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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705
한자 劉成俊
영어의미역 yu Seongjun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중대리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신미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4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02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28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949년연표보기
추모 시기/일시 2010년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중대리 905-1 지도보기
묘소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중대리 905-1 지도보기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중대리 지도보기
성격 판소리 명창
성별

[정의]

근대와 현대 하동 출신의 판소리 명창.

[활동 사항]

유성준(劉成俊)은 1874년(고종 11) 3월 27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중대리 905-1번지에서 아버지 유경학과 어머니 장덕옥 사이에 큰아들로 태어났다. 13세 때 아버지를 따라 전라남도 구례군으로 이주해 명창 송우룡(宋雨龍)의 문하에서 판소리를 배웠다. 또한 당대 판소리 이론의 대가인 김세종에게 지도를 받아 실전과 이론에 뛰어나다는 칭송을 받았다.

1902년(고종 39) 고종 황제가 전국 창악인들의 관장 기구로 조직한 협률사에 들어가 활동했는데, 당시 협률사에는 전국의 명인과 명창 170여 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이후 협률사가 해체되자 유성준은 전국 순회공연과 방송 활동을 하며 판소리 앨범을 다수 발표하였다. 1928년에는 관북 수해 구제 명창 대회와 일본 축음기 회사 주최 전조선 명창 연주회에 출연하였다. 또한 경성방송국에 출연하기도 하고, 오케(Okeh) 레코드와 「적벽가」·「수궁가」 등을 발매하기도 했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혹심해지자 잠시 활동을 접고 주로 경상남도 진주에서 후진 양성에 힘쓰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제자로 임방울·강도근·박동진·정광수·김정문 등이 있다.

유성준은 「적벽가」와 「수궁가」를 잘 불렀는데, 「수궁가」 중에서도 자라가 토끼를 만나는 대목이 뛰어났다. 당시 기록에는 유성준이 창을 할 때면 관객들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 들었고, 판소리를 민중 예술 장르로 승화시킨 그의 소리에 고종 황제대원군도 크게 감동하였다고 전한다. 1949년 고향인 하동군 악양면 중대리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중대리 905-1번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유성준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동편제 판소리의 제왕으로 일컬어지며 추앙 받았지만 경상남도 지역에서는 오히려 많이 알려지지 못하였다. 전라남도 구례군은 2007년 4월 20일 구례읍에 있는 동편제판소리전수관에서 국악인과 지역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유성준 명창의 미공개 음반 발표회를 가졌다. 발표된 음반은 유성준 명창에 대한 현창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구례군이, 고(古) 음반 연구가인 김문성이 유성준의 소리를 유성기 원판으로 소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음원 사용권을 확보해 CD로 제작한 것이다. 공개된 유성기 원판은 1935년에 제작된 것으로, 판소리 「적벽가」 중 ‘조자룡이 활 쏘는’ 대목이 6분가량 담겨 있다.

대한민국판소리동편제명창기념사업회는 명창 유성준을 선양하기 위해 하동군으로부터 5천만 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하동군 악양면 중대리에 위치한 유성준 명창의 묘소 정비와 이정표, 안내 표지판 등을 세웠다. 이와 함께 유성준 명창의 생가 복원과 기념관 건립도 계획하고 있다. 2010년 4월 5일에는 기념 사업회 주관으로 유성준 명창 묘소 정비를 위한 사토제가 진행되었으며, 5월에는 하동군 악양면 중대리에서 국창유성준선생추모비를 건립하고 제막식을 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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