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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의병장. 강봉근(姜奉根)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1872년(고종 9) 9월 30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명호리에서 태어났다. 1908년(순종 2) 무신 의병에 가담하여 활동을 했다. 일본인 진주시장을 암살하기 위해 한국인 기생을 첩보원으로 삼아 도움을 얻었는데, 뒤에 이 기생은 미수 공범으로 처리가 되었다고 한다. 어느 해 설날, 제사를 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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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에 있는 최원추(崔元樞), 최상순(崔相淳) 및 창녕 성씨의 효행을 기리는 비. 최상순은 본관이 경주(慶州)이며, 최치원(崔致遠)의 후손이다. 1838년(헌종 4) 출생하였다. 타고난 성품이 너그럽고 후하며 인자하여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었으며, 일을 공명정대(公明正大)하게 처리하였다. 부인 창녕 성씨(昌寧成氏)와 함께 병약한 노부모를 모시며 효도를 다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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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있는 개항기 최숙민(崔琡民)을 기리는 재실. 계남정(溪南亭)은 계남(溪南) 최숙민[1837~1905]의 재실이다. 계남 최숙민은 절의를 숭상하던 영남 남인 가문 출신의 학자이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晉州城)에서 순국한 모산(茅山) 최기필(崔琦弼)[?~1593]의 8세손으로, 용모가 비범하고 재주가 뛰어나 어려서부터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에 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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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지역 동학 농민군이 1894년 10월 14일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에 있던 고성산성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 봉건적 지배 체제하의 농민층은 여러 가지 수탈에 시달리는 가운데 1876년 개항 이후 제국주의의 경제적 침탈로 인해 삶이 더욱 피폐해지자 생존권을 위협받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동학이 교세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탄압을 받게 되면서 동학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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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 정재규가 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삽암에서 한유한을 생각하며 읊은 한시. 「과삽암감한록사제시(過鍤巖感韓錄事題詩)」는 조선 후기의 학자 정재규(鄭載圭)[1843~1911]의 문집 『노백헌집(老栢軒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합천군의 묵동에 살았던 정재규는 1887년(고종 24) 지리산[1,915m] 대원사(大源寺) 방면을 유람하고서 유람기인 「두류록(頭流錄)」을 남기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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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정원항의 문집. 정원항(鄭元恒)[1823~1905]의 자는 형칠(亨七), 호는 교재(嘐齋)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에 거주하였다. 1915년에 정원항의 외손 하영태(河泳台)가 유고를 모아 『교재집(嘐齋集)』을 간행하였다. 서문은 하겸진(河謙鎭)이 쓰고 발문(跋文)은 정규영(鄭奎榮)과 하영태가 썼다. 3권 1책의 목활자본(木活字本)이며, 표제(表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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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에 있는 개항기 정기(鄭夔)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재실. 귀후재(歸厚齋)는 이 고장에 처음으로 입향한 정기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지었다. 정기의 자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율리(栗里)이다. 영일 정씨(迎日鄭氏)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예이며, 젊어서부터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문하에서 배웠다. 겸재가 왕에게 사은소(謝恩疏)를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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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대덕리에 있는 개항기 김경좌(金慶佐) 처 광산 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광산 김씨(光山金氏)는 김해 김씨(金海金氏) 김경좌의 처이다. 18세에 시집가서 시부모와 남편을 정성으로 모셨다. 김경좌가 세상을 떠나자 53세의 나이로 남편의 뒤를 따라 생을 마감하니, 그 열행을 기리기 위해 김해 김씨 문중에서 1875년(고종 12)에 열녀비를 세웠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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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에 있는 개항기 김수직(金守直)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김수직은 본관이 용궁(龍宮)이며, 자는 겸지(兼之)이다. 1794년(정조 18)에 태어났으며,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의 후손이다. 천성이 순후하여 부모를 섬기는 데 여름에는 생선을 구하여 봉양하였고, 겨울에는 미음을 준비하여 공양하였다. 아버지가 종기를 앓자 여러 달 동안 입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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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의병. 김의홍(金義洪)은 1886년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입석리에서 태어났다. 김병원(金炳源)으로도 불렸다. 1907년은 헤이그 밀사 사건과 그에 따른 고종의 강제 퇴위, 정미7조약[일명 한일신협약]에 의한 한국의 통치권 약화, 한국군 강제 해산 등으로 각지에서 의병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김의홍은 1907년 8월부터 고광순(高光洵), 박매지(朴每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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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송원리에 있는 개항기 김일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전 참봉 김녕 김씨(金寧金氏) 김일준(金日俊)은 성품이 강직하나 관후하고 뛰어난 효행이 세간의 모범이 되며, 곤궁한 서민들을 보살펴 자선한 흔적이 많아 사람들의 칭송이 높았다. 이에 김일준에게 은혜를 입은 주민들이 공덕을 기려, 1874년(고종 11) 3월 시혜불망비를 세웠다. 