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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왜구의 침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121
한자 高麗末倭寇-侵入
영어의미역 Invasion of Japanese Pirates in Late Period of Goryeo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해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354년연표보기
발생|시작 시기/일시 1358년연표보기
발생|시작 시기/일시 1362년연표보기
성격 왜구 침탈 사건
관련 인물/단체 정유|정손

[정의]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왜구가 경상남도 하동군을 포함한 우리나라 연안에 침입한 사건.

[역사적 배경]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은 두 차례에 걸친 여몽 연합군의 일본 정벌과 그 뒤에 이어진 일본 국내의 내란으로 몰락한 무사와 농민들이 노예와 미곡을 약탈할 목적으로 일어났다. 그들은 지방 호족들의 보호와 통제 아래 행동하였으며 그 근거지는 쓰시마[對馬島], 마쓰우라[松浦], 이키[壱岐] 등으로 그중에서도 물자가 부족한 쓰시마 사람들이 주동이 되었다.

[경과]

고려 때 왜구가 처음 침입한 것은 1223년(고종 10)이지만 본격적인 왜구의 침입은 1350년(충정왕 2) 고성·죽림·거제·합포 등지에 왜구가 창궐하여 수백여 명의 인명을 살상한 때부터이다. 이후 왜구의 노략질이 더욱 심해져 공민왕(恭愍王) 때에는 동해·서해·남해 연안뿐만 아니라 내륙까지 침입하였다. 공민왕 때 왜구가 침입한 횟수는 115여 회나 되는 것으로 나타나며, 우왕(禑王) 때는 특히 심하여 378회나 침입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결과]

왜구의 하동 침입은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으로 볼 때 1354년(공민왕 3), 1358년(공민왕 7), 1362년(공민왕 11)의 세 차례 정도로 나타난다. 지금의 하동 지역 가운데 상당한 지역이 고려 때는 진주목의 영역에 속해 있었으므로 이들 지역에 대한 침입까지 포함하면 침입 횟수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의의와 평가]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은 하동에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혔을 것으로 보이나 자세한 침탈 상황은 알져지지 않는다. 다만 『고려사』 효우 열전 정유(鄭愈)조에 따르면, 정유는 동생 정손(鄭愻)과 함께 하동에서 수자리하던 병든 아버지를 돌보았다. 밤중에 왜구의 기습을 받았으나 피신이 늦어 뒤쫓아 오던 왜적을 맞아 싸워 왜적 수 명을 죽인 사실이 전하고 있다. 당시 이들 부자가 왜구의 기습을 받기에 앞서 주민들은 모두 도망쳐 숨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 남해안 연해의 다른 고을과 마찬가지로 하동군의 피폐했던 사정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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