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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193
한자 慶州金氏
영어의미역 Gyeongju Gim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용국

[정의]

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백일·김기옥·김성율 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개설]

경주 김씨(慶州金氏)의 시조는 김알지(金閼智)이나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대에 이르러 세계를 이루기 시작한다. 경주 김씨경순왕의 셋째 아들 김명종(金鳴種)과 넷째 아들 김은열(金殷說)을 각각 영분공파와 은열공파의 파시조로 떠받들고 있다. 하동 지역의 경주 김씨경순왕의 넷째 아들 은열을 파시조로 한 은열공파의 후손들이다. 경순왕으로부터 22세인 김선원(金善元)이 이웃 고을인 곤양군(昆陽郡)으로 이주하고, 그의 후손 김백일(金百鎰)·김기옥(金淇玉)·김성율(金城律) 등이 하동의 여러 곳으로 옮겨와 살면서 세계를 이루었다.

[연원]

경주 김씨는 시조 김알지의 28세손인 경순왕의 아들 대에 이르러 분파하였다. 특히 경순왕의 셋째 아들 김명종과 넷째 아들 김은열이 각각 영분공파와 은열공파의 파시조가 되고, 이후에도 후손들 가운데 출세한 인물이나 거주지를 중심으로 하여 다수의 파가 생겨났다. 하동 지역의 경주 김씨는 대부분 은열공파를 파시조로 하고 있다.

[입향 경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을 파시조로 한 은열공파 23세손 김백일이 처음으로 입향한 경주 김씨 세거지이다. 경순왕으로부터 22세가 되는 통정대부 절충장군(折衝將軍) 김선원이 비로소 곤양[현재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땅으로 내주(來住)하였다.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경순왕으로부터 29세가 되는 죽와(竹窩) 김기옥이 곤양으로부터 처음으로 입향한 후 경주 김씨 세거지가 되었다. 하동군 횡천면 횡천리경순왕으로부터 31세가 되는 통정대부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김성율이 곤양으로부터 횡천리 내기동(內基洞)으로 옮겨 오면서 경주 김씨 세거지가 되었다.

[현황]

통계청의 성씨와 본관 자료에 의하면 2000년 전국의 경주 김씨는 54만 2,018가구 모두 173만 6798명이며, 하동에 거주하는 경주 김씨가 521가구 1,433명이다. 하동 지역 경주 김씨의 주요한 세거지로는 하동군 금성면 갈사리청암면 중이리를 들 수 있다.

[관련 유적]

금화재(錦華齋)는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 경주 김씨들이 경천묘(敬天廟) 좌측에 창건한 재실이다. 경천묘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686번지에 소재하는데,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초상화와 위패를 모신 곳이다. 경천묘는 1902년에 지어졌으며, 하동댐의 건설로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1985년 11월 14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33호로 지정되었으며, 경순왕 초상화는 2008년 10월 30일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474호로 지정되었다. 경주 김씨 하동종친회에서 소유·관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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