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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에 있는 3·1 독립 만세 기념비. 하동군 고전면과 금남면 청년들은 애국에 뜻을 두고 일신단(一身團)을 조직하였는데, 이는 민족 대표 33인을 본받아 만든 항일 단체였다. 일신단은 1919년 4월 6일 고전면 주교리의 일명 배다리장터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다음날 일본 경찰과 헌병들이 총검으로 출동하자, 일신단원들은 노약자들을 하동군 고전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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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곤양군(昆陽郡) 서면(西面) 가인동(加引洞)의 ‘가’자와 명덕동(明德洞)의 ‘덕’자를 따서 가덕리(加德里)라 하였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 가인포촌(加引浦村),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가인동이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 곤양군 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광포동(廣浦洞)·가인동·명덕동 등이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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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집안에 위치하는 신적 존재인 집의 신에게 가정의 평안과 무사를 의탁하는 민간 신앙. 가정 신앙이란 마을 공동체 구성원의 대동과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 제사와는 달리 가내의 요소마다 신이 존재하면서 집안을 보살펴 준다고 믿고, 그 신에게 정기적 또는 필요에 따라 행하는 의례이다. 하동 지역에서 가신 신앙으로 모셔지는 신으로는 조상신, 성주신, 조왕신, 삼신,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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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아이들이 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유희요. 「각거리」는 예부터 아이들이 다리 세는 놀이를 할 때 즐겨 부르는 노래로 유희요이자 동요이다. 하동 지역의 「각거리」는 중부 지방이 중심이나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이거리저거리각거리」의 변이형이다. 이를 「언가(諺歌)」라고 일컫기도 한다. 하동의 「각거리」는 1862년 진주 농민 항쟁의 주도자 중 한 사람인 유계춘(柳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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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진양 정씨의 재실.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의 도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북방마을길을 따라 가다 보면, 길이 끝나는 지점에 하천을 건너는 북방1교가 나타난다. 다리를 건너지 말고 위쪽으로 20여 m의 산책길을 따라 오르면 하천에 징검다리가 있는데, 징검다리를 건너면 간취당(澗翠堂)에 이른다. 1821년(순조 21)에 창건하고, 19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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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 갈사리에 있는 지금은 육지가 된 섬. 본디 이름은 갈도(葛島)로 조선시대 말까지 하동군 마전면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으로 나팔동·연막동·서근내동·내도동을 병합하고 갈도에 있는 네 개 마을이라는 뜻으로 갈사리(葛四里)로 명명하면서 갈사도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현지에서는 갈사도와 갈도가 혼용되고 있으며, 갈사도라고 부를 때는 갈사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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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바다 위에 마치 칡덩굴 모양으로 뻗어 있는 갈도(葛島)의 나팔동(羅八洞)·연막동(蓮幕洞)·서근내동(西斤乃洞)·내도동(內島洞)[일명 안섬]을 통합하면서 갈도에 있는 네 마을이라는 뜻에서 갈사리(葛四里)라 하였다. 『신구대조 조선전도 부군면리동 명칭일람』에는 갈서리(葛西里)로 기록되어 있는데, 『조선지형도』에 현재와 같은 갈사리로 기록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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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 갈사리 서근에 있는 김해 김씨 동성 마을. 마을 서쪽에 솟은 산에 옛날 지적 측량을 할 때 도근점(圖根點)이 있었으므로 ‘서근(西根)’이라 하였다가 한자 표기가 ‘서근(西斤)’으로 바뀌었다. 갈사리(葛四里)는 섬진강 하류 간척지를 안고 형성된 마을로, 1950년대 이전 간척이 이루어지기 이전에는 섬 지역이었다. 행정 구역 개편 때 서근·연막(蓮幕)·내도(內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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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위태리와 산청군 시천면 내공리를 연결하는 고개. 지리산 동부 지역에서 하동군과 산청군을 잇는 교통로는 덕천강과 갈티재가 있다. 덕천강은 지리산 영신봉과 천왕봉 능선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 시천면사무소에서 산청군 단성면 자양리까지 매우 좁은 협곡을 지나 자양리에서 다시 넓은 유로를 형성하며 남쪽으로 흐른다. 이 협곡 구간은 교통로로서 기능하지 못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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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 속하는 법정리. 1579년(선조 12) 영계서원을 세우고 행정 구역 명칭을 정하면서, 『시경(詩經)』에 나오는 주나라 소공(召公)의 시 「팥배나무[甘棠木]」 중 “무성한 팥배나무[蔽柴甘棠]/ 자르지도 꺾지도 말라[勿剪勿伐]/ 소백이 쉬시던 곳이다[召伯所息].”라는 구절에서 영감을 얻어, 감당나무 아래가 쉬기 좋은 곳이라 하였으므로 감당리(甘棠里)라 하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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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진양 정씨의 재실. 감모재(感慕齋)에서 ‘감모(感慕)’란 효도하고 우애하여 후손이 마음속 깊이 사모한다는 뜻으로, 『서전(書傳)』 군진(君陳) 편의 글에서 따온 것이다. 하동군 금남면의 대치마을 남쪽 도로변에 있으며, 지방도 1002호선 서편 청송가든 뒷산 아래에 위치한다. 감모재는 진양 정씨(晋陽鄭氏)의 선조인 처사 정한구 이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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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의병장. 강봉근(姜奉根)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1872년(고종 9) 9월 30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명호리에서 태어났다. 1908년(순종 2) 무신 의병에 가담하여 활동을 했다. 일본인 진주시장을 암살하기 위해 한국인 기생을 첩보원으로 삼아 도움을 얻었는데, 뒤에 이 기생은 미수 공범으로 처리가 되었다고 한다. 어느 해 설날, 제사를 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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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성옥(姜聖玉)의 본관은 진양(晉陽)이고, 자는 원찬(遠贊), 호는 매담(梅潭)이다. 1879년(고종 16) 경상남도 하동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의롭고 호탕하며 뜻이 강직하여 한일 합방을 당한 때로부터 망국의 한을 품고 늘 분하게 여겼다. 3·1 운동이 일어나자 솔선하여 동지들과 더불어 결사적으로 항거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6개월간 옥고를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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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김해 김씨와 하동 정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강성환(姜聖煥)의 처 김해 김씨는 남편이 병들어 백방으로 애썼지만 효험이 없자 입으로 종기를 빨아 치료하였다. 그 뒤 맹인이 되어 23년을 앞을 보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동 정씨는 김해 김씨의 아들 강진황(姜鎭璜)의 처이다. 시어머니가 맹인이 되자 언제나 시어머니와 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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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경수(敬綏), 호는 괴포(槐圃). 강영수(姜英壽)의 후손이다.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이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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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우석(姜佑錫)은 1901년(고종 38) 3월 9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 1286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연희전문학교에 재학 중 3·1 운동에 참가하여 정학 처분을 받았다. 그 해 9월 기독교 게통의 진주 광림학교(光林學校) 교사로 재직 중, 홍수원과 함께 국권 회복 운동을 위한 혈성단(血誠團)을 조직하여 항일 투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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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에서 매년 10월 국조인 단군을 모시는 제례 행사. 개천 대제(開天大祭)가 열리는 지리산[1,915m] 청학동 인근에 있는 삼성궁은 신선도를 가르치며 교육과 무예를 연마하는 곳으로, 1997년 1월 24일 당시 내무부로부터 문화 시설 지구로 지정되었다. 개천 대제는 1997년부터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삼성궁에서는 10월 중순부터 보름 정도에 걸쳐 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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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미점리 개치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치마을 당산제는 매년 음력 1월 3일 아침 미점리 개치마을에 있는 ‘윗당산’, ‘아랫당산’에서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에서 화개 방면으로 국도 19호선을 따라 15분가량 달리다 보면 개치마을이 나온다. 개치마을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악양루(岳陽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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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부춘리 검두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검두마을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 하동군 화개면 부춘리 검두마을에 있는 당산나무, 뒷당산, 우물 등에서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2011년 2월 17일 부춘리 검두마을로 현장 조사를 나갔으나 당산제 연원에 대하여 알고 있는 제보자를 만나지 못해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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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양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령 이씨의 재실. 경모재(景茅齋)는 대장사(大壯祠) 옆에 있다. 대장사에는 군자감주부 신산공(新山公) 이홍훈(李弘勳)을 정위에 주벽으로 모시고, 차위에 의금부도사 남계공(南溪公) 이번(李蕃)을, 말위에 군자감봉사 인풍헌(仁風軒) 이분(李賁)을 봉안해 놓았다. 이 세 명은 임진왜란 때 백의종군하던 이순신(李舜臣)[1545~1598]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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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진양 정씨 은열공파의 재실. 경모재(敬慕齋)는 진양 정씨(晋陽鄭氏) 은열공파 중조 진향의 14세손 정희백(鄭希伯)과 15세손 정두찬(鄭斗燦), 정두형(鄭斗炯), 정두환(鄭斗煥), 16세손 통정대부 정국필(鄭國弼), 17세손 정세(鄭世), 18세손 정래진(鄭來晋)의 추정을 봉사(奉祀)하고 있는 재실이다. ‘경모(敬慕)’란 공경하고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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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진양 정씨 은열공파의 재실.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마을 회관에서 마을 안길을 따라 오르면 금양교회가 있다. 경본재(景本齋)는 금양교회 앞쪽에 위치한다. 경본재는 진양 정씨(晋陽鄭氏) 은열공파 중조 정진경(鄭晋卿)의 16세손 정국원(鄭國元)과 17세손 정태구(鄭泰龜) 2대의 시향(時享)을 봉사(奉祀)하고 있는 재실로서, 1918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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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신기리에 있는 교육 행정 기관. 경상남도 하동교육지원청은 경상남도 교육청의 하급 지방 교육 행정 기관으로 경상남도 하동군의 교육 및 학예에 관한 업무를 집행하며, 군내 각급 학교의 교육 현장을 관리, 지도 감독하며 과학, 기술, 체육 등 기타 학예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52년 6월 4일 교육 자치제의 실시로 교육 구청으로 분리 발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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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에 있는 도서관. 경상남도 하동도서관은 도서관 자료의 수집·정리·보존, 시민에 대한 필요 정보의 제공, 시민 독서의 생활화를 위한 계획 수립 및 시행, 지역 문화 활동 및 평생 교육 증진 등을 위해 건립되었다 1958년 11월 26일 하동군립도서관 설치 조례 공포를 하였고, 1986년 구 하동교육청 청사 외 시설 개조 공사를 하였다. 198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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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용역의 생산·분배·소비와 관련되는 활동 전반과 영역. 경제산업은 경제와 산업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경제는 인간이 공동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활동 전반을 의미한다. 산업은 이러한 활동 중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전반이나 활동 영역으로서 대체로 농업, 공업, 수산업, 임업, 광업 등 유형물의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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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정기룡(鄭起龍) 장군의 사당. 경충사(景忠祠)는 충의공 정기룡[1562~1622]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경충사가 위치한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는 임진왜란 때 수많은 전공을 세운 정기룡이 나고 자란 곳이다. 정기룡은 60여 차례나 왜군을 물리친 명장으로, “바다에는 충무공 이순신, 육지에는 충의공 정기룡”이라 일컬어질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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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풍천 노씨 문중의 재실. ‘경호(鏡湖)’라 이름 지은 이유는 재실이 하동 고소성(河東姑蘇城) 밑에 있어 내외의 모든 산이 연기와 구름 사이에 있으며, 동정호가 쪽빛처럼 푸르고 거울처럼 맑아서 무릇 호수의 경치가 다 재실에 비치었기 때문이다. 경호재(鏡湖齋)는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외둔마을 표지석에서 외둔길을 따라 약 300m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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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있는 개항기 최숙민(崔琡民)을 기리는 재실. 계남정(溪南亭)은 계남(溪南) 최숙민[1837~1905]의 재실이다. 계남 최숙민은 절의를 숭상하던 영남 남인 가문 출신의 학자이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晉州城)에서 순국한 모산(茅山) 최기필(崔琦弼)[?~1593]의 8세손으로, 용모가 비범하고 재주가 뛰어나 어려서부터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에 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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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곤양군(昆陽郡) 서면(西面) 계항동(鷄項洞)의 ‘계’자와 영천동(永川洞)의 ‘천’자를 따서 계천리(鷄川里)라 하였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영천촌(永川村),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계항’의 한글 표기인 달구목이와 영쳔너머 등의 한글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 곤양군 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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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고등 보통 교육 및 실업 전문 교육 기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학제를 개편하여 3년제의 고등학교를 따로 두고 중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고등 보통 교육을 하는 일반 고등학교와 전문 교육을 하는 실업고등학교로 나누어 설치하였다. 그리고 기본 교과목은 국민윤리, 국어, 국사, 사회, 수학, 과학, 체육, 교련, 음악, 미술, 한문, 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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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고절리 고석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고석마을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흗날 오후 5시에 적량면 고절리 고석마을 안에 위치해 있는 당산 할매[큰 바위]에서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고석마을은 하동읍에서 고전면 방향으로 나있는 국도 19호선에서 하동공설운동장 방향으로 가다가 건너게 되는 대석교 인근에 위치해 있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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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을 거쳐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2동에서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이르는 고속 국도. 