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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325
한자 鼎蓋山城
영어의미역 Jeonggae Mountain Fortres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종화리 산57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의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종화리 산57 지도보기
성격 성곽
양식 토성|포곡식 산성
관련 인물 이원익(李元翼)|나정언(羅廷彦)|이순신(李舜臣)
크기(높이, 길이, 둘레) 3m[높이]|4㎞[둘레]
소유자 사유
관리자 하동군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종화리에 있는 조선 후기 토성.

[건립 경위]

정개산성(鼎蓋山城)은 1596년(선조 29) 체찰사(体察使) 이원익(李元翼)[1547~1634]의 명으로, 진주목사 나정언(羅廷彦)이 왜구들의 침입을 감시하고 방지하기 위하여 정개산[520m] 꼭대기에 방책을 만들고 돌과 흙을 섞어서 쌓은 토성이다. 주위의 산세가 험준하여 요새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었으나, 완성되기 전인 1597년(선조 30) 왜적들이 침입함으로써 성이 와해되었다. 그 후 성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였다.

[위치]

정개산성정개산 정상에 위치하는데, 산세가 험준하여 서쪽과 남쪽, 북쪽은 사람이 오를 수 없는 가파른 절벽이다. 성 아래에는 종화천이 동으로 흐르고, 덕천강이 남으로 흐르며, 북으로는 지리산[1,915m]이 솟아 있다. 남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자리한다.

[형태]

주위에 있는 4개의 능선을 끼고 축조된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동남은 토축, 서북은 석축의 흔적이 나타나고 있다. 성의 동남쪽에 곡식을 보관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창고 터가 석축으로 남아 있으며, 샘도 있었다고 전한다. 성의 잔존 둘레는 약 4㎞이고, 높이는 약 3m, 성의 폭은 5~6m이다.

[현황]

2011년 현재 정개산성은 개인 소유로 하동군이 관리하고 있다. 성으로 확인되는 석렬이 확인되지만, 토성이 무너져 있는 상태라 형태를 추정하기는 어렵다.

[의의와 평가]

정개산성은 임진왜란 때 왜병을 감시하고 방지하기 위하여 축성한 산성으로서 그 의의가 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임진왜란 때 요새로서의 기능을 발휘하였고, 왜병들이 밀어닥쳐 와해되기는 하였으나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1545~1598]의 백의종군과 관련이 있는 장소이다. 명문이 새겨진 최초의 화통 완구 또는 총통 완구인 중완구, 즉 댕구가 발견된 곳이기도 하며, 역사적으로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하였던 성으로 복원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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