김일준 시혜불망비(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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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의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연안(延安). 문절공(文節公) 차원부(車原頫)[1320~1399]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차승이(車昇伊)이다. 남편은 김주봉(金周鳳)으로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김주봉 처 연안 차씨는 타고난 성품이 효성스럽고 유순하여 출가하기 전에도 부모에게 사랑을 받았다. 경상남도 하동 지역으로 시집온 후 남들이 힘들어하는 일도 무던히 견디고 방직과 농사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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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사현(士見), 호는 귤은(橘隱). 안경공(安敬公) 김영정(金永貞)의 후손이다. 친아버지는 김성두(金星斗), 친어머니는 경주 이씨이며, 양아버지는 김문두(金文斗), 양어머니는 강성 문씨(江城 文氏)[남평 문씨]다. 김현주(金顯周)는 1858년(철종 9)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서 태어나, 훗날 진교면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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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하응로의 문집. 하응로(河應魯)[1848~1916]의 자는 학부(學夫), 호는 니곡(尼谷)이다. 성재(性齋) 허전(許傳)[1797~1886]의 문인이다. 1934년에 하응로의 손자 하우선(河禹善)이 조부가 남긴 글을 모아 『니곡집(尼谷集)』을 간행하였다. 서문은 김황(金榥)이 쓰고 발문은 하겸진(河謙鎭)이 썼다. 4권 2책의 목활자본(木活字本)이며, 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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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하우선(河禹善)의 문집. 하우선(河禹善)[1894~1975]의 자는 자도(子導), 호는 담헌(澹軒)이다. 1977년에 하우선의 손자 하유집(河有楫)이 집안에 간직하고 있던 유문(遺文)을 모아서 『담헌집(澹軒集)』을 간행하였다. 서문은 이가원(李稼源)이 쓰고 발문(跋文)은 이장한(李章漢)과 정태수(鄭泰秀)가 썼다. 11권 4책의 필사본(筆寫本)이며, 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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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에 있는 개항기 때 의령 여씨 문중의 재실. 하동의 동쪽에 있으며, 재실이 위치한 하동군 적량면의 ‘동산리’ 지명을 따서 동산재(東山齋)로 이름하였다. 동산재는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 국도 2호선 변에 있는 하동산마을 입구에서 마을 회관 방향으로 오르면 오른쪽 약 10m 지점에 위치한다. 의령 여씨(宜寧余氏) 문중의 묘하각(墓下閣)으로서, 자손의 세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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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경상남도 하동을 포함한 전국에서 일으킨 농민 운동. 조선 왕조의 봉건적 지배 체제에서 여러 가지 수탈을 받던 일반 농민층이 1876년 개항 이후 외세의 경제적·군사적 침투로 인해 이중으로 수탈을 받는 상황에서 생존권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1860년 동학이 창도된 이후 동학교도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심해지자 동학교도들이 결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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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 이교문이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하동 고소성에 올라 읊은 한시. 「등고소성(登姑蘇城)」은 조선 말의 문인 학자인 지재(止齋) 이교문(李敎文)[1878~1958]의 문집 『지재유고(止齋遺稿)』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이교문이 하동 지역을 여행하면서, 서리 내리고 유난히 달 밝은 늦가을밤에 하동 고소성(河東姑蘇城)에 올라 그 고즈넉한 풍경을 읊은 것이다. 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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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 이교문이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봉대리에 있던 봉황대를 찾아가 읊은 한시. 「등봉황대(登鳳凰臺)」는 조선 말의 문인 학자 지재(止齋) 이교문(李敎文)[1878~1958]의 문집 『지재유고(止齋遺稿)』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이교문은 하동 지역을 여행하면서 악양의 봉대리에 있었던 봉황대(鳳凰臺) 유허를 찾아갔는데, 봉황대는 보이지 않고 물가에 풀만 우거진 것을 보고서 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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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의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진양(晉陽). 아버지는 정해종(鄭海鍾)이다. 남편은 문수호(文守浩)로, 본관은 강성(江城)이다. 문수호 처 진양 정씨는 어려서는 부모에게 효성스러웠으며,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로 시집을 와서도 시부모 봉양과 남편 내조를 잘했다. 남편이 광견(狂犬)에게 물려 병이 나자 지성으로 간호하고, 병세가 심해지자 손가락에서 피를 내어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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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강성(江城). 초명은 문석호(文碩鎬), 자는 국원(國元), 호는 석전(石田). 의안공(毅安公) 문득준(文得俊)의 후손으로, 연강재(練江齋) 문후(文後)[1574~1644]의 8세손이다. 6대조 직하재(稷下齋) 문헌상(文憲商) 때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 이거하였다. 고조할아버지는 사암(思菴) 문기팔(文起八)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회당(晦堂) 문종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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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규정공(糾正公) 박현(朴鉉)의 후손이다. 박달숙(朴達淑)[1867~?]은 나이 겨우 3세에 아버지를 잃고 12세에 어머니가 앞을 볼 수 없게 되어, 의지할 데 없는 외로운 몸으로 어머니를 모셨다. 어머니가 대소변을 보러 갈 때는 반드시 몸소 부축해 드리면서 20년을 한결같이 모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너무나 슬퍼하여 아침마다 성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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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의병. 