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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차기암운」[조위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061
한자 雙磎寺次畸庵韻-趙緯韓-
영어의미역 After Reading the Epitaph in Ssanggyesa Temple by Jo Wihan
이칭/별칭 「쌍계사에서 기암의 시에 차운하다」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석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67년연표보기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49년연표보기
배경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지도보기
성격 한시|서정시|차운시
작가 조위한(趙緯韓)[1657~1649]

[정의]

1618년경 현곡 조위한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를 보고 지은 차운시.

[개설]

「쌍계사차기암운(雙磎寺次畸庵韻)」조위한(趙緯韓)[1567~1649]의 시문집 『현곡집(玄谷集)』 권3에 수록되어 있다. 조위한은 1618년(광해군 10) 4월 11일부터 4월 17일까지 경상남도 하동군 지리산[1,915m] 쌍계사(雙磎寺) 방면을 유람하고 「유두류산록(遊頭流山錄)」을 남겼다. 당시 쌍계사 등지를 3일 동안 두루 둘러보았는데, 「쌍계사차기암운」는 아마도 이때 지은 듯하다. 정홍명(鄭弘溟)[1592~1650]의 시에서 차운하여 지었다.

조위한의 자는 지세(持世), 호는 현곡(玄谷),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김덕령(金德齡)[1567~1596]을 따라 종군하였다. 1601년(선조 34) 사마시를 거쳐 1609년(광해군 1) 증광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주부, 감찰 등을 지냈다. 1613년(광해군 5) 김제남(金悌男)[1562~1613]의 옥사에 연좌되어 구금되었다가 풀려나 은거하였다.

인조반정 이후 등용되어 사헌부장령 등을 지내고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1587~1624]의 난을 토벌하는 데 참여하였으며, 병자호란 때 출전하였다가 난이 끝난 뒤 돌아왔다. 벼슬이 공조참판에 이르렀으며, 글과 글씨는 물론 해학에도 능하였다.

[구성]

칠언 절구의 구성법에 맞게 지은 한시로 총 2수로 이루어져 있다. 앞의 시는 작자가 지친 말을 타고 쌍계사로 향할 때의 심경을 노래한 것이다. 산승도 자신을 알아보고, 산새도 자신을 알아본다고 표현하여 이전에 쌍계사에 와 본 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뒤의 시에서는 최치원(崔致遠)[857~915]이 지은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雙磎寺眞鑑禪師大空塔碑)의 문장과 글씨에 대해 유심히 살피면서 최치원을 회상하는 감정을 노래하였다.

[내용]

권마투고사(倦馬投孤寺)[지친 말을 타고 고즈넉한 절로 드는데]

등등협로지(登登峽路遲)[가도 가도 협곡 길은 더디기만 하구나]

산승인전도(山僧認前度)[산승은 전에 온 나그네인 줄 알아보고]

곡조사상지(谷鳥似相知)[골짜기 새도 아는 사이인 듯 지저귀네]

석각삼장극(石刻森長戟)[돌에 새긴 글씨는 긴 창을 벌여 놓은 듯]

비문동색사(碑文動色絲)[비석에 새긴 글은 오색실로 수를 놓은 듯]

비음구연저(悲吟久延佇)[슬픈 마음으로 읊조리며 오래도록 서서]

종일비심사(終日費深思)[하루해가 다가도록 깊은 생각만 하였네]

[특징]

앞의 시는 제2구와 제4구에 각각 ‘지(遲)’, ‘지(知)’의 운자를 썼고, 뒤의 시는 제2구와 제4구에 각각 ‘사(絲)’, ‘사(思)’의 운자를 썼다.

[의의와 평가]

「쌍계사차기암운」조위한쌍계사를 유람할 때 느낀 정서와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를 보고 느낀 감상을 노래한 한시로, 시인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조선 후기 문인 조위한의 산수 유람에 대한 의식과 역사 유적지를 대하는 의식을 살필 수 있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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