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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줄끗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888
영어의미역 Tug-of-war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놀이/놀이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집필자 남성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속놀이
노는 시기 음력 1월 15일

[정의]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에 두 패로 편을 갈라 쌍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대동 놀이.

[개설]

쌍줄끗기는 두 편으로 나누어진 집단이 줄을 당겨서 승패를 가르는 공동체 놀이이다. 촌락 공동체의 개별 마을이나 여러 마을 단위의 구성원들은 정초가 되면 줄끗기를 합의하게 되고 두 패로 갈라 줄을 만든 뒤 너른 공터나 논바닥, 모래사장 등에서 줄끗기 행사를 개최하였다. 세시 행사로서 펼쳐지는 쌍줄끗기는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의례적 성격과 마을 공동체의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는 대표적인 정월 대보름 놀이이다.

[연원]

줄끗기를 다른 지역에서는 줄당기기·줄땡기기·줄싸움 등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조선시대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제주도의 줄다리기를 조리희(照理戱)라 기록하고 있다. 또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시기와 지역에 따라 도삭(綯索)·갈전(葛戰)·조리지희(照理之戱)와 같은 기록을 남겨 두고 있어 여러 지역에서 행하여 왔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그러나 하동 지역의 쌍줄끗기는 기록이 없어 그 연원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으나 해방 이전까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는 것으로 봐서 농업 생산성의 고양과 공동 노동의 관행 속에서 발달해 온 것으로 보인다. 민속의 구전적 특성에 근거한다면 쌍줄끗기는 마을의 개촌 이후 농업이 주 생업 활동으로 정착됨으로써 존재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쌍줄끗기의 놀잇감은 일반적으로 짚을 원 재료로 삼아서 엮어 만든 두 갈래의 줄이다. 예전에 줄을 만드는 재료는 농업 활동에서 생산된 짚이었다. 정초부터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많은 양의 짚을 구해다가 줄을 드리었다. 쌍줄끗기에 사용되는 쌍줄은 두 패로 나뉜 각 마을에서 직접 제작하였는데 몸통 줄을 중심으로 그 곁에 손을 잡아 끌 수 있도록 가닥 줄을 달아매어 사용하였다. 놀이의 장소는 넓은 섬진강 백사장을 주로 이용하였고, 작은 규모일 경우에는 농사일이 끝난 논바닥을 활용하기도 하였다.

[놀이 방법]

하동군 악양면에서 해방 이전에 행하여졌던 쌍줄끗기의 사례를 살펴보자.

1. 편 구성

쌍줄끗기는 해방 이전에 악양 전체의 사람들이 물위와 물아래의 양편으로 나누어 참가하여 큰 줄을 당기며 대규모로 놀았던 줄끗기 방식이다. 쌍줄끗기의 편가르기는 정서면의 신건지다리를 중심으로 갈리는데, ‘물아래’는 외둔마을, 상평마을, 하평마을, 대촌마을이고, 정서마을 위쪽은 ‘물우’로 나눈다. 줄끗기가 시작될 때는 악양면 전체의 사람들과 함께 ‘물우’에는 청암면 사람들이 붙고, ‘물아래’는 하동읍, 화개면, 전라남도 광양시 다압면 사람들까지 붙다 보니, 물아래에 줄을 끗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숫자상으로 통상 ‘물우’가 이기지 못했다. 줄은 정초부터 드리기 시작하여 정월 대보름 저녁 달 밝을 때 끗는데, 보통 다음날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2. 줄 제작

줄을 만들 때는 물우는 물우 대로 만들고, 물아래는 물아래 대로 만든다. 보통 해마다 물아래가 암줄이 되고 물우가 숫줄이 되는데, 이것은 사전에 미리 약속을 하여 무작정 큰 것을 마음대로 만들 수 없도록 조절하였던 것이다. 정초가 되면 동네 아이들은 남의 짚을 무작정 가져오거나 돌아다니면서 짚을 조금씩 모은다. 이러한 놀이 분위기가 점차 커지게 되면 어른들이 짚을 모으러 나서게 되고, 그 후 줄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때 조금씩 줄을 천천히 드리고 있으면 온 짐의 짚을 내어 놓는 사람도 있다. 동이 짐을 한 동이, 두 동이 자체적으로 내 놓는 사람이 생기게 되어 결국 줄은 점점 더 커지게 된다. 농사를 많이 짓는 사람은 많이 내어 놓을 수 있지만, 작게 짓는 사람인 경우 짚 이엉을 잇고 난 뒤 남는 짚이 없다 보니 내어 놓지 못하는 형편이 생긴다. 그럴 때는 몸으로라도 때워 부역에 나선다. 따라서 정초에 아이들이 조성한 놀이판은 점차 확대되어 줄끗기 분위기를 형성하고, 그때부터 몇몇 어른들이 나서서 줄을 드리게 된다. 뒤를 이어 마을 사람까지 합세하여 짚을 내어 놓기 시작함으로써 마을은 놀이 국면에 젖어 드는 것이다.