박매지(朴每之)는 1878년(고종 15)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봉대리 124번지에 태어났다. 1907년(순종 1) 하동 지역에서 의병대를 조직했다가, 300여 명의 부대원과 함께 고광순(高光洵) 의병 부대에 합류하였다. 고광순이 전사한 뒤 의병진을 재편성하여 총대장이 되었는데, 그가 이끌던 의병 부대는 화승총을 사용하였고, 중견 간부는 러시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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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의 박용규가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고문서. 박용규 소장 고문서는 교지(敎旨) 24점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관작·토지·노비·특전 등을 내려줄 때 쓰는 문서이다. 1886년(고종 23) 정원칠(鄭元七)을 통정대부(通政大夫)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에 임명하는 교지 1점, 1886년 정원칠을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겸오위장군(同知中樞府事兼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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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의 열녀. 본관은 진양(晉陽).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진문(河晉文)이다. 남편은 박이한(朴而翰)으로,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박이한 처 진양 하씨는 시집간 지 한 달 만에 남편 박이한이 독사에 물려 죽자, 독사가 나타난 곳으로 가서 슬피 울며 이틀을 기다려 독사를 잡아 물어서 씹어 죽이고는 시신을 입관한 뒤에 목을 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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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횡천리에 있는 개항기 진양 하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하진문(河晉文)의 딸 진양 하씨(晉陽河氏)는 함양 박씨(咸陽朴氏) 박이한(朴而翰)에게 시집갔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혼인 초에 남편이 독사에 물려 세상을 떠났는데, 진양 하씨는 독사가 나타난 곳으로 가서 슬피 울며 이틀을 기다려 독사를 잡아 물어서 씹어 죽이곤 자결을 하였다. 고종 연간에 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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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의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해주(海洲). 아버지는 정우교(鄭愚敎)이다. 남편은 박재춘(朴在春)으로, 본관은 태안(泰安)이다. 박재춘 처 해주 정씨는 18세에 박재춘과 혼례를 치렀으나, 채 시가로 오기도 전에 친정에서 남편의 발병 소식을 들었다. 밤새껏 말을 타고 달려와서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빌며 온갖 방법을 동원했으나 8개월 만에 남편의 병이 더욱 악화되었다. 손가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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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의병. 박홍지(朴弘之)는 1881년[혹은 1882년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순종 1)은 헤이그 밀사 사건과 그에 따른 고종의 강제 퇴위, 정미7조약[일명 한일신협약]에 의한 한국의 통치권 약화, 한국군 강제 해산 등으로 각지에서 의병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박홍지는 1907년 지리산을 중심으로 하동,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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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에 있는 정치덕(鄭致德)·정치도(鄭致道)·정치행(鄭致行) 삼형제의 효행을 기리는 비. 조선 순조 때의 진양 정씨 삼형제인 정치덕·정치도·정치행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고, 아버지 묘소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는 한편, 집에 빈소를 차려 매일 왕래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길을 닦아 효자로(孝子路)라 했고, 마을은 삼효동(三孝洞)이라 불렀다. 1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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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문진호의 문집. 문진호(文晉鎬)[1860~1901]의 자는 국지(國之), 호는 석전(石田)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稷田)에 거주하였다. 문진호의 아들 문영제(文永濟)가 선친의 유고(遺稿)를 모아 간행하려 하였으나 1950년 6·25 전쟁 때 모두 불타버렸다. 이후 원근 각 가문에 남아 있는 글을 모아 1964년에 『석전유고(石田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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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에 살던 최숙민이 하동 섬진강을 유람하면서 지은 한시. 「섬진강(蟾津江)」은 구한말 유학자 최숙민(崔琡民)[1837~1905]의 문집 『계남집(溪南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섬진강」은 최숙민이 노년에 강회에 초청되어 학문을 강론한 뒤, 섬진강을 유람할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하동의 쌍계사(雙磎寺)와 화개동에 남아 있는 최치원(崔致遠)[8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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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는 개항기 때의 2층 정자. 하동공원은 하동향교(河東鄕校)가 위치한 갈마산 정상을 주위로 조성된 하동군민들의 문화 체육 공간이다. 그 정상에 있는 2층 누각이 바로 섬호정(蟾湖亭)이다. 섬호정을 중심으로 정상에 올라서서 사방을 조망해 보면 동향으로 하동 읍내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남향으로는 섬진강이 유유히 흐르는 절경을 연출한다. 하동공원에는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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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의병. 손몽상(孫夢尙)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1878년(고종 15)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 정자촌에서 태어났다. 신몽상으로도 불렸다. 1907년(순종 1) 8월부터 1908년(순종 2) 10월까지 지리산 기슭인 하동, 구례, 진주, 산청 등지에서 박매지(朴每之), 이성로(李成魯) 등과 함께 항일 의병 활동을 벌였다. 1908년 10월 5일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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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최경병의 문집. 최경병(崔瓊秉)[1865~1939]의 자는 영호(永好), 호는 수당(修堂)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에서 살았다. 