고속국도 10호선은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3동을 기점으로 하고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을 종점으로 하여 동서를 잇는 도로이다. 1971년 12월 8일 노선이 지정되었으며, 1972년 1월 10일 기공하여 1973년 11월 14일 개통되었다. 개통 이후 교통량이 증가하여 여러 개의 지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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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에 있는 진양 정씨 문중의 재실. 고양재(高陽齋)는 진양 정씨(晉陽鄭氏) 정은부(鄭殷富)의 12세손 정의균(鄭義均), 동호공(東湖公) 정균(鄭均), 청호공(靑湖公) 통훈대부 행장약원주부 정하균(鄭夏均), 월호공(月湖公)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신촌마을의 도로 좌측에 있는 마을 회관에서 약 300m 오르면 마을 끝 좌측에 존덕사(尊德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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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행정 구역. 고현면(古縣面)의 ‘고’자와 마전면(馬田面)의 ‘전’자를 따서 고전면(古田面)이라 하였다. 조선 시대 하동군(河東郡) 고현면·마전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고전면으로 통합되었고, 1916년 팔조면 신월리(新月里)가 편입되었다. 북쪽으로 정안산(鄭晏山)[448m]을 중심으로 좌우로 산지가 뻗어 있고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작은 물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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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지난 날 마을 동쪽 골짜기에 절터가 있어 고절터·고석·고절(高節)이라 하였다. 『호구총수(戶口總數)』와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팔조면(八助面)의 고절촌이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 하동군 팔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고절동·하여동(下汝洞)·강선동(降仙洞)·석교동(石橋洞)·상여동(上汝洞), 적량면(赤良面)의 상동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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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섬진강 하구 높은 포구에 자리 잡았으므로 고포리(高浦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곤양군(昆陽郡) 서면(西面)의 고포동이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 곤양군 서면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고포동과 하동군 마전면(馬田面) 사포동(巳浦洞)이 통합되어 하동군 남면(南面) 고포리가 되었고,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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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 고포리 고포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고포마을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 자시에 금성면 고포리 고포마을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당산 할매]와 뒷산의 소나무[당산 할배]에서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고포마을은 섬진강 하류의 높은 포구에 위치한 마을이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마을 뒤편으로 두우산을 끼고 있으며,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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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 하동군의 읍치였으므로 옛 하동을 뜻하는 구하(舊河) 또는 고하(古河)라 하였다. 『호구총수(戶口總數)』·『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고현면(古縣面)의 고하동촌(古河東村),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 고하동(古河東)이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 하동군 고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고하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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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서 국가의 감독 아래 법령에 정해진 업무를 처리하는 기관. 공공 기관은 기관 및 단체 중 공공 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공조직을 말하며 사행정 또는 사조직과 구분된다. 또한 시민 사회단체, 민간단체, 사설 기관과도 구분되며 공공 서비스와 공공 재화를 생산하는 국가 행정 기관 및 지방 자치 단체와 각 급 학교, 정부 투자 기관, 특수 법인이 이에 속한다. 헌법상 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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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곡부(曲阜). 자는 태숙(泰淑), 호는 죽정(竹汀). 어촌판윤(漁村判尹)을 지낸 공부(孔俯)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공재선(孔在善)이고, 아버지는 공영갑(孔永甲)이며, 어머니는 남평 문씨(南平 文氏)이다. 공언식(孔彦植)은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대덕리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타고난 성품이 매우 효성스러웠다고 전한다. 13세 때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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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에서 공옥산의 공옥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공옥대 세금 이야기」는, 하동군 옥종면 병천리 강변 송림(松林)에 공옥산(珙玉山)이 있는데 순천 관아에 공옥대(珙玉臺) 사용 대가로 세금을 내야 하는 부당함을 한 소년의 지혜로 해결하였다는 지략담이다. 이를 「동매 공옥대」라고도 한다. 1990년 하동군에서 발행한 『내 고장의 맥』의 217~220쪽에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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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우계리 공월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공월마을 당산제는 적량면 우계리 공월마을 입구에 위치한 당산나무에서 마을 공동으로 지내던 제사이다. 공월마을은 하동읍, 악양면과 인접해 있으며 마을 남쪽에는 강화천이 흐르고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남천천이 흘러가고 있다. 공월마을 당산제의 정확한 연원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제보자를 찾을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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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관광 자원. 관광은 기분 전환이나 여가를 위해 떠나는 행위로 정의될 수 있다. 관광에는 주체인 관광객으로 하여금 동기나 의욕을 일으키게 하는 목적물이 반드시 수반되기 마련인데, 이를 관광 자원이라 한다. 관광 자원은 크게 자연 관광 자원과 인문 관광 자원으로 구분이 되며, 자연 관광 자원에는 산악·해양·도서·하천·수목·화초·동물·온천 등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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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관리 관동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관동마을 당산제는 매년 정월 초하루 자시[밤 11시~오전 1시]에 적량면 관리 관동마을에 있는 당산 할배와 당산 할매에서 마을의 무병과 평안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관동마을은 강화천이 흐르는 주변의 평지에 자리한다. 관동마을 당산제는 일제 강점기 말기 마을에 호열자[콜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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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아이가 커서 성인이 되었음을 인정해 주는 성년식. 관례는 예전에 남자나 여자가 성년에 이르면 성인(成人)이 된다는 의미로 행하던 의례이다. 이를 성년례(成年禮), 성인 의례 등이라고도 한다. 이때 남자는 땋은 머리를 올려 상투를 틀고 갓을 쓰게 하며, 여자는 귀밑머리를 한 그대로 쪽을 쪄서 비녀를 꽂는 계례(筓禮)를 행하였다. 원래 유교에서는 스무 살에 관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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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1년 발행한 『구한말지형도』와 1912년 발행한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 관동(館洞), 1917년 발행한 『조선지형도』에 관리(館里)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1702년(숙종 28) 진주목(晉州牧)에서 분리되어 하동군 적량면 관동이 되었고,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하동군 적량면 관리가 되었다. 북서쪽의 구자산[767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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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관리에 있는 수령 약 200년의 보호수. 왕버들은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으로 원산지는 한국이며 일본, 대만, 중국에도 서식한다. 암수딴그루로, 주로 습지나 냇가에서 자란다. 암수딴그루로,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이며 새로 돋을 때 붉은 빛을 띤다. 4월에 잎과 함께 꽃이 피고, 열매는 계란 모양의 삭과(蒴果)로 5월에 익는다. 키는 10~20m까지 자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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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에 있는 용궁 김씨 문중의 재실. 관어재(觀魚齋)는 용궁 김씨(龍宮金氏) 퇴장암(退藏庵) 김중원(金重源)을 추모하는 사당인 경의사(景義祠)의 경내에 있다. 김중원은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일등 공신에 책록되었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1891년(고종 28)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증직되었으며, 조정으로부터 하사받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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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양헌 이사증을 모시는 재실.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 대축마을[대봉감마을] 안길을 따라 오르면, 마을 중앙에 광천재(廣川齋)가 위치한다. 건립 시기는 자세하지 않으나,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정조 대에 합천 이씨(陜川李氏) 양헌(陽軒) 이사증(李師曾)을 추모하기 위해 그 후손들이 마련하였다. 이사증이 일찍이 큰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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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 광평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생활 유적지.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는 남당마을, 광원마을, 원광평마을, 광평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섬진강 변에 위치하며, 전라도와 접도하고 있다. ‘광평’이라는 지명은 하동군 하동읍 일대에 펼쳐진 넓고 평평한 땅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천연기념물 제445호인 하동 송림(河東松林)이 자리하고 있다. 하동군 하동읍 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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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지형지물의 위로 건널 수 있도록 만든 인공 구조물. 교량은 사람, 차량 등의 통행이나 화물의 수송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재 하동군의 경우 교량은 고속국도 10호선 에 15개, 국도 2호선에 7개, 국도 19호선에 11개, 지방도 1002호선에 4개, 지방도 1003호선에 12개, 지방도 1005호선에 7개, 군도에 25개가 있다. 이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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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주요 도로와 교통수단 및 관련 시설. 교통이란 일반적으로 사람이나 재화 등 유체물과 의사·정보 등 무체물의 장소 이동의 총칭이다. 좁은 의미에서의 교통은 이 중에서 유체물의 이동을 의미한다. 여러 가지 교통 시설 중 하동군에서 가장 중요한 교통 시설은 도로이다. 2010년 현재 하동군의 도로 현황을 보면 하동군을 통과하는 고속도로가 1개 노선, 국도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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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전승되어오는 문학. 구비 전승은 글로 기록되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으로 배경이 되는 지역에 따라 전승 집단의 생활 감정 등을 반영하고 있다. 구비 전승은 그 지역 사람들의 의식 구조, 생활 모습이나 그 지역의 특성 등을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하동의 구비 전승은 하동 사람들의 문화적 소산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구비 전승에는 설화·민요·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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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신대리에 있는 고려 후기 석성. 구성(龜城)은 고려 후기 안정군(安定君)이 역모를 꾀하고자 광양의 태인도에서 하동의 오이령으로 도당을 이끌고 들어와 웅거하기 위하여 축성한 성으로 전해진다. 이성계(李成桂)[1335~1408]에 의해 토벌되었다고 한다. 하동군 악양면 신대리 뒷봉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 산성으로, 악양분지의 동쪽으로 흐르는 섬진강 하단 구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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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있는 구인정(九印亭)의 유허비. 조선 후기 형조참판 전주 최씨(全州崔氏) 최정(崔涏)이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두양마을에 살면서 심은 정자나무가 크게 자라 좋은 휴식처가 되었다. 훗날 관직에 나간 최정의 아들과 조카 9명이 이곳에 자주 모여 정자나무에 인끈을 걸어 놓고 어울려 휴식을 취한 사실이 후세에까지 전해 왔다. 그 아홉 명은 전주판관 최기연(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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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악양면·하동읍에 걸쳐 있는 산. 구자산(龜子山)은 산세가 거북이가 기어가는 모습과 닮아 붙인 이름이며, 구재봉(鳩在峰)이라고도 부른다. 구자산 정상에는 뜻과 음이 다른 ‘비둘기 구(鳩)’자와 ‘거북 구(龜)’자를 새긴 오석(烏石)이 있는데, 실제로 이 산에는 비둘기가 많고 거북과 비슷한 도롱뇽도 많다고 한다. 구자산은 높이 767.6m이며 악양분지를 둘러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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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신대리에서 구제산계 계원들이 구제산 산신에게 지내는 마을 제사. 구제산계 회취는 악양면 신대리 주민이 중심이 된 약 60여 명의 구제산계 구성원들이 매년 오월 초여드렛날 동틀 무렵에 마을의 무병과 풍요를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산신제이다. 마을 제사가 끝나면 어버이날 마을 경로잔치를 열고 있다. 구제산계의 계원은 2010년 현재 60명 정도인데 대다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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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을 거쳐 남해군 미조면과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을 연결하는 일반 국도. 한반도 남부 내륙 지역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로인 국도 19호선은 남부와 북부 내륙 지방의 교통을 활성화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1974년부터 1975년까지 청주~보은, 주포~하영 구간이 건설되고, 이후 강원도와 충청북도,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 지역을 따라 경상남도 남해군까지 이어지는 도로로 건설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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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을 거쳐 전라남도 신안군와 부산광역시를 연결하는 일반 국도. 하동군을 경유하는 일반 국도는 국도 2호선, 국도 19호선, 국도 59호선이 있으며, 총연장 89,005km, 도로 포장률은 약 97%이다. 국도 2호선은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남단의 동서축 두 지역인 목포와 부산을 잇기 위해 생겨난 도로이며, 이후 목포에서 신안군이 연결됨으로써 신안~부산 간으로 구간이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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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신기리에 있는 궁도 단체. 궁도협회정은 궁도의 활성화와 하동 궁도인의 교류와 정보 교환, 정대 정 간의 궁술 증진을 위해 설립되었다. 1880년(고종 17)에 강무정에 한량들이 모여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 443-9번지에 사정(射亭)을 개설하고 하상정이라 이름하여 현판하였다. 1920년대 당시 사정 위치는 현재 과녁 자리이고 당시 과녁 자리가 현 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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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지형이 활 모양이어서 활목·할목·궁항(弓項)이라 하였다. 