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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367
한자 金士奉妻占化旌閭碑
영어의미역 Mounment to the Fillial Piety of Gim Sabong's wife, Jeomhwa
이칭/별칭 김사봉 처 열녀 점화 정려유허비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법대리 372-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연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보수|복원 시기/일시 1999년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법대리 372-1 지도보기
성격 정려비
관련 인물 김사봉점화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너비, 두께) 145㎝[높이]|45㎝[너비]|20㎝[두께]
소유자 추동마을
관리자 추동마을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법대리에 있는 김사봉점화의 열행을 기리는 비.

[건립 경위]

조선 성종 때인 1400년경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에 살았던 김사봉의 처 점화(占化)가 집안에 침입한 도적떼들에게 겁탈 당할 위기에 처하자, 완강하게 항거하며 머리를 바위에 부딪치며 죽을 각오로 저항하니 도적들이 물러났다. 그러나 그녀는 도적들의 손에 더렵혀진 유방을 잘라 자결하고 말았다. 이에 조정에서 그녀의 열행을 기리는 정려를 세워주었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정려가 퇴락하여 없어졌다. 1999년 그녀의 행적을 발굴한 하유집(河有楫)·황해균(黃海均) 등 뜻있는 인사들이 힘을 모아 정려가 있던 자리에 열녀 점화의 열행을 새긴 유허비를 세워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하였다.

[위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법대리 추동마을 북평초등학교 뒤의 도로변에 있다.

[형태]

네모난 받침돌과 구름 모양의 머리[方扶雲首] 양식을 갖춘 화강암 비석으로, 크기는 높이 145㎝, 너비 45㎝, 두께 20㎝이다.

[금석문]

정절을 지켜 온 세상의 귀감이 되었던 열녀 점화의 정려 기록이 훼손 마멸되었음을 안타깝게 여겨, 그 정려 터에 열녀의 절행을 새겨 비석을 세우니, 후세인들은 고인(古人)의 윤리를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성균관전의(成均館典儀) 하유집이 지었다.

[현황]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의 정성으로 세워진 김사봉 처 점화 정려비는, 정려가 자리함으로써 지어졌던 지명인 속칭 정문거리에 세워져 마을 주민들의 관심 속에 관리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600여 년 전 한 열녀의 정절을 기렸던 정려가 오랜 세월이 흐름에 따라 훼손되고 터만 전해 오던 차에, 지역 유지들의 정성으로 유허비를 세워 후세의 교훈으로 삼고자 했으니, 열녀의 행적과 함께 유허비를 세운 지역 인사들의 뜻이 높다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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