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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악양루유허」[이현일]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656
한자 登岳陽樓遺墟-李玄逸-
영어의미역 at Akyangru Pavilion by Yi Hyeonil
이칭/별칭 「악양루 유허에 올라」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윤호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627년연표보기
저자 몰년 시기/일시 1704년연표보기
배경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지도보기
성격 한시|유산시
작가 이현일(李玄逸)[1627~1704]

[정의]

조선 후기 이현일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에 있는 악양루 유허와 동정호에서 읊은 한시.

[개설]

「등악양루유허(登岳陽樓遺墟)」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학자인 이현일(李玄逸)[1627~1704]의 문집 『갈암집(葛庵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이현일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학통을 계승한 영남학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68세 때인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72세 때인 1698년(숙종 24) 3월 하동의 갈은리로 유배지가 바뀌어 섬진강 가에 옮겨 와 살았다. 「등악양루유허」는 당시 하동 지역을 유람하며 읊은 것으로 추정되며, 해 질 무렵 유허만 있는 악양루(岳陽樓)와 그 곁의 너른 동정호(洞庭湖)를 보고 느낌 점을 그린 한시이다.

악양루는 흔히 중국의 동정호 가에 있던 누대를 일컫지만, 「등악양루유허」에서는 하동군 악양면에 있는 누대를 말한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정서리 일대에는 악양루 외에도 동정호, 하동 고소성(河東姑蘇城), 한산사(寒山寺)한유한(韓惟漢)의 유허지인 삽암(鍤巖) 등의 유적지가 남아 있어 조선 시대 유학자들의 지리산[1,915m]과 하동 지역 유람에서 빠지지 않는 중요한 코스였다.

[구성]

칠언 절구의 구성법에 맞게 전개한 한시이다. 기구에서는 풀이 우거진 포구 가에 터만 남은 악양루를 찾아간 것을 읊었고, 승구에서는 악양루에서 군산의 낙조를 바라보며 감회를 노래하였다. 전구에서는 중국 동정호를 상상하며 말한 것이기는 하지만 남방을 삼킬 듯이 동정호가 크다 하였고, 결구에서는 조물주가 동정호를 크게 만든 까닭을 말하였다.

[내용]

위방유허초포변(爲訪遺墟草浦邊)[남은 터 풀 우거진 포구 가를 찾아가니]

군산락조상의연(君山落照尙依然)[군산에 지는 해는 아직도 옛날 같구나]

활탄오초하수설(闊呑吳楚何須說)[남방을 삼킬 듯 넓은 호수 말해 무엇하랴?]

조물진성소유천(造物眞成小有天)[조물주가 진실로 조그만 하늘을 만들었네]

이를 풀이하면, 2구의 ‘군산(君山)’은 본래 중국 동정호 안에 있는 섬 이름인데, 여기에서는 하동군 악양면동정호에 있는 것을 이른다. 이 구절에서는 악양루는 터만 남아 있지만, 군산의 낙조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는 뜻을 담아 노래하였다. 제3구에서 ‘오초(吳楚)’는 모두 중국 남방에 있던 나라인데 남쪽 지방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으며, 여기에서는 남방인 하동 지역을 가리킨다. 악양루 가에 있는 동정호가 남방 지역을 삼킬 듯이 크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말하고 있다.

제4구에서는 조물주가 동정호를 이처럼 크게 만든 까닭은 그 가운데 조그마한 하늘이 있게 하기 위함이라 하였는데, 이는 동정호에 하늘이 비치는 것을 시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등악양루유허」는 여느 악양루를 읊은 시와는 달리 악양루의 남은 터에서 지은 것이며, 조선 후기 대표적인 유학자의 정감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악양루의 변천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적어도 조선 후기에는 악양루가 유허로만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경상북도 지역의 학자가 악양루가 있는 곳까지 찾아왔다는 점에서, 악양루가 하동 지역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도 한 번쯤은 찾아가고 싶은 명소였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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