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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175
한자 鄭相正
영어음역 Jeong Sangjeong
이칭/별칭 선중(善中),석정(石亭)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1103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조현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8년 10월 10일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920년 9월 29일연표보기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1103 지도보기
묘소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정상정(鄭相正)의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선중(善中), 호는 석정(石亭)이다. 1878년(고종 15) 10월 10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1103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던 정상정지리산에서 의병 활동을 하던 중 의병대장 유명국(柳明國)의 명으로 노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귀향하였다. 1919년 3월 박영묵(朴永默)·이종인(李宗仁)·정의용(鄭宜鎔)·추홍순(秋鴻順) 등과 동지 33명을 규합하여 일신단(一身團)이란 비밀 결사를 조직하고 생사를 함께하기로 맹약하였다.

그 해 4월 6일 하동군 고전면 주교리 장날, 일신단원이 단상으로 올라가 의거의 취지를 설명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1천여 명의 장터 군중들이 합세하였다. 이에 조선인 경찰 박도준(朴道俊)과 일본 헌병 세 명이 출동하여 이를 제지하자 일신단은 이들의 총검을 탈취하고 제복을 벗겨 만세를 부르게 하였다.

다음날 헌병과 경찰이 총을 난사하면서 성천리 지소마을로 쳐들어오자, 정상정박영묵·이종인·정의용 등은 부녀자와 아이들을 삼봉산(三峰山)에 피신시키고, “어제의 의거는 우리 네 명이 한 일이며, 그 외에는 모두 장꾼들이다. 책임은 우리에게 있으니 우릴 체포하라!”라고 하면서 순순히 포승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동지 최알밤[본명 미상]이 피격되었다.

이후 정상정 등은 하동경찰서에 압송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으나 끝까지 기개를 굽히지 않았다. 5월 16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란 죄목으로 징역 2년 6월형에 언도되어 진주감옥에서 복역 중 1920년 9월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77년 대통령 표창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묘소 앞에 정상정의 공훈이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1982년 3월 1일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 입구에 삼일 독립운동 의거 기념비가 세워졌고, 1985년 12월 고전면 고하리 주성마을하동군 고전면민 만세 운동 기념비가 세워져 정상정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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