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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하동 출신의 관인(官人). 강민첨(姜民瞻)은 『고려사(高麗史)』에는 ‘진주 진강(晉康) 출신’으로 되어 있으며, 1996년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발간한 『하동군지』에는 ‘지금의 옥종 땅[현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출신’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는 1906년 본래 진주 땅이던 옥종이 하동군에 속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강민첨(姜民瞻)은 뜻과 기상이 높고 성품이 강건하고 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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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경수(敬綏), 호는 괴포(槐圃). 강영수(姜英壽)의 후손이다.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이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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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이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 청정을 서두르자, 소론은 경종의 보호를 명분으로 신임사화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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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이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 청정을 서두르자, 소론은 경종의 보호를 명분으로 신임사화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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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흥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국간(國幹), 호는 모의재(慕義齋). 김언량(金彦良)은 1564년(명종 19) 무과에 급제하여 어모장군 충순위부사(禦侮將軍忠順衛副司)를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동생인 부사 김언공(金彦恭)과 함께 영남과 호남의 병사를 이끌고서 진주, 한산, 하동 섬진(蟾津) 등의 전투에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워 승지(承旨)에 제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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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용궁(龍宮). 임진왜란 때 수문장으로 진주성에서 순절하여 창렬사(彰烈祠)에 향사된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김준걸(金俊傑)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여생(金麗生)이며, 할아버지는 김명립(金明立)이다. 아버지는 청천재(淸川齋) 김상침(金尙琛)이며, 어머니는 윤효일(尹孝一)의 딸인 파평 윤씨(坡平 尹氏)이다. 정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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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무신. 본관은 용궁(龍宮). 자는 인선(仁善), 호는 농산(聾山). 임진왜란 때 수문장으로서 진주성에서 순절하여 창렬사(彰烈祠)에 향사된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의 후손이다. 김태권(金泰權)은 1880년(고종 17) 무과에 등제하여 선략장군 행 용양위부사과(宣略將軍行龍驤衛副司果), 내금위 효력부위 수문장((內禁衛效力副尉守門將) 등을 역임하였다. 본래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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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용궁(龍宮), 호는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은 어릴 적부터 성품이 강하고 굳세며 반듯하고 정직하였으며, 지기(志氣)가 총명하고 민첩하며 용기가 있었다. 학문을 익힐 적에는 선생이 감독하지 않아도 날마다 부지런히 공부하였고, 경전과 역사에 통달하여 대의(大義)를 분별할 수 있어 약관의 나이에 문무(文武)를 겸비하였다는 평을 들었다.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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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하동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치보(致甫), 호는 월포(月浦). 고려 후기 판삼사사(判三司事)를 지낸 문제공(文齊公) 박충좌(朴忠佐)[1287~1349]의 후손이다. 예안의 역동서원(易東書院)에 봉향된 박충좌는 성품이 온화하고 검약하며 일생 동안 글 읽기를 즐겨하였다고 전한다. 박서한(朴瑞翰)은 지기(志氣)가 호탕하고 고매하였으며 힘이 매우 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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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자빈(子彬). 문헌공(文獻公) 박연(朴堧)[1378~1458]의 후손이다. 박연은 조선 전기 세종 대의 음악 이론가로 1411년(태종 11) 진사에 등과했으며, 그 뒤 사간원 정언과 봉상판관 겸 악학별좌, 예문관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세종을 도와서 음악을 정비하는 데 많은 공헌을 했으며, 특히 율관 제작을 통한 편경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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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달성(達城). 달성군(達城君) 서영(徐穎)의 11세손이다.