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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873
한자 河東東梅里金氏古家
영어의미역 Hadong Dongmae-ri Kim’s Old House
이칭/별칭 김씨 고택,김부자집,악양면 동매리 김씨 고택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 389-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화봉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26년연표보기
문화재 지정 일시 2009년 3월 12일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 389-1 지도보기
성격 전통 가옥|고택
정면 칸수 4칸[사랑채]|5칸[안채]|3.5칸[대문채]|3칸[아래채]|1칸[중문]
측면 칸수 2칸[사랑채]|2칸[안채]|1칸[대문채]|1.5칸[아래채]|1칸[중문]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62호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전통 가옥.

[개설]

하동에서 가장 명성 있는 고장을 들자면 악양을 꼽을 수 있는데, 나당 연합군의 당나라 장군 소정방(蘇定方)[592~667]이 중국의 악양과 그 모습이 같다 하여 이름 붙였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의 소상팔경(瀟湘八景)과 같이 악양팔경이 존재한다. 하동군 악양은 전체 면의 구성이 지리산[1,915m] 자락에서 내려온 구자봉[767m]이 이루는 좌청룡과 형제봉[1,115m]이 이루는 우백호로 둘러싸이고, 가운데로 넓은 악양 들판을 흐르는 악양천섬진강으로 흘러드는 아름다운 경관과 길지로 유명한 곳이다. 하동군 악양의 많은 마을들 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 동매리이며, 동매리 마을에는 ‘김부자집’으로 더 이름난 매강재(梅岡齋)가 있다.

[위치]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는 악양면사무소에서 악양동천의 깊은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그 끝자락에 있는 마을이다. 하동 동매리 김씨 고가하동군 악양면 동매리 마을의 언덕 중앙에 동향하여 자리하고 있는데, 건너편 언덕으로 마을의 진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진입 도로의 정면에서 보이는 가장 큰 기와집이다.

[변천]

의성 김씨(義城金氏)가 하동에 온 때는 임진왜란 시에 진해현감을 지냈던 김세량(金世良)이 하동의 흥룡마을에 처음 입향하면서부터이고, 그 후손인 승지겸참찬관을 지낸 김재윤(金在潤)[1855~1937]이 명당 터를 찾아 하동 지역에 정주하였다고 대문에 걸린 「매강재기(梅岡齋記)」에 기록되어 있다. 그 후 원래의 주거가 쇠락하여 노년에 아들들이 힘을 모아 3년 3개월 5일 동안의 공사 끝에 1926년 현재의 집을 완성하였으며, 대문채는 1927년 11월에 완성되었다.

[형태]

주거는 사랑채, 안채, 아래채, 행랑채, 대문채의 5채로 구성되어 있으나, 일반적인 튼 ‘ㅁ’자형의 구성이 아니라 튼 ‘ㄷ’자 형식의 본채 부분과 ‘二’자형의 행랑채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또한 사랑채와 안채의 구성도 담장으로 완전히 구분하여 출입을 달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영역성을 완벽히 확보한 구성이 특징이다.

대문채 숭효문(崇孝門)은 정면 3.5칸, 측면 1칸 규모로, 높은 담과 많은 계단 위에 놓여 있어 권위가 있어 보인다. 원래 5칸의 솟을대문이었으나, 사랑 마당 쪽의 일부가 훼철되어 지금은 행랑 영역에 고방(庫房)과 문간방만 남아 있다. 이 문간방은 행랑채의 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툇마루를 두었다.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겹집이다. 가운데 2칸의 방을 중심으로 양쪽에 각각 1칸씩의 마루방을 두었는데, 동편으로는 공루를 앞으로 내고 나머지는 퇴를 두었다. 공루 아래에는 사랑 부엌을 들였다.

안채로의 진입은 대문간을 지나, 깊은 기와 담장 길을 지나 다시 중문(中門)을 통하여야 가능하다. 특히 중문은 골목의 정면에 두지 않고 다시 꺾어 위치시킴으로써, 독립적이면서도 매우 깊이감을 더하게 한다. 중문 앞의 조그만 화단은 이러한 깊은 시선의 지루함을 달래 주는 구성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중문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규모이다.

중문을 들어서면 행랑이 돌아앉아 있고, 안마당에 우각진입(隅角進入)하게 된다. 행랑은 온돌방 2칸과 공루를 두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겹집이지만, 호남 지방의 근대 주거 유형으로 많이 보급되어 있는 전후좌우 툇집의 구성을 취하고 있어, 목수가 호남 지방 사람이거나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주거 문화의 중첩성은 하동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는 특히 정주간(鼎廚間)[부엌과 안방 사이에 벽이 없이 부뚜막에 방바닥을 잇달아 꾸민 부엌]의 넓은 공간 구성을 통하여 잘 알 수 있는데, 영남의 정주간에서는 이러한 큰 규모의 구성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안방과 건넌방 사이의 마루방에는 전면에 문을 단 남부 해안형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후면으로는 감실(龕室)[장식물이나 위패 등을 안치하는 작은 공간이나 수납장]을 두었다. 그 외 담과 굴뚝에 명문과 문양을 새기는 등 매우 정성을 들여 건축한 것이 돋보인다.

[의의와 평가]

하동 동매리 김씨 고가는 목재의 수장(修粧)이나 가구의 치목(治木)들이 적절하고, 공간의 규모를 과장되지 않게 형성하였으며 정성을 들여 건축한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다. 관리 또한 잘되고 있어 건축에 대한 애착이 남다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