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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복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261
한자 李震復
영어음역 Yi Jinbok
이칭/별칭 익능(益能)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이길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11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894년연표보기
추모 시기/일시 1891년연표보기
추모 시기/일시 1896년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 지도보기
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남산리
성격 효자
성별
본관 함안

[정의]

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익능(益能). 매헌공(梅軒公) 이인형(李仁亨)의 후손이다.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원종일등공신에 오른 이장(李檣)의 8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증사복시정(贈司僕寺正) 이경원(李慶原)이다. 할아버지는 증좌승지(贈左承旨) 이찬(李欑)이며, 아버지는 증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贈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使) 이정립(李廷立)이다.

[활동 사항]

이진복(李震復)은 1811년(순조 11)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매우 효성스러워서, 집은 가난했으나 어버이를 섬길 때는 맛난 음식을 반드시 갖추어 올렸다. 어느 해, 어머니가 학질이 있어 이진복이 의원을 찾아 나갔다가 밤이 되어 길을 잃고 헤매자 호랑이 한 마리가 따르면서 지켜 주었다.

어버이의 상을 당한 후에는 20리 거리의 어버이 묘소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묘를 했는데, 하루는 개울물이 불어서 건널 수가 없게 되었다. 이에 개울가에서 하늘을 보고 울부짖으며 통곡하니 갑자기 물의 흐름이 뚝 끊겨 건널 수 있었다. 또한 기일이 되면 살아 있을 때와 같이 정성을 다했고, 철 따라 나는 새로운 음식이나 반찬을 대하면 어버이 생각에 차마 먹지 못하며 어버이 일만 떠오르면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고 전한다.

[상훈과 추모]

1891년(고종 28) 조정에서 정려을 내리고 호세(戶稅)를 면해 주었다. 1896년(고종 33) 후손들이 하동군 횡천면 남산리 월매고개 아래에 정려비를 세웠다. 통훈대부 전행경상도도사(通訓大夫前行慶尙道都事) 장복추(張福樞)가 기문을 지었으며, 1919년 성적도중간소(聖蹟圖重刊所)에서 포창완의문(褒彰完議文)을 지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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