마을 뒷산에서 양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활 테가 되고, 앞으로 연결된 여러 섬들은 활 끈이 되며, 마을 가운데로 뻗어 내린 산등성이는 화살촉에 해당한다고 한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 곤양군(昆陽郡) 서면(西面)의 궁항촌(弓項村),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활목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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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낙현, 아버지는 만은 권계주이고, 동생은 역시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권대형(權大衡)이다. 권대섭(權大燮)은 1895년(고종 32)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궁항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4일 문암 장터 1차 독립만세 의거에서 동생 권대형이 일본 경찰에 구속되었다. 이에 권대섭은 다음 장날인 3월 29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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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정집, 호는 독수. 아버지는 만은 권계주이고 형은 역시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권대섭(權大燮)이다. 권대형(權大衡)은 1898년 8월 28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궁항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4일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장터에서 하일로, 권상숙(權尙淑), 권복대(權福大) 등과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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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복대(權福大)는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4일 옥종면에서는 안계리 출신 하일로(河一魯)의 주도로 안계 시장에서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때 권복대를 비롯한 최인우(崔寅愚), 정화영(鄭華永), 권대형(權大衡), 권상숙(權尙淑), 김중수(金重洙), 하계원(河啓遠) 등이 중심인물이 되어 인근 수곡면 일대 주민들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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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상숙(權尙淑)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에서 태어났다. 옥종면에서는 1919년 3월 24일 안계리 출신인 하일로(河一魯)의 주도로 안계 시장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했다. 이때 권상숙을 비롯한 최인우(崔寅愚), 정화영(鄭華永), 권대형(權大衡), 권복대, 김중수(金重洙), 하계원(河啓遠) 등이 중심인물이 되어 인근 수곡면 일대 주민들과 함께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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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에 있는 개항기 정기(鄭夔)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재실. 귀후재(歸厚齋)는 이 고장에 처음으로 입향한 정기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지었다. 정기의 자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율리(栗里)이다. 영일 정씨(迎日鄭氏)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예이며, 젊어서부터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문하에서 배웠다. 겸재가 왕에게 사은소(謝恩疏)를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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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7월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조직된 항일 여성 운동 단체. 근우회는 1927년 창립되어 1931년에 해산된 여성 항일 구국 및 여성 지위 향상 운동 단체이다. 1927년 신간회가 조직된 직후, 자매단체의 성격을 띠고 같은 해 5월 민족주의 여성 운동계의 김활란(金活蘭)·유영준(劉英俊)·유각경(兪珏卿)·최은희(崔恩喜)·현신덕(玄信德) 등과 사회주의 여성 운동계의 박원민(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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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덕천리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미래 사회를 주도할 올바르고 창의적인 인간 육성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바른 품성을 심어주는 실천 위주의 인성 교육을 실시하며, 기초와 기본 학력을 다지는 교육과 창의력을 기르는 교육을 충실히 강화하고 있다. 교훈은 ‘자율·창조’이다. 1980년 11월 26일 금남고등학교 설립 인가를 받은 뒤, 1981년 3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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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진정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소속 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측은 195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원장로회 정신에서 벗어난다고 주장하며 이를 바로잡고 원로 총회를 계승하고자 총노회를 조직하고 개혁주의 신앙 운동을 전개하였다. 1960년 총회 내의 승동 측과 합동 총회를 발족했으나 1962년 합동 원칙을 벗어난다고 하여 환원하였다. 교리는 개혁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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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행정 구역. 금양면(金陽面)의 ‘금’자와 남면(南面)의 ‘남’자를 따서 금남면(金南面)이라 하였다. 조선 말 곤양군(昆陽郡) 서면(西面)과 금양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곤양군 서면과 하동군(河東郡) 마전면(馬田面) 일부를 합쳐 하동군 남면을 설치하고 가덕·갈서·계천·고포·궁항·대도·대송·덕천·송문·진정 등 10개 마을을 관할하였다.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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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전통 가옥.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는 금남면의 부자 마을로 유명하다. 하동군 금남면의 대치리 마을에는 진양 정씨(晉陽鄭氏) 은열공파가 오랫동안 세거해 왔다. 진양 정씨의 이 마을 종가이자 규모가 가장 큰 대표적인 전통 가옥이 금남면 대치리 정씨 고택이다. 하동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여 남해와 맞닿아 있는 금남면의 주산인 금오산(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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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에서 상여를 메고 가는 상여꾼이 부르던 의식요. 「금남면 상부 소리」는 장례식에서 상여가 나갈 때 부르는 장례 의식요이자 상여꾼들의 노동요이다. 상여를 메고 가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상여 소리」, 「상부 소리」, 「운상 소리」, 「만가」 등 여러 가지로 부르는데 하동군 금남면에서는 「만가」라고 한다. 하동 지역에서 불리는 「금남면의 상부 소리」인 「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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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사평리에 있는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사평리 황치산(黃峙山) 기슭에 있는 금선암(金仙庵)은 마을 뒤에 자리하고 있어 마을 사람들의 기도와 쉼터 구실도 하는 절이다. 멀리 보이는 곳에 안산(案山)인 이명산(理明山)[570m]이 있다. 1980년 이말여[법명 묘약행(妙藥行)] 보살이 창건한 절로, 금선암이란 절 이름은 범어사(梵魚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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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행정 구역. 섬진강 하구와 남해가 만나는 금성만(金城灣)[일명 갈사만(葛四灣)]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여겨진다. 조선 말 곤양군(昆陽郡) 서면(西面)과 하동군(河東郡) 마전면(馬田面)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곤양군 서면과 하동군 마전면 일부를 합쳐 하동군 남면을 설치하고 가덕·갈서·계천·고포·궁항·대도·대송·덕천·송문·진정 등 10개 마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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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고룡리에 있는 사찰. 조선 시대 말까지 있었던 영월사(迎月寺) 절터에 1950년대 초반 이 절의 초대 주지인 도성이 백일기도를 하다가 꿈에 계시를 받고 이곳으로 왔다. 도성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보살행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금성사를 창건하였다. 2012년 현재 주지를 맡고 있는 수문은 10년 넘게 매년 초파일에 인근 중·고등학교에 장학금을 전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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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소속의 교회. 하동군 금남면 대치마을은 만석꾼이 살만큼 부유했던 마을로서, 1930년대부터 호주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했다. 이 마을 유학자들이 선교사들을 초빙해 신학문을 배우고자 한 결과 교회가 세워졌으며 하동군에서 두 번째로 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으로 선교사와 교인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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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고전면·진교면에 걸쳐 있는 산. 금오산[ 849m]은 지리산이 동남쪽으로 뻗은 줄기로, 옥산에서 분기한 산줄기가 이명산을 거쳐 섬진강 만덕포구로 빠져 들기 직전 우뚝 솟은 둘레 약 30㎞의 웅장한 산이다. 바닷가에 있는 산 치고는 제법 높아 하동군이 해맞이 공원을 별도로 조성했을 정도로 남해의 섬들과 어울린 조망이 볼 만하다. 자그마한 산줄기가 바다를 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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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있는 고려 시대 성곽. 금오산성(金鰲山城)의 정확한 축조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성곽의 형태와 시대적 특수성을 감안해 볼 때 고려 시대에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왜구들의 침입을 감시하고 방지하기 위하여 쌓은 성곽으로 전해진다. 지리산[1,915m]의 남주지맥(南走枝脈)으로 하동군의 동쪽에 있으며 남해 연안에 자리 잡은 금오산[849m] 정상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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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과 진교면에서 금오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금오산에 별님과 달님의 사랑이야기」는 별님과 달님의 사랑을 질투하는 지신(地神)이 잡신을 시켜 별님을 해치자 달님도 별님을 따라 죽어 흘린 피가 붉은 철쭉이 되고 붉은 바위가 되었다는 식물유래담이자 암석유래담이다. 또한 지신이 별님을 도와주려는 산신령을 막기 위해 육지에 붙어 있는 남해를 섬으로 떼어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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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고룡리에 있는 진양 정씨 금오공 정흡의 재실. 정흡(鄭潝)은 여말 선초의 문인 우곡공(愚谷公) 정이오(鄭以吾)[1347~1434]의 10세손으로, 원래 진양에 살다가 하동군 진교로 이사해 금오산[849.1m]의 이름을 따서 금오당(金鰲堂)이라 호를 하였다. 금오재(金鰲齋)는 금오공의 후손들이 묘제를 지내기 위하여 마련한 사당이다. 입향조는 우곡공의 14세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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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금융 기관 및 금융 현황. 금융은 경제상 자금의 수요·공급 관계, 즉 가치 이전의 수단으로서 통화(通貨)의 순환에서 발생되는 자금의 유통을 말한다. 가계, 기업, 정부 등의 경제 주체가 자금 모집을 통하여 자금을 배합하고 사용하여 생산하는 자금 유통 모두를 일컬어 금융이라고 한다. 그리고 경제 주체 사이에 금융이 이루어지는 채권 및 채무 관계의 질서를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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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송리 금정사에 있는 영령탑(英靈塔). 금정사 영령탑은 6·25 전쟁 때 산화한 하동군 출신의 육군 및 한국청년기동대원 334명의 영령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이다. 1954년 7월에 당시 노량리 출신 국회 의원 강봉옥의 추진으로 지역 출신 국회 의원들 및 금정사 칠성계원 신도들이 석탑을 지었다. 삼층 석탑으로 탑신 높이는 5m이며, 둘레는 8m, 탑기단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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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에 있던, 조선 후기 최치원(崔致遠)의 영정을 모신 사당. 금천사(琴川祠)는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 영당마을 682번지에 위치하였다. 영당마을의 옛 이름은 가은곡(加隱谷)이고, 한동안 신덕촌(新德村)이라 불리었다. 금천사는 최치원의 영정을 모시기 위하여 1824년(순조 24)에 건립하였다. 쌍계사(雙磎寺)에 있던 최치원의 영정을 옮겨 와 봉안하였으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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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당. 긍구당(肯構堂)은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 추동마을 정류소 옆길에서 약 150m 지점, 마을 끝에 위치한 숭모재(崇慕齋) 경내에 위치한다. 긍구당은 숭모재 경내에 있는 단양 장씨(丹陽張氏) 문중의 사당으로, 1746년(영조 22)에 건립하였다. 정면 3칸, 측면 1.5칸 규모의 일자형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평면 3칸은 온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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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규칙적으로 되풀이 되는 일정 기간의 평균 기상 상태. 기후를 형성하는 대기의 성질을 기후 요소라 하며, 기온·강수·바람·습도 등이 이에 해당된다. 하동군은 경상남도 서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서의 길이가 28㎞ 남북의 길이가 44㎞로 남북으로 긴 형태이다. 서쪽으로는 섬진강이 흐르고 북쪽에는 1,500m 이상의 높은 산지가 형성된 지리산 국립공원이 있으며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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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대덕리에 있는 개항기 김경좌(金慶佐) 처 광산 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광산 김씨(光山金氏)는 김해 김씨(金海金氏) 김경좌의 처이다. 18세에 시집가서 시부모와 남편을 정성으로 모셨다. 김경좌가 세상을 떠나자 53세의 나이로 남편의 뒤를 따라 생을 마감하니, 그 열행을 기리기 위해 김해 김씨 문중에서 1875년(고종 12)에 열녀비를 세웠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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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성천(聖天), 호는 석천(石川).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후손이다. 김국성(金國成)은 아버지가 병들어 누운 3년간 한결같이 탕약을 지어 올리고, 아버지의 똥을 맛보아 아픈 상태를 진단했으며, 아버지 대신 아프게 해 달라고 하늘에 기도하였다고 전한다. 1829년(순조 29) 공조참판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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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는 김종련(金鍾鍊)[1861~1894]이고, 어머니는 정계언(鄭桂彦)이다. 아버지는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을 때 하동 지역에서 활동하다 붙잡혀 경상남도 감영에서 효수를 당하였고, 형인 김기완(金淇完)도 여러 방법으로 항일 투쟁을 한 인물이다. 부인은 조묵계로, 슬하에 4남 3녀를 두었다. 김기범(金淇範)은 1885년 9월 25일 지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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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예지(禮之). 호는 둔옹(遯翁).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후손이며, 김상용(金商鎔)의 5대조이다. 김상용(金商鎔)은 1975년에 성균관장이 주는 효행 표창을 받았다. 김난발(金爛發)[1767~1838]은 1767년(영조 43)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위독해지자 자신의 허벅지를 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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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에 있는 유학자 김명기(金命紀)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전라남도 영광 출신인 운계 김명기[1576~1650]가 정유재란을 피해 지금의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로 이거하게 된 배경과 덕은리에서 도의와 학문을 가르친 그의 삶을 정리하여 새긴 비석이다. 운계 김명기의 후손이 선조의 유덕(遺德)을 기리기 위해 1984년에 유허비를 세웠다. 김명기 유허비(金命紀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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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출신의 효열부.