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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낙영 공적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931
한자 鄭洛榮功績碑
영어의미역 Memorial Stone for Jeong Nakyeong
이칭/별칭 우산 정낙영 유적비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추경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98년 2월연표보기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879년 3월 22일연표보기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947년 2월 16일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성격 공적비
관련 인물 정낙영(鄭洛榮)[1879~1947]|정한효(鄭漢孝)|정운재(鄭雲在)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너비, 두께) 340㎝[높이]|40㎝[너비]
소유자 진주 정씨 대치 문중과 직계 후손
관리자 진주 정씨 대치 문중과 직계후손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정낙영(鄭洛榮)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건립 경위]

정낙영[1879~1947]은 1919년 3월 29일 하동군 금남면진교면의 3·1 운동을 지도 지휘하고, 남해군남해읍까지 진출하여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때 만든 독립선언서는 정낙영을 비롯한 하동 출신 인사 12명이 지은 것으로 현재 하동군청 민원실 입구에 복사 확대본이 게시되었고, 독립기념관에 원본이 보관되어 있다. 진양 정씨(晉陽鄭氏) 후손들이 정낙영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98년 2월에 비를 세웠다.

[위치]

정낙영 공적비(鄭洛榮功績碑)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마을 중앙에 위치한다.

[형태]

비신(碑身)은 화강암으로, 비신 위에는 용이, 비신 아래에는 돌 거북이 새겨져 있다. 비석의 높이는 340㎝, 너비는 40㎝이다. 비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사각형 모양의 화강암으로 둘러쳐 있다.

[금석문]

비의 전면에 ‘애국지사 우산(愚山) 선생 진양정공 휘 낙영(洛榮)유적비’라고 새겨져 있다. 비문은 정낙영의 가계와 3·1 운동 활약상 및 하동의 독립선언서, 그리고 정낙영이 현산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을 역임하며 나라의 동량지재를 양성한 이야기에 관해 기록하였다. 공적비의 비문은 정한효(鄭漢孝)가 짓고, 정운재(鄭雲在)가 썼다.

[현황]

정낙영 공적비는 건립된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후손들과 주민들이 관리하고 있다. 매년 2월에 추모제를 거행한다.

[의의와 평가]

정낙영은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1992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정낙영 공적비는 남해군과 하동군 진교면, 노량 금남면 3·1 운동의 지도자로 활약하고 향리에서 현산학교 교장 및 교감으로 공을 세운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유적비이다. 인근 초·중·고등학생과 청소년 교육에 특히 유용한 비석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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