줄을 드리는 장소는 마을 입구에 있는 큰 밭이다. 처음에 줄을 쪽 뺄 때는 큰 나뭇가지에 짚을 걸어 갖고 계속 앗아 주면서 진행된다. 그렇게 여러 낱 줄을 만들고 나서 줄을 드릴 때는 아홉 가닥으로 만들어 한 번 뒤로 잡아매고 다시 또 아홉 가닥을 만들어 합치는 방식으로 계속 반복한다. 이때 줄을 드리면서 손으로 만져서 비비고 또 그런 다음 그것을 돌리는데, 이런 식으로 해야 줄이 드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엄청날 정도로 굵게 만들어져 어른이 걸터앉으면 발이 안 닿을 지경이 된다. 그때 마을 여자들은 줄 만드는데 와서 공을 들이면서 절을 하거나 정성을 드린다. 보통 줄은 아홉 가닥짜리가 세 개 정도 합쳐지는데, 하나 만들어서 합치고 또 얇다 싶으면 또 한 가닥 만들어 합친다. 그러다 보면 점차 커지는데, 최고로 크게 만들었을 때는 몇 가닥인지 알 수가 없었던 적도 있다.

줄을 드릴 때는 언제든지 세 개씩, 세 개씩 한데 묶어야 한다. 짝수로는 어긋나기 때문에 세 개씩 홀수로 합친다. 규모가 작을 때는 아홉 가닥 하나만 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중년에 와서야 해 봤던 방식이다. 그러니까 세 개씩 아홉 가닥이면 스물일곱 개의 낱 줄이 합쳐진다. 줄이 덩치가 커지면 사람들이 여럿이 달려들어 돌리고, 이것이 완성되면 몸통 옆에 가닥 줄을 꽂아 단다.

3. 앞놀이

줄끗기의 전초전은 아이들의 장난으로부터 시작된다. 정초부터 아이들은 오락으로 소리를 지르고 다녔다. 정월 초닷새가 지나가면 마을에서부터 「상사 소리」를 하면서 ‘물우’로 쳐 넘어간다. 그때 「상사 소리」의 앞소리는 동네에 특별히 잘 하는 사람이 있었다. 보통 앞소리를 먹이는 사람은 누구든지 쩔쩔매게 만드는 권위를 지니고 있어 대장으로서 구실을 하게 된다. 따라서 앞소리 하는 사람은 같은 나이라 하더라도 또래에 비해 똑똑하며, 지도력을 발휘함으로써 앞장서서 무리를 데리고 다닌다. 그러면 다른 아이들은 대장에게 지시를 받고 조직적으로 뭉쳐 대략 삼십 명 가량이 뛰어다닌다. 이러한 방식은 물우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때 아이들이 정초에 남의 동네 앞까지 쏘다니면 어른들은 괜히 나무라고 혼을 낸다. 아이들이 뭉쳐서 윗마을로 올라가 줄 한 번 끌자고 놀려대면 그 동네 앞에서 골탕을 먹인다고 사람들이 못 들어오게 막는다. 아이들이 자꾸 골딱지를 돋우면 어른들은 닥치는 대로 잡아서 때리려고 한다. 그런데 이쪽 사람들이 약하면 맞을 수밖에 없지만 도리어 세면 잡아 갖고 몽둥이로 쫓아 버린다. 결국은 때리게 되면 이쪽에서 들고 일어나니까 못 때리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는 자기들끼리 세력 다툼을 하면서 그냥 뭉쳐 다니는 것이다.