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전호(全皓)이다. 남편은 김병희(金炳希)로, 본관은 용궁(龍宮)이다. 김병희 처 전주 전씨는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에서 태어났다. 19세에 시집와 시부모를 정성껏 봉양하고 남편을 극진하게 섬기었다. 1952년 남편이 갑자기 눈이 멀더니 3년 뒤에는 반신불수가 되었고, 결국 1959년 11월에 별세했다.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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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이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 청정을 서두르자, 소론은 경종의 보호를 명분으로 신임사화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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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군명(君明), 호는 이헌(梨軒). 안경공(安敬公) 김영정(金永貞)의 후손이다. 김석배(金碩培)는 1879년(고종 16)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정직하고 강개(慷慨)하여 남의 과오를 보면 즉시 고치도록 권하고, 남의 환난을 보면 즉시 마음을 다하여 구휼하였다.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도왔으며, 이익을 보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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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이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 청정을 서두르자, 소론은 경종의 보호를 명분으로 신임사화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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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에 있는 김성행(金聖行)의 효행을 기리는 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에 살았던 효자 김성행은 부모를 극진히 섬기고, 나이 적은 계모 홍씨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효도를 다했다. 먼 곳의 농사일을 끝내고 밤중에 돌아올 때 호랑이가 길을 인도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1890년(고종 27) 고종이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제수하였다. 1925년 마을 주민들이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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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선민(善敏). 호는 창정(滄亭). 문민공(文敏公)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다. 김세규(金世奎)[1862~?]는 1862년(철종 13)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순수하고 타고난 자질이 똑똑하여 문리를 일찍 깨쳤다. 부모를 모심에 효를 다하였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병이 나면 다른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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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용궁(龍宮). 자는 겸지(兼之).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의 후손이다. 김수직(金守直)은 1794년(정조 18)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순후하고 효성스러워서 어려서부터 고기나 과일이 생기면 반드시 부모님께 먼저 드렸다. 어른이 되어서는 농사를 지어 맛있는 음식으로 부모를 봉양하였다. 여름에는 생선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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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성지(聲之), 호는 구정(龜亭). 형조판서(刑曹判書) 김남중(金南重)의 후손이다. 김시복(金始復)[1778~1847]은 천성이 순후하고 지기(志氣)가 강직하였다. 효를 다해 부모님을 모셨고,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슬픔으로 예를 다하였다. 장례를 치를 때 권세가에서 소송을 걸어 무려 10년 동안 시달렸는데, 결국 주인이 보석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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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흥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국간(國幹), 호는 모의재(慕義齋). 김언량(金彦良)은 1564년(명종 19) 무과에 급제하여 어모장군 충순위부사(禦侮將軍忠順衛副司)를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동생인 부사 김언공(金彦恭)과 함께 영남과 호남의 병사를 이끌고서 진주, 한산, 하동 섬진(蟾津) 등의 전투에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워 승지(承旨)에 제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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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에 있는 임진왜란의 공신인 김언량(金彦良)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언량은 전라남도 고흥 출신으로 자는 국간(國幹)이고, 호는 모의재(慕義齋)이다. 1564년(명종 19) 무과에 급제한 무인(武人)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생 김언공과 함께 경상북도 영천 전투에 참가하였고, 정유재란 때는 이순신(李舜臣) 휘하에서 호남 의병을 이끌고 진주, 하동 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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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의사(義士).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성국(聲國), 호는 죽교(竹橋). 안경공(安敬公) 김영정(金永貞)의 후손이다. 김영수(金瀯秀)의 생년이 『하동군지』와 『하동지속수(河東誌續修)』에는 헌종 갑신년(甲申年)[1824]으로 나와 있으나, 헌종 때에는 갑신년이 없고 갑진년(甲辰年)[1844]이 있다. 또한 고종 경진년(庚辰年)[1880] 증광시(增廣試)에서 1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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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용궁(龍宮). 자는 중빈(仲賓), 호는 성와(省窩). 김재주(金載周)는 1756년(영조 32)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효성스러워서 어릴 때부터 혼정신성(昏定晨省)하는 효를 어김없이 다하였다. 7년간 병든 아버지를 모시면서 약이란 약은 다 구해서 올렸으며, 아버지를 대신하여 죽게 해 달라고 빌었다. 아버지가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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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에 있는 김재주(金載周)의 효행을 기리는 비. 조선 영조 때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에 거주하던 효자 김재주는 병환 중의 아버지를 7년간 지극 정성으로 간병하였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묘소를 오가며 살피고 애통해 하였다. 천하의 효자로 이름을 내고 세상을 뜨니, 조정에서 그에게 가선대부(嘉善大夫)를 추증하였다. 이에 후손들과 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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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 고포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정규의 묘비. 김정규는 조선 숙종 때 태어나 영조 때 효자로 명성을 얻었으며, 가선대부절충장군용양위부호군을 증직받았다. 1948년 5월, 김정규의 후손들이 후세의 귀감으로 삼고자 김정규의 효 행적을 새긴 묘비를 세웠다. 하동군 금성면 고포리 산416-1번지 고포마을회관 북동쪽에 있다. 비석은 기단 위에 화강암의 규형이며, 팔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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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의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연안(延安). 문절공(文節公) 차원부(車原頫)[1320~1399]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차승이(車昇伊)이다. 남편은 김주봉(金周鳳)으로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김주봉 처 연안 차씨는 타고난 성품이 효성스럽고 유순하여 출가하기 전에도 부모에게 사랑을 받았다. 경상남도 하동 지역으로 시집온 후 남들이 힘들어하는 일도 무던히 견디고 방직과 농사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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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김주석(金周錫)은 1896년(고종 23) 2월 20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쌍계사 승려로서 학생인 정상근(鄭湘根)·양봉원(梁奉源)과 함께 4월 6일 화개리 시장의 시위를 주도하였다. 김주석은 미리 태극기를 만들어 장날인 4월 6일 수백 명의 군중이 모이자 태극기를 나눠 준 뒤 “대한 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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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용궁(龍宮). 임진왜란 때 수문장으로 진주성에서 순절하여 창렬사(彰烈祠)에 향사된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김준걸(金俊傑)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여생(金麗生)이며, 할아버지는 김명립(金明立)이다. 아버지는 청천재(淸川齋) 김상침(金尙琛)이며, 어머니는 윤효일(尹孝一)의 딸인 파평 윤씨(坡平 尹氏)이다. 정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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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에서 활동한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진양(晉陽). 고려 후기 인물인 벽은(僻隱) 유번(柳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유의경(柳宜警)이다. 시아버지는 학성군(鶴城君) 김완(金完)의 후손인 김정필(金貞弼)이며, 남편은 김찬무(金贊武)로,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김찬무 처 진양 유씨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부덕(婦德)을 갖추었다. 13세에 어머니 한씨(韓氏)가 중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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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 있는 김창휘(金昌輝)의 효행을 기리는 비. 조선 순조 때 효자 통정대부(通政大夫)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 김창휘는 아버지의 변을 맛보며 병환을 8년 동안 살폈고, 아버지의 병세가 위급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흘려 넣어 병중의 아버지가 1년을 더 살도록 했다. 그의 효행이 알려지자 조정에서 벼슬을 내렸다. 1941년 고을 사람들과 후손들이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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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무신. 본관은 용궁(龍宮). 자는 인선(仁善), 호는 농산(聾山). 임진왜란 때 수문장으로서 진주성에서 순절하여 창렬사(彰烈祠)에 향사된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의 후손이다. 김태권(金泰權)은 1880년(고종 17) 무과에 등제하여 선략장군 행 용양위부사과(宣略將軍行龍驤衛副司果), 내금위 효력부위 수문장((內禁衛效力副尉守門將) 등을 역임하였다. 본래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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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임진왜란의 공신인 김태백(金太白)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태백[1560~1592]은 용궁 김씨(龍宮金氏)로 자는 계선(繼仙), 호는 낭선재(浪仙齋)이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하인과 동네 장정 수백 명을 거느리고 진주성에 들어가 관군과 합세하여 싸움을 벌여 수차례 공을 세웠다. 그러나 화살과 힘이 다해 김태백은 결국 촉석루에서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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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의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경주(慶州).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학여(金學汝)이다. 남편은 본관이 김해(金海)인 김경수(金京秀)로, 모암(慕庵) 김극일(金克一)[1382~1456]의 13세손이다. 시아버지는 김국욱(金國旭)이다. 김학여의 딸 경주 김씨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얌전하고 정숙했으며, 효성과 우애가 지극해 집안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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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사현(士見), 호는 귤은(橘隱). 안경공(安敬公) 김영정(金永貞)의 후손이다. 친아버지는 김성두(金星斗), 친어머니는 경주 이씨이며, 양아버지는 김문두(金文斗), 양어머니는 강성 문씨(江城 文氏)[남평 문씨]다. 김현주(金顯周)는 1858년(철종 9)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서 태어나, 훗날 진교면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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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용궁(龍宮). 자는 도경(道卿), 호는 하우(何尤)·하우재(何尤齋). 아버지는 김제응(金濟應)이고 어머니는 김내동(金內東)이다. 아들로 김병성(金炳成), 김병홍(金炳洪), 김병인(金炳仁)을 두었다. 김홍권(金弘權)은 1892년(고종 29) 1월 25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115번지에서 태어났다. 주로 농업에 종사하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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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에 있는 항일 투사 김홍권(金弘權)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하우(何尤) 김홍권[1892~1937]은 1908년 하동보통학교[하동향교 내 설치]에 재학 중이던 1909년 안희제, 이원식, 남형우와 함께 비밀 결사대인 대동청년당을 조직해 지하공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1 운동을 목도하고 자극을 받아 메이지 대학생 유경환과 함께 중국 상하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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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정해진 놀이판 위에 말을 움직여서 승부를 겨루는 놀이. 꼰뜨기는 주로 땅이나 종이 위에 말밭을 그려 놓고 두 편으로 나누어 말을 많이 따거나 말의 길을 막는 것을 다투는 경합쟁취형 민속놀이이다. 말을 두는 사람은 두 명이지만 여럿이 쪼그리고 앉아서 편을 갈라 놀다 보면 서로 간의 겨루기가 된다. 꼰뜨기는 오랜 세월을 거쳐 전해져 오다 보니 꼰두기, 고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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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꽃술을 서로 마주 걸고 당겨서 승부를 겨루는 놀이. 꽃실씨름은 참꽃 속에 있는 실처럼 생긴 수술대를 뽑아낸 뒤 그것을 서로 걸어 잡아당기며 씨름을 붙여서 먼저 끊어지는 쪽이 지는 민속놀이이다. 이를 ‘꽃싸움’이라고도 한다. 꽃술을 뽑아서 서로 마주 걸어 당겨 상대편의 꽃술을 끊는 놀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참꽃의 수술대는 수꽃술보다는 암꽃술이 더 굵고 든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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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나락을 타작하며 부르던 노동요. 「나락 타작 소리」는 논농사 일 가운데 벼를 추수할 때 부르는 농업 노동요이다. 하동 지역에서는 「태질 소리」라고도 한다. 태질은 개상에다 곡식 단을 메어쳐 곡식알을 떠는 일을 의미한다. 「나락 타작 소리」는 타작하는 과정을 더 세부적으로 나누어 「태질 소리」, 「벼 디루는 소리」, 「말질하는 소리」 등 각각의 일에 따라 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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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봄철에 여성들이 나물을 캐며 부르는 노동요. 「나물 캐는 소리」는 여성들이 밭이나 언덕, 산에서 나물을 캐거나 뜯으면서 불렀던 채취 노동요이자 부요(婦謠)이다. 하동 지역의 「나물 캐는 소리」에는 나물 캘 때 부르는 소리와 고사리 꺾을 때 부르는 소리, 찻잎을 따면서 부르는 소리 등이 있다. 「나물 캐는 소리」는 노동의 행위를 묘사하거나 노동에서 탈피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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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 갈사리 나팔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나팔마을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달에 좋은 날을 택하여 금성면 갈사리 나팔마을의 송림(松林) 아래에 있는 바위에서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나팔마을은 인근에 나팔목이 있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나팔목은 섬진강 서남단에 위치한 마도(馬島)와 마을 사이를 흐르는 강의 협소한 곳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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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지역에 있던 삼한 시대 변진(弁辰) 12국의 하나. 