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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536
한자 雙磎寺大雄殿
영어의미역 Daeungjeon Hall of Ssanggyesa Templ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곽승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632년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1695년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1735년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1850년연표보기
문화재 지정 일시 1968년 12월 19일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1년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7년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8년연표보기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7년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지도보기
성격 대웅전
양식 겹처마 단층 팔작건물
정면 칸수 5칸
측면 칸수 3칸
소유자 쌍계사
관리자 쌍계사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제500호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지리산 쌍계사에 있는 통일 신라 때 조성한 것을 중건한 조선 후기의 건축물.

[위치]

쌍계사 대웅전 영역의 중심 부분에 위치한다.

[변천]

지리산 쌍계사는 722년(성덕왕 21) 대비 화상삼법 화상에 의해 처음 세워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처음에는 옥천사라 하였는데, 두 개의 계곡이 만난다 하여 정강왕[?~887]이 쌍계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뒤의 변동 내역은 알 수 없는데, 조선 시대에 들어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이를 벽암 선사가 1632년(인조 10)~1637년(인조 15) 사이에 다시 중창하였다. 이후 1695년에 백암성총 선사가 중수하였고, 1735년(영조 11)에 법훈 선사가, 1850년(철종 1)에 쌍운경찰 선사와 쌍월필홍 선사가 중수하였다. 현대에 들어와 고산 선사가 1981년과 1987년에 두 차례에 걸쳐 일부 수리를 추진하였다. 1991년에는 기와 보수, 1998년에는 벽화와 더불어 마루와 벽체를 수리하였다.

[형태]

앞면 5칸, 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다포 양식으로 가운데 세 칸에는 두 개의 공간포(空間包)를, 좌우 끝 칸에는 한 개의 공간포를 올려놓았다. 이는 좌우 끝 쪽 기둥 사이를 좁혔기 때문이다. 공포의 구성은 안팎으로 삼출목(三出目)인데, 쇠서는 수서[(垂舌]가 셋이고 앙서[仰舌]는 하나이다. 앙서가 짧고, 내부의 첨차가 모두 교두식(翹頭式)인 것으로 보아 비교적 오래된 양식임을 알 수 있다.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고,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천장 안쪽을 가린 우물천장으로 꾸며놓았다.

쌍계사 대웅전에는 3개소의 불단이 마련되었는데, 세 분을 모신 목조삼세불좌상과 네 분을 모신 사보살입상을 봉안한 주불단, 그리고 영가단과 신중단으로 나뉜다. 불단 상부에는 닫집이 구성되었는데, 짧은 기둥 사이에 창방을 두르고 평방을 얹은 후 다포계의 공포대를 형성하였고, 추녀 및 사래를 걸어 겹처마를 구성하였다. 또한 쌍계사 대웅전에는 창건 당시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파악되는 범종과 1799년(정조 23)에 조성된 괘불이 있다.

[현황]

쌍계사 대웅전은 1636년(인조 14)에 중건된 뒤 40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도 그 모습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기둥과 보 등 주요 부재가 이완되면서 건물이 앞면과 왼쪽 방향으로 크게 기울어지는 구조적 변형이 진행되었다. 이에 문화재청에서 더 이상의 훼손을 막고자 전반적인 해체 보수를 계획하고 지리산 쌍계사와 협의하여 2004년부터 보수 공사를 시작하였다. 2007년 공사가 완료됨으로써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쌍계사 대웅전은 1968년 12월 19일 보물 제500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에 건축된 쌍계사 대웅전은 목조 건물 가운데 건축 양식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쌍계사 대웅전에 봉안된 목조삼세불상은 조성 당시 지리산 쌍계사의 신앙적 경향을 알려주는 것으로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