『수당집(修堂集)』은 1939년에 간행되었으며, 서문(序文)과 발문(跋文)이 없어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 8권 4책의 목활자본(木活字本)이며, 표제(表題)와 판심제는 수당집(修堂集)으로 되어 있다. 책의 크기는 가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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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송병순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악양정에서 정여창을 기리며 읊은 한시. 「악양정 근차일두선생운(岳陽亭謹次一蠹先生韻)」은 유학자이자 우국지사인 송병순(宋秉珣)[1839~1912]의 문집 『심석재집(心石齋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송병순이 1902년(고종 39) 2월 3일부터 40일 동안 영남 지방을 유람하던 도중 청학동을 찾아가다 악양정(岳陽亭)에 들러 지은 것이다. 송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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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에서 1910년 사이 조선의 국권 회복을 위해 경상남도 하동군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실력 양성 운동. 1904년 한일 의정서와 한일 협약, 1905년의 을사조약으로 조선은 국권을 거의 상실하게 되었다. 이에 한편에서는 의병 투쟁이, 또 한편에서는 애국 계몽 운동이 일어나 국권 회복을 위해 노력하였다. 애국 계몽 운동은 1904년 보안회의 황무지 개척 반대 운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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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경 면암 최익현이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화심리에 있는 여씨의 재실 양심재에서 읊은 한시. 「양심재염심자(養心齋拈心字)」는 최익현(崔益鉉)[1833~1906]의 문집 『면암집(勉庵集)』 권2에 수록되어 있다. 1989년 여강출판사에서 간행한 『면암최선생전서(勉菴崔先生全書)』 인책(人冊)의 문인 곽한소(郭漢紹)가 지은 「남유일기(南遊日記)」에 의하면, 최익현은 1902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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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문암리 대정마을에 있는 개항기 때 정려비. 조선 철종 때 하동군 옥종면 병천에서 거주하던 선비 양정악(梁挺岳)은 효행이 높고 학문이 깊어 명망이 널리 알려졌다. 1855년(철종 6) 조정에서 양정악에게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증직하고, 1867년(고종 4) 정려를 세울 것을 명하였다. 양정악의 아들 양태원(梁泰源) 역시 효행이 높아 손자인 진사 양주신(梁柱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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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의 열녀. 본관은 창녕(昌寧). 아버지는 조내섭(曺乃涉)이다. 남편은 양주기(梁柱基)로,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양주기 처 창녕 조씨는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장재동으로 시집을 왔다. 남편이 갑오년(甲午年) 농민 항쟁에 참여했다가 하동군 옥종(玉宗) 북방 고성산(高城山)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달려가,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속에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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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무신. 여경규(余璟奎)의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선진(善珍), 호는 금산(錦汕). 호조판서를 지낸 여중부(余仲富)의 후손으로, 가선대부 여호철(余好哲)의 현손이다. 1893년(고종 30) 무과에 등제하여 그 해 12월 선전관이 되었다. 하동 송림 내에 여러 벼슬아치와 선비들이 무예를 닦고 회합하던 사정(射亭)인 하상정이 있었는데, 1880년에 세워져 많이 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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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문약(文若), 호는 석촌(石村). 판관(判官)을 지낸 여수희(余壽禧)의 9세손이다. 여수엽(余守燁)은 1862년(철종 13)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무척이나 효성스러워서 평소에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을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올렸다. 아버지가 4년간 병으로 누워 있었는데, 의원이 개의 쓸개를 쓰면 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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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에 있는 개항기 염정일(廉廷一)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여각. 효자 염정일[1801~?]의 자는 내일(乃一)이고, 호는 청산(靑山)이다. 유명한 효자 염종환(廉宗煥)의 아들이다. 염정일이 어느 날 아버지가 아파서 의원을 찾아 가는 길에 나루에 이르렀는데, 어떤 여자가 “남쪽에서 의원을 구하면 효험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여자가 말한 대로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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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파주(坡州). 자는 주원(周湲), 호는 지성(至誠). 고려 후기 재상을 지낸 충경공(忠敬公) 염제신(廉悌臣)의 후손이다. 고조부는 염종환(廉宗煥), 증조부는 염정일(廉廷一)인데, 모두 효자로 유명하다. 염태섭(廉台燮)은 1872년(고종 9)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치질(痔疾)이 심하여 약으로 산삼이 제일 좋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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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개항기 진양 정씨 효재[교재] 정원항의 재실. 효재[교재](嘐齋) 정원항(鄭元恒)은 진양 정씨(晉陽鄭氏) 은열공파 병부상서(兵部尙書) 신열의 후예로, 1823년(순조 23) 한재마을에서 태어나 1905년(고종 42) 세상을 떠난 선비이다. 당대 명류인 한주 이진상(李震相), 만성 박치복(朴致馥), 후산 허유, 면우 곽종석(郭鍾錫) 등과 교유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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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신성리에 있는 개항기 효자 왕지환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왕지환(王旨煥)의 초명은 왕지흥(王旨興)이고, 자는 군은(君恩), 호는 신암(信庵)이다. 왕지환의 효행 사실을 고을 사람들이 관청에 올려 관청에서 기특하게 여겼으나, 시절이 바뀌어 표창을 못하였다. 