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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하동의 열녀. 본관은 광산(光山). 남편은 김경좌(金慶佐)로,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김경좌 처 광산 김씨는 18세에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대덕리로 시집을 왔다. 효심으로 시부모를 정성껏 모시고 남편에게는 유순했으며 동서 간에는 우애롭게 지냈다. 1871년(고종 8) 봄에 남편이 병에 걸리자 하인을 시키지 않고 몸소 약을 달이고 죽을 쑤어 간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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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출신의 효열부.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전호(全皓)이다. 남편은 김병희(金炳希)로, 본관은 용궁(龍宮)이다. 김병희 처 전주 전씨는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에서 태어났다. 19세에 시집와 시부모를 정성껏 봉양하고 남편을 극진하게 섬기었다. 1952년 남편이 갑자기 눈이 멀더니 3년 뒤에는 반신불수가 되었고, 결국 1959년 11월에 별세했다.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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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의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연안(延安). 문절공(文節公) 차원부(車原頫)[1320~1399]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차승이(車昇伊)이다. 남편은 김주봉(金周鳳)으로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김주봉 처 연안 차씨는 타고난 성품이 효성스럽고 유순하여 출가하기 전에도 부모에게 사랑을 받았다. 경상남도 하동 지역으로 시집온 후 남들이 힘들어하는 일도 무던히 견디고 방직과 농사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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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에서 활동한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진양(晉陽). 고려 후기 인물인 벽은(僻隱) 유번(柳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유의경(柳宜警)이다. 시아버지는 학성군(鶴城君) 김완(金完)의 후손인 김정필(金貞弼)이며, 남편은 김찬무(金贊武)로,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김찬무 처 진양 유씨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부덕(婦德)을 갖추었다. 13세에 어머니 한씨(韓氏)가 중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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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의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경주(慶州).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학여(金學汝)이다. 남편은 본관이 김해(金海)인 김경수(金京秀)로, 모암(慕庵) 김극일(金克一)[1382~1456]의 13세손이다. 시아버지는 김국욱(金國旭)이다. 김학여의 딸 경주 김씨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얌전하고 정숙했으며, 효성과 우애가 지극해 집안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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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의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진양(晉陽). 아버지는 정해종(鄭海鍾)이다. 남편은 문수호(文守浩)로, 본관은 강성(江城)이다. 문수호 처 진양 정씨는 어려서는 부모에게 효성스러웠으며,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로 시집을 와서도 시부모 봉양과 남편 내조를 잘했다. 남편이 광견(狂犬)에게 물려 병이 나자 지성으로 간호하고, 병세가 심해지자 손가락에서 피를 내어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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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의 열녀. 본관은 진양(晉陽).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진문(河晉文)이다. 남편은 박이한(朴而翰)으로,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박이한 처 진양 하씨는 시집간 지 한 달 만에 남편 박이한이 독사에 물려 죽자, 독사가 나타난 곳으로 가서 슬피 울며 이틀을 기다려 독사를 잡아 물어서 씹어 죽이고는 시신을 입관한 뒤에 목을 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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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의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해주(海洲). 아버지는 정우교(鄭愚敎)이다. 남편은 박재춘(朴在春)으로, 본관은 태안(泰安)이다. 박재춘 처 해주 정씨는 18세에 박재춘과 혼례를 치렀으나, 채 시가로 오기도 전에 친정에서 남편의 발병 소식을 들었다. 밤새껏 말을 타고 달려와서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빌며 온갖 방법을 동원했으나 8개월 만에 남편의 병이 더욱 악화되었다. 손가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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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안릉(安陵). 아버지는 이병의(李柄義)이다. 남편은 백남봉(白南鳳)으로, 본관은 수원(水原)이다. 백남봉 처 안릉 이씨는 천성이 효성스러워 시집을 온 후 시부모를 극진히 섬겼다. 23세에 남편의 병이 심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흘려 넣었으나 끝내 남편이 죽자 통곡을 하면서, “박복한 몸이 살아서 무엇 하리.” 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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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밀양(密陽). 남편은 백낙훈(白樂訓)이다. 밀양 손씨는 어려서부터 부모의 명을 어기는 일이 없어 효녀라 칭찬받았다.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로 시집을 왔는데, 남편이 중병에 걸려 여러 달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 병의 증상을 알기 위해 똥의 맛을 보기도 하고 병상의 고통을 자기가 대신하겠다고 하늘에 빌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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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선조의 생모이자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부인. 본관은 하동(河東). 증조할아버지는 하동부원군(河東府院君)과 영의정을 지낸 정인지(鄭麟趾)[1396~1478]이며, 아버지는 판중추부사를 지낸 정세호(鄭世虎)[1486~1563]이다. 남편은 덕흥군(德興君)[1530~1559]이다. 가례를 올리고 하동군부인(河東郡夫人)으로 제수되었다. 자녀는 3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