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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서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759
한자 道川書堂
영어의미역 Docheon Village School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296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병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45년연표보기
문화재 지정 일시 1990년 1월 16일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296 지도보기
성격 서당
정면 칸수 5칸[도천서당]|3칸[경현사]|4칸[사성재]|4칸[수유재]|3칸[숭덕문]
소유자 진양 하씨 문중
관리자 진양 하씨 문중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71호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에 있는 진양 하씨 문중의 서당.

[개설]

진양 하씨(晉陽河氏)의 세거지인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에 후손들이 조상을 사모하고 현조(顯祖)를 기리기 위한 뜻에서 건립하였다. 도천서당(道川書堂) 내에 경현사(景賢祠)를 지어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 참의공(參議公) 하경리(河敬履), 강장공(剛莊公) 하한(河漢), 경절공(敬節公) 하숙보(河叔溥)를 봉안하였다. 중재(重齋) 김황(金榥)이 지은 「도천서당기(道川書堂記)」에 도천서당의 건립 배경과 서당 명칭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양정공이 예전에 살던 곳은 사곡(士谷)이었는데, 강장공에 이르러 비로소 월횡(月橫)으로 옮겼으니, 모두 진주의 서쪽 지경이다. 이후부터 마침내 월횡을 세거지로 하였다. 그 후 400년이 지나 점점 쇠퇴해지자 각자 흩어져 이사하게 되니, 세장(世莊)이 있던 곳도 보존할 수 없어 후손이 늘 한스러운 마음을 가졌다. 그러다가 지난 을유년[1945] 가을에 서로 의논하여 월횡 옛 마을에 집 하나를 매입하였다. 그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고치고 꾸며서 사모하는 뜻을 붙이기로 하였다. 편액을 도천서당이라 한 까닭은 그 집터가 도천(道川) 가에 있기 때문이다.”

[위치]

도천서당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296번지에 있다.

[형태]

도천서당은 5칸, 경현사는 3칸, 사성재(思誠齋)는 4칸, 수유재(垂裕齋)는 4칸, 정문인 숭덕문(崇德門)은 3칸이다. 숭덕문으로 들어가면 도천서당이 중앙에 위치하고, 좌우에 동재(東齋)인 사성재와 서재(西齋)인 수유재가 각각 자리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숭덕문과 도천서당 사이의 한가운데 ‘충(忠)은 해와 달과 같고 덕(德)은 우주에 드리웠네[忠同日月德垂宇宙]’라는 구절이 적힌 바위가 세워져 있다. 그 바위의 뒷면에는 ‘시냇물이 흘러 그치지 않네[川流不息]’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경현사도천서당의 좌측 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현황]

1990년 1월 16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71호로 등록되었다. 진양 하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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