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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 이여송과 성두마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000
한자 名將李如松-城頭-
영어의미역 The Grear General Yi Yeosong and Seongdu Villag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한양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5년연표보기
관련 지명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지도보기
채록지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성격 전설|풍수담|신이담
주요 등장 인물 이여송|장군
모티프 유형 지맥을 끊어 청룡도를 짚은 장군을 죽게 한 이여송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에서 이여송(李如松)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명장 이여송과 성두마을」은 명나라 장수 이여송[1549~1598]이 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의 산세가 훌륭한 장수가 태어날 것임을 알고 성두마을 산제봉(山祭峰) 산허리를 묵필로 자르니 장수가 청룡도를 짚고 무릎을 꿇어앉은 채 죽어 갔다는 풍수담이다. 또한 산허리 붉은 선혈이 황토수로 변하고 용마가 뛰쳐나와 울었다는 신이담이기도 하다.

[채록/수집 상황]

2004년 하동군 각지에서 채록·수집한 설화 자료를 중심으로 하동향토사연구위원회가 집필하여 2005년 하동문화원에서 발행한 『하동의 구전설화』의 160~161쪽에 실려 있다. 「명장 이여송과 성두마을」악양면 조사위원 이승재가 부산광역시에 거주하는 시민 이승대에게서 채록한 것이다.

[내용]

1592년(선조 25) 임진년에 아무 방비가 없었던 조선은 갑작스런 왜의 침입에 속수무책으로 있다가 응전하였으나 급기야 두 왕자는 일본군에 포로가 되고 임금은 의주까지 몽진을 하는 등 위급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조선은 중국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하게 되었고, 이때 명나라의 제독으로 이여송이 파견되었다.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조선에 와 보니 삼천리금수강산(三千里錦繡江山)이 너무나 화려할 뿐만 아니라 백두산(白頭山)이 뻗어 내린 모습 또한 매우 엄숙하고 장엄하였다. 그 정기 어린 산맥들에 감탄을 누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방방곡곡이 명승지 아닌 곳이 없음에 탄복하였다.

산세 명지와 승지에 명장이 배출된다고 하는 명당을 조선에 와서 그 실증을 목도하는 것 같았다. 역대 고명한 장수와 명현들이 많이 배출되었거니와 장백산맥과 태백산맥으로 휘둘린 이 강토에 앞으로도 줄이어 날 명현과 장수의 배출 운세에 경외감마저 들었다.

이여송은 어려서부터 익혔던 도술로 지도를 놓고 묵필로 그림을 잘라서 실지 지맥을 끊는 조화를 부릴 수 있었다. 이여송은 틈만 나면 조선의 지도를 가지고 명산주령(名山主嶺)을 답사하면서 명산명지(名山名地)의 도면(圖面)을 펼쳐 놓고 장수가 날 만한 곳을 찾아 묵필로 맥을 잘라 인재가 나오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여송지리산 산줄기를 따라 남으로 내려오던 어느 날 지금의 성두마을 앞 산제봉에 다다르게 되었다. 산제봉에 서서 산세를 쭉 훑어보니 이곳 또한 훌륭한 장군이 출현할 명지임이 틀림없었다. 도술을 부리기 위해 목욕을 깨끗이 한 뒤 도면을 놓고 산제봉 능선 용맥(龍脈)이 내려오는 곳, 지금의 용사당(龍祠堂) 근처 요지를 골라 묵필로 자르니 마침내 산허리가 잘려 나가는데, 그 폭과 깊이는 각각 두 폭과 세 폭이었다. 그곳에서 한 장군이 철갑옷을 입고 철모 투구를 쓴 완전 무장한 모습으로 나타나 청룡도를 짚고 무릎을 꿇어앉은 채 서서히 죽어 갔다고 한다.

그때 이여송에게 잘린 산허리에서 붉은 선혈이 쏟아지는 것이 황토수로 변하여 사흘 밤낮 동안 흘러 내렸고, 당시 성두마을은 동산이 갈라지면서 용마(龍馬)가 뛰쳐나와 슬피 울며 고개를 숙이고 서남쪽 마을 끝 외둔마을 근처 섭바위 모퉁이까지 가서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수백 년, 그때 잘려진 산허리는 세월과 함께 더욱 깎이어 나가서 지금은 성두마을과 세몰마을을 잇는 농로가 되어 있다.

[모티프 분석]

「명장 이여송과 성두마을」의 주요 모티프는 ‘지맥을 끊어 청룡도를 짚은 장군을 죽게 한 이여송’이다. 풍수담의 경우 명당자리에 묘를 써서 자손이 번성하였다는 이야기와 함께 임진왜란 때 중국이나 일본이 우리나라의 지맥을 끊어 혈을 막아 놓았다는 이야기가 매우 많다. 풍수에서 산을 용(龍)이라고 하는데, 모든 산은 종산(宗山)이 있어 그로부터 맥을 이루어 나간다. 우리나라의 경우 종산을 태조산(太祖山)이라고 하며, 우리나라의 태조산은 백두산이다. 태조산에서 뻗어 나오는 주된 산맥을 간룡(幹龍)이라고 하고, 주산맥에서 나누어지는 지맥을 지룡(枝龍)이라고 한다.

「명장 이여송과 성두마을」에 나오는 산제봉은 큰 장수가 나올 지룡이다. 이여송이 산제봉의 용맥이 내려오는 곳을 자르니 한 장군이 철갑옷을 입고 철모 투구를 쓴 채 완전 무장한 모습으로 청룡도를 짚고 무릎을 꿇어앉은 채 서서히 죽어 갔다는 것은 「아기장수 설화」와 맥이 닿아 있다. 왕이 억새풀로 바위를 자르자 콩과 조와 팥으로 만든 군사들이 일시에 녹아 없어지고 아기장수도 사라지게 되었다는 전설과 같이 이여송이 용맥을 자르지 않았다면 훌륭한 장수로 태어날 수가 있었다. 그런 면에서 비극적 운명을 지닌 영웅 서사의 결말과 같다. 그 비극적 영웅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백성들은 장수의 붉은 선혈이 황토수로 변하여 사흘 밤낮을 흘렀다고 하고, 성두마을의 동산이 갈라지며 용마가 뛰쳐나와 슬피 울었다고 전한다.

나라를 구할 영웅의 탄생은 자연의 기운, 산의 기운을 받아 태어난다는 풍수담과 비극적 영웅담이 결합한 「명장 이여송과 성두마을」의 장수는 바로 백성이 바라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관우(關羽)의 상징은 적토마와 청룡도였으며, 관우는 죽어 신으로 모셔진다. 나라를 구할 시대의 영웅을 기다리는 백성의 마음이 청룡도를 짚고 있는 장수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청룡도를 짚고 있는 장수가 태어났다면 임진왜란이라는 굴욕적인 역사를 뒤엎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백성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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