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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탑리에 있는 절터. 봉상사지 일대에 탑[탑리 삼층석탑]이 있어 마을 이름이 탑리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탑의 기단부[받침 부분]는 단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3층으로 된 탑신부[몸체 부분]는 통일 신라 시대의 일반적인 석탑 양식을 보인다. 몸체를 받쳐주는 괴임은 1층에만 2단으로 만들어, 1층이 2, 3층에 비해 훨씬 높은 편이다. 탑은 전체적으로 조각 수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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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신흥마을에 있는 절터. 신흥사지는 지리산 화개동천의 중심에 위치하여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신흥사는 풍수지리상 금계포란형(金鷄包卵形)의 형국으로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남쪽에서 번창했던 사찰이었다. 서산대사는 ‘하늘이 숨겨둔 아름다운 곳, 신선의 땅’이라 극찬하였으며, 많은 선승들이 머문 곳이기도 하다. 고려 시대에 벼슬을 버리고 지리산에 숨어 든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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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양구리 양구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양구리 요지(良邱里窯址)의 정확한 조성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자기편의 형태를 놓고 보면 18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백자를 생산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 농업 생산력의 발달로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자 민(民)의 백자 수요가 증가하면서 하동군 북천면과 그 주변에 요지가 확산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옥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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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유허지. 하동읍 해량촌에 오룡정(五龍亭)이라는 정자 터가 있다. 오룡정은 생원 손시(孫時)가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손시의 부친은 8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생원과 진사가 되어 당시 사람들이 팔룡(八龍)이라 불렀다. 그 후 팔룡의 한 사람인 손약의 다섯 아들이 또 생원과 진시가 되었기에 이를 기리어 오룡정이라 부르게 되었다. 오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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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에 있던 고려 후기 석성.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 이명산 천왕봉 정상에서 서편으로 해발 550m 지점에 위치하며, 길이 35m, 높이 1.5m, 폭 1m 정도의 석재로 쌓았다. 성은 파괴되었으나 윤곽이 뚜렷하게 남아 있고 주위에 성을 쌓을 때 운반한 돌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고려 후기 왜구들의 남해안 침입은 해적들의 노략질 같은 소규모 침입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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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백련리 사기마을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와 조선 시대 토기와 자기를 굽던 가마터. 백련리 도요지(白蓮里陶窯址)는 16~17세기 조선 자기의 본류인 분청과 상감, 철화백자를 굽던 곳이다. 출토되는 그릇의 종류는 대접·접시·사발·병·항아리·장군·잔 등으로 다양하며, 주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그릇을 굽던 곳으로 보고 있다. 바탕흙은 회색이며, 모래 같은 불순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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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서황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하동 서황리 백자 요지(河東西黃里白磁窯址)는 18~1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건립 경위를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17세기 이후 농업 생산력의 발달에 따른 상품 화폐 경제의 진전과 관련한 민(民)의 백자에 대한 수요 증가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동 서황리 백자 요지의 북서쪽 직선거리 2.3㎞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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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이명산(理明山) 중턱에 있는 절터. 이명산[569m] 북쪽 산정 가까이에 위치한 석불사지에는 파괴된 석굴 2기와 암벽에 조각된 마애불상이 있다. 석굴은 이명산을 사이에 두고 사천시 곤양면 다솔사(多率寺)의 보안암(普安庵) 석굴과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다. 석굴의 벽과 천장이 모두 무너져 원형을 잃었으나, 다솔사 보안암의 석굴과 마찬가지로 자연석을 쌓아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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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있는 정기룡(鄭起龍)의 생가 터.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仲坪里) 당사곡(堂沙谷)과 중방동(衆芳洞) 등 일대는 매헌(梅軒) 정기룡[1562~1622] 장군이 태어난 곳이자, 무과에 급제하기까지의 청소년 시절에 학문을 닦고 무예를 연마한 곳이다. 정기룡 장군은 임진왜란 때 상주성 싸움에서 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서 왜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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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에 있는 김성일(金誠一)의 유허지. 학봉(鶴峰) 김성일[1538~1593]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인 1592년 4월 11일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임명되었다. 전쟁이 터지자 초유사(招諭使)가 되어 흩어진 관병을 수습하고 경상도 일대의 의병을 일으키는 데 진력하였다. 이어 경상우도관찰사로 임명되자, 왜군의 호남 진출로가 되는 진주성 방어 전략을 지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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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화정리 화정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화정리 요지(花亭里窯址)의 정확한 조성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이웃에 있는 가마터의 조성 연대를 놓고 보면 18~19세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널리 산포하고 있는 도자기편들을 보면 빙렬이 거의 없는 순백자이므로, 17세기 이후 농업 생산력의 발달로 인한 상품 화폐 경제의 진전과 관련한 민(民)의 백자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