예전에는 여남은 살 먹어서 버선도 없고 짚신만 신고 다녔다. 버선발이 형편이 없다 보니 춥고 옷마저도 얇아 부아를 돋우면 서로 싸움이 커진다. 정초부터 어린아이들이 상대 마을에 가서 미리 부아를 돋우어 놓으면, 드디어 양쪽 마을 어른들이 나서서 줄을 만들 계획과 날을 받아 가지고 줄끗기를 하게 된다. 따라서 줄끗기는 처음에 아이들이 분위기를 돋우어 세워 놓으면 그 뒤에 어른들이 시작하는 것이다.

4. 합의와 설창자 추대

처음에 아이들끼리 왔다 갔다 하면서 줄을 잡자고 성가시게 굴면 드디어 양쪽 마을의 어른들이 나선다. 각 마을의 사랑방 영감들이 서로 오고 가고 하면서 줄끗기를 아무 때 하자고 합의하면 시작하게 된다. 처음에는 좋은 말로 끗자 느니, 서로들 감정을 내지 말자 느니 약속을 하지만 일단 줄끗기를 시작해 보면 그대로 안 된다. 줄끗기가 약속이 되면 어른들은 하동이나 다압 등을 다니면서 ‘우리가 아무 날 줄을 끄니까 오라’고 책명 하러 간다. 이렇게 알리고 다니면 줄끗는 날 사람들이 많이 밀려온다.

한편, 물우와 물아래의 어른들이 줄끗기를 합의 보면 각 구역에서 설창자가 각기 나타난다. 설창자는 일종의 물주이며 자본가로서 줄끗기를 설치하는 사람, 즉 베푸는 사람이다. 설창자는 마을에서 제법 똑똑하고 돈냥이나 있는 사람이 하는데, 그걸 세력으로 삼는다. 한 면에 살아도 아래위 서로 편이 갈라져 부자 세력이 등장하고, 그 세력에 따라서 편이 갈린다. 세력이 세면 많은 사람이 붙고 세력이 약하면 적은 사람이 붙는다. 부자들은 설창자를 보고 각지에서 찾아든다. 설창자들은 “내가 설창한다.”라고 소문을 내어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들며, 그 사람 체면을 봐서 많이 오게 된다.

5. 줄끗기 과정과 승부 결정

줄끗기는 용두머리에 장나무를 걸면 시작된다. 줄을 놓고 용두를 걸 때는 세력을 보태고 다툼이 심하기 때문에 힘이 약한 사람은 못 붙는다. 그때는 앞에서 풍물을 치고 춤을 막 추고 깃대를 들고 야단이다. 세력 다툼 때문에 꽹쇠나 징을 든 사람은 그 마을에서 힘이 좋은 사람들이 들고 보통 사람은 못 든다. 줄을 끌 때는 그 사람들에게 술도 먹이고 밥도 먹이고 한다.

드디어 용두머리 두 개를 서로 끼워 넣고 그 사이에 장나무를 갖다 박는다. 암줄 속에 숫줄이 들어가고 장목을 박아 넣을 때는 갖은 입담을 하는데, 여기는 양쪽에서 서로 버티니까 힘 약한 사람은 못 들어가고 마을에서 주먹 꽤나 있는 사람이 들어간다. 줄을 걸 때는 서로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내다 끌려고 버티고 섰다. 암줄은 사람 키를 훌쩍 넘어 높이를 재도 안 닿을 정도로 크고 넓다. 용두를 걸 때 양쪽 편에는 깃대가 무한정 서 있으며, 줄을 잡아 걸면 징을 때리고 응원이 시작된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줄끗기가 시작되는데, 한 아름도 넘는 두 개의 줄이 걸리면 몸줄 옆에 손잡이 같이 많이 달려 있는 가닥 줄을 잡아당긴다. 그러나 신호를 주자마자 끌어당기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깔고 앉아 버린다. 깃대를 흔들고 난장판이 되면 크게 힘을 못 쓰고 약한 사람은 못 들어가고 힘센 사람만이 거기 들어간다. 주위에 구경하는 사람들조차 서 있지 못하고 전부 줄에 엉겨 붙는다. 마을에서 태극기를 만들거나 여러 가지 모양의 깃발을 만들어서 대작대기에 매단다. 이때 여러 사람들이 많은 깃발을 만들어 흔들다 보니 말도 못할 정도로 장관이 연출된다.