이에 왕지환이 세상을 떠난 지 40년 만에 왕지환 효행비(王旨煥孝行碑)를 세워 귀감을 삼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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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의병. 우수보(禹守甫)는 1879년(고종 16)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봉대리 하평에서 태어났다. 우수보(禹首甫)라고도 썼다. 1907년(순종 1)은 헤이그 밀사 사건과 그에 따른 고종의 강제 퇴위, 정미7조약[일명 한일신협약]에 의한 한국의 통치권 약화, 한국군 강제 해산 등으로 각지에서 의병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우수보는 1907년 8월부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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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에 있는 여수희(余壽禧)와 여경(余璟)을 기리는 재실. 운암재(雲巖齋)는 의령 여씨(宜寧余氏)인 판관공 여수희와 그 아들 판결사(判決事) 여경의 덕망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여수희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웠으며, 여경은 학문과 덕행이 있어 명망이 높았다. 운암재는 하동읍에서 동쪽으로 10㎞쯤 떨어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수척마을 지방도 1003호선 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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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개항기 진양 정씨 문중의 재실.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마을 회관에서 마을 중앙로로 계속 오르면 금양교회가 나오는데, 계속해서 위쪽으로 올라가면 끝 부분에 원모재(遠慕齋)가 위치한다. 원모재는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정씨 고가들 중 남쪽 건물에 해당한다. 정씨 고가 내에 있는 행랑채를 진양 정씨(晉陽鄭氏) 문중에서 매입해, 1909년(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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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겸산 김성렬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불일암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유청학동일기(遊靑鶴洞日記)」는 김성렬(金成烈)[1846~1919]의 『겸산집(兼山集)』 권4에 수록되어 있다. 김성렬은 1884년(고종 21) 5월 1일부터 5월 9일까지 하동군의 청학동 일대를 유람하였다. 1877년(고종 14) 가을에도 하동군의 청학동을 유람한 적이 있는데, 쌍계사(雙磎寺)와 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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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에서 1909년 사이 하동 지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싸우기 위해 나섰던 자위군. 의병은 대한제국 말기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일어난 보수 유생층과 평민·장교·병사 등이 주도한 무력 투쟁을 일컫는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처음 일어난 의병 투쟁은 1905년 을사조약 체결을 계기로 더욱 격화되면서 평민 출신 의병장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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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 있는 효자 이경인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이경인(李慶仁)은 1831년(순조 31) 43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1844년(헌종 10) 그의 효행을 기리려는 집안사람들과 고을 사람들이 나라에 효자비를 건립해 줄 것을 청원하였다. 1876년(고종 13) 나라의 허락이 내리자 후손 및 고을 사람들이 비를 건립하였다. 이경인 효행비(李慶仁孝行碑)는 위가 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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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하인수의 문집. 하인수(河仁壽)[1830~1904]의 자는 천지(千之), 호는 이곡(梨谷)이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다. 1934년에 하인수의 손자 하종헌(河琮憲)이 집안에 보존하고 있던 유문(遺文)을 모아서 『이곡집(梨谷集)』을 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발문은 하경낙(河經洛)이 썼다. 5권 2책의 목활자본(木活字本)이며, 표제(表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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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원(士元), 호는 청호(靑湖). 오성부원군(鰲城府院君) 이항복(李恒福)의 후손이다. 이규술(李奎述)[1860~?]은 천성이 매우 효성스러웠다. 어버이를 섬김에 뜻을 잘 받들었고 물질적 봉양도 잘하였다. 어버이가 여러 해 병중에 있을 때 변을 맛보며 병세를 살폈다. 병세가 위독해졌을 때는 자신이 대신 아프게 해 달라고 하늘에 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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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에 있는 개항기 때 정려각. 이번 처 절부려(李蕃妻節婦閭)는 이번(李蕃)의 처 장수 황씨(長水黃氏)의 절의를 기리는 정려각이다. 1593년(선조 26) 7월, 진주성(晉州城)을 함락한 왜군이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쪽으로 쳐들어왔는데, 이때 왜적을 피해 숲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장수 황씨는 왜적에게 잡히고 말았다. 왜적이 칼을 목에 대고 위협하자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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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삼현(李參鉉)의 선정비. 조선 후기 고종 연간인 1865~1868년 경상도관찰사로 재임 중이던 이삼현이, 목화 농사 흉년으로 군포(軍布) 납부 문제 때문에 부민들이 곤경에 처하자, 이를 돈으로 대납할 수 있게 함으로써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이를 고맙게 여긴 하동부민들이 1868년 1월 이삼현이 예문관제학에 제수되어 이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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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의병. 이성로(李成魯)는 1878년(고종 15)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신흥리 상신흥에서 태어났다. 1907년 8월 박매지(朴每之), 임봉구(任鳳九) 등과 함께 의병대를 조직한 후 박매지 의병진의 좌군장으로서 화개장터 전투, 하동 수비대 습격, 악양 신금벌 전투 등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1908년 9월 16일 하동군 적량면 두전동에서 일진회 회원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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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익능(益能). 