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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의병장. 강봉근(姜奉根)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1872년(고종 9) 9월 30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명호리에서 태어났다. 1908년(순종 2) 무신 의병에 가담하여 활동을 했다. 일본인 진주시장을 암살하기 위해 한국인 기생을 첩보원으로 삼아 도움을 얻었는데, 뒤에 이 기생은 미수 공범으로 처리가 되었다고 한다. 어느 해 설날, 제사를 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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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성옥(姜聖玉)의 본관은 진양(晉陽)이고, 자는 원찬(遠贊), 호는 매담(梅潭)이다. 1879년(고종 16) 경상남도 하동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의롭고 호탕하며 뜻이 강직하여 한일 합방을 당한 때로부터 망국의 한을 품고 늘 분하게 여겼다. 3·1 운동이 일어나자 솔선하여 동지들과 더불어 결사적으로 항거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6개월간 옥고를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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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우석(姜佑錫)은 1901년(고종 38) 3월 9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 1286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연희전문학교에 재학 중 3·1 운동에 참가하여 정학 처분을 받았다. 그 해 9월 기독교 게통의 진주 광림학교(光林學校) 교사로 재직 중, 홍수원과 함께 국권 회복 운동을 위한 혈성단(血誠團)을 조직하여 항일 투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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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계천리에 있는 재래시장. 계천시장은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계천리 영천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영천은 원래 곤양군 서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계천리로 병합되어 하동군 남면으로 개편되었다가, 1933년에 금남면으로 편입되었다. 계천시장은 옆으로 하동~남해 간 국도 19호선이 지나고 있고, 하동군 금남면과 하동군 고전면의 경계를 이루는 주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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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에 있었던 정기 시장. 경상남도의 서남부인 하동군 남부에 위치한 고전시장은 남해고속도로와 인접한 하동군의 교통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하동군 고전면의 서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고 있는 섬진강과도 가까운 곳이었다. 『고전면지(古田面誌)』에 의하면 1960년과 1970년대에는 연간 판매고가 하동시장 다음으로 높았다고 한다. 그동안 고전시장은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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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정집, 호는 독수. 아버지는 만은 권계주이고 형은 역시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권대섭(權大燮)이다. 권대형(權大衡)은 1898년 8월 28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궁항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4일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장터에서 하일로, 권상숙(權尙淑), 권복대(權福大) 등과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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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7월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조직된 항일 여성 운동 단체. 근우회는 1927년 창립되어 1931년에 해산된 여성 항일 구국 및 여성 지위 향상 운동 단체이다. 1927년 신간회가 조직된 직후, 자매단체의 성격을 띠고 같은 해 5월 민족주의 여성 운동계의 김활란(金活蘭)·유영준(劉英俊)·유각경(兪珏卿)·최은희(崔恩喜)·현신덕(玄信德) 등과 사회주의 여성 운동계의 박원민(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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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사평리에 있는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사평리 황치산(黃峙山) 기슭에 있는 금선암(金仙庵)은 마을 뒤에 자리하고 있어 마을 사람들의 기도와 쉼터 구실도 하는 절이다. 멀리 보이는 곳에 안산(案山)인 이명산(理明山)[570m]이 있다. 1980년 이말여[법명 묘약행(妙藥行)] 보살이 창건한 절로, 금선암이란 절 이름은 범어사(梵魚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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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군명(君明), 호는 이헌(梨軒). 안경공(安敬公) 김영정(金永貞)의 후손이다. 김석배(金碩培)는 1879년(고종 16)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정직하고 강개(慷慨)하여 남의 과오를 보면 즉시 고치도록 권하고, 남의 환난을 보면 즉시 마음을 다하여 구휼하였다.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도왔으며, 이익을 보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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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용궁(龍宮). 자는 도경(道卿), 호는 하우(何尤)·하우재(何尤齋). 아버지는 김제응(金濟應)이고 어머니는 김내동(金內東)이다. 아들로 김병성(金炳成), 김병홍(金炳洪), 김병인(金炳仁)을 두었다. 김홍권(金弘權)은 1892년(고종 29) 1월 25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115번지에서 태어났다. 