변낙노국(弁樂奴國) 또는 변진낙노국(弁辰樂奴國)이라고도 했던 낙노국(樂奴國)은, 토지가 기름지고 오곡과 벼를 가꾸기에 알맞았으며 누에를 치는 법을 알아 비단을 짜 옷을 지어 입었던 문화 국가였는데, 지명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삼한 시대 섬진강 주변에 있던 다사촌(多沙村)에 변진 12국 가운데 하나로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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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남산리에 있는 수령 약 250년의 보호수. 팽나무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으로 포구나무, 달주나무, 매태나무, 평나무 등으로도 불린다. 한국이 원산지이며 은행나무, 느티나무 등과 같이 정자목으로 흔히 심는다. 팽나무의 꽃은 5월에 피며, 꽃받침조각은 4개이다. 열매는 둥글고 지름 7mm가량의 엷은 황색으로 10월에 익으며 단맛이 난다. 나무의 껍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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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남산리 하남에 있는 창녕 조씨 동성 마을. 남산리 맨 아래에 있는 마을이므로 하남이라 하였다. 남산리는 돌칼, 돌화살 등 출토된 유물로 보아 석기 시대에 이미 사람이 살았으리라고 여겨진다. 원곡·상남·하남을 통합하여 남산리라 했는데, 마을 앞에 큰 바위처럼 솟은 산자락을 남바구라 부르다가 남산으로 고쳐 부른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1790년(정조 14) 창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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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남성마을에 있는 돌무더기. 남성마을 당산이란 마을 앞 도로변 정자나무들 아래의 길 좌우에 있는 자연석을 쌓아 올려 만든 돌무더기를 일컫는다. 옛날에는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아서 주로 도보로 이동하였으며, 종일토록 걷는 날이 많아 자주 발병이 났다. 따라서 길 걷는 사람이 발병이 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이 당산에 돌을 던지는 것이었다. 하동군 고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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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와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를 잇는 다리. 경상남도 내륙과 남해도를 잇는 연육교라는 점에서 ‘남해대교(南海大橋)’로 명명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이며, 길이 660m, 총폭 9.6m, 유효폭 7.2m, 높이 32.3m이다. 경간수 3, 최대 경간폭은 404.m이다. 상부 구조는 현수교, 하부 구조는 라멘식 교각이다. 육지와 남해도를 연결하여 남해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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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주 최씨 문중의 재실. 하동군 옥종면의 두양마을 표지석 옆길을 따라 300m쯤 가면 우측으로 100m 지점에 마을 정자나무 쉼터가 있다. 내현재(乃見齋)는 쉼터 오른편에 위치한다. 전주 최씨(全州崔氏)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1824년(순조 24)에 창건하였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개·보수한 흔적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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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쪽으로 이웃한 남해군 설천면과의 사이에 좁은 통로 모양의 바다 목이 있어 노들 또는 노량(露梁)이라 하였다. 『해동지도(海東地圖)』에 노량진(露梁津),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노량촌(露梁村),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노량동(露梁洞)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 곤양군(昆陽郡) 금양면(金陽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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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에 있던 고대 성곽. 노봉산성(老峯山城)은 함양의 가야인들이 514년경 왜구를 막기 위해 쌓았으리라 추측되며, 고려 때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수축하였다고 전한다. 전설에 따르면, 노봉산성의 축성 시기는 신라 후기 토성에서 석성으로 전환하는 시대인 것으로 보이나, 채집되는 유물과 성곽의 전반적인 내용이 알려지지 않아 정확한 축성 연대는 알 수 없다. 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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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경실(景實)이다. 송재(松齋) 노숙동(盧叔同)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노정한(盧廷翰)이다. 노수(盧禭)는 1794년(정조 18)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에서 태어났다. 나이 70세 때 100세 부모를 모시는데도 자잘한 음식을 몸소 받들어 올렸으며, 부모가 반걸음을 걸을 때도 반드시 부축해서 보살폈다. 상을 다하여 3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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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매계리 노전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노전마을 당산제는 음력 섣달 그믐날 저녁에 악양면 매계리 노전마을에 있는 당산 할배와 당산거리에서 마을의 무병과 평안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던 제사이다. 2011년 3월 악양면 매계리 노전마을로 현장 조사를 나갔으나 당산제의 연원에 대해 알고 있는 제보자는 만나 볼 수 없었고, 노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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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 노화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노화마을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흘 아침 노화마을에 있는 당산과 마을 입구의 표지석에서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노화마을은 고속국도 10호선의 하동IC에서 섬진강을 끼고 차량으로 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노화마을 당산제의 연원에 대해서 정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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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논갈이를 하며 부르는 노동요. 「논 가는 소리」는 봄에 모를 심기 전에 논에 물을 채우고 쟁기로 논을 갈면서 부르는 농업 노동요이다. 벼농사에서 가장 큰 일은 모내기인데, 그 전에 먼저 해놓아야 하는 일이 논갈이이다. 논갈이는 소에 쟁기를 메워 논을 갈아엎는 일이다. 하동의 「논 가는 소리」는 소와 사람의 호흡을 맞추기 위해 부르는 노래로, 사설은 소를 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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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는 농협협동조합중앙회 산하 하동군 지부. 농협협동조합중앙회 하동군지부는 경상남도 하동군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 조직을 바탕으로 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 향상과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추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1년 8월 15일 구 하동군 농협과 농협은행 하동지점이 통합하여 하동군 농협을 발족하였으며, 초대 조합장에 문후근 조합장이 선출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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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 있는 누각과 정자. 누정은 누각과 정자를 함께 일컫는 명칭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누(樓)·정(亭)·당(堂)·대(臺)·각(閣) 등을 일컫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누각은 대개 높은 언덕에 돌이나 흙으로 쌓아올린 대 위에 세운다. 정자는 누각에 비해 작은 건물로 벽이 없고 기둥과 지붕만으로 되어 있으며, 주로 놀거나 휴식할 장소로서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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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에 있는 삼한 시대 토성. 다사성(多沙城)의 정상에 회치(會治)바위, 성 아래에는 사창마을, 옥실뱀이, 화장실을 뜻하는 통시뱀이 등의 지명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치소(治所) 내지는 부족 국가의 옛 궁터로 추정된다. 『삼국지(三國志)』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 의하면, 하동 지역에 변한의 12개 부족 국가의 하나인 낙노국(樂奴國)이 있었다 하니 다사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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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음력 5월 5일에 지내는 명절 풍습. 단오는 양의 수가 겹치는 날로서 일 년 중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 하여 큰 명절로 여겨 왔다. 우리말로 ‘수리’라 하고 한자로 천중절(天中節)이라고 한다. 단오는 설날·대보름·추석 등과 함께 연중 4대 명절의 하나로 단오 제례(端午祭禮)를 드리고 남녀 모두가 하루를 즐긴다. 단오는 중국 형초(荊楚)의 풍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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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에 있는 계곡. 단천계곡은 화개천에 나타나는 곡지 가운데 유일하게 동서 방향으로 발달한 계곡이다. 영신봉에서 삼신봉에 이르는 지리산 남부 능선이 남북 방향인 까닭에 지구조적 요인의 간섭이 없다면 곡지들은 능선에 직각으로 발달하기 때문에 단천계곡이 동서 방향으로 발달한 것은 당연할 수 있지만 직선상의 모습으로 상당한 거리에 걸쳐 계곡이 나타나는 경우는 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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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단천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단천마을 당산제는 매년 정월 대보름날 아침 대성리 단천마을에 있는 ‘윗당산’과 ‘아랫당산’에서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지리산 남부 해발 약 500m에 위치한 단천마을은 예부터 붉은내→밝은내→박달내 등으로 불리다가 현재는 단천마을로 불린다. 단천(檀川)은 ‘박달나무가 많은 시냇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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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 한계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는 골짜기가 많은 지역, 혹은 골짜기가 큰 지역이라고 하여 ‘대곡’이라 부르는데, 『진양지(晉陽誌)』에 의하면 연산군의 스승이었던 지족(知足) 조지서(趙之瑞)[1454~1504]가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는 옥종면 소재지로부터 동쪽으로 직선거리 3㎞ 정도 떨어져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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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큰독골·큰덕골·큰터골·큰도골 등을 한자로 표기하여 대덕(大德)이라 하였다. 우리말 이름은 풍수지리상 마을 산세가 큰 닭처럼 생겨 ‘큰닭’으로 부르던 것이 변한 이름이라고도 하고, 마을 뒤에 큰 계곡이 많아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고개 너머 작은독골[小德]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金鷄抱卵形) 형국과 관련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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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대덕리 대덕에 있는 김해 김씨 동성 마을. 본디 큰덕골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한자로 표기하면서 ‘큰 대(大)’자와 ‘덕 덕(德)’자를 써서 대덕이라 하였다. 풍수지리상 마을 지세가 닭의 형국이라 큰닭골이라 하였는데 큰덕골로 음이 바뀌었다가 오늘날 대덕으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조선 중기 사과(司果) 벼슬을 지냈던 김해 김씨 김익중(金益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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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섬 크기가 주변 섬보다 크고 사람이 살 만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대도동(大島洞)이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18세기 중반 남해군에서 옮겨 온 장수 이씨(長水李氏) 부부가 정착하여 형성된 마을로 조선 말 곤양군(昆陽郡) 서면(西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하동군 남면 대도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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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도리 대도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금남면 대도리는 하동군 해안선에 자리 잡고 있는 20여 개의 섬들 중 사람이 사는 유일한 유인도로서 ‘큰섬’으로 불린다. 대도리 대도마을에는 장수 이씨 집성촌(大島里大島長水李氏集成村)이 있다. 하동군 금남면 대도리 대도마을은 금남면 소재지에서 남서 방향으로 3㎞, 남해 월곡마을로부터 서쪽으로 2.5㎞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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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등에서 해방 후 치안 유지를 위해 활동했던 우익 청년 단체. 일제의 패망에 따른 행정 공백과 해방 후 좌우익 간의 격렬한 대립 속에서 군대와 경찰력이 부족한 가운데, 치안 유지 및 좌익 세력과의 투쟁에 청년 단체의 역할이 컸다. 9월 1일 이상경·여재규 등이 주축이 되어 대동청년회를 조직하였다. 회원 83명이 참여하여 군민을 대상으로 민중 계몽 운동을 전개하며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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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음력 1월 15일을 전후하여 전해 내려오는 명절 풍습. 대보름은 가장 큰 보름이라는 뜻으로 음력 정월 보름께에 지내는 명절이다. 이때에 일 년 중 가장 많은 의례와 놀이를 펼치는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구성원들의 단결과 화목을 조성한다. 오늘날 하동 지역에서는 세시 풍속이 많이 중단되었지만 대보름과 관련된 민속은 대체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대보름은 새해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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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에 있는 계곡. 대성계곡은 지리산 남부 능선의 물이 모여 든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지리산 남부 산지의 화개천 계곡에는 위성사진으로 보아도 직선인 곡지가 두 개 나타난다. 가장 뚜렷한 곡지는 벽소령에서 의신계곡의 삼정마을, 연동계곡의 칠불사 입구, 목통마을을 지나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연곡사까지 발달한 곡지로 칼로 벤 듯이 뚜렷하다. 다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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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의신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대성리 의신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룻날 의신마을에 있는 뒷당산의 당산나무에서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당산제의 연원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제보자를 만날 수 없어 연원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가 없다. 신체로는 나무 두 그루가 있었으나, 뒷당산이라 일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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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큰 소나무가 있어 대송(大松)이라 하였다. 달리 대송개라고도 하였는데, ‘개’는 포구를 뜻하는 말로 『호구총수(戶口總數)』에서 대송포촌(大松浦村)이라는 관련 지명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대송동(大松洞)이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 곤양군(昆陽郡) 서면(西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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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화정리 천황봉에서 발원하여 서황리를 거쳐 옥정리에서 북천천과 합류하는 하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현재 북천면의 일부가 진주 대야천면(大也川面)에 속했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북천천과 더불어 북천면의 양대 하천인 대야천은 하동군 북천면 화정리 화정마을, 서황리 기동마을·중촌마을·서황마을, 옥정리 남포마을을 거쳐 북천천과 만나 곤양천을 이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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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오산(金鰲山)[849m]에 있는 큰 고개 아래 자리 잡은 마을이어서 한재 또는 대티[大峙]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도 한재·대치동(大峙洞)이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곤양군(昆陽郡) 금양면(金陽面)의 대현촌(大峴村)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큰 고개의 의미는 담고 있으나 이후 계속해서 등장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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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당시 경상남도 하동의 독립운동가들이 제작, 배포한 독립 선언서. 