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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573
한자 理名山石佛寺址
영어의미역 Site of grotto temples on Mt.Imyeongsan
이칭/별칭 개금사지(開錦寺址),화곡사지(火谷寺址)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김성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4년 12월 28일연표보기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산74-1 지도보기
성격 절터
지정 면적 5,341.9㎡
소유자 사유지[한성극 외 3명]
관리자 하동군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제28호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이명산(理明山) 중턱에 있는 절터.

[개설]

이명산[569m] 북쪽 산정 가까이에 위치한 석불사지에는 파괴된 석굴 2기와 암벽에 조각된 마애불상이 있다. 석굴은 이명산을 사이에 두고 사천시 곤양면 다솔사(多率寺)의 보안암(普安庵) 석굴과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다. 석굴의 벽과 천장이 모두 무너져 원형을 잃었으나, 다솔사 보안암의 석굴과 마찬가지로 자연석을 쌓아올려 무덤[積石塚]처럼 만든 형태였으리라고 추정된다. 그중 마애불상이 있는 석굴은 보안암 석굴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석굴의 크기나 정확한 구조는 알 수 없지만, 보기 드문 석굴 사원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현의 동쪽 20리에 있는 이명산은 동경(東京)[경주]의 비보산(裨補山)인데, 산 정상에 용이 사는 연못이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눈이 머는 고통을 받았다. 그리하여 화철석(火鐵石)을 그곳에 담갔더니 용이 곤양의 진교(辰橋) 아래 깊은 소(沼)로 옮겨갔다. 그 다음부터 사람들이 소경이 되지 않았다.”라는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이명산 석불사지개금사지(開錦寺址), 화곡사지(火谷寺址)라고도 한다.

[변천]

이명산 석불사지의 조성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암벽의 마애불상은 통일 신라 시대의 양식으로 추정된다. 이로 미루어 석불사 역시 통일 신라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8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현황]

문화재 보호 구역의 면적은 5,341.9㎡이다. 이명산 석불사지에 대한 정확한 발굴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절터에는 스님들이 토굴로 사용하는 낡은 집이 한 채 있으며, 전체적으로 산죽과 시누대가 많이 자라고 있다. 절터의 동쪽에는 큰 바위가 놓여 있고 마치 시루떡처럼 층층이 바위가 쌓여 있다. 바위의 반대쪽은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136호인 이명산 마애석조여래좌상이 위치한다.

바위의 벽면에는 가로로 ‘고세대(高世臺)’라는 큰 글자가 새겨져 있고, 그 아래에 세로로 작게 ‘문철호(文澈鎬)’, ‘최경병(崔瓊秉)’, ‘권상연(權相淵)’ 등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에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이곳에 모여 시와 창을 즐겼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자연 암벽을 다듬어 조성한 마애석조여래좌상이 있는 사지이나 정확한 창건 연대와 폐사 연대를 확인할 수 없음이 아쉽다. 하동 지역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지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