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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0906
한자 婚禮
영어의미역 Wedding Ceremony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집필자 남성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평생 의례

[정의]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혼인과 관련하여 행해지는 일련의 의례.

[개설]

혼례(婚禮)는 한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여 가정을 꾸밀 때 올리는 의례이다. 혼례는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 하여 소중하고 엄숙하게 치렀으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여겼다. 따라서 혼례는 성인이 된 것을 증명하며 사회의 최소 단위인 가정을 꾸리는 시초가 되고, 나아가 종족 보존의 기능을 가지기 때문에 중요시해 왔다. 하동 지역에서 혼례는 전통적으로 의혼, 납채, 납폐, 친영과 같은 절차를 밟아 성혼이 되는 전통 혼례와 전문 예식장 등에서 일반적인 식순에 의거하여 치르는 현대식 혼례 방식이 있다.

[연원 및 변천]

우리나라 혼례는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도입 이후 유교적인 혼례를 융화시켜서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관행되어 왔다. 조선 후기에 와서는 앞대의 여러 예법을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하도록 『사례편람(四禮便覽)』이 저술되었고, 여기에 “남자는 16세부터 30세 사이에 장가가고 여자는 14세부터 20세 사이에 시집간다.”고 하였다. 또한 “동성동본 불혼으로 동성의 혈족 간에는 혼인할 수 없었고, 상중에는 금혼(禁婚)”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후의 혼례에 관한 예법은 『사례편람』에 근거하여 행해지게 되었다.

한편, 현대에 와서는 전통식 혼례 절차의 번거로움을 벗고 서구화된 현대식 혼례 문화가 정착하게 되었다. 현대식 혼례는 맞선 및 교제, 약혼, 결혼 혼수 교환, 청첩장 발송, 결혼식, 폐백, 하객 접대, 신혼여행 등의 절차로 진행되고 있으나 전통 혼례와 달리 크게 간소화된 것이다. 혼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마무리되는 단계까지 혼례 당사자들의 의견이 크게 반영되며, 양가에서 주고받는 여러 품목과 절차가 간소화되었다. 특히 혼례식 당일 이루어지는 절차에 있어서도 보편화된 전문 예식장을 이용하다 보니 단순해졌고 폐백도 당일 행하고 있다.

[절차]

1. 의혼(議婚): 혼인을 상의하는 일로써 주로 중매인이 양가를 왕래하면서 상대방의 가계, 재산, 학식, 품위 등을 알리고 권유하며 혼인을 하게 하는 혼사의 첫 순서이다.

2. 허혼(許婚): 청혼에 따라 양가의 부모 사이에 승낙이 있으므로 혼인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옛날에는 신부 측에서 중매자의 권유를 허락할 때 허혼의 편지를 신랑이 될 사람의 집으로 보낸다. 지금은 신랑과 신부 사이에 약혼식을 올린다.

3. 납채(納采): 신랑 집에서 신랑의 생년, 생월, 생일, 생시를 적은 사성(四星)[사주단자]과 물목(物目)을 적은 예물을 신부 집으로 보내는 절차이다.

4. 연길(涓吉): 연길이란 택일을 말하는 것이다. 신랑 집에서 사성이 오면 신부 측에서는 결혼식 일자를 택하여 신랑 측에 통지하는 절차이다.

5. 납폐(納幣): 신랑 집에서 신부용 혼수와 혼서지(婚書紙) 및 물목을 넣은 함을 신부 집에 보내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봉채, 또는 봉침이라고도 부른다.

6. 친영(親迎): 혼인날에 신랑이 신부를 맞아 오는 예(禮)이다. 옛날에는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신부를 맞아 자기 집으로 돌아와서 행례(行禮)하였는데, 이후 신부 집에서 행례하고 대개 3일을 묵고 난 후에 신부를 데리고 친가로 돌아온다.

7. 전안례(奠雁禮)와 초례(醮禮): 재래식 혼례 절차는 전안례와 초례를 치르는데, 신랑이 초례장(醮禮場)에 마련된 전안상에 목안(木雁)[나무오리]을 올려놓고 재배하는 절차가 전안례이다. 초례라 함은 신랑 신부가 초례상에 동서로 나뉘어 서서 합환주(合歡酒)를 마시며 백년해로를 맹세하는 식이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초례를 마친 당일 밤에 신랑 신부가 첫날밤을 맞이하는데, 이때 친척 및 마을 아낙들이 신방의 문에 구멍을 뚫고 거동을 살피는 신방 엿보기를 한다. 이것은 잡귀와 외인의 신방 침입을 예방하기 위한 풍습이다. 예전에는 혼례를 치르지 않으면 성인 대접을 하지 않았으며, 혼례 전에 죽으면 ‘불효했다’ 하여 제사도 지내 주지 않는 관습이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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