대한독립선언서는 일명 하동독립선언서라고도 불리는데, 하동 지역 인사 12명의 이름으로 작성되어 3·1 운동 당시 하동군 내에 배포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전해 오는 것은 한 장뿐인데, 독립운동가 박치화(朴致和)가 살던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 고택 처마 밑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3·1 운동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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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활동한 우익 청년 단체. 대한독립촉성국민회는 1945년 10월 결성된 이승만(李承晩) 중심의 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김구(金九) 중심의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중앙위원회가 1946년 2월에 통합하여 조직된 국민운동 단체다. 모스크바 삼상 회담에서 결정된 신탁 통치안에 반대하는 반탁 운동과 좌익 운동 봉쇄 등을 주요 활동으로 하였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청년연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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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진양 정씨 은열공파의 재실. 첨중추(僉中樞) 정대수(鄭大壽)는 오봉로수(鰲峰老叟)라고도 불리는데, 임진왜란 때 광남군 이광악(李光岳)과 더불어 의병을 모아 방어하다가, 맏아들 정이함(鄭以諴)이 고성에서 전사하자 벼슬에 나가지 않고 대현재(大見齋)에 머물렀다.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마을 회관에서 마을 중앙으로 오르면 금양교회가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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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정여창의 사당. 덕은사(德隱祠)는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이 학문을 연구하고 후진을 가르치던 악양정(岳陽亭) 뒤편에 있다.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 상덕마을 중앙로를 오르면 악양정 뒤편에 자리한 덕은사에 이르게 된다. 1490년(성종 21)에 지은 악양정보다도 먼저 건립되었다. 그러나 언제인지 모르게 없어졌다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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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발원하여 경상남도 하동군·진주시·산청군·사천시 일대를 지나 남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국역 진양지』에 “조흘산으로부터 동쪽으로 흘러 상류암을 거쳐 장항동(獐項洞)에 이르고 남쪽으로 흘러 삼장천이 되어 살천(薩川)과 더불어 양당촌(兩堂村) 앞에서 합하니 이를 덕천(德川)이라 이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덕천강은 총 길이 46.72㎞, 유역 면적 461.16㎢로 하동군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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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곤양군(昆陽郡) 서면(西面) 덕포동(德浦洞)의 ‘덕’자와 삼천동(三川洞)의 ‘천’자를 따서 덕천리(德川리)라 하였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덕포촌(德浦村)·삼천촌(三川村) 등의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 곤양군 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삼천동·덕포동이 통합되어 하동군 남면 덕천리가 되었다. 193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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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궁항리 주산에서 발원하여 회신리·위태리를 지나 병천리에서 덕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도덕천이 흐르는 괴정교에서 월횡교에 이르는 골짜기를 도덕골이라 칭했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도덕천 상류 북쪽은 주산을 경계로 산청군 시천면, 서쪽은 칠중대고지와 방화고지를 경계로 하동군 청암면 횡천강 유역, 남쪽은 돌고지재를 넘어 횡천면으로 통한다. 도덕천은 전체적으로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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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 있는 사람이나 차가 다니는 비교적 넓고 큰 길. 일반적으로 도로는 고속 국도, 일반 도로, 특별시도, 지방도, 시도, 군도 등으로 구분된다. 2011년 현재 하동군 관내에는 1개의 고속도로[고속국도 10호선, 일명 남해안고속도로], 3개의 국도[국도 2호선, 국도 19호선, 국도 59호선], 6개의 지방도[지방도 1002호선, 지방도 1003호선, 지방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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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서리에 있는 조선 시대 진양 강씨 문중의 재실. 하동군 적량면 서리 중서마을에 도장골 계곡이 있는데, 계곡을 따라 마을 중앙으로 약 200m쯤 올라가면 마을 오른편에 도산재(道山齋)가 위치한다.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시대로 추정된다. 진양 강씨(晋陽姜氏)의 묘 아래 지은 집[묘하각(墓下閣)]으로, 자손들이 매년 제사를 지낼 때 준비하며 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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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음력 10월에 가택신(家宅神)에게 올리는 고사. 도신(禱神)은 음력 10월에 말날[午日]이나 길일을 선택하여 집안에 탈이 없도록 지내는 고사(告祀)이다. 도신은 농경이 시작된 고대 이래 계속된 가신(家神)들에 대한 종합제(綜合祭)로 대상 신은 가신 전체이며 목적은 추수 감사이다. 이를 ‘상달 고사’, ‘안택’ 등이라고도 한다. 방법은 10월의 첫 말날이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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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토기나 자기를 굽던 가마터. 일반적으로 토기나 자기, 기와를 굽거나 숯을 만들고 철을 녹이던 시설을 통칭하여 가마[窯址]라고 한다. 도요지는 그 가운데 토기나 자기를 굽던 가마에 한정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의 연질 토기는 노천요(露天窯)라고 하는 원시 가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노천요는 연료실과 적재실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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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경상남도 하동에서 활동한 우익 여성 단체. 독립촉성애국부인회는 우익 여성단체인 독립촉성부인단과 한국애국부인회가 통합하여 1946년 4월 5일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산하 단체로 발족하였다. 독립촉성애국부인회는 반탁과 좌익 운동 반대, 단정 수립 지지 등과 관련된 활동을 전개하였다. 미군정의 좌익 조직 탄압과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하동군지부의 결성에 힘입어 황학성·이상격·이보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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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및 일제 강점기에 경상남도 하동 출신이거나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하동은 동학 농민 운동, 3·1 운동을 거치면서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자랑스러운 고장이다. 하동에는 독립운동의 사적지와 독립운동의 공적으로 정부 차원의 서훈을 받은 애국지사가 5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으로 촉발된 의병 운동은 하동에서도 활발했다. 의병 활동과 교전 회수의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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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전대리와 옥종면 회신리를 연결하는 고개. 근대 교통이 발달하기 이전에 하동에서 진주나 산청 방면으로 가려면 돌고지재를 지나야 했다. 횡천역과 양보역이 있는 들판을 통해 진주 방면으로 갈 수도 있지만, 큰 마을이 있는 곳에서 장사를 하며 이동해야 하는 부보상으로서는 길은 빠르지만 진주까지 큰 마을이 없는 평탄한 길보다는 돌고지재를 지나 옥종면을 거쳐 진주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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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에 있는 조선 시대 인천 이씨 문중의 재실. 동곡재(桐谷齋)는 인천 이씨(仁川李氏) 공도공파 28세로 공조참의를 지냈으며, 통헌대부에 추증된 이석맹(李錫孟)과 부인인 숙부인 안동 권씨(安東權氏)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다.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 상신마을 입구에서 마을 중앙로로 약 200m 오르면 상신마을회관이 나오는데, 동곡재는 상신마을회관의 위쪽 약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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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삼동(上三東)·중삼동(中三東)·하삼동(下三東) 등을 합쳐 공통 음절인 ‘동’을 따서 동리(東里)라 하였다. 마을이 적량면(赤良面) 동쪽에 있어 붙인 이름으로 여겨진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삼동촌(三東村)이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1702년(숙종 28) 진주목(晉州牧)에서 하동군 적량면에 편입된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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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 동매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동매마을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룻날 오후에 동매리 동매마을에 있는 할매 당산과 할배 당산에서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동매마을은 소설 『토지』의 무대로 잘 알려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지리산 자락이 병풍처럼 감싸고, 앞으로는 섬진강이 흐르는 경관이 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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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의 특정 지역이나 수역(水域)에 사는 동물. 하동군은 한반도의 동남단과 경상남도의 서남단에 위치하며, 북서쪽으로는 지리산 동남사면, 남쪽으로는 남해안과 접한다. 또한 하동군의 서쪽 편으로는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발원하여 남원, 곡성, 구례를 거쳐 남쪽으로 전라남도와 경계를 이루어 섬진강이 흐르고 있어 산악, 바다, 강, 평야가 두루 분포하므로 동물상도 다양하다. 남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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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동쪽에 산이 있어 된골 또는 동산(東山)이라 하였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동산촌(東山村),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 동산동(東山洞)이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1702년(숙종 28) 진주목(晉州牧)에서 하동군 적량면에 편입된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상동산동(上東山洞)·하동산동(下東山洞)·두전동(豆田洞)·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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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에 있는 수령 약 500년의 보호수.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활엽교목으로 규목(槻木) 또는 귀목나무라고도 하며, 야생에서는 산기슭이나 계곡 또는 민가 인근의 진흙땅에서 잘 자란다. 키는 26m, 지름이 3m 정도까지 크며, 나무의 껍질은 회백색이다. 암수한그루로 4~5월에 꽃이 핀다. 암꽃은 새 가지 위쪽에 1~3개씩, 수꽃은 새 가지의 아래쪽에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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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 상동산에 있는 함안 이씨 동성 마을. 조선 선조 때 산청 출신의 학자 권극량(權克亮)이 옮겨 와 강학소(講學所)를 짓고 자신의 아호를 따서 동산정사(東山精舍)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동산정사 맨 위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상동산이라 하였다. 본디 숨어서 공부하기 좋은 곳이라 하여 둔동(遁洞) 또는 우리말로 된골이라 하였다. 조선 숙종 때 함안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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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에 있는 개항기 때 의령 여씨 문중의 재실. 하동의 동쪽에 있으며, 재실이 위치한 하동군 적량면의 ‘동산리’ 지명을 따서 동산재(東山齋)로 이름하였다. 동산재는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 국도 2호선 변에 있는 하동산마을 입구에서 마을 회관 방향으로 오르면 오른쪽 약 10m 지점에 위치한다. 의령 여씨(宜寧余氏) 문중의 묘하각(墓下閣)으로서, 자손의 세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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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에 지내는 풍속. 동지(冬至)는 글자 그대로 겨울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태양이 가장 남쪽으로 기울어져 밤의 길이가 일 년 중 가장 긴 날이다. 동지는 24절후의 스물두 번째 절기로서 해가 가장 짧은 날이다. 보통 양력으로 12월 22일 경인데 이때부터 해가 길어지기 때문에 새로운 봄을 맞이하게 된다. 음력으로는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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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동토로 생긴 병을 치료하기 위해 행하던 주술 의례. 동토(動土)는 동투·동티로 발음되며, 흙이나 나무 등을 잘못 다룸으로써 지신(地神)이 노하여 가족에게 병을 앓게 하는 증상을 일컫는다. 동토풀이는 동토가 났을 때 이를 이겨내기 위한 처방으로 행하는 민간 의례이다. 이를 동태잽이, 동투잡이, 동정재비, 동티잡기, 동티풀이 등이라고도 한다. 흙 외에도 건드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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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에서 1894년 일어난 동학 농민군을 추모하기 위한 위령탑. 1894년(고종 31) 동학 농민군이 외세를 물리치고 민족과 조국을 구하려는 굳은 의지로 싸울 때, 서부 경상남도의 농민군은 하동 북방리 고성산성(河東北芳里高城山城)에서 집결하여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이때 농민군 수천 명이 현장에서 죽었다고 하는데, 일본군 보고서에 의하면 농민 농민군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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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용강리 일원에 서식하는 되샛과에 속하는 겨울 철새. 몸길이는 약 15~16㎝로 작다. 머리 부분은 짙은 검은색, 목 뒷덜미는 흰색, 등의 앞부분과 중간은 회색, 등의 뒷부분은 검은색, 가슴은 갈색빛을 띤 검은색, 허리 중간 부분과 배는 흰색이다. 허리의 양옆은 흰색, 어깨 깃은 갈색, 턱 밑에서 가슴 사이는 붉은빛을 띤 갈색, 아래 꼬리를 덮는 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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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두방재(斗芳齋) 경내에 있는 강민첨(姜民瞻)의 진영 봉안소. 두방영당(斗芳影堂)은 진주 강씨(晉州姜氏) 은열공파(殷烈公派) 1대인 고려 병부상서 태자태사(兵部尙書太子太師) 은열공 강민첨[?~1021]의 진영과 신위를 봉안한 곳이다. 강민첨은 진주에서 출생하여 목종 때 급제한 뒤, 현종 때 거란의 10만 대군이 침입하자 강감찬(姜邯贊)[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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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와 산청군 시천면에 걸쳐 있는 산. 두방산은 569.7m의 산이며, 비룡산[555m]·흰덤산[639m]·사림산[573.8m]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다. 산줄기 왼쪽으로 산청군 시천면의 깃대봉[일명 오대주산, 642.6m]이, 오른쪽으로 우방산[494m]·정개산[520m]이 이어진다. 두방산 아래 평야에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가 자리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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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두양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두양마을 동제는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 자시에 옥종면 두양리 두양마을의 뒷산 소나무와 마을 앞 느티나무에서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두양마을은 하동군 옥종면에서 산청 쪽으로 가다 보면 지리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두방산 아래 양지쪽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일명 ‘양지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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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두방산에서 발원하여 덕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있는 하천이므로 두양천이라 하였다.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는 두방산(斗芳山)[569.7m] 아래 양지쪽에 터를 잡아 붙인 이름이다. 상류에서 두방산 줄기의 여러 물줄기들을 합쳐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점촌마을과 두양마을 사이의 좁은 골짜기를 거쳐 숲촌마을 앞을 지나 덕천강 두양보 근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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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 궁항리에 있는 신라 시대의 봉수대. 