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이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 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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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이경(而卿). 정평공(貞平公) 서균형(徐鈞衡)[?~1391)의 후손이다. 서균형은 고려 후기의 관리로 우정언(右正言)과 정당문학(政堂文學) 등을 거쳐 1390년(공양왕 2) 예문관대제학으로서 조준(趙浚)·이지(李至) 등과 함께 공양왕의 세자 왕석(王奭)의 사부로 활동했다. 1391년(공양왕 3) 사망하였다. 숙종 말년 소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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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이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 청정을 서두르자, 소론은 경종의 보호를 명분으로 신임사화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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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이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 청정을 서두르자, 소론은 경종의 보호를 명분으로 신임사화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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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경앙(景仰). 고려 시대 병부낭중(兵部郎中)을 지낸 본량을나(本良乙那)의 후손이다. 양의(梁嶷)는 어릴 적부터 용모가 뛰어나고 타고난 성품이 빼어나 사람들이 큰 기대를 걸었다. 1651년(효종 2)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에 제수되었다. 흥양(興陽) 지역을 다스릴 때 어떤 승려가 귀족 및 고관과 교유하면서 요망한 짓을 일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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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무신. 여경규(余璟奎)의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선진(善珍), 호는 금산(錦汕). 호조판서를 지낸 여중부(余仲富)의 후손으로, 가선대부 여호철(余好哲)의 현손이다. 1893년(고종 30) 무과에 등제하여 그 해 12월 선전관이 되었다. 하동 송림 내에 여러 벼슬아치와 선비들이 무예를 닦고 회합하던 사정(射亭)인 하상정이 있었는데, 1880년에 세워져 많이 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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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무신.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상서(祥瑞)·서백(瑞伯), 호는 석계(石溪). 공산부원군(公山府院君) 문무공(文武公) 이천일(李天一)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공필(李公弼)로 통정대부 철산부사(通政大夫鐵山府使)를 지냈으며, 할아버지는 이교(李嶠)로 맹산· 익산· 화순 현감을 지내고 호조참의(戶曹參議)를 지냈다. 아버지는 이시준(李時俊)으로 통정대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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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하동 지역에서 재직한 문신.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자천(自天). 할아버지는 고려 후기의 이름난 문인인 이규보(李奎報)[1168~1241]이며, 아버지는 사재소감(司宰少監)을 지낸 이함(李涵)이다. 이익배(李益培)는 고려 후기 고종(高宗) 때 과거에 급제하여 하동감무(河東監務)로 벼슬을 시작하였으며, 임기를 마친 후 한림원(翰林院)에 뽑혀 들어갔다. 그 뒤 승진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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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하동 출신의 관인(官人). 이정립(李廷立)의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안중(安仲)이다.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에 증직되었다. 아버지는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 참찬관(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에 증직된 이찬(李欑)이며, 아들은 효자로 정려비가 선 이진복(李震復)이다. 사간원 정언을 지낸 이택환(李宅煥)이 지은 묘비명(墓碑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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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문신. 이찬(李欑)의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미보(美甫)이다.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 참찬관(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에 증직되었다. 아들은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에 증직된 이정립(李廷立)이며, 손자는 효자로 정려비가 선 이진복(李震復)이다. 하봉(霞峰) 조호래(趙鎬來)[1854~1920]가 묘비명(墓碑銘)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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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증조할아버지는 정을귀(鄭乙貴)이며, 할아버지는 석성현감을 지낸 정흥인(鄭興仁)이다. 아버지는 하동부원군(河東府院君) 정인지(鄭麟趾)이며, 어머니는 이휴(李携)의 딸이다. 