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하동군 출신의 서양화가. 본명은 김만두(金萬斗)인데, 해방 이후 어수선한 정국에서 자의반 타의반 김경(金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의 새 이름을 지어 준 사람은 친구이자 시인인 장호(章湖)로, ‘밭을 가는 농부의 마음으로 그림 그리는 일에 매진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김경은 1922년 4월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하평리에서 김진용(金辰容)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경상남도 하동군 출신의 아동 문학가. 남대우(南大祐)는 193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쥐와 고양이」가 당선되어 아동 문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동보통학교 교사로서 학생들에게는 우리말과 문화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쳤으며, 주옥같은 동시들을 발표하여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고운 심성을 지니도록 애쓴 문학가이자 교사였다. 남대우는 1913년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에서...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를 무대로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한 여류 소설가. 박경리는 1926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나 1945년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50년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학교] 가정과를 졸업하고,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55년 김동리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단편 「계산」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1958년 첫 장편 『애가』를 『...
근대와 현대 하동 출신의 판소리 명창. 유성준(劉成俊)은 1874년(고종 11) 3월 27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중대리 905-1번지에서 아버지 유경학과 어머니 장덕옥 사이에 큰아들로 태어났다. 13세 때 아버지를 따라 전라남도 구례군으로 이주해 명창 송우룡(宋雨龍)의 문하에서 판소리를 배웠다. 또한 당대 판소리 이론의 대가인 김세종에게 지도를 받아 실전과 이론에 뛰어나...
경상남도 하동군 출신의 소설가. 이병주(李炳注)의 본관은 합천(陜川). 호는 나림(那林)이다. 월간 『마당』[1984년 11월호]에서 이병주는 ‘나림’은 ‘어떤 숲’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1921년 3월 16일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옥정리 안남골[安南谷]에서 아버지 이세식(李世植)과 어머니 김수조(金守祚) 사이에서 3남 1녀 중 큰아들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 형제들이 ‘8형제...
근대와 현대 하동 출신의 판소리 명창. 이선유(李善有)는 1872년(고종 9)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대대리에서 태어났다. 10세 때부터 소리 공부를 시작하여 15세 때 전라남도 구례의 송우룡(宋雨龍)[1835~1897]을 찾아가 3년간 공부를 했으며, 이후 혼자 공부하다 1902년 전라북도 순창의 김세종(金世宗)에게 가르침을 받아 30세를 바라본 나이에 판소리에 일가를 이...
경상남도 하동군 출신의 현대 시인. 1963년 장편 서사시 「미 8군의 차」로 필화 사건을 경험한 정공채(鄭孔采)는 첫 시집 『정공채 시집 있습니까』를 펴내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격변기 한국 문단의 발전은 물론 고향 하동에 대한 남다른 사랑으로 후배 문인들의 등불이 되었다. 정공채는 1934년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에서 태어...
경상남도 하동군 출신의 현대 시인. 본관이 연일(延日)인 정규화(鄭奎和)는 1949년 지리산 바로 아랫마을인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위태리에서 태어났다. 궁핍한 촌락에서 태어난 정규화는 산으로 끌려간 아버지를 기다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산이 주는 상처를 안고 살았으며, 아버지의 부재가 부른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고 시인은 술회하곤 했다. 즉 이 빈곤과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