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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166
한자 林萬圭
영어음역 Im Mangyu
이칭/별칭 임봉규(林奉圭)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 777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조현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3년 1월 10일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20년 12월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958년 7월 13일연표보기
추모 시기/일시 1993년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 777 지도보기
묘소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탑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임봉규(林奉圭)로도 불리던 임만규(林萬圭)의 본관은 나주(羅州)로, 1893년(고종 30) 1월 10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하동군 화개면 장날, 쌍계사 승려 김주석(金周錫), 학생 정상근(鄭湘根)·양봉원(梁奉源) 등의 주도로 전개된 1차 만세 시위에 임만규이강률(李康律)·이정수(李汀秀)·이정철(李正哲) 등과 함께 참가하였다. 이날 화개면 주민과 전라도·충청도 상인 등 400여 명도 합세하여 밤늦도록 시위를 전개하다 경찰의 발포로 해산하였다.

그 후 임만규이정수의 발의로 다시 이강률·이정철 등과 모여 2차 시위를 다음 장날인 4월 11일로 정하였다. 임만규이강률이 작성한 화개면사무소 면장과 직원들에게 고하는 사직 권고서와 장날 상인·주민들에게 참여를 독려하는 광고문을 4월 10일 밤 화개면사무소 정문에 부착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화개장터에서 2차 만세 시위를 하려던 순간 일본 경찰에 의해 하동경찰서에 연행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다.

같은 해 6월 9일 임만규는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 회부되어 ‘협박 및 보안법 위반’이란 명목으로 징역 8월형을 언도받았다. 법정 투쟁을 위해 항소했으나 7월 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구복심법원에서 “조선인이 조선 땅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고, 일본인은 자기 땅으로 돌아가기를 외친 것이 어찌 죄가 되느냐?”고 강변하였다. 1920년 12월 출옥 후 고문 후유증과 옥중에서 얻은 병으로 약 2년간 거동하지 못하였다. 1958년 7월 13일 작고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탑리에 있으나 표지석은 없다.

[상훈과 추모]

1993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으며, 2001년 화개장터임만규 등의 4월 의거를 기리기 위해 화개장터 삼일운동 기념비가 세워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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