전처는 세종의 아들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의 딸이며, 후처는 이계손(李繼孫)의 딸이다. 정경조(鄭敬祖)는 1485년(성종 16) 문과에 2등으로 급제하여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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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무신이자 곤양 정씨(昆陽 鄭氏) 시조. 자는 경운(景雲), 호는 매헌(梅軒), 시호는 충의(忠毅). 초명은 정무수(鄭茂樹)로, 1586년(선조 19) 무과에 급제한 후 선조의 명에 따라 기룡(起龍)으로 개명하였다. 첨정공(僉正公) 정중공(鄭仲恭)의 후손이며, 곤양 정씨의 시조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호조참판 정철석(鄭哲碩)이며, 할아버지는 호조판서 정의걸(鄭義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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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의신(義臣). 정양(鄭穰)의 9세손이다. 정양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423년(세종 5) 문과에 급제하여 좌사간(左司諫)을 지냈다. 경시서 주부를 역임할 때에 세종의 명을 받아 예문관 대제학 유사눌(柳思訥), 집현전 대제학 정인지(鄭麟趾), 봉상 판관(奉常判官) 박연(朴堧) 등과 함께 구악(舊樂)을 정리하였다.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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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정씨(河東鄭氏)의 후손이자 유학자.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광윤(光胤), 호는 모효(慕孝). 선대는 하동 사람인데 중세(中世)에 전라남도 나주(羅州)로 이거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장령을 지낸 정희주(鄭希周)이며, 할아버지는 담양부교수(潭陽府敎授) 정의중(鄭宜仲)이고, 아버지는 수의부위(修義副尉) 정승서(鄭承敍)이다. 부인은 참군(參軍) 신계규(申季糾)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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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무신. 정석민(鄭錫民)의 본관은 진양(晉陽)으로, 충장공(忠莊公) 정분(鄭苯)의 후손이다. 1886년(고종 23) 무과에 급제하여 선략장군 용양위 부사과(宣略將軍龍驤衛副司果)와 내금위 효력부위 수문장(內禁衛效力副尉守門將)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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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하동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하동(河東). 아들로 정윤당(鄭允當)과 정숙첨(鄭淑瞻)이 있는데, 정숙첨은 어머니가 연로하자 관직을 사직하고 하동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봉양하기도 하였다. 정세유(鄭世裕)는 1177년(명종 7) 대장군으로서 남적처치병마사(南賊處置兵馬使)가 되어 공주 명학소에서 일어난 망이·망소이의 난을 진압하였다. 명종 때 서북면 병마사로서 민간의 재물을 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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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경부(敬夫), 시호는 문절(文節). 아버지는 감찰을 지낸 정제(鄭提)이며, 어머니는 관찰사를 지낸 김약채(金若采)의 딸 광주 김씨(光州 金氏)이다. 정수충(鄭守忠)은 경사(經史)에 두루 통달하였으며, 재능과 행실이 뛰어났다. 처음에는 환관(宦官)을 교육하는 일을 담당하였으며, 뒤에는 세종의 명으로 영응대군(永膺大君) 이염(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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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아버지는 고려 명종 때 형부상서를 지낸 정세유(鄭世裕)이다. 형은 정윤당(鄭允當)과 우복야를 지낸 정진(鄭稹)이며, 사위는 무인 집정이었던 최이(崔怡)이다. 아들은 참지정사를 지낸 정안(鄭晏)이다. 정숙첨(鄭淑瞻)은 벼슬이 여러 번 올라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가 되고, 고종 때는 참지정사가 되었다. 거란의 금산왕자(金山王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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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정승서(鄭承緖)는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정 등을 역임하였다. 후에 선무원종일등공신(宣武原從一等功臣)에 녹훈되었다. 「선무원종공신록」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의 7년에 걸친 임진왜란 중 나라에 공이 있는 자를 선조가 도승지 신흠(申欽)을 시켜 공신도감(功臣都監)에서 발급했으며, 3등까지의 명단과 신분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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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화경(和卿), 초명은 정분(鄭奮). 할아버지는 형부상서를 지낸 정세유(鄭世裕)이며, 아버지는 평장사를 역임한 정숙첨(鄭淑瞻)이다. 무인집정인 최우(崔瑀)와 처남 매부의 관계이다. 정안(鄭晏)은 총명하여 젊어서 과거에 급제했으며, 음양·산술·의약·음률에도 두루 정통하였다. 과거에 급제한 후 진양(晉陽)의 수령이 되었으나 연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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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백욱(伯勗), 호는 일두(一蠹)·수옹(睡翁), 시호는 문헌(文獻)이며, 함양에서 출생하였다. 증조할아버지 정지의(鄭之義)는 고려 왕실의 족보 관리 기관장인 판종부시정(判宗簿寺正)을 역임하였다. 