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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443
한자 河一魯
영어음역 Ha Ilro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양판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8년 12월 1일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24일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938년 4월 18일연표보기
추모 시기/일시 1993년 4월 18일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682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하일로(河一魯)[1868~1938]는 1868년 12월 1일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682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양(晉陽), 아버지 하상곤(河相崑)과 어머니 조덕동(趙德同) 사이의 4남이다. 부인은 이장전(李長田)이며, 슬하에 1남을 두었다.

[활동 사항]

하일로는 1919년 3월 24일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동하였다. 거사 전날 최인우(崔寅愚)·정화영(鄭華永)·하계원(河啓遠)·권대형(權大衡)[1899~1947]·권상숙(權尙淑)·김중수(金重洙) 등과 비밀리에 태극기를 만들고 인근에 연락을 취하였다. 안계 장날인 당일 낮 12시경 시장 중앙에 태극기를 높이 세우고 최인우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하일로가 시위의 의의에 대해 설명하였다.

운집한 군중을 향해 독립 항쟁을 호소한 뒤 독립 만세를 선창하고 6,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시위하였다. 경찰 주재소 앞까지 행진하며 만세 운동을 계속하였으나 무차별 총기 발포로 군중은 흩어지고 투사들은 체포되었다. 4월 28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8년 4월 1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3년 정부로부터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묘소는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장전(長田) 상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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