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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918
한자 金聖運
영어음역 Gim Seongun
이칭/별칭 대집(大集),주담(珠潭)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전병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73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730년연표보기
성격 유학자
성별
본관 울산(蔚山)

[정의]

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가계]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대집(大集), 호는 주담(珠潭). 고조할아버지는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 백암(白巖) 김대명(金大鳴)[1536~1603]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용익(金龍翼)이며, 할아버지는 김충립(金忠立)이다. 아버지는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문인 삼함재(三緘齋) 김명겸(金命兼)[1635~1689]이고, 어머니는 죽당(竹塘) 최탁(崔濯)[1598~1645]의 딸 전주 최씨(全州崔氏)이다. 아버지 김명겸이 23세 때 북천에 거주하던 죽당 최탁의 딸에게 장가들어 25세인 1659년(효종 10) 진주의 인천(仁川)[또는 대야천(大也川), 현 하동군 북천면]으로 옮겨왔다. 부인은 곽수지(郭守之)의 딸 현풍 곽씨(玄風郭氏)이며, 그 사이에 2남 2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김성운(金聖運)[1673~1730]은 젊은 나이에는 세상을 구제하려는 뜻이 있었지만, 자신이 시속(時俗)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학문과 강학에만 힘을 쏟았다. 산청군 덕산(德山)의 진주담(眞珠潭) 가에 서재를 지어 ‘주담정사(珠潭精舍)’라 이름하고서 책과 거문고를 벗 삼아 지냈는데, 사람들이 그를 ‘주담 선생’이라고 불렀다.

또한 송나라 때의 학자 이천(伊川) 정이(程頤)를 흠모하여 하동군 북천면 소도동(昭道洞)에 학천당(學川堂)을 세워 그의 학문을 배우고자 하였으며, 주희(朱熹)의 학문을 존숭하여 특히 ‘경(敬)’에 관한 설을 중시하였다.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1664~1732]와 친분이 두터워 먼 거리를 꺼리지 않고 왕래하며 교유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문집 『주담집(珠潭集)』 3권 2책이 있다.

[묘소]

묘소는 진주 마동(馬洞)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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