두우산 봉수는 신라 시대 때 백제와 경계 지점에 해당하는 두우산에 축조하여 전쟁에 이용하였다고 전해진다. 섬진강 하구와 남해 바다를 감시하여 하동 금오산 봉수대(河東金鰲山烽燧臺)에 연락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축조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구전에 의하면, 신라 시대에 축조된 봉수대로 보고 있다. 그러나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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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 궁항리에 있는 신라 시대 석성. 두우산성(頭牛山城)은 신라 시대에 백제와의 경계 지점인 두우산에 봉수대를 설치하여 백제의 침공에 대비하면서 축성한 산성으로 전해진다. 하동군 금성면 궁항리에서 고포리 경계 지점에 있는 두우산 정상에 위치한다. 두우산 능선 아래 남해 바다와 섬진강을 조망할 수 있는 자리에 축조되었다. 평면 원형의 소규모 석축 보루이다. 성의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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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와 횡천면 학리에 걸쳐 있는 소. 둔동용소는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 상동산마을 앞 횡천강에 있는 깊은 소로, 물밑에 용굴이 있고 용이 살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둔동은 함안 이씨 이우백(李友白)[1619~1684]이 말년에 지금의 상동산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자칭 둔동처사(遯洞處士)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달리 된골이라고도 부른다. 하동군 청암면 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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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위해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신에게 기원하는 신앙 행위. 마을 신앙은 마을 의례 문화에서 제일 잘 나타나는데, 그 범주가 대체로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는 신앙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마을 공동체 의례로서 가장 사회적이고 공동적인 신앙이 당산제[동제]이고, 이외에 기우제도 마을 신앙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하동 지역의 마을 신앙은 일반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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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전대리와 청암면 평촌리를 연결하는 고개. 전통시대에 하동에서 지리산 동부 산지로 갈 때 옥종면 궁항리에서 갈티재를 넘어 산청군 시천면을 통해 거림골로 들어가거나, 청암면 묵계리와 옥종면 궁항리 사이에 있는 갈마재를 넘거나, 말티재를 넘는 세 길이 있었다. 지질학적으로 하동군 청암면 상이리·중이리·평촌리, 옥종면 위태리·궁항리·회신리, 횡천면 전대리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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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땅을 다지는 망깨질을 하면서 놀던 놀이. 망깨놀이는 집터나 땅을 다질 때에 소리꾼이 부르는 토건(土建) 노동요인 「망깨 소리」에 맞추어 망깨질을 하면서 즐기던 민속놀이이다. 즉 망깨놀이는 망깨라는 노동 기구를 이용한 망깨질을 놀이화한 것이다. 따라서 망깨놀이는 망깨라는 놀이 도구를 이용하여 터를 다지거나 견고하게 만들면서 행하는 재구성된 민속놀이라 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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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에 있는 조선 시대 의성 김씨의 재실.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 마을 하천을 따라 약 30m 오르면 왼쪽에 위치한다. 매강재(梅崗齋)는 의성 김씨(義城金氏)의 묘하각(墓下閣)으로서, 자손의 세일제(歲一祭)[1년에 한 번 지내는 묘제] 재숙소(齋宿所)로 세재 정묘 11월 21일에 건립하였다. 1964년 중건하였다.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일자형 홑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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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 있는 최치완(崔致完)을 기리기 위해 지은 재실. 전주 최씨(全州崔氏) 최규성이 6대조인 낙안군수 가선중추부사 최치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재실을 건립하였다. 최치완은 산청으로 이사를 와서 세상을 뜨고, 아들 용양위부호군 최성종(崔聖鍾)이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 들어와 여러 대를 살았다. 매산재(梅山齋)는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청암마을 뒤 수리곡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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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서식·재배하는 장미과의 낙엽소교목. 매화나무는 하동, 구례, 광양 등 지리산 남사면과 섬진강 주변의 야산에 자생하는 것도 많지만 꽃의 아름다움과 열매의 효능으로 정원수는 물론 유실수로도 많이 키운다. 때문에 하동의 어느 곳에서나 매화를 볼 수 있으며, 하동의 주 소득 작목이자 특산물이 되고 있다. 키는 5~10m 정도이며, 어린 가지는 녹색이나 자라면 암자색을 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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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음력 정월 초부터 보름 무렵까지 농악패가 집집을 돌면서 풍년을 기원해 주고 악귀를 쫓는 농악놀이. 경상남도 지방에서는 농악놀이를 ‘매구친다’, ‘굿친다’라고 하는데, 매구는 한자로 묻을 매(埋)와 귀신 귀(鬼), 즉 잡귀를 쫓아낸다는 뜻이다. 메구굿은 원래 섣달 그믐날 밤 혹은 정초에 치는 의식 농악으로, 매굿·매귀·매귀굿·답장(踏場)굿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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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돌을 쪼아 만든 다리가 있었다 하여 조신다리·조신더리 등이라 하였고, 한자로는 명교(銘橋)로 표기하였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명교촌,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죠신다리,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 명교동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 하동군 고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하동군 고전면 명교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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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명교리 명교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명교마을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고전면 명교리 명교마을에 있는 명교숲의 느티나무에서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명교마을은 양보면 운암리 진암마을과 지례리 만지마을과 인접하며, 마을 주위로 주교천이 흐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신체가 위치하며 기이한 형태의 바위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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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명호리 명사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명사마을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 아침에 청암면 명호리 명사마을 입구에 있는 당산 할매와 뒷산 중턱의 당산 할배에서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명사마을은 유명한 절이 있었던 마을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명사마을 당산제의 연원에 대해서 정확히 기억하는 제보자는 찾을 수 없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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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고유의 명절에 특별히 만들어 먹는 음식. 계절에 따라 관습적으로 반복되는 생활 양식은 그 민족의 생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시절에 따라 지켜지는 세시 풍속은 연중행사로 되어 있는데 음력이 그 중심이 되고 있으며, 농경 사회에서 풍년을 기원하고 액운을 추방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매 세시 풍속에 맞춰 계절에 따른 음식을 장만하여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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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모판에서 모를 쪄 묶어 내면서 부르는 노동요. 「모 찌는 소리」는 모심기를 하기 위해 모판에서 모를 쪄 낼 때 부르는 농업 노동요이다. 하동 지역에서는 서로 품앗이를 하거나 놉[품팔이 일꾼]을 얻어 모를 심을 경우 못자리에 빙 둘러 엎드려 모를 찌면서 「모 찌는 소리」를 부른다. 하동의 「모 찌는 소리」로는 「모 찌기 노래」, 「모 찔 때」, 「못노래」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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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논에 모를 심으면서 부르는 노동요. 「모심는 소리」는 모를 못자리에서 논으로 옮겨 심는 과정에서 주로 부르는 농업 노동요이다. 즉 모내기를 할 때 부르는 노래이다. 모내기는 짧은 시기에 많은 일손이 집중되는 일이다. 하동에서는 아침나절에는 모를 찌고 오전 새참 무렵부터 모를 심었다. 이때 일꾼들이 잠자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노래를 불렀다.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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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큰 나무를 나르면서 부르는 노동요. 「목도 소리」는 아주 무거운 물건을 두 사람 이상이 짝이 되어 공동으로 옳기면서 부르는 운반 노동요이다. 토목, 건축 등의 작업장에서도 무거운 돌이나 목재를 옮길 때에도 부른다. 이러한 일은 아무나 하기 어렵기 때문에 목도패와 같은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이들이 큰 목재나 비석 등의 무거운 물체를 운반할 때는 서로 손발을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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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관을 묻은 후 봉분을 다질 때 부르는 의식요. 「뫼 다지는 소리」는 장지에서 관을 묻고 무덤을 만든 후 흙을 단단하게 다지며 부르는 장례 의식요이다. 내용상은 의식요이면서 기능상 노동요의 성격을 갖고 있다. 하동 지역에서는 이를 「회다지 소리」라고도 한다. 「회다지 소리」는 죽은 사람을 묻고 묘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회(灰)를 섞은 흙을 다지면서 부르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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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음악에 맞추어 몸을 움직여 감정과 의지를 표현하는 예술 분야. 무용은 인간의 신체를 소재로 하여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예술적 행위이다. 인간은 신체를 이용하여 의사소통과 감정을 전달한다. 인간의 모든 행위나 동작 표현은 원시 시대 이후 현재까지도 원초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러한 것은 무용의 동작을 통해서 흔히 실증되어 왔다. 따라서 무용은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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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묵계리 청학 산신제는 매년 곡우(穀雨)[4월 20일 경] 무렵에 삼신봉 아래에 있는 제단에서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삼신계 회원들이 공동으로 지리산 산신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삼신계는 삼신봉 아래 사는 주민이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조직한 단체로서 6·25 전쟁 전후에 풍수 지리학자였던 고(故) 최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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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강성(江城). 호는 은파(隱坡). 할아버지는 문영국(文永國)이고, 아버지는 문욱동(文勗東)이며, 어머니는 강청등(姜淸登)이다. 부인은 벽진 이씨(碧珍李氏)이며, 자녀로 5남 1녀가 있다. 문공학(文孔學)은 1897년 9월 27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1212번지에서 문욱동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유학의 기본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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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 있는 문공학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 살던 문공학(文孔學)[1897. 9. 27~1946. 8. 27]은 전국적인 만세 시위 소식을 듣고 애국 애족심이 일어나 1919년 3월 21일 횡천면의 3·1 운동을 지도하고 피신하였다. 다시 그해 4월 3일 하동군 북천면의 3·1 운동을 지도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5월 29일 부산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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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의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진양(晉陽). 아버지는 정해종(鄭海鍾)이다. 남편은 문수호(文守浩)로, 본관은 강성(江城)이다. 문수호 처 진양 정씨는 어려서는 부모에게 효성스러웠으며,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로 시집을 와서도 시부모 봉양과 남편 내조를 잘했다. 남편이 광견(狂犬)에게 물려 병이 나자 지성으로 간호하고, 병세가 심해지자 손가락에서 피를 내어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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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문암리 문암마을 남동쪽에 있는 평야. 문암리에 있는 들이므로 문암들이라 하였다. 문암리는 본디 문처럼 생긴 바위가 있으므로 문바우 또는 문암(門岩)이라 하였는데 임진왜란 뒤 강가의 정자에 문사들이 많이 모이므로 문암(文岩)으로 고쳤다. 문암들은 해발 고도 약 65m로 문암리 앞을 흐르는 덕천강 변에 형성된 들이다. 동쪽에 덕천강이 남쪽으로 흐르고, 서쪽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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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 대축마을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문암송대제는 매년 음력 칠월 보름날에 악양면 축지리 대축마을의 아미산 중턱에 있는 문암송(文岩松) 앞의 문암정에서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문암송은 커다란 바위를 뚫고 자라고 있어 마치 큰 바위에 걸터앉아 드넓은 악양 들녘을 내다보고 있는 듯 기이한 형상의 소나무이다. 예전에는 이 나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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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영빈(文永彬)은 삼우당(三憂堂) 문익점(文益漸)의 17세손이며, 직하재(稷下齋) 문헌상(文憲尙)의 6세손이다.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서 태어났다. 1910년 한일 합방이 선포되자 독립 기구에 참여하고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 상해 임시 정부의 전신인 배달학회(倍達學會)[주석 이시영]에서 총무부장직을 맡아 당시 외교부장이던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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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표현하는 창작 활동. 문학이란 상상의 힘을 빌려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또는 작품을 일컫는다. 하동 문학을 현전하는 작품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대략 조선 시대 선비들이 하동을 유람하고 지은 한문학 작품, 지역민에 의해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는 구비 문학, 그리고 근현대 하동 출신 작가들에 의해 전개되었던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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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음악, 미술, 연극, 영화, 문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행해지는 활동 하동 문화는 고대부터 가야권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나,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백제와 인접해 있어 백제권 문화의 영향도 받았다. 백제와 일본의 교류가 섬진강을 주 통로로 이용하였기 때문에 일본의 문화와 접한 흔적도 많다. 하동은 가야 시대부터 불교가 융성했던 곳이다. 수로왕비 허황옥의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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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열매로 만든 물레방아를 돌리며 놀던 놀이. 물레방아놀이는 여름철이 되면 아이들이 시원한 개울가에서 열매를 가지고 물레방아를 만들어 돌리며 놀던 민속놀이이다. 이때 물장구도 치고 고기도 잡지만 아직 영글지 않은 새끼 감자를 캐거나 과수나무의 풋과일을 따다가 졸졸졸 흐르는 좁고 낮은 물에 물레방아를 설치하여 돌아가는 재미로 놀았다. 물레방아놀이를 노는 장소는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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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시각 예술 행위 및 그 결과물. 미술은 시각적 또는 조형적인 방법으로 사람의 감정이나 뜻을 나타내는 예술의 한 종류로, 그림·조각·건축·공예 등을 모두 포함한다. 하동 지역은 역사적으로 가야 및 신라 시대를 거치면서 불교가 융성했던 곳으로, 남아 전하는 역사적 유물 또한 불교 미술이 많다. 