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1381 |
---|---|
한자 | 晩全集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역사/전통 시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승은 |
간행 시기/일시 | 1666년(현종 7) - 『만전집(晩全集)』 홍유경이 간행 |
---|---|
소장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
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학술정보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로 25-2[명륜3가 53-21] |
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신촌동 134] |
성격 | 시문집 |
저자 | 홍가신(洪可臣) |
편자 | 손자 홍우원(洪宇遠) |
간행자 | 현손 홍유경(洪游敬) |
권책 | 6권 3책 |
행자 | 10행 20자 |
규격 | 15.5㎝[가로]|21.7㎝[세로] |
[정의]
조선 중기 충청남도 아산현의 문신이자 학자인 홍가신의 시문집.
[개설]
『만전집(晩全集)』은 충청남도 아산현의 문신이며 학자인 홍가신(洪可臣)[1541~1615]의 문집으로, 기축옥사(己丑獄事)[조선 선조 때인 1589년에 정여립을 비롯한 동인의 인물들이 모반 혐의로 박해를 받은 사건], 임진왜란, 이몽학의 난[1596년(선조 29) 임진왜란 중에 이몽학이 주동이 되어 충청도에서 일으킨 반란]과 같은 역사적 사건 속에서 홍가신이 지키고자 했던 신념과 충정, 자연인으로서의 소망 등을 엿볼 수 있다.
[저자]
『만전집』을 지은 홍가신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흥도(興道), 호는 만전당(晩全堂)·간옹(艮翁)이다. 형조좌랑·지평을 거쳐 1588년 수원부사를 지냈다. 1589년 정여립의 난 때 파직당하였다가 다시 서용되어 강화부사·형조참판·강원도관찰사·개성부유수 등을 지냈다. 1604년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청난공신(淸亂功臣) 1등에 책록, 1605년 영원군(寧原君)에 봉해졌다. 1615년 아산에서 사망하였으며, 아산의 인산서원(仁山書院)과 온양의 정퇴서원(靜退書院)에 제향되어 있다.
[편찬/간행 경위]
『만전집』 권두 허목(許穆)의 서문에 따르면, 홍가신의 시문은 전쟁을 겪으면서 많이 유실되고 남은 원고를 손자 홍우원(洪宇遠)이 정리하여 정고본(定稿本)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현손 홍유경(洪游敬)이 이를 증보하고 6편으로 나누어 선사본(繕寫本)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형태/서지]
『만전집』은 6권 3책의 목활자본으로, 각 면 10행 20자, 크기는 가로 15.5㎝, 세로 21.7㎝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성균관대학교 학술정보관,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만전집』은 권두에 허목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홍유경의 지(識)가 있다. 목록은 권별로 붙어 있다. 권1은 시, 권2는 기(記), 서(書), 제문(祭文), 잡저(雜著), 권3은 소(疏), 권4는 소(疏), 답(箚), 계사(啓辭), 사장(辭狀), 권5는 비명(碑銘), 축문(祝文)과 여러 기록에서 저자와 관계된 사실을 모은 보유(補遺), 권6은 홍경신(洪慶臣)이 지은 행장, 신도비명과 함께 공부했던 류성룡(柳成龍)이 쓴 비명과 제문 등이 실려 있다. 강릉참봉(康陵參奉), 부여현감(扶餘縣監), 수원부사(水原府使), 개성유수(開城留守) 시절에 지은 시가 많고, 류성룡에 대한 시도 여럿 보인다. 벼슬길에 있지만 자연에 귀의하고자 하는 뜻이 시에서 드러나는데, 「괴석차절아운(怪石次楶兒韻)」에는 마침내 나이가 많아 벼슬에서 물러나 아산에 은거한 이후의 만족감이 엿보인다.
상소에는 위정자로서 임금의 책무를 강조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민폐소(民弊疏)」는 부여현감으로 있을 때 파악한 다섯 가지 폐해를 보고하고 그 시정책을 올린 것이고, 「적퇴후봉사(賊退後封事)」는 정치를 하는 데 필요한 두 가지의 강령과 열두 가지의 급선무를 말한 것이다. 또 「여송운봉중회서(與宋雲峯仲懷書)」에서는 저자가 임진왜란 때 남양에 은거하며 포의(布衣)의 신분으로 의병을 모집해 적과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만전집』을 지은 홍가신은 평생을 청렴하게 살며 지방관으로서 백성을 다스리는 데 힘쓴 행정가이자 학자이다. 따라서 『만전집』에 수록된 시, 서, 제문 등을 통해 당시의 행정과 정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홍가신의 생애는 기축옥사, 임진왜란, 이몽학의 난과 같은 변란 속에 있었으나, 이러한 역사적 사건에서 홍가신이 견지하고자 했던 신념과 충정, 자연인으로서의 소망 등을 고스란히 찾아볼 수 있는 자료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