할아버지 정복주(鄭復周)는 고려 후기 벼슬이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에 이르렀는데, 조선 건국 후 전라도 경력(全羅道經歷)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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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하동 출신의 관인(官人). 본관은 하동(河東). 할아버지는 정공윤(鄭公允)으로, 중봉대부 영북등처행중서성 참지정사 상호군(中奉大夫嶺北等處行中書省叅知政事上護軍)에 증직되고, 추후 영양군공(榮陽郡公)에 봉작되었다. 아버지는 정성량(鄭性良)으로 자선대부 하남강북등처 행중서성좌승 상호군(資善大夫河南江北等處行中書省左丞上護軍)에 증직되고, 추후 영양군공(榮陽郡公)에 봉작되었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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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백저(伯雎), 호는 학역재(學易齋).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정지연(鄭芝衍)의 5세손이다. 아버지는 석성현감(石城縣監) 증영의정부사(贈領議政府事) 정흥인(鄭興仁)이며, 어머니는 진천의(陳千義)의 딸이다. 아들은 정현조(鄭顯祖)·정숭조(鄭崇祖)·정경조(鄭敬祖)·정상조(鄭尙祖)이다. 정현조는 세조의 딸인 의숙 공주(懿淑公主)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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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하동 출신의 문신. 정지상(鄭芝祥)의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누이동생이 원나라에 공녀로 가 그 인연으로 원에 자주 왕래하였다. 원에 숙위하러 간 공민왕을 시종하였고, 공민왕 즉위 후 그 공으로 누차 승진하여 감찰지평이 되었다. 전라도안렴사로 재직할 때, 원 순제(順帝)의 총애를 받던 야사불화(埜思不花)가 고려에 강향사(降香使)로 나와 가는 곳마다 횡포를 자행하였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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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하동 출신의 역관 본관은 하동(河東). 아버지는 현리(縣吏) 정국룡(鄭國龍)이다. 정지연(鄭之衍)은 역관으로서 중국어에 능통하여 여러 차례 원나라에 다녀왔다. 1280년(충렬왕 6) 교위(校尉)로서 원에 가 환도(還刀) 378자루를 바쳤다. 1282년(충렬왕 8) 원에 들어가 “탐라진수군(耽羅鎭戍軍)[일본과 남송을 정벌하기 위해 탐라에 주둔한 원과 고려의 군대]은 고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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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충의(忠義).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여일(汝一). 공대공(恭戴公) 정척(鄭陟)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장예원(掌隸院)에 재직한 정유신(鄭維新)이며, 아들은 형조참의를 역임한 정창이(鄭昌履)이다. 정지일(鄭之一)은 어려서부터 효성과 우애가 독실하고 용기와 지략이 뛰어났다. 임진왜란 때 정기룡(鄭起龍)의 막하에서 활동하여 혁혁한 전공(戰功)을 세워 군자감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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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무신. 정찬건(鄭燦健)의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문성공(文成公) 정인지(鄭麟趾)의 후손이다. 1891년(고종 28) 무과에 등제하여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오위장 전라감영중군(五衛將全羅監營中軍)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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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열지(悅之), 시호는 문경(文景). 아버지는 사헌집의(司憲執義)를 지낸 정희(鄭熙)이다. 정심(鄭深)과 정황(鄭況) 두 아들이 있다. 정초(鄭招)는 1405년(태종 5) 문과에 급제하고 1407년(태종 7) 중시(重試)에 합격하여 사헌집의와 판군자감(判軍資監), 승문원사(承文院事)를 차례로 역임하며 경연시강관(經筵侍講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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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무신. 정한영(鄭翰榮)의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성천(聖天)이다. 1852년(철종 3)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서 태어났다. 성품이 넓고 굳세며 절개가 뛰어났다. 1887년(고종 24) 무과에 등제하였으며, 1900년 궁내부 통신사주사를 역임하였다. 1894년(고종 31)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을 때 거듭 흉년이 들어 궁핍한 백성들을 널리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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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무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학연(學然), 호는 만초(晩樵). 고조할아버지는 청계(淸溪) 정국제(鄭國濟)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통덕랑 정현채(鄭顯采)이며, 할아버지는 증조봉대부 동몽교관(贈朝奉大夫童蒙敎官) 정환우(鄭煥愚)이다. 아버지는 옥초(玉樵) 정철기(鄭喆基)[1842~1916]이며, 숙부는 수재(守齋) 정봉기(鄭鳳基)[1861~1915]이다. 아버지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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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관인(官人). 본관은 하동(河東). 초명은 정종(鄭從). 