주로 농업에 종사하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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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에 있는 항일 투사 김홍권(金弘權)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하우(何尤) 김홍권[1892~1937]은 1908년 하동보통학교[하동향교 내 설치]에 재학 중이던 1909년 안희제, 이원식, 남형우와 함께 비밀 결사대인 대동청년당을 조직해 지하공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1 운동을 목도하고 자극을 받아 메이지 대학생 유경환과 함께 중국 상하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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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지역에 있던 삼한 시대 변진(弁辰) 12국의 하나. 변낙노국(弁樂奴國) 또는 변진낙노국(弁辰樂奴國)이라고도 했던 낙노국(樂奴國)은, 토지가 기름지고 오곡과 벼를 가꾸기에 알맞았으며 누에를 치는 법을 알아 비단을 짜 옷을 지어 입었던 문화 국가였는데, 지명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삼한 시대 섬진강 주변에 있던 다사촌(多沙村)에 변진 12국 가운데 하나로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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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및 일제 강점기에 경상남도 하동 출신이거나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하동은 동학 농민 운동, 3·1 운동을 거치면서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자랑스러운 고장이다. 하동에는 독립운동의 사적지와 독립운동의 공적으로 정부 차원의 서훈을 받은 애국지사가 5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으로 촉발된 의병 운동은 하동에서도 활발했다. 의병 활동과 교전 회수의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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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에서 1894년 일어난 동학 농민군을 추모하기 위한 위령탑. 1894년(고종 31) 동학 농민군이 외세를 물리치고 민족과 조국을 구하려는 굳은 의지로 싸울 때, 서부 경상남도의 농민군은 하동 북방리 고성산성(河東北芳里高城山城)에서 집결하여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이때 농민군 수천 명이 현장에서 죽었다고 하는데, 일본군 보고서에 의하면 농민 농민군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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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역(驛)은 중국의 수·당 제도를 모방하여 487년(소지왕 9) 3월에 시작되었다고 하며, 조선 시대 조창(漕倉)과 운조(運漕)를 담당한 대표적 교통 기관이다. 고려 시대의 참역제(站驛制)는 전국의 역로의 계통을 22도로 나누었다. 그중 하동은 산남도(山南道)에 속하였고, 산남도에는 28참역(站驛)이 있었다. 당시 마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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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영빈(文永彬)은 삼우당(三憂堂) 문익점(文益漸)의 17세손이며, 직하재(稷下齋) 문헌상(文憲尙)의 6세손이다.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서 태어났다. 1910년 한일 합방이 선포되자 독립 기구에 참여하고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 상해 임시 정부의 전신인 배달학회(倍達學會)[주석 이시영]에서 총무부장직을 맡아 당시 외교부장이던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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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하동 3·1운동의 효시는 1919년 3월 13일 하동시장에서 전개된 독립만세 사건이다. 하동군 양보면 출신으로 양보일신학교 교사로 있던 정세기(鄭世基)[1984~1981]와 정성기(鄭成基), 정윤기(鄭潤基)의 주도로 시작된 이날의 시위는 군민들의 큰 관심과 호응을 얻어 하동군 각지에 자극을 주었다. 그 해 5월에도 하동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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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묵(朴永默)은 같은 마을 사람인 이종인(李宗仁) 등과 함께 1919년 4월 6일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에 있는 배다리장터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뒷날 일본 경찰이 마을을 포위하고 주동자를 찾자 스스로 주동자라고 외쳐 경성고등법원에서 2년 6개월 형을 받아 복역하였다. 박영묵의 본관은 밀양(密陽)으로, 1881년 5월 5일 지금의 경상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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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하동 3·1 운동의 효시는 1919년 3월 13일 하동시장에서 전개된 독립만세 사건이다. 하동군 양보면 출신으로 양보일신학교 교사로 있던 정세기(鄭世基)[1984~1981]와 정성기(鄭成基), 정윤기(鄭潤基)의 주도로 시작된 이날의 시위는 군민들의 큰 관심과 호응을 얻어 하동군 각지에 큰 자극을 주었다. 하동 지역에서는 그 해 5월에도 하동공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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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지리산 쌍계사의 말사. 서운암(瑞雲庵)은 멀리 옥산(玉山)을 바라보며 좌우로 산자락이 감싸고 있는 야트막한 산기슭에 있다. 1950년 6·25 전쟁 이후 대곡리 마을에 살던 장경순 보살이 창건하였다. 처음에는 장경순의 어머니가 기도나 치성을 드리던 곳이었으나, 장경순이 대웅전과 산신각을 지었다. 1982년에는 종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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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고려 전기까지 경상남도 하동군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의하면 “하동군은 본시 한다사군으로, 경덕왕이 [하동으로] 이름을 고쳐 지금도 그대로 되어 있는데, 영현(領縣)이 셋이다. 성량현은 지금 금양부곡(金良部曲)[지금 하동군 금남면]이요, 악양현(嶽陽縣)은 본시 소다사현인데 경덕왕이 [악양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되어 있다[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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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우리나라 재래시장은 일반적으로 보부상과 행상 중심의 삼일장 내지는 오일장 형식으로 출발하여 오늘의 정기 시장 및 상설 시장으로까지 발전해 왔다. 