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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883
한자 民俗-
영어의미역 Folk Play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집필자 남성진

[정의]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하동 지역의 생활과 습관을 반영한 놀이.

[개설]

민속놀이는 옛날부터 민간에 전승되어 오는 여러 가지 놀이로 향토색을 지니며, 전통적으로 해마다 행하여 오는 놀이를 말한다. 민속놀이는 마을 공동체와 생활 공동체 구성원들 대부분이 놀이의 주체가 되고 놀이 환경을 조성하여 행하여진다. 하동 지역에서는 산과 강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지리적 여건으로 인하여 다양한 방식의 놀이들이 각 마을 단위에서 전승되고 있다.

[변천]

중국의 고서(古書)인 『삼국지(三國志)』의 위서동이전(魏書東夷傳)의 기록에 보면 남녀가 한데 모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데 며칠 밤낮으로 계속하였으며, 손짓이나 어깨 짓, 다리 짓이 모두 가락에 어울렸다고 적고 있다. 이것이 고대 우리나라의 제천 의례에 관한 기록인데, 당시 중국인들은 우리 선조들의 이와 같은 생활 문화를 보고 기록해 두었다. 이 같은 멋과 흥, 그리고 가락은 오랜 세월 끊이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는 동안 우리 생활의 바탕을 이루는 민속이 되었으며, 농악·탈춤·민요 등 민속놀이의 형태로 남게 되어 오늘날 우리가 즐기고 있다. 그러나 민속놀이도 전승되어 오는 동안 형태나 내용이 바뀌고 사라지거나 새로운 것으로 창조되는 등 많은 변모를 가져왔다. 요즘은 세월의 흐름과 생활 환경의 변화 속에서 민속놀이가 차츰 잊혀 가고 사라져 가는 현실이다.

[종류]

하동 지역의 민속놀이는 연령층으로 보면 아동 놀이와 어른 놀이로 구분할 수 있고, 이것을 다시 놀이를 하는 성별에 따라 남자아이 놀이와 여자아이 놀이로 나눌 수 있다. 또한 놀이를 하는 인원에 따라 개인 놀이와 대동 놀이로 나눌 수도 있으며, 놀이를 하는 시기에 따라 세시 놀이와 평상시의 놀이 등으로 분류된다. 대체적으로 세시 놀이는 풍년을 기원하며 제액 초복을 위한 민간 신앙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농경의례의 성격을 지닌다. 아이들 놀이는 평상시 일상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며, 대동 놀이는 놀이를 통해서 공동체 구성원의 화합을 위한 축제 분위기를 조성해 낼 수 있었다.

하동 지역의 민속놀이를 아동 놀이, 어른 놀이, 대동 놀이로 구분해서 살펴보면 남자아이 놀이에는 쥐불놀이, 연날리기, 팽이치기, 제기차기, 썰매타기, 짚공차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못치기, 물장구치기, 물레방아놀이, 감자삼굿, 재치기, 낫던지기, 야구치기, 땅떼기, 꼰뜨기, 돌미전투, 소싸움, 소꼬리낚시, 말놀이, 목마걷기, 물싸움, 죽마타기, 돈치기, 포수놀이, 진치기 등이 있다.

여자아이 놀이에는 깐치집짓기, 콩돌줍기, 고무줄놀이, 봉사놀이, 반주께놀이, 꽃실씨름, 이파리찾기, 널뛰기, 다리섞어짚기, 숨바꼭질, 손치기 등이 있다. 어른 놀이에는 넉동배기[윷놀이], 군디뛰기, 화전놀이, 백중놀기, 씨름, 다리밟기, 덕석몰이, 연등놀이, 산놀이, 복놀이, 고사리끊기 등이 있다. 대동 놀이에는 쌍줄끗기, 외줄끗기, 농악놀이, 집돌랑, 달집태우기 등이 있다.

[악양면의 사례]

하동군 악양면 지역에서 전승되는 민속놀이 사례를 몇 가지 제시해 본다.