매헌공(梅軒公) 이인형(李仁亨)의 후손이다. 임진왜란의 원종일등공신 이장(李檣)의 9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증좌승지(贈左承旨) 이찬(李欑)이고, 할아버지는 증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贈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使) 이정립(李廷立)이며, 아버지는 수숭정대부 용양위상호군 동지중추부사(壽崇政大夫龍驤衛上護軍兼同知中樞府使) 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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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에서 활동한 문인.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형락(亨洛), 호는 회산(晦山).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인 동곡(桐谷) 이조(李晁)[1530~1580]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이도형(李道炯)이며, 어머니는 최씨(崔氏)이다. 부인은 권씨(權氏)·이씨(李氏)이며, 2남 4녀를 두었다. 이택환(李宅煥)[1854~1924]은 1882년(고종 19) 과거에 급제하여 사헌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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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성주(星州). 고려 후기 충혜왕의 배향 공신인 문열공 이조년(李兆年)[1269~1343]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사헌부감찰을 지낸 이도호이다. 이현수(李顯洙)는 1883년(고종 20)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에서 출생하였다.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22세의 나이로 300여 명의 의병대를 조직해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진주·하동·산청 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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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의병. 임봉구(任鳳九)의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1880년(고종 17)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 상신마을에서 태어났다. 임봉구(林奉九)로도 불렸다. 1907년(순종 1) 8월 박매지(朴每之)와 함께 의병대를 조직한 후, 박매지 의병진의 부대장으로서 지리산을 중심으로 하동, 함양, 구례 등지에서 항일 의병 활동을 벌였다. 1908년 4월 김의홍(金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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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치형(致亨), 호는 한재(韓齋). 고조할아버지는 만포(晩圃) 정달진(鄭達晉)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경재(警齋) 정익헌(鄭益獻)이며, 할아버지는 정재환(鄭載煥)이다. 아버지는 정원휘(鄭元暉)이다. 어머니는 하진흡(河鎭洽)의 딸 진양 하씨(晉陽 河氏)이다. 부인 조씨(趙氏)는 죽하(竹下) 조용주(趙鏞周)의 딸이다. 슬하에 2남 4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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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초명은 정효기(鄭孝基), 자는 응선(應善). 호는 수재(守齋). 처음에는 호를 회계(晦溪)라 하였다가, 만년에 『논어(論語)』의 “목숨을 걸고 지키며 도를 선하게 한다[守死善道]”라는 구절에서 취하여 수재라 하였다. 고조할아버지는 송죽헌(松竹軒) 정도관(鄭道貫)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청계(淸溪) 정국제(鄭國濟)이며, 할아버지는 통덕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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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하동 출신의 교육가.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치명(致明), 호는 오촌(鰲村). 문충공(文忠公) 정지연(鄭芝衍)의 후손이다. 정의현(鄭誼鉉)은 근대기에 우리 민족의 후진성을 탈피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기증하여 육영원(育英院)을 설립하였다. 이후 가난한 집안의 자제들을 교육하고 지역 사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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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의 효부. 본관은 김해(金海). 아버지는 김종수이다. 고려 시대 우곡(愚谷) 정온(鄭溫)[1324~1402)의 후손인 정형수(鄭亨秀)의 처다. 정형수 처 김해 김씨는 성품이 순박하고 지극히 효성스러웠으며, 동기간에 우애가 있었다. 시어머니의 눈이 멀고 가세가 빈한하였으나 매일 시어머니의 뒷간 길을 업어 나르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마다 하늘에 기도하기를 25년간 계속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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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무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학연(學然), 호는 만초(晩樵). 고조할아버지는 청계(淸溪) 정국제(鄭國濟)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통덕랑 정현채(鄭顯采)이며, 할아버지는 증조봉대부 동몽교관(贈朝奉大夫童蒙敎官) 정환우(鄭煥愚)이다. 아버지는 옥초(玉樵) 정철기(鄭喆基)[1842~1916]이며, 숙부는 수재(守齋) 정봉기(鄭鳳基)[1861~1915]이다. 아버지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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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의 열녀. 본관은 밀양(密陽). 아버지는 손영지(孫永芝)이며, 남편은 정환탁(鄭煥倬)으로 본관은 영일(迎日)이다. 정환탁 처 밀양 손씨는 일찍부터 홀로된 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한 것으로 향리에 칭찬이 자자하였다. 정환탁에게 시집온 후 남편이 병이 들자 시부모를 극진하게 봉양하는 한편으로 남편의 병에 대해서는 항상 시부모에게 좋아지고 있다고 고해 걱정을 덜어 주었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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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의병. 조기섭(趙奇攝)은 1881년(고종 18)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신흥리 하신흥에서 태어났다. 1907년(순종 1)은 헤이그 밀사 사건과 그에 따른 고종의 강제 퇴위, 정미7조약[일명 한일신협약]에 의한 한국의 통치권 약화, 한국군 강제 해산 등으로 각지에서 의병 운동이 일어났다. 조기섭은 1907년 8월부터 하동 지역을 중심으로 박매지(朴每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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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계호(季豪), 호는 월산(月山). 