이렇게 형성된 시장은 주로 교통이 편리하거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중심으로 형성이 되었으나, 근래에 와서는 전통적인 재래시장의 규모는 줄어들고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상설 가게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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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에 있는 재래시장. 악양시장은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의 중심지인 정서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한 때 악양면 주민들은 물론이고 인근의 청암면 일부 주민들과 섬진강 건너 전라남도 광양시 다압면 일부 주민들까지 이용을 함으로써 크게 성하였던 곳이다. 1일·6일 형식으로 서는 오일장이었으나 지금은 오일장의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장이 서지 않는다. 19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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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직할 교구의 사찰. 약천사는 고성산(高城山)에 있는 절로, 일명 ‘약수암(藥水庵)’이라고도 한다. 인근의 고성산성(高城山城)[1978년 여재규가 지은 『하동군사(河東郡史)』에는 고승산성(孤僧山城)으로 되어 있음]은 정확한 축조 연대는 알 수 없으며, 1770년경까지 성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성첩이 조금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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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화정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지리산 쌍계사의 말사. 양천암(楊川庵)의 뒤쪽은 황제의 면류관(冕旒冠)과 같이 생겼다고 하는 576m의 천황봉(天皇峰)이 에워싸고 있으며, 멀리는 이명산(理明山)이 보이는 곳에 있는 깊은 산 중의 조그마하고 아름다운 절이다. 건립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어느 대사(大師)[일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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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에 있는 정기 시장. 옥종시장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의 면소재지인 청룡리에 위치해 있다.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는 1990년 이전까지는 용동(龍東)이라 하였는데, 1990년에 와서 개칭이 되었다. 옥종시장은 3일·6일 형식으로 5일마다 열리는 정기 시장으로, 주로 지리산 부근에서 나는 임산물과 농산물 그리고 가까운 남해 바다 및 섬진강에서 나는 어물(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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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의병장. 유명국(柳明國)의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1869년 3월 2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에서 태어났다. 유진환(柳震煥)으로도 불렸다. 어려서 진주시 수곡면 창촌리로 이사 가서 성장했고, 다시 아버지를 따라 산청군 시천면 공전리로 옮겨 그곳의 의병진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제1차 의병 전쟁이 일어나자 가솔을 이끌고 노응규 진영에 가담하여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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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1894년까지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송원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역참(驛站)은 육로의 운송을 담당하는 교통 기관으로서 공문서의 전달, 관물(官物)의 수송, 공무로 왕래하는 관리에게 교통 및 숙박의 편의 등을 제공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율원역(栗原驛)은 경상남도 서부와 중앙을 연결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고려사(高麗史)』 병지에는 산남도(山南道) 소속 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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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경호(李璟鎬)[혹은 李敬鎬로도 씀]는 1890년(고종 27) 6월 17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291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했던 이경호는 1910년 경술국치의 비보를 듣고 3일간 식음을 전폐하였다. 그리고 붉은 글씨로 ‘항일 투쟁’, ‘일본 타도’를 써서 벽에 붙여두고 항일 투쟁의 의지를 다졌다. 이후 성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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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범호(李範鎬)는 1883년(고종 20) 2월 10일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에서 태어난 뒤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555번지로 이주하여 살았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던 중 1919년 3월 정낙영(鄭洛榮)·정재운(鄭在雲)·정희근(鄭禧根) 등과 「대한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3월 18일 하동읍 장날 운집한 군중 앞에서 「대한독립선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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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정낙영(鄭洛榮)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정낙영[1879~1947]은 1919년 3월 29일 하동군 금남면과 진교면의 3·1 운동을 지도 지휘하고, 남해군남해읍까지 진출하여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때 만든 독립선언서는 정낙영을 비롯한 하동 출신 인사 12명이 지은 것으로 현재 하동군청 민원실 입구에 복사 확대본이 게시되었고,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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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 정섬기(鄭暹基)[1895~1954]는 영일 정씨로 아버지는 정환칠(鄭煥七), 어머니는 김관동(金冠東)이다. 