 Majeon Station
이칭/별칭 호사역(虎砂驛)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용규

[정의]

조선 시대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개설]

역(驛)은 중국의 수·당 제도를 모방하여 487년(소지왕 9) 3월에 시작되었다고 하며, 조선 시대 조창(漕倉)과 운조(運漕)를 담당한 대표적 교통 기관이다. 고려 시대의 참역제(站驛制)는 전국의 역로의 계통을 22도로 나누었다. 그중 하동은 산남도(山南道)에 속하였고, 산남도에는 28참역(站驛)이 있었다. 당시 마전역(馬田驛)은 그중의 하나의 역이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중앙과 지방 관서 간의 공문서 전달, 어사와 관리의 왕래 및 숙박, 관물(官物)의 수송을 돕기 위한 기관으로 설치되었다.

[관련 기록]

중국의 수·당 제도를 모방하여 487년 우편역을 두었으며, 고려 시대에는 역승(驛丞)을 두었고, 조선 시대에는 1457년(세조 3) 찰방(察訪)을 신설하고 1462년(세조 8)에 역승을 가설(加設)하였다. 그리고 1535년(중종 30) 역승을 폐지하고 다시 찰방으로 개칭하였다.

[내용]

마전역은 군청 동쪽 30리에 있다. 역리 14명, 중마 2필, 하마 5필, 일명 호사역(虎砂驛)이라고도 하였다. 역은 30리(里)마다 두고 마패증에 따라서 말을 제공하였고, 원(院)을 세워 숙사를 제공하여 공용자(公用者)들의 내왕에 편리를 도모하였다. 역과 참(站)은 대(大), 중(中), 소(小) 3등으로 구분한 뒤 역둔토(驛屯土)를 제공하여 경비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역호(驛戶)와 역정(驛丁)은 역전(驛田)을 경작하는 역노(驛奴)로서 백정의 자손에서 징발하여 보충하였다. 역마(驛馬)는 수십 필에서 5필까지 두었다. 공문서의 송달은 체정식[수역-지방역]으로 하였다.

전달 방식은 3급[특급], 2급[보통급], 1급[보통]이 있는데 전달 조정은 2~7월까지는 3급이 6역, 2급이 5역, 1급이 4역을 갔다. 이것은 1일의 역정으로서 8~1월까지는 조정이 1역씩 단축되었다. 역에 역정을 두고 분장 감독하게 하였다. 983년(성종 2)에 역장을 두고 역무를 관장하게 하였고, 역정(驛政)은 대역의 중노 3명, 소노 10명 이상에 2명을 배치하였다.

[변천]

고려 말엽에 역정이 문란하여 교통이 불편해지자, 조선에서는 역노를 정비하고 역정을 다시 배치하였다. 1445년(세종 27) 전제상정소의 통첩에 따라 대·중·소로 나누어 그 수역과 공수전을 일정하게 배정하고 역졸의 전을 2결 내지 3결로 정하였다. 1535년(중종 30) 역승을 폐지하고 다시 찰방으로 개칭하였다.

[의의와 평가]

역참(驛站)은 조선 시대 교통과 통신을 담당하던 중요한 시설이었다. 이런 시설이 양보면에 있었다는 사실은 이곳이 당시에 중요한 위치이었음을 말해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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