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547
한자 佛敎
영어의미역 Buddhism
분야 종교/불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집필자 무공

[정의]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는 종교.

[개설]

하동 지역에는 우리나라 불교의 남방 전래설을 뒷받침하는 가락국 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성불한 칠불사와, 역대로 우리나라 불교를 대표해온 선종(禪宗)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승려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정상(頂相)을 봉안한 전설을 간직한 쌍계사(雙磎寺)가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하동은 우리나라 불교의 진원지이며, 조사선(祖師禪)을 수행해온 도인(道人)들의 고장이라 할 수 있다.

[남방 전래설과 칠불암]

한반도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으로, 중국 전진(前秦)의 승려 순도(順道)가 전했다는 북방 전래설(北方傳來說)이 정설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보다 이른 서기 48년에 인도(印度) 아유타국의 허황옥(許黃玉) 공주와, 오빠인 장유(長遊)화상이 가락국(駕洛國)으로 불교를 전했다는 남방 전래설이 있다.

남방 전래설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불교 전래의 역사는 300여 년 이상 앞 당겨진다. 김해에 있는 장유암 가락국사장유화상기적비(駕洛國師長遊和尙紀蹟碑)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허황옥 공주가 인도에서 오빠 장유화상과 함께 가락국으로 들어와, 수로왕과 결혼하여 10명의 왕자를 두었는데, 이 가운데 7명의 왕자가 장유보옥선사를 따라 출가하여 지리산 칠불암(七佛庵)에서 성불(成佛)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조사선과 쌍계사]

하동은 육조혜능(六祖慧能)으로 대표되는 조사선(祖師禪)의 선맥(禪脈)이 전해지는 육조동래연기설(六祖東來緣起說)을 간직한 쌍계사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조사(祖師)가 전한 선법(禪法)을 조사선이라고 하는데, 삼라만상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부처 아닌 것이 없으니,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경계가 조사선의 경계이다. 즉 생사가 바로 열반이고 중생이 곧 부처인 경지로서,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차별이 없는 최상승의 불법(佛法)이 펼쳐지는 것이다.

조사선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현재 있는 그 자리에서 한걸음도 옮기지 않고, 즉각적으로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게 하는 돈오법(頓悟法)이 성립되는 것이며, 현상계를 부정하지 않고 본체계에 계합하기 때문에 현실 생활과 열반의 세계가 둘이 아님을 보인다. 현실에 충실한 것이 곧 열반의 세계에 들어가는 길임을 알 수 있게 해서, 부처의 가르침이 결코 현실을 도외시하거나 현실에서 도피하는 종교가 아니고, 오히려 현실 생활을 잘 운영하는 것이 곧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는 길임을 힘주어 설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조사선은 단번에 깨달음을 얻는 요긴한 수행 방법으로 부처로부터 시작하여 달마조사가 동토로 전하고, 육조혜능에 이르러 천하에 널리 전해지게 되었다. 따라서 육조의 정상(頂相)을 봉안한 쌍계사 금당(金堂)이 자리 잡고 있는 땅인 하동은 우리나라에 조사선의 맥이 면면히 이어지는 곳이라 하겠다.

[하동의 고승]

삼국 시대 이후 우리 생활에 깊이 뿌리내렸던 불교가 조선 시대에는 수행 위주의 산중 불교로 명맥을 유지하였다. 지리산의 험난한 지리적 조건은 피폐해져 가는 환경 속에서 어렵게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조선의 선사들이 몸을 의지하고 수행하기에 적절한 장소를 제공하였다. 지리산 중에서 하동 지역에 머물며 우리나라 불교사에 중요한 자취를 남긴 승려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족적을 남긴 서산대사가 어릴 때 친구들과 유람하러 왔다가 출가를 결심, 숭인 장로에게 삭발하고 행자 생활 한 곳이 바로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신흥마을에 있는 원통암이며, 훗날 금강산에 머무르다가 38세에 다시 지리산을 찾아와서 머물며 『선가구감(禪家龜鑑)』을 지은 곳도 신흥사의 산내 암자인 내은적암에 있던 청허원이다.

조선 중종 대 추월조능선사는 벽송지엄조사의 심인(心印)을 얻었다. 추월선사는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칠불암에서 주석하면서 평생을 눕지 않고 정진하였는데, 밤중이 되면 돌을 짊어지고 경행하되 쌍계사까지 가서 참배 발원하고 돌아오는 고행을 실현하면서 수마를 이겨내고 조사관을 타파했다고 한다.

승려 소요태능서산대사에게 법을 받고 각처를 다니면서 교화하였으며 지리산에서 신흥사와 연곡사를 창건하였다. 승려 벽암각성부휴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부휴선사를 조정에 천거하여 진두에 나서게 하자 승려 벽암도 또한 나아가 명나라 장수와 함께 적을 바다가운데서 무찌르니 명나라 장수가 격찬하였다. 그 후 칠불암에서 안거하고 있을 때, 부휴노사가 병을 이유로 대사에게 강석을 전수하였으며, 1640년 쌍계사에 나아가 지금의 대웅전 영역을 중창하였다.

백암성총대사지리산 취미대사에게 9년 동안 수업하여 가르침을 다 이어받았다. 1681년 중국의 상선이 폭풍을 만나 표하다가 서해로 밀려왔는데, 배에 가득 경전이 실려 있었으나 바닷물에 침수되어 유실되고 파책된 것이 많았다. 그 후 9년 동안 유실된 것을 보완하고, 많은 경전을 간행하니 제방의 불자들이 따라 우러르며 ‘대종사(大宗師)’라는 경칭을 바쳤다. 1695년에 하동 쌍계사에 나아가서 『회현기』 40권과 『필삭기』 4권을 간행·유포하였다.

승려 대은은 금담선사 문하에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는데, 승려 금담은 당시 선교의 거장인 승려 연담유일의 제자이다. 계속해서 여러 큰스님을 찾아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법등을 이어받아 개당(開堂)하였으며 해와 달과 같은 정신과 송백처럼 굳건한 수행은 변함이 없었다. 이윽고 교학을 버리고 선문(禪門)으로 들어가서 하루 한번 식사를 하면서 수행에 열중하였으며, 제방에서 초청하여 후학을 지도하고자 쌍계사 불일암, 지리산 칠불암 등 여러 사찰을 전전하였다. 그래서 이들 사찰의 선원에는 지금까지도 승려 금담의 법풍이 스며있다. 그 외에도 많은 고승들이 하동 지역에 주석하면서 쇠퇴해 가던 조선 불교의 명맥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동의 사찰]

현재 하동 지역에는 많은 사찰이 있으며 대표적인 것으로는 하동 지역 대부분의 불교 관련 국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쌍계사, 근대에 소실되었다가 중창된 칠불사, 불타버리고 빈터만 남았다가 다시 지어진 불일암, 서산대사가 출가했으나 역시 폐사가 되었다가 다시 지어진 원통암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범왕과 악양 일대를 중심으로 옛 선인들의 자취를 이어 수행에 전념하고 있는 도량이 산재해 있으며, 불교인들에 의해 많은 사찰이 신축·개축되고 다듬어져 포교 활동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