아버지는 어사중승(御史中丞)을 지낸 정지상(鄭芝祥)이다. 정혼(鄭渾)은 전리좌랑(典理佐郞)으로 있을 때 어머니가 왜구에게 살해되자 복수책을 올리고는, 1389년(창왕 1) 소모별감(召募別監)으로 자진하여 경상도원수 박위(朴葳)를 따라 대마도 정벌에 종군하였다. 이후 왜선(倭船) 300여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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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功臣).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이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 청정을 서두르자, 소론은 경종의 보호를 명분으로 신임사화를 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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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관인(官人).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성보(聖輔), 호는 해산(海山).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의 후손이다. 조원우(曺元佑)는 태어난 해가 경인년(庚寅年)이라고만 되어 있어 어느 해인지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조식이 1558년에 지은 「유두류록(遊頭流錄)」에 “수재(秀才) 조원우가 와서 보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1530년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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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관인(官人). 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백부(伯符), 호는 지족당(知足堂)·충헌(忠軒). 5대조 할아버지는 문하지후(門下祗侯) 조순(趙淳)이며, 고조할아버지는 문하시중을 지내고 가흥백(嘉興伯)에 봉해진 조석견(趙石堅)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전중(殿中) 조익(趙益)이며, 할아버지는 사온시 직장(司醞寺直長) 조민원(趙敏原)이다.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을 지낸 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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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무신. 진경태(陳景泰)의 본관은 여양(驪陽), 자는 영선(榮善)이다. 여평군(驪平君) 진극일(陳克一)의 후손이다. 1888년(고종 25) 무과에 등제하여 선략장군 용양위 부사과(龍驤衛副司果)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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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극수(克修), 호는 죽당(竹塘). 할아버지는 최정(崔涏)이며, 아버지는 군수 최기변(崔琦抃)이다. 최탁(崔濯)은 1598년(선조 31)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에서 태어났다. 1630년(인조 8)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겸 비국랑이 되었으며, 1636년 광양현감에 제수되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서 싸웠으나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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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관인(官人) 본관은 진양(晉陽). 아버지는 하승해(河承海)이고, 형은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1377~1438]이다. 하경리(河敬履)는 북방 수호에 헌신하는 형을 대신하여 진주를 중심으로 지곤남군사(知昆南郡事), 지사천현사(知泗川懸事) 등 아홉 고을의 수령직을 역임하면서 노모를 극진히 봉양하고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세종은 하경리 형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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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무신. 하경복(河敬復)은 천성이 관후(寬厚)하고, 용모와 몸가짐이 아름다웠으며, 활쏘기에 능하였다. 조선 개국 초기 국가의 무비(武備)를 위하여 많은 공로를 세워 국가의 기틀을 견고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본관은 진양(晉陽). 아우는 하경리(河慶履)이고, 아들은 하한(河漢), 손자는 하숙보(河叔溥)이다. 하경복은 1402년(태종 2) 무과에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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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무신. 본관은 진양(晉陽). 할아버지는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이며, 아버지는 강장공(剛莊公) 하한(河漢)이다. 하숙보(河淑溥)는 1453년(단종 1) 무과에 급제하여 사용(司勇)이 되었으며, 1456년(세조 2) 무과 중시에 합격하여 길주판관을 지냈다. 1466년(세조 12) 통정대부로서 강계부사에 제수되었다. 1467년(세조 13) 명나라가 여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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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하동 출신의 무신. 하한(河漢)은 무용(武勇)이 뛰어나 조선 전기 세종부터 세조까지 네 임금을 섬기며 남방의 왜구와 북방의 여진을 토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433년(세종 15) 2월에 왕이 경회루에 회동하여 상호군(上護軍) 홍사석(洪師錫) 등 30여 명에게 대오를 갈라 과녁을 쏘도록 명하였다. 이때 하한이 화살을 제일 많이 맞혀 활을 하사 받았을 만큼 활솜씨도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