용두머리 위에는 앞소리꾼이 하나 타고 앉는다. 당시 앞소리를 메기는 사람에게는 옷도 잘 주고 먹을 것도 많이 주고 했다. 앞소리꾼은 높은 데 서서 아래를 보며 깃대를 흔들고 소리를 하는데, 마을 사람 사이에는 누가 소리를 잘 하는지 소문이 나 돈다. 놀이가 시작되면 설창자는 줄 뒤쪽에서 자기 기분에 빠져 야단이고, 줄 끗는 사람들에게 저녁으로 주먹밥을 하여 갖다 주면서 집에 못 가도록 하며 시간을 끌도록 주문한다. 그러다 보면 줄끗기의 승패는 당일 하루 만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틀까지 넘어가게 된다. 줄을 끌 때는 끌려가지 않도록 밥 한 덩어리 먹고서 종일 깔아 뭉기고 앉아 있다. 줄을 뺏어야 이기기 때문에 자리를 뜰 수가 없으니까 계속해서 설창자는 사람들에게 자꾸 밥을 해다 나른다.

그런데 당일이 지나고 그 다음날이 지나도록 줄끗기 판의 승패가 결정 나지 않을 때가 있다. 밤새도록 앉아 있다 보면 캄캄하니까 양쪽에서 염탐꾼을 두어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빠져 나가고 해칠 만큼 있다 싶으면 줄을 잡아당겨 승리를 결정하기도 한다. 졸고 있다든지 위에서 끄는 사람들이 ‘멍’하니 있으면 아래 사람들이 마구 잡아 끗고, 위의 사람들이 봐서 아랫사람들이 그러면 또 마구 잡아 끗는다.

줄끗기는 돈 있는 사람들이 세력 다툼을 하는 것으로 부자들의 세력을 거쳐야 재미가 있다. 양쪽 설창자 부자들이 버티고 있어서 음식을 해 날라 먹여 준다면 이틀까지 기다리고, 그렇지 않으면 당일 저녁에 시작하여 새벽에 끝낸다. 어떤 때는 날을 새면서 춥다고 불무더기를 놔두지도 않고 그냥 벌벌 떨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밤새워 줄을 오래도록 깔고 앉아 있으면 논바닥에 꽉 박혀서 얼른 빠져 나오지도 않는다. 장난삼아 놀던 줄끗기가 부자들에게는 세력 다툼이 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거쳐 어느 한 쪽이 끈질긴 집착 끝에 버티다가 한 순간 자기 진영으로 끌어당기게 되면 비로소 승패가 결정된다.

6. 뒷풀이

줄끗기에서 승부가 정해지면 이긴 편에서는 뛰고 난장을 치면서 꺼떡거리고 술을 막 내놓는다. 여기에다가 진편에서도 한데 어울려 한바탕 잔치가 벌어진다. 줄끗기가 끝나고 나면 설창자로 나서서 세력 다툼을 벌이던 부자들은 희비가 엇갈리지만, 놀이꾼들이나 구경꾼들은 다 같이 즐기면서 잔치 분위기로 넘어간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악양 지역에서 펼쳤던 쌍줄끗기는 비가 오지 않은 해에 대규모로 펼쳤던 기우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줄을 끗는 과정을 ‘용트림’에 비유하며, 주술적 행위를 함으로써 농사의 풍년을 염원하였다. 하동 지역 사람들은 줄끗기의 줄을 수신(水神)으로 인식하여 공동체의 재앙을 물리치고자 했으며, 더불어 공동체의 화목을 조성하였던 것이다.

[현황]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 순사가 와서 줄을 못 끗도록 이틀이고 사흘이고 지키고 앉아 있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는 분통이 터져 밤중에 일본 순사를 향해서 돌을 던진 적이 있다고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네에 서당이 있어 마을 바깥을 벗어날 일이 적어 이러한 공동체 놀이의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러다가 해방 이후 정규 교육 기관으로서 학교가 발달함으로써 이웃 동네 아이들이나 사람들 사이에 서로 교류가 많아졌다. 따라서 그들이 전부 친구가 됨으로써 서로 알게 되고, 그러다 보니 점점 줄끗기와 같은 그런 장난이 없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이러 저러한 사정으로 쌍줄끗기는 해방을 3년 정도 남겨 두고 중단되었다. 그 후 해방 되고 나서는 쌍줄끗기는 하지 않고 제 각각의 마을에서 외줄을 당기는 방식으로 바뀌어 벌이게 되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