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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178
한자 鄭潤鎔
영어음역 Jeong Yunyo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영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지도보기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 지도보기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 배다리장터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1919년 3월 독립 운동의 불길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자, 이에 부응하여 4월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에서는 박영묵(朴永默)의 주도 아래 일신단(一身團)을 중심으로 만세 운동에 동참하려는 준비가 진행되었다. 정윤용(鄭潤鎔)은 이때 일신단의 일원으로 만세 운동을 준비하고 주도했던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당시 같은 마을에 사는 이종인(李宗仁)·정상정(鄭相正)·정의용(鄭宜鎔)·정재기(鄭在基) 등이 마을의 청장년층을 모았고, 추홍순(秋鴻順)금남면 궁항리덕천리까지 진출하여 청장년들을 설득하고 참여를 유도하였다.

4월 6일 이들은 태극기를 쌀가마니에 넣거나 가슴에 품은 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 배다리장터로 잠입하였다. 그리고 각기 정해진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오후 1시 40분이 되어 성시(盛市)를 이루자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날 만세 운동에 동참한 군중은 1천여 명이 넘었다. 이에 일본군 헌병 세 명이 급하게 출동하여 시위를 제지하자 일신단원들이 붙들어 그들의 총칼을 빼앗고 제복을 벗겨 버렸다.

다음날 진교주재소에서 일본 수비대가 출동하여 주동자를 색출하자 일신단원들은 지소마을의 부녀자와 노인·어린아이를 모두 뒷산으로 피신시킨 뒤 일본 경찰에게 모든 책임은 자신들이 지겠다며 자진해서 체포되었다. 정윤용도 이때 같이 체포되어 대구감옥에서 2년 6개월을 복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2년 3월 1일 일신단으로 활동했던 이들의 의로운 정신을 기리기 위해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삼일 독립운동 의거 기념비가, 이들이 만세 운동을 펼쳤던 배다리장터에는 1985년 12월 30일 하동군 고전면민 만세 운동 기념비가 세워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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