1. 넉동배기[윷놀이]

넉동배기는 정월이 되면 맷방석에 말판을 그려 놓고 윷을 던져 놀던 윷놀이이다. 던지는 윷의 종류는 종지에 담아서 노는 종지윷과 접시에 담아서 노는 접시윷, 그리고 장작윷이 있다. 종지윷은 길이가 손가락 한 마디[약 1.5㎝] 정도 되고, 접시윷은 손가락 두 마디만큼 된다[약 4㎝]. 그리고 장작윷은 손바닥 길이[15㎝] 정도 된다. 말판은 맷방석 안에다 동그랗게 그려 놓고 했으며, 말은 돌이나 바둑알 등을 사용하였다.

놀이 방법으로는 주로 돈을 걸어 내기윷을 하기도 하고 재미로 편을 갈라서 하기도 한다. 두 명이나 네 명이 짝을 이뤄 윷판을 돌면 주위에서도 편을 나누어 응원이 붙는다. 종지윷은 주로 방안에서 노인들이 많이 하는 놀이로 놀 때는 윷가락을 종지에 담아 짤짤 흔들어서 말판 바로 앞에 던진다. 이때 말판 밖으로 나가게 되면 낙이다. 보통 예전에는 넉동배기로 하면 말이 네 개가 나고 돈 1전이 오고 간다. 접시윷은 윷가락을 접시에 가지런히 담아 일정한 거리에서 던진다. 이때도 맷방석 밖으로 나가게 되면 낙이 된다.

예전 악양 취간정의 선비들은 맷방석 가운데 일정한 높이의 새끼줄을 매어 놓고 윷을 던졌다. 선비들이 줄을 걸어 놓고 윷을 종지에 담아 갖고 던질 때는 두 가락은 넘어가고 두 가락은 안 넘어가게 던지고 놀았다. 넉동배기는 윷가락을 잘 던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판에 말을 잘 쓰는 것도 승패의 결과에 중요하다.

2. 씨름

씨름은 두 사람이 부둥켜 잡고 재주를 부려 상대를 넘어뜨리는 놀이이다. 악양에서는 개별 마을 단위의 씨름판은 크게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악양 전체의 씨름판은 대단했다. 씨름은 음력으로 칠월 백중날과 팔월 추석 두 번 했고 단옷날에는 하지 않았다. 백중날 씨름은 엿샛날부터 시작하여 이렛날 여드렛날까지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현 면사무소 밑이나 섬진강 백사장에서 씨름판이 벌어졌다. 백사장을 씨름 터로 할 때는 인근에서 구경꾼들이 많이 밀려오고 ‘탁배기’ 장사가 밤낮으로 잠을 지새우며 팔 정도로 큰 판이 열었다. 당시는 일본 사람들한테 씨름판을 열겠다고 허가를 내고서야 사나흘을 놀았다.

씨름판에서도 돈이 승패를 좌우하여 돈이 좀 있는 사람에게 판을 주었다. 결국 씨름을 붙더라도 돈이 이기게 되는 그런 판이다. 그러다 보니 술장사하는 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씨름판을 벌였다고 여겨졌을 정도이다. 이러한 분위기의 씨름판에서는 돈깨나 좀 있는 사람이 이기기를 바랐으며, 진 사람은 억울해도 자기 혼자 기분뿐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승패가 그렇게 결정이 나야 먹을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씨름에서 이기면 상품으로 송아지와 베똥가리[광목천]가 주어졌다. 그런데 씨름판에서 “최고 일등을 해서 상품으로 송아지 한 마리를 받았다 하더라도 밑 간다.”고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집에까지 따라와서 술을 내라 하고 매구를 두드리고 야단을 치기 때문에 안 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같은 힘의 인력이 있으면 돈 있는 사람이 건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에도 계속하여 씨름판이 열렸지만 예전보다 재미가 덜 했다. 씨름판에 나서는 이들이 모두 아는 사람들이라서 웬만하면 져 주거나 안 하고 흥감을 부렸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씨름판에 놉 셋 팔다 왔다.”고 했는데 해방되고 나서는 이장이 막 뽑아서 출전을 시켰다. 그래서 재미나 신명이 덜하고 사람들이 시들해지게 되었다.