어계(漁溪) 조려(趙旅)[1420~1489]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조원기(趙元耆)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조경진(趙經鎭)이다. 증조할아버지가 처음으로 진주 월횡리(月橫里)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할아버지는 조오(趙澳)이고, 아버지는 동몽교관(童蒙敎官) 조광식(趙匡植)이며, 어머니는 김석신(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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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의 조양래가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조양래 소장 고문서는 입안(立案) 2점이다. 입안은 관에서 발급하는 문서로, 개인의 청원에 따라 어떤 사실[매매, 양도, 결송(決訟), 입후(立后) 등]을 확인하거나 이를 공증해 주는 문서이다. 입안이나 명문(明文), 분재기(分財記) 같은 고문서는 후대의 증빙을 위해 작성하는 성격이 짙다. 조양래 소장 고문서로는 18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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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진정리에 있는 개항기 함안 조씨 4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조씨 형제는 어려서부터 아무리 바빠도 어버이 곁을 떠나지 아니하며 혼정신성(昏定晨省)[저녁에는 잠자리를 살피고 아침에는 문안을 드린다는 뜻으로, 부모를 잘 섬기고 효성을 다함을 이르는 말]하였다. 늘 환한 안색으로 좋은 음식과 따뜻한 의복으로 봉양하며, 어머니의 병환에 몸소 약을 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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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정기식의 문집. 정기식(鄭基軾)[1884~1958]의 자는 상덕(尙德), 호는 청천(晴天)이다. 회봉(晦峰) 하겸진(河謙鎭)의 문인이다. 정기식은 평소 내면에 힘쓰느라 남긴 글이 적기도 하지만 지은 글도 남에게 자랑하기 싫어하여 버린 것이 많기 때문에 집안에 남아 있는 글이 적었다. 이에 장남 정두용(鄭斗鏞)이 1968년 원근에 흩어져 있는 글을 모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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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영호(永好), 호는 수당(修堂). 처음에는 호를 ‘신계(新溪)’라고 하였다가, 자신을 수양하는 데 더욱 힘쓰겠다는 뜻을 담아 수당이라 하였다. 태안군수(泰安郡守) 모산(茅山) 최기필(崔琦弼)[1562~1593]의 10세손이며, 익찬(翊贊) 죽당(竹塘) 최탁(崔濯)[1598~1645]의 9세손이다. 5대조는 경암(景菴) 최동욱(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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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지역에 은거했던 의병. 최제학(崔濟學)은 1906년부터 최익현(崔益鉉)[1833~1906] 막하의 12의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항일 의병 활동을 하였다. 최익현은 이항로(李恒老)[1792~1868]의 문인으로 개항기의 대표적인 위정 척사론자이다. 최제학은 1882년(고종 19) 전라북도 진안군 목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탐진(耽津). 자는 중열(仲悅), 호는 습재(習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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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 정씨 종중에서 선조의 충절과 효행을 기록하여 드러내기 위해 기록한 문집. 후손 정필우(鄭必佑)가 1890년에 『충효세승(忠孝世乘)』을 편찬하였고 1932년에 하영태(河泳台)가 간행하였다. 시조 정신(鄭侁)의 14세손 정계남(鄭癸南), 15세손 정몽작(鄭夢綽), 16세손 정호신(鄭虎臣)의 충절 및 22세손 정치덕(鄭致德), 정치도(鄭致道), 정치행(鄭致行)의 효행을 기록한 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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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리에 있는 개항기 하동 정씨 문중의 재실. 하동군 적량면 동리 명천마을에 하동 정씨(河東鄭氏) 선산 입구 이정표가 있다. 계곡을 따라 1㎞쯤 산길로 오르면 새비골 마지막에 취정재(聚正齋)가 위치한다. 취정재는 하동 정씨 밀직공(密直公)과 찬성공(贊成公)의 묘 아래 건물[묘하각(墓下閣)]로서, 자손들이 매년 제사 때 머물며 준비하도록 하기 위하여 186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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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 있는 개항기 때 사당. 경천묘(敬天廟)는 1902년(고종 3) 지방 유림과 후손들이 발의하여 경순왕의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원래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 검남산 아래 신기마을[새터]에 위치하였는데, 하동·사천 지구 농업용수 개발 사업을 위해 하동호를 건설하게 되면서 수몰 지역이 되어 1988년 11월 20일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대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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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서황리 인천서원(仁川書院) 내에 있는 강학 공간. 하동 서황리 경현당(河東西黃里景賢堂)은 하동군 북천면 서황리 중촌마을에 위치한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하여 주변 경관이 매우 좋으며, 뒤편에는 대나무 밭이 조성되어 있다. 1719년(숙종 45) 하동군 북천면의 남포동에 죽당(竹塘) 최탁(崔濯)[1598~1645]을 기리기 위해 주담(珠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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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송리 금정사에 봉안되어 있는 불화. 기록에 의하면 「하동 금정사 칠성탱」은 1894년 5월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해인사 장경각에서 조성하여 밀양에 봉안되었으며, 금어(金魚)[불화나 불상을 그리는 사람] 경호(璟鎬)가 수화승 두명(斗明)의 출초(出草)를 바탕으로 그렸다. 경호는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화사로서 1894년 두명과 함께 경상남도 함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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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운암영당에 있는 최익현의 영정. 「하동 운암리 최익현 영정」은 크기가 가로 154㎝, 세로 101.5㎝이며, 세 폭으로 이어진 마본 바탕에 그려진 족자 형태이다. 화면 오른쪽 상단의 ‘면암 최선생 사십사세 진상(勉庵崔先生四十四歲眞像)’이라는 묵서명에 의하면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1833~1906]이 44세 되던 1878년(고종 15)에 조성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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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노래한 민요. 