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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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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영욱하아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913년 12월 16일연표보기
편찬|간행 시기/일시 1992년연표보기
성격 작품집|동요 동화집
작가 남대우[1913. 12. 16~?]

[정의]

1992년 간행한 경상남도 하동군 출신의 아동 문학가 남대우의 유고 작품집.

[개설]

『우리 동무』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공간의 아픔을 노래와 이야기로 표현한 동요 동화집이다. 남대우는 1913년 12월 16일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18살 때부터 아동 문학에 뜻을 두고 동화와 동시, 동요 등을 창작하였다. 1934년 『동아일보』 신춘 현상 문예 동화 부문에 「쥐와 고양이」가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동요와 동시 등 수백 편을 『조선중앙일보』, 『만선일보』, 『동아일보』 등의 신문과 아동 문학 잡지에 발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특히 동요시를 많이 썼는데, 당시 우리나라에서 발달한 문학 장르 중 하나가 동요시였기 때문이다. 이때 만들어진 동요 중에는 지금도 부르는 것이 많다. 방정환(方定煥)[1899~1931]의 「형제별」, 윤극영(尹克榮)[1903~1988]의 「반달」과 「설날」, 한정동의 「따오기」, 이원수(李元壽)[1911~1981]의 「고향의 봄」, 서덕출의 「봄편지」, 류지영의 「고드름」 등의 동요시는 요즘도 자주 불리곤 한다.

해방 후에는 사회 현실을 노래하고 좌익 활동에 간여하였는데, 1948년을 전후하여 남대우의 모습은 영원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후 유족이 간직하고 있던 원고를 모아 1992년에 유고집 『우리 동무』를 발간하였다. 남대우는 어른들이 부를 수 있는 노랫말도 많이 지었으며, 아동 문학가[동요 시인]라는 이름보다는 「하동포구」의 대중가요 작사자로 더 알려져 있다. 지금도 「하동포구」는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지역 여러 예술인에 의해 서예, 서각 등으로 작품화되고 있다.

[구성]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동요시 모음, 제2부는 순수 동화, 그리고 제3부는 현대시와 가사[노랫말]들로 엮어 있다. 순수 동화는 11편인데 등단작인 「쥐와 고양이」를 비롯해 주로 동물을 의인화하여 쓴 것이 많고, 「참외」, 「우정」, 「하모니카」 등과 같은 생활 동화도 있다. 동화가 등단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수가 많지 않은 데 비하여 동요시[동시 포함]는 무려 284편에 이른다.

[내용]

동시와 동요시는 어린이의 정서에 알맞은 작품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동요시 가운데 한 작품인 「보슬비」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파랑새 울고 간 살구나무에/ 보슬비 보슬보슬 고운 꽃 피고//파랑새 울고 간 살구나무에/ 보슬비 보슬보슬 구슬이 맺고-「보슬비」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대중가요 「하동포구」의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하동포구 팔십 리에 물새가 울고/ 하동포구 팔십 리에 달이 뜹니다/ 섬호정 댓돌 우에 시를 쓰는 사람은/ 어느 고향 떠나온 풍류랑인고-「하동포구」 1절

해방 직후 좌우익 대립이 극에 달하였을 즈음인 1946년 무렵 남대우는 다수의 선동가를 잇따라 발표하였는데, 『우리 동무』 185쪽에 수록된 「힘을 뽐내세-하동군 민청 결성 대회에 보냄」이라는 작품에는 “굶주리는 농민에게 논밭을 달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또 다른 「민청 결성대회용」 노래에는 “남의 피 빨아먹는 거머리 떼”와 같은 표현도 발견된다.

[의의와 평가]

활발한 작품 활동에 비하여 남대우에 대한 문학적 해석이나 평가 작업은 빈약한 편이다. 남대우가 해방 후 좌익 활동에 주력하였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이며, 그 때문에 남대우의 작품은 물론이고 이름조차 거론되는 것이 금기시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남대우에 대한 연구는 교수 김수복의 논문 「남대우론: 곤궁한 삶의 인식과 새 시대의 감격」 이후 경남대학교 교수 박태일이 발표한 몇 편의 논문이 있다. 이들에 의하면 남대우는 한국의 대표적인 아동 문학가로 추앙받고 있는 이원수와 대척점에 놓아도 좋을 만큼 비중 있는 아동 문학가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현실적으로 남대우는 「하동포구」의 작사가로만 알려지고 있을 뿐, 일제 말기와 광복기에 우리나라 아동 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인물이라는 사실은 고려되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다. 아동 문학 평론가들과 지역의 뜻있는 문학인들은 앞으로 남대우에 대한 작품 분석과 함께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동군에는 2개의 남대우 노래비가 서 있는데, 하나는 섬호정(蟾湖亭)에 있는 동요시 「보슬비」이고, 또 하나는 평사리공원에 있는 가요 「하동포구」이다. 「하동포구」가 아직도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하동 군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탓도 있겠지만, 정치인들이 「하동포구」를 의도적으로 유포하였기 때문이라는 설이 많다. 남해와 하동이 하나의 선거구로 묶여 중대 선거구제로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면 남해 출신 정치인들이 의석을 싹쓸이해 가는 일이 잦았다. 그러자 하동 출신 인사들이 하동 군민들을 하나로 결속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활용한 노래가 바로 「하동포구」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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