정섬기는 1895년 12월 26일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 600번지에서 태어나 1919년 하동읍 만세운동 등 독립운동을 하다가 1954년 7월 24일 별세하였다. 부인은 정양남이며, 그 사이에 2남을 두었다. 정섬기는 선조인 정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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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시대 하동 지역의 별칭. 강의 동쪽 고을이라는 의미의 ‘하동현’을 ‘청하현(淸河縣)’으로도 불렀는데, 이는 맑은 섬진강을 끼고 있는 고을이라는 의미였다. 하동군은 고려 시대 진주목(晉州牧)의 영현(領縣)으로 진주목에는 하동군 외에도 강성군(江城郡), 사주(泗州), 악양현(岳陽縣), 영선현(永善縣), 진해현(鎭海縣), 곤명현(昆明縣), 반성현(班城縣), 의녕현(宜寧縣)이 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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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의 효자 추성원(秋成元)의 효행에 대한 표창 상서문 및 이에 대한 답서. 추성원은 고려 충렬왕 때 민부상서 예문관 대제학과 국학교수 재임 중 『명심보감(明心寶鑑)』을 지은 추적(秋適)의 18세손이며, 조선 임진년의 공신이며, 명나라 무강자사 추수경(秋水鏡), 증직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의 9세손이며, 순조 때의 효자이다. 1850년(헌종 15) 2월 13세 때 부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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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흥(咸興).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구원군에 소속되어 장수로 활약한 추수경(秋水鏡)[1530~1600]의 9세손이다. 부인은 평산 신씨(平山申氏)이며, 그 사이에 아들은 없고 딸만 둘을 두어 양자를 들였다. 추홍순(秋鴻順)[1894~1959]은 1894년 3월 12일 하동군 금남면 대송리 232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9일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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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는 정기 시장. 하동시장은 경상남도 하동군의 읍 소재지에 위치해 있으며, 하동 군민들의 의식주에 필요한 물품과 재료들을 사고파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교역의 장소다. 하동은 지리적으로 지리산과 남해 그리고 섬진강에 연접해 있기 때문에 산, 물, 들판에서 나는 모든 산물들이 풍부한 곳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하동시장에서는 지리산 임산물과 농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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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경상남도 하동군의 역사를 기록하여 발간한 최초의 한글판 군사(郡史). 하동 출신의 도정(島亭) 여재규(余宰奎)는 일생을 한글판 『하동군사』 발간에 심혈을 기울인 인물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하동군의 역사를 언급한 기록으로는 각종 역사서에 산재해 있던 단편적인 자료가 있고, 군지로서는 1830년에 만든 『하동부읍지(河東府邑誌)』와 1930년에 간행된 『속수하동지(續修河東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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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하일로(河一魯)[1868~1938]는 1868년 12월 1일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682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양(晉陽), 아버지 하상곤(河相崑)과 어머니 조덕동(趙德同) 사이의 4남이다. 부인은 이장전(李長田)이며, 슬하에 1남을 두었다. 하일로는 1919년 3월 24일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동하였다. 거사 전날 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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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지리산 쌍계사의 말사. 학방암(鶴芳庵)은 봉학산(鳳鶴山)에 있는 절로 ‘학이 깃든 절’이라고도 한다. 학방암의 대웅전 정면으로 849m의 금오산(金鰲山)이 보이고, 한쪽으로는 남해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한 아담하고 아름다운 암자이다. 1974년 7월 26일 경상남도도지사가 발행한 사찰 등록증에는 이 사찰이 고려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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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탑리에 있는 재래시장. 화개장터는 옛 화개장 터에 현대에 들어와 복원한 재래식 시장이다. ‘화개시장’이라고도 부르지만 옛 명칭을 그대로 써서 ‘화개장터’로 부르는게 일반적이며, 공식 명칭 역시 ‘화개장터’이다. 화개장은 본래 화개천이 섬진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열리던 장으로, 섬진강의 ‘가항종점(可航終點)’ 즉 행상선(行商船) 돛단배가 들어올 수 있는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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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1894년까지 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역참(驛站)은 육로의 운송을 담당하는 교통 기관으로 중앙과 지방 관서 간의 공문서 전달, 어사와 관리의 왕래 및 숙박, 관물(官物)의 수송을 돕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횡포역(橫浦驛)은 경상남도 서부와 중앙을 연결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고려사(高麗史)』 병지에는 산남도(山南道) 소속 역으로 되어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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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1894년까지 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남산리에 설치된 숙박 시설. 원(院)은 고려와 조선 시대,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나 상인 등 여행자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위해 교통의 요지에 설치한 숙박 시설이다. 횡포원(橫浦院)은 횡포역(橫浦驛) 근처에 이용자의 편의를 돕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횡포원이 “횡포역 동쪽 1리 지점에 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