「하동 의병가」는 하동 지역에 전해 오는 의병들의 생활상을 읊은 정치 민요이다. 「임란 때 하동 의병 군가」라는 제목이 붙어 있지만, 대부분의 의병가가 근대에 와서 만들어진 것처럼 이 노래도 근대에 와서 불리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임진왜란 때 만들어진 왜의 침략에 대항하는 민요에는 「강강수월래」, 「쾌지나 칭칭 나네」, 「연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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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의 하민자가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하민자 소장 고문서는 1885년(고종 22) 이석렬(李錫烈)이 진사시(進士試) 삼등(三等) 제일백십팔인(第一百十八人)에 입격(入格)하였음을 증명하는 교지(敎旨) 1점이다. 개항기 교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서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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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에 있는 개항기 때의 정자. 하상정(河上亭)은 하동 송림 안의 활을 쏘던 장소였다. 하동 송림은 1745년(영조 21) 당시 도호부사였던 전천상(田天祥)이 강바람과 모래바람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심었던 소나무 숲으로, 현재 약 900여 그루의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2005년 2월 18일 천연기념물 제445호로 지정되었다. 노송의 나무껍질은 거북의 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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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학부(學夫), 호는 니곡(尼谷), 초명은 하성로(河性魯). 하홍도(河弘度)의 동생인 하홍달(河弘達)의 8세손이다. 고조할아버지 하달성(河達聖)은 호가 국헌(菊軒)인데, 성품이 강개하고 절개가 있어 종천서원의 치욕을 설욕했다. 증조할아버지는 하석봉(河錫鳳)이고, 할아버지는 하재원(河在源)이다. 아버지는 하상호(河相灝)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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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에 있는 개항기 때의 정자. 하동~진주 간 국도 2호선 북천삼거리에서 옥종 방면으로 지방도 1005호선을 따라 약 4㎞ 가면 옥종중학교가 나온다. 하한정(夏寒亭)은 옥종중학교를 등지고 있으며, 옥종면 복지회관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 양구마을 입구 수령이 수백 년 됨직한 소나무가 둘러진 야트막한 둔덕에 자리하며,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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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에 있는 개항기 여운택(余雲澤)을 기리기 위해 지은 재실. 학남재(鶴南齋)는 의령 여씨(宜寧余氏) 여철규(余喆奎)가 6대조 여운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 여운택은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였고 태도와 행실을 잘 갖추었으며, 또 남에게 시혜를 많이 베풀어 오래도록 가문과 고을 사람들이 사모하였다고 한다. 학남재라는 이름은 산의 명칭에서 따왔다. 여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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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의 열녀이자 효부. 본관은 합천(陜川). 남편은 학생(學生) 한덕동(韓德東)이다. 한덕동 처 합천 이씨는 15세에 한씨 집안으로 출가하였다. 시부모에게 효성을 다하고 남편을 예로 섬겨 일가가 화목하여 향리 사람들이 모두 열복(悅服)하여 칭송하였다. 19세에 자식도 없는데 남편이 중병에 걸려 몇 달 동안 병상에 눕게 되었다. 모든 약이 효험이 없자 이씨는 산천에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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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정규영의 문집. 정규영(鄭奎榮)[1860~1921]의 자는 치형(致亨), 호는 한재(韓齋)이다. 성재(性齋) 허전(許傳)[1797~1886]의 문인이다. 1943년에 정규영의 아들 정재완(鄭在涴)이 집안에 소장하고 있던 부친의 글을 모아서 4책으로 『한재집(韓齋集)』을 엮었다. 8권 4책의 목활자본(木活字本)이며, 표제(表題)와 판심제(版心題) 모두 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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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월횡마을에 있는 개항기 때의 정자. 함월정(涵月亭)은 횡구(橫溝) 조성택(趙性宅)[1827~1890]이 만년에 장수(藏修)[학문을 할 때 조금도 변함없이 열심히 한다는 의미]하던 곳이다. 조성택의 자는 인수(仁叟), 호는 횡구,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에 거주하였던 월고(月皐) 조성가(趙性家)[1824~1904]의 동생이며, 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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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정돈균의 문집. 정돈균(鄭敦均)[1855~1941]의 자는 국장(國章), 호는 해사(海史)이다. 월촌(月村) 하달홍(河達弘), 후산(后山) 허유(許愈),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의 문인이다. 정돈균의 손자 정을영(鄭乙永)이 집안에 보관하고 있던 조부의 유고와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글을 수습하여 2권 1책으로 『해사집(海史集)』을 만들고 만사(輓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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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매천 황현이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쌍계사를 유람하면서 읊은 한시. 「해조동석 유쌍계사 상국사암 위십일유기 선유연재기 왕석람사충 정다해규석 성남파혜영 추도공부(偕趙東石由雙溪寺上國師菴爲十日遊期宣悠然在箕王石藍師冲鄭茶海圭錫成南坡蕙永追到共賦)」는 황현(黃玹)[1855~1910]의 『매천집(梅泉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황현은 1887년(고종 24) 조동석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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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이택환의 문집. 이택환(李宅煥)[1854~1924]의 자는 형낙(亨洛), 호는 회산(晦山)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에 살았다. 『회산집(晦山集)』은 1920년에 간행되었으나, 서문(序文)과 발문(跋文)이 없어서 확실한 간행 경위를 알기 어렵다. 12권 6책의 목활자본(木活字本)이며, 표제(表題)는 회산집(晦山集), 판심제(版心題)는 회산선생문집(晦山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