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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404
한자 三一獨立運動紀念碑
영어의미역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Monume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산114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추경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82년 2월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산114 지도보기
원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 주성마을회관 앞 지도보기
성격 기념비
양식
관련 인물 박영묵|이종인|정상정|정의용|추홍순|정재기
크기(높이, 너비, 두께) 2.4m[높이], 2.0m[길이]
소유자 박상홍
관리자 박상홍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에 있는 3·1 독립 만세 기념비.

[개설]

하동군 고전면금남면 청년들은 애국에 뜻을 두고 일신단(一身團)을 조직하였는데, 이는 민족 대표 33인을 본받아 만든 항일 단체였다. 일신단은 1919년 4월 6일 고전면 주교리의 일명 배다리장터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다음날 일본 경찰과 헌병들이 총검으로 출동하자, 일신단원들은 노약자들을 하동군 고전면지소마을 뒷산으로 피신시키고 스스로 포박을 당하였다.

[건립 경위]

하동군 고전면민들이 항일 운동에 힘쓴 일신단원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거둔 성금과 하동군의 지원으로 1982년 2월 3·1 독립운동 의거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형태]

사각형의 비석 형식으로 높이는 2.4m이며 가로 2.0m이다. 사방에 철제 울타리가 있다. 일부 녹이 쓸었으나 지금은 깨끗하게 단장했다. 돌 거북이 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용이 새겨진 형태이다.

[금석문]

‘3·1 독립운동 의거 기념비’라고 새겨져 있으며, 건립 주최는 만세운동 기념비 건립추진 위원회로 새겨져 있다. 비문은 진주에 사는 삭녕 최씨 최인찬(崔寅瓚)이 짓고, 해주 오도식(吳道植)이 썼다.

[현황]

2011년 현재 3·1 독립운동 기념비의 소유자 및 관리자는 박상홍이다. 건립 당시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에 세웠으나, 관리상의 문제와 도로 사정에 의해 박영묵의 자손인 박상홍이 성천리 산114번지로 옮겼다. 이전 과정에서 약간 훼손되었으나, 현재는 깨끗하게 보존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하동군 고전면민들의 3·1 운동 정신을 그대로 전하는 기념비로, 고전면민들과 금남면민 그리고 일신단원들의 애국·애족·애향 정신을 잘 표현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삼일 독립운동 의거 기념비를 세움으로써 한민족의 자주정신과 독립 정신을 세계만방에 드러내고 민족적 결속을 다질 수 있게 되었다.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단체로 찾아와 애국 애족의 정신을 배우고 기리는 일이 많았으나, 이전된 이후에는 학생들의 접근성에 문제가 있어 찾아오는 일이 드물어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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