3. 농악놀이

정초가 되면 각 가정과 마을길을 돌아다니면서 농악놀이를 하였다. 농악은 정월, 백중, 추석, 섣달 등에 주로 울리지만 정초에 특히 많이 치고 놀았다. 농악대의 구성은 꽹과리 두 명[상쇠, 중쇠], 징 두 명, 장구와 북도 두 명이고 소고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소고는 치배들을 따라 다니며 장단에 맞춰 마음대로 재주 부린다. 옛날에는 옷이 특별히 없었고 일상복인 중의 적삼에다가 삼색 띠를 어깨와 배에 두르고 머리 위에는 종이로 고깔 꽃을 만들어 썼다. 잡색으로 포수와 중이 있고 색시도 있으며,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깃발도 있었다. 또 ‘구대진사’라는 글을 한지에 써 갖고 등짝에 붙이고 다니며 긴 담뱃대를 들고 사각뿔 같은 두건을 쓴 진사 어른도 있다. 모두 다 동네 사람들이 꾸며서 다닌다.

농악을 울리며 길을 걸어 갈 때는 질매구를 친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상평마을의 경우 질매구 쇠가락의 입장단은 “궁 맹이랑 챙챙챙 챙이랑챙이랑 챙챙챙”과 같다. 이것을 빨리 치게 되면 굿매구가 되고 느리게 치면 질매구가 된다. 덧배기 장단의 앞 가락은 “당-따다다- 다다다다닷-/ 다다다다딱 닥-다다닥-/ 닥-- 닥다- 닷-- 닷당/ 닥-- 다닥다 다다다닥당”과 같다. 덧배기 장단은 계속하여 몰아치며 여러 가지 변형 가락이 이어진다. 그 밖에 느리게 춤가락을 칠 때는 굿거리장단이 있다. 가락을 빨리 몰아칠 때에는 상쇠한테 매인 것이다. 한참 재미있을 때 빨리 치고 돌다 보면 힘들어지는데, 그때는 숨을 좀 돌리며 상쇠가 소리를 낮춘다. 쉬어 가면서 하기도 하고 빨리 치고 느리게 치는 것은 상쇠 손에 매인 것이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상평마을에서는 예전에 선소리도 잘 하면서 농악을 잘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며, 지금도 60대 이상은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한다. 약 35년 전에 악양면 대항 농악 대회에 나간 때도 있는데, 그때만 해도 복색을 하고 양쪽 어깨와 배에 삼색 띠를 두르고 고깔을 쓰고 출전했다. 최근에는 농악을 칠 일이 별로 없다고 하는데, 다만 연중행사에 면민 체육 대회와 같은 그런 행사에 한번 참여하는 것이 전부이다. 사람이 없기 때문에 농악을 배우고 전승시킬 방도가 없다. 그러다가 2006년 정초 보름날에는 약 20호 가량 집돌랑 농악도 치고 고기도 사다 먹으며 한바탕 놀면서 예전의 민속놀이를 재현하기도 하였다.

[특징]

하동 지역 민속놀이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리적 환경에 따라 놀이의 전개 방식과 놀이터의 조성이 이루어졌다. 강과 바다, 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형식의 소집단 놀이와 대동 놀이가 대체로 많은 편이다. 둘째, 세시 놀이의 일환으로 벌인 농악놀이가 많이 전승되고 있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집돌랑 농악을 비롯하여 경연 대회 방식의 농악놀이가 많이 펼쳐지면서 강한 전승력을 지니고 있다. 셋째, 개별적이거나 또래 집단의 아동 놀이가 다양하다. 천혜의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놀잇감이 많다 보니 독특하고 창의적인 놀이들이 많이 놀아졌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