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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191
한자 河敬履
영어음역 Ha Gyeongri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전병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사당|배향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지도보기
성격 관인
성별
본관 진양
대표 관직 지곤남군사|지사천현사

[정의]

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관인(官人)

[가계]

본관은 진양(晉陽). 아버지는 하승해(河承海)이고, 형은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1377~1438]이다.

[활동 사항]

하경리(河敬履)는 북방 수호에 헌신하는 형을 대신하여 진주를 중심으로 지곤남군사(知昆南郡事), 지사천현사(知泗川懸事) 등 아홉 고을의 수령직을 역임하면서 노모를 극진히 봉양하고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세종하경리 형제의 아버지 하승해가 태조태종을 섬기고, 다시 하경리 형제가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것을 기특히 여겨 노모에게 두 번이나 쌀과 비단을 하사하였다. 이에1424년(세종 6)과 1426년(세종 8), 하경리 형제가 올린 사은전(謝恩箋)이 『세종실록(世宗實錄)』에 실려 있다. 사은전에는 ‘주상 전하께서 네 형 경복(敬復)이 동북방의 수자리[戍]를 방어하고 있으므로 과첩(寡妾)을 부양할 자가 없음을 민망히 여기시고 너에게 인근의 고을로 제수하시어, 그 자식 사랑하는 정에 부응하도록 하시고, 또 기한(飢寒)을 염려하시어, 지난해에 미백(米帛)을 하사하셨으니, 그 은혜 지극하다'는 노모의 말을 전하며 임금께 치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 의하면 하경리는 1438년(세종 20) 모친상을 당한 경원수(慶源守) 이징옥(李澄玉)을 대신하여 북방을 맡을 수 있는 인재로 거론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그의 진주 근방 지방관 역임은 효행에서 비롯된 것임을 잘 알 수 있다. 그는 노모 근처의 아홉 고을을 돌며[수령으로 재직하면서] 어머니를 모신 ‘환진구읍(環晉九邑)의 효행’ 으로 칭송을 받았다.

[상훈과 추모]

사후 병조 참의에 증직되었으며, 형과 함께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에 자리한 경현사(景賢祠)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6.06.03 가계 수정 하경복을 아우에서 형으로 수정.
이용자 의견
김** 참의공 하경리는 양정공 하경복의 동생으로 위의 가계내용과 활동사항의 내용이 상이함. 따라서 가계의 내용에서 "동생은 ~"을 "형은 ~"으로 수정해야 함.
  • 답변
  • 디지털하동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의주신 내용에 따라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6.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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