사찰의 건물, 불상, 탱화, 부도(浮屠) 등이 주를 이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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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의 민간에서 오래 전부터 믿어져 내려온 신앙. 민간 신앙은 교조나 종교의 시작 시기 등이 불명확하고, 고등 종교와 달리 체계적인 교리나 교단 등도 없이 오래도록 민간에 전승되어 온 신앙을 말한다. 원시 시대의 자연 숭배, 정령 숭배로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무속과 동제, 가신 신앙 등이 이에 속한다. 민간 신앙은 민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린 신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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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의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생활 풍속. 민속은 한 지역에서 오랜 옛날부터 행해 온 민중의 생활에 관한 습관을 의미한다. 때문에 민속의 가장 큰 특징은 지속성과 전승성이라 할 수 있다. 민속에는 의식주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생활 민속, 세시 풍속, 평생 의례, 민간 신앙, 구비 전승, 민속놀이 등 매우 많은 영역이 포함된다. 하동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영남과 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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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하동 지역의 생활과 습관을 반영한 놀이. 민속놀이는 옛날부터 민간에 전승되어 오는 여러 가지 놀이로 향토색을 지니며, 전통적으로 해마다 행하여 오는 놀이를 말한다. 민속놀이는 마을 공동체와 생활 공동체 구성원들 대부분이 놀이의 주체가 되고 놀이 환경을 조성하여 행하여진다. 하동 지역에서는 산과 강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지리적 여건으로 인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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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의 민중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전해 내려오는 노래. 민요는 민중에 의해 구비 전승된 노래로서 민중의 생활·감정·사상 등이 잘 나타나 있다. 전문가가 부르는 노래와는 달리 노래를 부르는 창자의 필요성으로 만들어진 노래이기 때문에 창자인 민중의 삶이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하동의 민요도 하동 지역 민중이 즐겨 부르는 노래로, 그들의 삶을 바탕으로 만들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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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박영석·박영창·박첩동 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밀양 박씨는 박혁거세를 원조(元祖)로 하고, 경명왕(景明王)[917~924]의 첫째 아들 박언침(朴彦忱)[밀성대군]을 시조로 한 우리나라 고유한 성씨이다. 밀양 박씨는 고려 중기 이후 크고 작은 분파(分派)를 이루고 번성하여 많은 지파(支派)가 존재한다. 하동 지역의 밀양 박씨는 규정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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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부녀자들이 바느질을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 「바느질 소리」는 부녀자들이 바느질을 할 때에 부르던 가사 노동요이자 부요(婦謠)이다. 하동 지역에는 「줌치 노래」와 「바늘 노래」 등 두 가지 소리가 전해 오는데 잠도 쫓고 현실의 고된 삶을 잊고 상상의 나래를 무한히 펼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줌치 노래」는 정성 들여 곱게 지은 주머니를 사 가라는 내용으로 주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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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밀양(密陽). 박중래(朴重來)로도 불린다. 아버지는 한의사로 활동한 박준형(朴準亨)이고 어머니는 신상남(申相南)이다. 부인은 영산 신씨(靈山 辛氏)로, 슬하에 딸 박기남을 두었으며 사위는 김금용이다. 외손자부는 전 환경부장관이자 연극배우인 손숙(孫淑)이다. 박내홍(朴來洪)은 1892년(고종 29) 10월 7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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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수문장을 지낸 이씨 성을 지닌 이가 거주하면서 밤이면 달빛이 유난히 밝아 달동[月洞]이라 불렀는데,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밝은 달’을 박달(朴達)이라 음차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조선 말 서양곡면(西良谷面)으로 박달촌·봉곡촌·성치촌·세곡촌·반계촌이 있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양보면 박달리가 되었다. 개편 당시 봉곡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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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 반계에 있는 함창 김씨 동성 마을.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에 넓적한 바위가 많아, 바위가 많은 냇물이 흐르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반계(磻溪)라 하였다. 지난날 이웃 세곡(細谷)[일명 가느실]에 속했을 때는 반계땀이었다가 행정 마을로 분리되면서 반계가 되었다. 마을 부근에 지석묘가 있고 민무늬 토기, 항아리 조각, 사기 조각 등이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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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규정공(糾正公) 박현(朴鉉)의 후손이다. 박달숙(朴達淑)[1867~?]은 나이 겨우 3세에 아버지를 잃고 12세에 어머니가 앞을 볼 수 없게 되어, 의지할 데 없는 외로운 몸으로 어머니를 모셨다. 어머니가 대소변을 보러 갈 때는 반드시 몸소 부축해 드리면서 20년을 한결같이 모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너무나 슬퍼하여 아침마다 성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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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하동 3·1운동의 효시는 1919년 3월 13일 하동시장에서 전개된 독립만세 사건이다. 하동군 양보면 출신으로 양보일신학교 교사로 있던 정세기(鄭世基)[1984~1981]와 정성기(鄭成基), 정윤기(鄭潤基)의 주도로 시작된 이날의 시위는 군민들의 큰 관심과 호응을 얻어 하동군 각지에 자극을 주었다. 그 해 5월에도 하동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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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하동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치보(致甫), 호는 월포(月浦). 고려 후기 판삼사사(判三司事)를 지낸 문제공(文齊公) 박충좌(朴忠佐)[1287~1349]의 후손이다. 예안의 역동서원(易東書院)에 봉향된 박충좌는 성품이 온화하고 검약하며 일생 동안 글 읽기를 즐겨하였다고 전한다. 박서한(朴瑞翰)은 지기(志氣)가 호탕하고 고매하였으며 힘이 매우 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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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묵(朴永默)은 같은 마을 사람인 이종인(李宗仁) 등과 함께 1919년 4월 6일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에 있는 배다리장터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뒷날 일본 경찰이 마을을 포위하고 주동자를 찾자 스스로 주동자라고 외쳐 경성고등법원에서 2년 6개월 형을 받아 복역하였다. 박영묵의 본관은 밀양(密陽)으로, 1881년 5월 5일 지금의 경상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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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횡천리에 있는 개항기 진양 하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하진문(河晉文)의 딸 진양 하씨(晉陽河氏)는 함양 박씨(咸陽朴氏) 박이한(朴而翰)에게 시집갔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혼인 초에 남편이 독사에 물려 세상을 떠났는데, 진양 하씨는 독사가 나타난 곳으로 가서 슬피 울며 이틀을 기다려 독사를 잡아 물어서 씹어 죽이곤 자결을 하였다. 고종 연간에 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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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의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해주(海洲). 아버지는 정우교(鄭愚敎)이다. 남편은 박재춘(朴在春)으로, 본관은 태안(泰安)이다. 박재춘 처 해주 정씨는 18세에 박재춘과 혼례를 치렀으나, 채 시가로 오기도 전에 친정에서 남편의 발병 소식을 들었다. 밤새껏 말을 타고 달려와서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빌며 온갖 방법을 동원했으나 8개월 만에 남편의 병이 더욱 악화되었다. 손가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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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자빈(子彬). 문헌공(文獻公) 박연(朴堧)[1378~1458]의 후손이다. 박연은 조선 전기 세종 대의 음악 이론가로 1411년(태종 11) 진사에 등과했으며, 그 뒤 사간원 정언과 봉상판관 겸 악학별좌, 예문관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세종을 도와서 음악을 정비하는 데 많은 공헌을 했으며, 특히 율관 제작을 통한 편경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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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화선(和善). 낙촌(駱村) 박충원(朴忠元)의 후손이다. 박흥장(朴興章)은 1809년(순조 9)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에서 태어났다. 집이 가난했지만 공자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자로(子路)처럼[자로는 100리 밖에 나가 있으면서도 쌀을 지고 와서 부모를 봉양했음] 효도를 다하였고, 진(晉)나라 사람 왕상(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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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의 매체를 통해 음성이나 영상을 전파로 내보내는 일. 초기에는 모스 부호를 활용한 무선 설비로 특정인에게 단순한 정보를 전달하는 통신으로 시작하여, 근대는 음성과 영상 정보가 실린 라디오나 텔레비전으로 다수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방송으로 발전하였다. 현재에는 케이블과 지상파 방송뿐만 아니라 방송 통신의 융합으로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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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와 운암리에 걸쳐 있는 폭포. 하동군 동부는 청암면과 산청군 시천면 경계에 있는 주산에서 횡천면 횡천역을 거쳐 금성면 해안까지 이어지는 남북 방향의 산줄기와, 옥종면 우방산에서 사림산·옥산을 거쳐 이명산·금오산에 이르는 남북 방향의 산줄기가 중심을 이룬다. 두 산줄기 사이의 양보역에서 하동읍성에 이르는 지역은 저산성 구릉들로 이루어져 있다. 행정 구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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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부녀자들이 밭에서 김을 매며 부르는 노동요. 「밭매는 소리」는 부녀자들이 콩·팥·조 등을 심어 놓은 밭에서 밭매기를 하면서 부르는 농업 노동요이다. 밭매기는 주로 여성들이 담당했던 일이다. 「밭매는 소리」는 창자(唱者)에 따라 구분하면 여성들이 부르는 부요(婦謠)이면서 기능상 농업 노동요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하동문화원에서 발간한 『하동의 민요』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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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내선(乃善), 호는 아정(啞亭). 정해군(貞海君) 백수장(白壽長)의 후손이다. 부인은 은진 송씨이다. 백기수(白麒洙)는 1747년(영조 23)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느 해, 아버지의 병이 위독하여 의원에게 달려가던 중 홍수가 길을 막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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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안릉(安陵). 아버지는 이병의(李柄義)이다. 남편은 백남봉(白南鳳)으로, 본관은 수원(水原)이다. 백남봉 처 안릉 이씨는 천성이 효성스러워 시집을 온 후 시부모를 극진히 섬겼다. 23세에 남편의 병이 심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흘려 넣었으나 끝내 남편이 죽자 통곡을 하면서, “박복한 몸이 살아서 무엇 하리.” 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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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밀양(密陽). 남편은 백낙훈(白樂訓)이다. 밀양 손씨는 어려서부터 부모의 명을 어기는 일이 없어 효녀라 칭찬받았다.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로 시집을 왔는데, 남편이 중병에 걸려 여러 달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 병의 증상을 알기 위해 똥의 맛을 보기도 하고 병상의 고통을 자기가 대신하겠다고 하늘에 빌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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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서 지리산 백무동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백무 이야기」는 백무동(白武洞)이 원래 백 사람의 무당이 있었다고 하여 백무동(白巫洞)이라고 하였다는 지명유래담이다. 수도승이던 법우(法雨) 스님이 어느 날 길을 잃고 천황(天皇)할머니와 인연을 맺어 혼례를 올리고 낳은 여덟 딸을 전국 각지로 보내 무당이 되게 하였으며, 그중 셋째 딸은 청학동(靑鶴洞) 삼신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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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안희제가 설립한 민족 기업. 백산상회(白山商會)는 1914년 의령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1885~1943]가 이유석(李有石), 추한식(秋翰植)과 함께 부산에서 설립한 회사이다. 1919년 5월 백산상회는 최준, 최태욱, 윤현태, 윤상태, 강복순 등 영남의 대지주를 주주로 하는 주식회사로 개편되었다. 이때 하동에서는 지주 정재완(鄭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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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으로 이주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백운룡(白雲龍)은 1925년 2월 28일 평안북도 신의주 신의주시 미륵동 151번지에서 태어났다. 1943년 일제의 징병령이 강화될 즈음 만주로 피신했다가 같은 해 11월 산동성 청도 지구의 적지구공작대(敵地區工作隊)에 입대하여 적지구 특파 공작대원으로 광복군의 징모(徵募) 공작을 전개하였다. 1944년 1월 광복군 소속인 윤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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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음력 7월 보름에 전해 내려오는 풍습. 백중(百中)은 망자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제를 올리고 머슴을 쉬게 하는 날이다. 이를 백종(百種), 중원(中元), 망혼일(亡魂日) 등이라고도 한다. 이 무렵이 되면 여러 가지 과실과 채소가 많이 나와 ‘백 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 놓았다고 하여 유래된 말이다. 하동 지역에서는 마을 단위로 날을 정하여 하루를 먹고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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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서식하는 뱀장어과에 속하는 민물고기. 몸길이는 약 70~150㎝이다. 몸이 원통형으로 가늘고 길며, 꼬리 쪽으로 갈수록 더 가늘다. 성숙한 개체는 아래턱이 위턱보다 앞쪽으로 약간 돌출되어 있으며, 몸체에는 아주 작은 비늘이 나 있으나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다. 매우 미끄러워 손으로 잡기 힘들다. 몸체의 등은 짙은 갈색, 배는 엷은 갈색을 띤다. 황갈색을 띠는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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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범사동(泛槎洞)의 ‘범’자와 아동(鵝洞)의 ‘아’자를 따서 범아리(泛鵝里)라 하였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범사촌·아배촌(鵝背村),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아동·두룸박골 등 관련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 하동군 마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마전면 범사동과 아동이 통합되어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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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일원에 서식하고 있는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 활엽 교목. 하동군 화개면 화개장터 건너편에서 쌍계사에 이르는 도로변 가로수는 벚나무로 식재되어 있으며, 해마다 4월경에 벚꽃이 만발한다. 이른바 ‘화개10리 벚꽃길’이다. 일명 ‘혼례길’이라고도 하는데, 청춘 남녀가 손을 잡고 걸으면 백년해로한다는 이야기가 전하며, 이 주변에서 벚꽃 축제가 해마다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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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부녀자들이 베를 짜면서 부르는 노동요. 「베틀 소리」는 부녀자들이 베틀에 앉아 베를 짜면서 부르는 길쌈 노동요이자 부요이다. 이를 하동 지역에서는 「베틀 노래」, 「베틀가」 등이라고도 한다. 부녀자들이라면 누구나 한 소절을 뽑을 정도로 많이 부르던 「베틀 소리」는 베틀의 기구들을 여