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13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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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時庵集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역사/전통 시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승은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92년 - 조상우 정퇴서원에 제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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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 시기/일시 | 1845년 - 조상규와 조진심이 『시암집』 간행 |
소장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
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신촌동 134] |
성격 | 시문집 |
저자 | 조상우(趙相禹) |
간행자 | 조상규(趙橡圭)|조진심(趙鎭心) |
권책 | 7권 3책 |
행자 | 10행 20자 |
규격 | 16.1㎝[가로]|23.3㎝[세로]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 있었던 정퇴서원에 제향된 학자 조상우의 문집.
[개설]
『시암집(時庵集)』은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 있었던 정퇴서원(靜退書院)에 제향된 학자 조상우(趙相禹)[1582~1657]의 시문집이다. 7권 3책으로, 후손인 조상규(趙橡圭)와 조진심(趙鎭心)이 1845년에 간행하였다.
[저자]
『시암집』을 지은 조상우의 본관은 양주(楊州)이며, 자는 하경(夏卿), 호는 시암(時庵)이다. 김장생(金長生)[1548~1631]의 문인으로, 광해군 이후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으로 일생을 보냈다. 1692년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 있었던 정퇴서원에 제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시암집』은 본래 저자의 시문이 28권이 있었으나,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을 겪으며 대부분이 산실되었다. 그 후 후손인 조상규와 조진심이 남은 원고를 수습하고 부록을 추가하여 1845년 송내희(宋來熙)의 서문을 받아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시암집』은 7권 3책의 목활자본으로, 각 면 10행 20자, 크기는 가로 16.1㎝, 세로 23.3㎝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시암집』은 권1은 시, 권2~4는 봉사(封事)와 서(書), 권5는 잡저(雜著)·서(序)·잠(箴)·찬(贊)·상량문(上樑文)·축문(祝文)·제문(祭文)·묘지(墓誌)·묘표(墓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6~7은 부록으로 저자의 행적을 기술한 유사(遺事)와 아들 조이후(趙爾後)가 유교를 관리하지 못한 것을 슬퍼하며 기록한 「매곡공지(梅谷公誌)」, 7대손 조진심(趙鎭心)이 문집 간행의 경위를 서술한 지(識)가 수록되어 있다. 부록에는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행장, 강백년(姜栢年)이 지은 정문비(旌門碑)와 송준길(宋浚吉)·남용익(南龍翼)·정두경(鄭斗卿) 등이 쓴 만사(挽詞)가 있다.
그중 「을축봉사(乙丑封事)」는 원종(元宗)[인조의 아버지]을 추숭하는 일은 옳지 않다고 하는 내용으로 1625년에 올린 것이다.「정묘봉사(丁卯封事)」는 1627년에 소현세자(昭顯世子)에게 올린 것으로, 후금(後金)과의 화친이 불가하다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답김신독재(答金愼獨齋)」는 김집(金集)[1574~1656]의 근황을 물은 것이고 「여김신독재(與金愼獨齋)」, 「여김창주(與金滄州)」는 김집의 죽음을 슬퍼하는 내용이다. 이 밖에 서(書)는 이경여(李敬輿)·조속(趙涑)·조극선(趙克善)·윤문거(尹文擧)·강백년(姜栢年)·강학년(姜鶴年)·김익희(金益熙)·윤선거(尹宣擧)·유백증(兪伯曾) 등에게 준 것으로, 주로 상례(喪禮)에 대한 글이 많다.
[의의와 평가]
『시암집』을 지은 조상우는 김장생의 제자로, 예학에 뛰어난 인물이다. 조상우가 주변 인물들과 주고받은 서(書)는 주로 관혼상제의 상변례에 대하여 문답한 것으로, 조선 후기의 예설을 연구하기 위한 자료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